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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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약간 답답한 기분을 느끼며 눈을 떴다. 커튼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정신을 차렸다. 따뜻한 체온이 옆에서 느껴졌다.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만으로도 연희의 얼굴은 아름답게 빛났다. 아침의 단단한 주니어는 그를 지배하려고 했다.
“진짜 사기 수준이네...”
수현이 아침이라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탄이 나오는 결 좋은 연희의 피부를 그는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이게 어딜 봐서 공부 열심히 한 고3 피부일까?
“으음...”
연희가 작게 콧소리를 내며 눈을 찡그렸다. 수현이 피식 웃었다. 그는 두어 번을 더 볼을 찔러보았다. 그때마다 반응이 오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장난을 치던 그는 시계를 찾아 확인했다. 8시. 그들이 잠든 시간치고는 조금 이르게 깬 편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일어났다.
“음, 어디가...”
연희가 수현의 허리를 감싸며 물었다.
“깼어?”
수현이 물었다.
“누가 볼을 계속 찔러서...”
연희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수현이 작게 웃었다.
“뭐 먹을 거라도 좀 사올까 해서...”
수현이 연희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연희가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음, 좀만 더 자고 같이 나가서 먹으면 안 돼?”
연희가 수현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수현이 뒤로 넘어가주었다. 연희가 다시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음, 좋다. 우리 자기는 향기도 좋고, 몸도 좋고, 머리도 좋고, 얼굴도 잘생기고. 큰일이네.”
연희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기분좋게 웃으며 말했다. 과분한 칭찬이었다. 특히 그녀가 하기에는.
수현이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우리 연희는 향기도 좋고, 몸도 예쁘고,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좋고. 피부까지 좋아서 내가 더 큰일인데...”
연희가 푸흡하고 웃었다.
“음, 우리 수현이는 향기도 좋고, 몸도 좋고, 머리도 좋고, 얼굴도 잘생기고, 피부도 좋고, 목소리도 좋아서 큰일이다.”
연희가 말했다.
“내가 피부가 좋은 건 아니잖아.”
수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만하면 남자치곤 좋은 거지.”
연희가 말하면서 수현의 몸에 입을 몇 차례 맞췄다.
“그거 지금 하면 좋지 않아...”
수현이 진심으로 경고하듯 말했다.
“응? 뭐가?”
연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수현은 작게 웃으며 연희의 다리를 움직여 자신의 단단해진 자지에 닿게 했다. 연희가 화들짝 놀라 다리를 떨어뜨렸다.
“이거 책임질 자신 있으면 계속 진행하고.”
수현이 웃는 낯으로, 그러나 확실히 경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 나 잠깼어.”
연희가 정말 눈이 동그래져서 몸을 반쯤 일으키며 말했다. 수현이 그녀를 끌어당겨 다시 눕혔다.
“좀 더 자. 그러고 해장하자.”
수현이 연희를 토닥였다.
“잠은 다 깨워놓고, 이제 와서?”
연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둘 모두 웃었다.
“근데, 참을 수 있겠어?”
수현의 가슴을 작게 토닥이던 연희가 물어왔다.
“나 칭찬 많이 해줘. 너 진짜 처음이라 나 이렇게 참는 거야...”
수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주지?”
연희는 방법을 몰라 물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지금은 딱 이정도만 있자. 나도 너 안고 있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만족감이 있거든.”
수현이 간단하게 말하고는 연희를 안고 눈을 감았다. 그가 가볍게 토닥이자 연희도 눈을 스르르 감았다.
*
수현은 천천히 집으로 들어섰다. 엄마는 없었다. 하긴 주말에도 집에 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일이 있으면 일을 했고, 없으면 무슨 단체같은 곳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가만히 쉬는 걸 나쁜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열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강박이었다.
수현은 토토를 불렀다. 밥을 먹이고, 가벼운 산책을 시켰다. 그에겐 이런 평화로운 시간들이 중요했다. 느긋하게 서로 교류하는 시간.
수현은 산책 후에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는 어제를 멍하니 생각했다. 빨랐다면 빠른 거고... 일단, 그의 예상보다는 좀 빠르긴 했다.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긴 연애에 빠르고 늦는 것도 웃기긴 했다. 마음이 맞았으면 되었다.
그는 순간 생각이 난 듯 일어났다. 이번에야 운이 좋았다지만, 콘돔을 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는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콘돔과 간단한 주전부리 몇 개를 구매한 수현은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놈들이 지갑에 넣어줄 때는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역시 좋은 놈들이었다.
