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21 (21/94)



〈 21화 〉21

*


연희는 수현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얼마 전에 사두었던 물품들을 이리저리 늘어놓았다. 요리는 종종해봤지만, 초콜릿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꼼꼼히 중요한 팁들을 찾아가며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이 수현이  초콜릿이 든 병을 가져왔다.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알싸하고 달콤한 맛이 입에 퍼졌다. 원래도 좋아하지만, 준 사람이 생각나 더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뚜껑을 잘 닫았다.


“음, 어디에 두지...”


연희는 여기 저기 둘러보며 고민했다. 장식용으로도 예뻤고, 나름  선물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자신이 공부하며 자주 보는 책상의  부분을 비우고 병들을 예쁘게 진열해 두었다.

“음, 좋아. 하루에 하나씩만.”


연희는 기분 좋은 콧소리를 흘리고는 다시 늘어놓은 기구들로 돌아갔다. 남자친구가 가져온 초콜릿만큼 맛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수현과 연희는 원래 하려던 주말의 약간은 엑티비티한 일정들을 전부 실내일정으로 바꾸었다. 원래라면 일요일은 남산에 올라가보는 것이었지만, 둘은 홍대의 공주풍 카페에 들어와 서로의 손을 잡고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깊은 몸의 대화를 마친 남녀는 더 가까워졌다.

“우리 아빠는 오늘이라도 내려오라고 난리야...”

연희는 주책이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많이 보고 싶으신가보다.”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기라도 이런 예쁜 딸이 있으면 그렇겠지 싶었다.


“뭐, 그것도 있고, 자랑도 하고 싶고. 아주 데리러 오기라도 할 기세라니까.”

연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안 되는데...”

수현이 중얼거리며 연희의 손을 꼭 쥐었다. 연희가 옅게 웃었다.

“그나저나  오늘 완전 괜찮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일산이나 놀러 가볼 걸 그랬다. 나 토토 보고 싶었는데. 같이 산책도 하고.”

연희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의 몸 상태는 하루 만에 다 올라온 듯 했다. 그래도 남산은 겨울이라 혹시나 해서 제외한 것이었다.

“그럼 가면 되지. 같이 천천히 산책하자. 아직 시간도 넉넉하고.”


수현이 간단하게 말했다. 그도 생각은 못한 부분이었다.

“아, 그럴까?”


연희가 좋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둘은 결정을 하면 곧바로 실행을 하는 타입들이었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그들은 북적이는 홍대거리를 벗어나 상수역으로 향했다.

“우리 나중에 클럽 한  와 볼까?”

연희가 갑자기 궁금한 듯 유명 클럽 간판을 보며 말했다.

“안돼.”


수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왜?”

 한 번도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그렇게 단호한 거절이 없던 수현을 향해 연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거기 있는 남자들이   노릴 텐데, 내가 그 꼴을 어떻게 봐.  진짜 소총 구할 거야.”

수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연희가 크게 웃었다.

“하긴 나도 거기 여자들이  남친한테 눈길 보내는 거  보겠다.”


연희가 키득거리며 수현의 찌푸려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치? 나도 클럽 안 가 봤지만, 대부분  이성 만나러 오는 거라고 그러더라.”


수현이 말했다. 사실, 가봤다. 미래에. 말이 이상하지만.


“음, 그런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연희는 크게 의미를 둔 것은 아닌 듯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했다. 수현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넌 진짜 너무 예뻐서 큰일이야...”


수현이 말했다.


“넌 진짜 너무 잘생겨서 큰일이야...”

연희가 따라하며 피식 웃었다. 수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마주 웃었다. 둘은 다시 연인만이 하는 장난을 치며 역으로 들어갔다. 지하철 안에서도 깍지낀 손은 풀어질 줄을 몰랐다.

“음, 여기가 우리 자기 사는 곳이구나!”


연희가 역에서 빠져 나오며 말했다. 나름대로 독특한 기분이 느껴지는 듯 했다. 둘은 근처의 작은 공원으로 향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엄마 있을 수도 있어서.”


수현이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연희는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수현은 얼른 다녀오겠다고 한 뒤에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토토는 간단한 아침 산책을 마치고 잠을 청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마, 지금 나간다고 하면 굉장히 좋아할 것이었다. 수현은 조심스레 집으로 들어갔다. 캐리어가 현관에 놓여있었다.


“왔니?”

어머니가 말했다.

“네. 잠깐 친구 만나고 왔어요. 어디 가세요?”

수현이 다시 나가려는 그녀를 보고는 말했다.


“부산 쪽에 납품이 뭐가 문제라고 해서... 화요일...늦어도 수요일에는 올 거야. 간다.”

그의 어머니는 다급하게 말하며 집을 나섰다.

“네. 조심히 가세요.”

