〈 23화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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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정사 후의 후희 후에, 그들은 침대에 누워 대화를 나누었다. 어쩌면 후반전을 위한 휴식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난 이름보다 자기라고 하는 게 더 좋은데...”
수현이 말했다.
“그래? 음, 그럼 난 자기라고 할게. 자기는 나 이름 불러줘. 특히 약간 저음으로 내 이름 불러 줄 때 막 짜릿한 게 있어.”
연희는 간단하게 정리하며 얼굴을 붉혔다.
“연희야. 이렇게?”
수현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연희가 작게 웃었다.
“맞긴 한데, 좀 달라. 약간... 진짜는 나 잡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 있어.”
연희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내가 가짜야?”
수현이 상처라는 듯이 말했다.
“아니이. 그게 아니라, 그 상황이 있다니까.”
연희는 얼른 그를 달래듯 붙어오며 애교를 피웠다. 수현이 피식 웃었다. 그는 연희의 붉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물기 어린 소리가 퍼졌다.
“김연희.”
수현이 짙어진 목소리로 말하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연희가 짜릿한 표정을 지었다. 둘은 얼른 다시 짙은 입맞춤을 했다. 자연스럽게 수현의 몸이 연희의 위로 올라갔다. 후반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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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과 연희의 아침은 꽤나 바빴기에 ‘아침에 한 번 더’는 아쉽게도 없었다. 연희는 오전 조 출근이었고, 수현도 오전 과외가 있었으니까. 그들은 간단한 식사로 아침을 먹고, 진짜 신혼부부처럼 입을 맞추고 각자 출근을 했다. 누가 봤다면 신혼부부가 새로 이사 왔을 것이라고 착각할만한 그런 광경이었다.
수현의 과외는 생각보다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소현이와 그녀의 어머니는 전처럼 그를 맞이했고, 수업을 진행했다. 소현의 신뢰도가 조금 오른 듯한 느낌을 제외하고는 다를 점은 없었다. 2층의 인기척은 나올 때까지 없었으나, 수현은 결국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나왔다.
수현은 작게 한숨을 쉬고 집으로 향했다. 자신이 더 깊게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에게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수현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HTS를 켰다. 시작가보다 좀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수현은 잠시 고민했다.
“후, 콜 가격을 보고 들어가 보자.”
수현은 ELW에서 STX의 콜을 검색했다. 3월 만기의 행사가 17800원, 행사비율 0.2짜리가 10원에 팔리고 있었다. 매도 물량만 있고, 매수물량은 아예 없었다. 수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돈을 조금 더 보태 100만원 어치를 매수했다. 매수 확인 메시지가 뜨고, 그의 잔고에 ELW콜이 떴다.
아주 큰돈은 아니었지만, 기아차, 아니 STX주식에만 넣어둬도 몇 달 뒤면 배 이상으로 불어날 것이 확실한 돈이었다. 만약 제대로 올라주지 않으면 사실상 최소 수백만 원 이상을 날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수현은 작게 입맛을 다시다가 창을 껐다. 이미 던진 주사위였다. 만기까지 붙들고 있기로 한 이상 한 달은 보지 않고 있는 것이 속편했다.
그는 그제야 허기를 느꼈다. 간단히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섭취한 수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식기야 그렇다고 쳐도, 콘돔이나 긴 머리카락 같은 것들은 들키면 매우 곤란한 것들이었다. 그는 이불 빨래부터 돌려놓고, 토토 산책을 다녀와서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욕실과 거실, 부엌이 주요 대상이었다. 그는 최근 들어 이상하게 이불 빨래를 많이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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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품에 폭 안기는 연희를 기분 좋게 끌어안았다. 비슷한 행동인데도, 무언가 잠자리를 가지고 난 전과 후의 느낌은 달랐다.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오늘 안 늦었어?”
수현이 걱정이 되어 물었다.
“응. 딱 맞게 왔어. 좀 뛰긴 했지만.”
연희가 맑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나도 나갈 때는 서울역행은 잘 안타거든. 하나 놓치거나 차가 늦으면 큰일이라.”
수현이 연희와 깍지를 끼며 말했다.
“응, 괜찮았어.”
연희가 팔에 기대며 말했다.
“오늘은 별 일 없었구?”
“오늘 유난히 팝콘 폭탄이 많았던 거? 우리 공포영화 같이 보러 갈래?”
연희가 간단하게 말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수현이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응. 저번 달 나온 영환데, 저번에 왜 파라노말 액티비티라고 그게 되게 무섭대.”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했다. 수현도 아는 영화였다. 보진 않았지만.
“그럼 예매부터 해두고 영화부터 볼지, 저녁부터 먹을지 생각해보자.”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시간대 이미 알지롱! 우리 여기서 햄버거 먹고 올라가서 보자. 시간 딱 맞을거야.”
연희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뭐야, 오늘 보기로 결정해뒀던 것 같은데?”
수현이 피식웃으며 말했다.
“음, 조금?”
연희가 말하고는 혀를 살짝 빼물었다.
“그럼, 햄버거 먹자.”
수현이 시원하게 할아버지가 반겨주는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둘은 간단히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받아 앉았다.
“자기 무서운 거 잘 봐? 많이 무섭대.”
연희가 말했다. 아무래도 살짝 떠보듯 물어본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예전이야 잘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자신이 본 ‘그’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화면 따위야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보통? 나 무섭다고 하면 안아줄 거지?”