수현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으로 들어서다가 멈칫했다. 익숙한 신발이 보였다.
“아이고, 수현이가 집에 있었구나!”
외할머니가 그를 반겼다.
“할머니 오셨어요? 삼촌도 오셨구나. 안녕하세요.”
수현이 거실에서 나오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무도 없어서 좀 기다리다가 그냥 가려고 했지. 납골당 들렀다가 오는 길이다. 너도 갔으면 좋았는데, 깜빡했지 뭐냐.”
셋째 삼촌이 말했다. 항상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납골당은 아이러니하게도 저 두 분이 제일 많이 다녀오신다. 엄마는 양쪽 모두에게 유감이 많기에...
“엄마는?”
셋째 삼촌이 물었다.
“명절 전이라 바쁜 것 같아요.”
수현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이고, 이제 좀 쉬엄쉬엄 하면 좋을 텐데...”
외할머니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그런 외할머니도 인생을 쉬엄쉬엄 사시진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경기고 출신에 서울대 상과대학을 나온 엘리트 중에 엘리트셨다.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 했다가, 자기 사업을 시작하셨고, 금방 성공하신 탄탄대로의 성공신화였다. 개천에서 용이 난 케이스. 외할아버지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지나치게 꼿꼿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정경유착의 시대였다. 홀로 설 수는 없는 시절이었고, 외할아버지는 결국 뒷거래를 거절한 대가로 정치깡패의 각목에 희생 되셨다. 집안은 기울었고, 막내인 엄마의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은 빨간 딱지가 붙은 집으로 시작한다.
“뭐, 수현이라도 데리고 저녁이라도 먹으러 가죠.”
삼촌이 말했고, 외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수현은 콘돔을 잘 숨겨 정리하고는 방에서 나왔다.
그들은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한정식을 먹고 나왔다. 삼촌과 외할머니는 바로 집으로 가신다며, 그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하셨다.
“수현아, 네가 그래도 우리 집안의 보배다.”
외할머니가 수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외할아버지의 그 개천에서도 용을 나게 하는 두뇌는 자식 누구에게도 물려지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작은집들의 자식들이 명문대에 턱턱 진학을 할 때, 또 한 번 마음고생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손자 대에서 그걸 풀어준 사람이 나온 것이다.
“그럼요. 이제 수현이는 뭐 탄탄대로죠.”
삼촌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수현은 마음이 찡했다. 수현은 말없이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외할머니는 봉투를 꺼내셨다.
“이제 대학생인데 돈 쓸 곳이 많을 게다. 보태쓰거라.”
외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니요...”
수현이 거절하려고 했으나, 외할머니는 질긴 손길로 돈을 쥐어주셨다. 수현은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알았다. 삼촌도 신호에 걸린 틈에 얼른 돈을 주셨다.
“그럼, 대학생인데, 이제 여자친구도 사귀고, 할 게 얼마나 많아.”
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수현이 결국 돈을 받아들었다.
“그럼, 잘 지내고. 설에 올 거지?”
수현을 내려준 삼촌이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네. 토요일에 갈 것 같아요.”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 때 보자.”
그들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수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돈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HTS(온라인주식매매시스템)를 켜고 STX를 확인했다. 계속 하락세였다. 그가 기억하기론 초반에 오르다가 4월에 꺼지고 5월에 오르는 모양이었다. 뒷풀이에서 그 형의 자랑을 옆자리에서 들었던 수현은 부러움을 느꼈던 당시 기억이 생생했다.
“그럼...곧 오른다는 소리야.”
수현이 중얼거리며 ELW를 확인했다. 역시 다음 달 행사가가 높은 콜은 시간가치도 거의 빠진 수준이었다. 최저가 근처를 오가는 수준에 거래도 거의 없었다.
수현은 생각을 하다가 월요일까지도 하락세가 이어지면, 이번에 받은 보너스부터 시작해서 예상치 못한 돈들은 거기에 넣기로 했다.
수현은 눈을 감았다. 확실히 옵션을 헷지로 이용하지 않는 것은 도박이었다. 나름 마음이 담긴 돈들이었는데, 막 쓰는 기분도 들어서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생각만큼 오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생각보다 수익률이 좋지 않거나 오히려 잃을 수도 있다.
과연 잘 하는 것일까, 사실 어떻게 보면 투입금액이 큰돈은 아니었고, 반대로 큰돈을 벌 기회이기도 했다. 미래를 아는 상황에서 오를 것은 확실했으니까. 수현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마음먹은 대로 하기로 했다. 투자는 초기 금액의 크기가 중요했다. 그걸 결정하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