수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은 닫혔다. 수현이 안으로 들어가자 토토가 하품을 하며 나와 그를 반겼다. 수현이 목줄을 찾아오자, 꼬리가 한 층 더 빨라졌다.


수현은 토토에게 목줄을 채우고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정문으로 빠르게 어머니의 자동차가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토토를 옆쪽 공원으로 이끌었다.

꺄-.

돌고래 소리가 터졌다. 토토는 지긋한 나이답게 놀라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연희를 반겼다.


“되게 순하다.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연희는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핥는 토토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현은 둘을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가 환한 웃음을 짓고는 토토에게 말을 걸었다.

수현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생명체의 만남이 순조롭게 성사된 것을 마냥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잡아도 될까?”

연희가 말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줄을 넘겼다. 연희는 쪼그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줄을 받고는 수현의 손을 잡았다. 수현은 그녀의 손을 자신의 코트에 넣었다.

“가자!”


연희가 토토에게 말했다.

그들은 천천히 산책을 즐겼다. 노견은 걸음이 느렸고, 커플은 급하지 않았으므로 빠를 이유가 없었다. 호수공원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와, 여기도 크다!”

연희는 호수를 보고는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말했다.

“한강을 보기 전에 데려왔어야 더 크게 보였을 텐데...”


수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충분히 좋은데? 오히려 더 좋다. 거긴 너무 넓은데, 주변이  건물뿐이야.”


연희는 얼른 칭찬을 하며 말했다.


“조금 앉았다가 갈까?”


수현이  자리를 한 곳 찾아서 말했다. 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자리에 앉자, 토토 또한 주변을 천천히 돌며 냄새를 맡았다.


“가끔 와서 이렇게 놀면 좋겠다.”

연희가 토토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좋지. 종종 주말에 오자.”


수현이 얼마든지 좋다는 얼굴로 말했다. 둘은 한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공원을 돌아보지는 못하고 돌아왔다. 토토가  걷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연희는 토토의  모습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런 강아지는 처음 본다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안아드는 것을 도왔으나, 은근한 무게 때문에 오래 안고 있지는 못했다.


“우리 집에서 밥 먹을래? 밥해줄게. 어머니 출장 가셨거든.”


수현이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하기 어려웠을 말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내포된 말은 연희도 알 수 있었다.

“...응. 좋아. 근데, 요리 할  알아? 나 입맛  까다로운데?”


연희가 장난스레 대답했다.

“말만 해. 뭐 해줄까?”

수현이 당당하게 말했다.

“뭐든 돼?”

연희가 눈을 살짝 가늘게 만들며 말했다. 수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흠, 일단 들어가서 생각해보자.”

연희가 말하며 앞장서라는 듯이 손짓을 해보였다. 수현이 가볍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수현과 연희는 토토를 집에 내려주고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근처의 대형마트로 걸어가는 모습이 누가 봐도 젊은 신혼부부 느낌이었다.

둘은 마트 안에서도 눈에 띄는 커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집중했으므로 주변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음, 우리 그래도 첫 식사니까 분위기 좀 잡아볼까?”

수현이 제안했다.


“음, 어떻게?”


연희가 물었다.

“파스타에, 스테이크, 와인.”


수현이 간단하게 읊었다. 아까부터 생각해둔 메뉴였다. 다 좋지만, 연인간의 분위기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좋다. 근데, 진짜 다  줄 아는  맞지?”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좀 믿어봐. 다음번엔  받고 해줄 거니까.”

수현이 자신감 있게 농담을 했다. 연희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신혼부부처럼 필요한 것과 일부 필요 없지만 원하는 것을 골라가며 쇼핑을 했다. 보는 아주머니들의 표정이 흐뭇해지도록.

“음, 와인 마시고 소주는 좀 그렇지?”

수현이 술을 들며 말했다.

“응. 맥주로 하자.”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현은 피쳐 맥주를  개 들어 넣었다.


“이제 끝인가?”

연희가 물었다. 수현이 확인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을 마친 둘은 장바구니를 한쪽씩 잡고 나왔다. 연희가 같이 들자고 했기 때문이다.

“연희야, 그냥 내가 들게. 중심이 안 잡힌다.”


수현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바구니를 아예 건네주고 손을 내밀었다.


“우리 보고 다들 신혼부부래.”


연희가 그의 곁의로 바짝 붙어오며 즐겁게 말했다.


“그래서 좋았어?”

“응. 넌 아니야? 완전 입이 귀에 걸려 놓구선.”

연희가 수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당연히 좋았지. 나 입꼬리에서 피나는지 봐봐.”

수현이 입술을 슬쩍 내밀었다. 날은 어둑해져있었다.


연희가 주변을 살짝 살피다가 얼른 입술을  맞추고 떨어졌다.

“피가 더 날 것 같다.”

수현이 말했고, 연희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만큼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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