수현이 가볍게 말하며, 눈을 찡긋거렸다.
“응. 누나 품에 안겨서 봐도 돼.”
연희가 살며시 팔을 벌리며 말했다.
“연희, 넌 잘 보는 편이야?”
수현이 역으로 물었다.
“음, 난 좋아하긴 하는데 조금 못 보는 편? 사실 그래서 자기가 안 보겠다고 하면 안 보고, 보겠다고 하면 보려고 했어.”
연희가 약간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현이 피식웃었다. 진동벨이 울렸다. 수현이 트레이를 받아오자, 연희가 즐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배가 좀 고프긴 했나보다.
“그럼 퇴장 때 문 열러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해?”
수현이 물었다.
“화면 안 보이는 쪽에서 귀 막고 있으니까 괜찮아.”
연희가 햄버거 포장을 벗기며 말했다.
둘은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영화관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말대로 영화시간은 20분 후였다. 예매를 마치고 둘은 잠시 자리에 앉았다. 지나가던 몇 명의 알바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아는 척을 했다.
“여기서도 유명인이구나.”
수현이 연희에게 속삭였다.
“유명인은 무슨... 다 서로 금방 알게 돼.”
연희가 그를 툭 밀며 말했다.
“아, 여자들까지 걱정된다.”
수현이 말하자, 연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오늘 자기보고 포기했을 걸? 이렇게 멋진 남친이 있는데.”
연희가 그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말했다. 이번엔 수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둘은 시간을 확인하고 영화관 내로 입장했다.
광고가 여러 개 지나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연희는 살짝 긴장되는지 수현의 손을 살짝 힘을 주어 잡았다. 영화는 일반적인 느낌의 공포영화와는 달랐다. 상상력을 꽤나 자극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연희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었다. 그녀는 끝날 때쯤 수현의 품에 있었다. 수현은 담담하게, 아니 오히려 즐겁게 영화를 즐겼다. 따뜻한 여자친구의 온기가 점점 품으로 다가오는 그 맛이 있었다.
“와, 나 여태껏 본 영화 중에 제일 무서운 것 같아.”
연희가 나와서도 약하게 떨며 말했다.
“꽤 독특하더라. 난 막 뭐 귀신 튀어나오고 그런 거 생각했는데.”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치? 그래서 더 무서웠던 것 같아.”
연희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따뜻한 거 좀 마시러 갈까?”
수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서 떠는 모습이 작은 토끼를 연상케 했다.
“응. 그러자.”
연희가 얼른 동의했다. 그들은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한 잔씩 시키고 앉았다.
“자기는 그래도 잘 보더라...”
연희는 진정된 얼굴로 그를 보며 말했다.
“사실, 어제나 오늘이나 난 누구한테만 눈이 계속 가서...”
수현이 약간 능글맞게 말했다. 연희가 눈을 흘기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음, 따뜻하다. 난 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 보단 다른 커피들이 더 좋은 것 같아. 넌 어때?”
연희가 두 손으로 잔을 쥐고 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그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일...”
수현이 민망하게 말했다. 제일 깔끔하고 뒷끝 없는 것은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연희가 피식 웃었다.
“추우면 그래도 따뜻한 라떼 정도는 좋은 것 같아.”
수현이 덧붙이며 잔을 들어보였다.
“아, 기운 빠졌어. 진짜 영화보고 이런 적은 없었는데.”
연희가 테이블에 엎어지듯 누우며 말했다. 수현이 그녀의 손을 깍지를 끼고 잡아주었다.
“내 힘을 줄게. 흡!”
수현이 말하자, 연희가 피식 웃었다. 둘은 한동안 영화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날 연희가 일찍 출근을 해야 했기에 그들은 조금 이르게 카페를 나와 지하철에 올랐다.
“그러고 보면 자기는 컴퓨터 게임 같은 건 안 해?”
연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응? 아, 응. 거의 안 해. 좀 이상하지? 난 그거랑 공부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더라구. 그냥 fps라고 총게임은 가끔 친구들이랑 하는 정도?”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민망하게 웃었다.
“공부랑 같아?”
연희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뭐 아이템 외우고, 레벨 올리고, 무슨 미션 깨고... 공부랑 똑같지 않나? 총게임은 생각 없이 쏘면 되는 편이라 그래도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데, 다른 건 머리 많이 써야 해서 싫더라고.”
수현의 말에 연희가 독특한 관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같이 그 총게임은 해보러 가자. 갑자기 궁금해지네.”
연희가 말했다.
“그러자.”
수현이 얼마든지 좋다는 얼굴로 말했다.
역을 빠져나오자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오늘은 거리에 인기척이 드문드문 있었다.
“이 시간엔 그래도 사람이 좀 있네.”
수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응. 고시촌이잖아. 의외로 치안은 괜찮다니까.”
연희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둘은 차가운 공기만큼 서로에게 꼭 붙었다. 추위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달라붙을 이유가 되어주었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음에도, 그들은 결국 연희의 자취방 건물 앞에 도착했다.
대문 앞에서 그들은 약간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늘... 혼자 잘 수 있겠어?”
수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니. 영화가 너무 무서웠어.”
연희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실이기도 했지만, 핑계이기도 했다. 섹스의 맛을 알게 된 젊은 남녀에게 기회가 생겼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둘은 다시 손을 잡았고, 대문으로 함께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