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15 (15/94)



〈 15화 〉15

*

수현과 연희는 카페로 들어가기 전에 룰을 정했다. 수현은 들어가자마자 아메리카노 제외하고 메뉴판에서 처음 정한 것을 먹기. 연희는 아무거나. 어쩐지 이기는 사람은 없고 지는 사람만 있었지만, 별 상관은 없는 내기였다.

수현은 메뉴판을 보자마자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을 찾아 골라 선택했다. 에스프레소 콘 파냐. 그가 선택한 메뉴였다. 연희가 순간 아쉬운 기색을 보이더니 그에게 슬쩍 기회를 주었다.

“수현아, 카라멜 마키아또는 어때?”

연희가 말했다. 그녀는 돈 콜레오네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음, 처음 들어오자마자 시키는 걸로 하자는 룰 아니었어?”

수현이 말하자 연희는 볼을 살짝 부풀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그 귀여운 모습을 봐서라도 바꿔줄까 싶었지만, 그 실망한 모습도 마음에 들어서 주문을 강행했다.

결국 카라멜 마키아또는 연희의 몫으로 주문되었다.

둘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자신들이 학창시절 얼마나 커피를 많이 마셨는지에 대해 경쟁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각자의 고등학교가 얼마나 비이성적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은 결국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공감해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곤 했다.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즐거웠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커피가 식으면 식은 대로 맛이 있었다. 그 시간을 즐거움이 채워주었으니까.

*

“음, 아쉬웠어.”

수현이 은근히 물어보자, 연희가 칵테일을 홀짝이며 말했다.

“다음엔 카라멜 마키아또 먹어볼게.”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치, 알고 먹으면 재미없지. 모르고 나왔는데, 달 때가 재미있는 거지.”

연희가 약간 김이 샜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카라멜 마키아또는 이름부터가 카라멜이잖아... 달아보이지 않아?”

수현이 말했다.

“아...  그렇긴 하네.”

연희가 맞다는 듯이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달달한 게 맛있다. 준 벅이라고 했나?”

연희가 칵테일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둘은 치맥으로 1차를 하고, 2차로 연희가 원하던 분위기 괜찮은 상수동 바에 앉아있었다.

“응. 괜찮아?”

수현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응. 한 번 마셔볼래?”

연희가 자신의 칵테일을 건넸다. 수현이 여분의 빨대로 한 입을 먹었다.

“음, 맛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건 어때?”

연희가 물어왔다. 수현은 대답대신 자신의 화이트러시안을 넘겨주었다.

“으...  쓰네.”

연희는 살짝 인상을 쓰고 그의 칵테일을 넘겨주었다. 수현은 뭔가 인터넷에서나 나올 법한 개드립이 생각났지만, 속으로 삼켰다.

“소주는 잘만 마시더니.”

수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걘 마음의 준비를 하고 먹는데, 얜 생긴 건 예쁜 게 준비 없이 쓰니까....”

연희가 준벅으로 다시 입을 축이며 말했다. 그제야 그녀의 표정이 풀렸다.

“음, 하긴.”

수현이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은은한 불빛에 비춰보았다. 소주보다 예쁘기야했다.가격도 그렇고.

“수현아.”

연희가 약간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이듯 그를 불렀다.

“응?”

수현이 연희에게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둘은 잠시간 그렇게 눈을 맞추고 말이 없었다.

“...우리 언제부터 사귈 거야?”

연희가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유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속삭였다. 순간, 수현의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미안... 내가 좀 빨랐니?”

연희가 약간 상심한 듯이 말했다.

“아니. 아니...전혀. 아니.”

수현이 순식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재빨리 말했다. 수현은 말을 마치고 작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야... 너는...그래, 참, 생각해보니  빨랐어....”

수현은 갑자기 살짝 헛웃음이 나서 말했다.

“...정말... 너 데려다 주면서 하려고 했는데.”

사실 어제의 고민 때문에, 오늘 고백을 할지 말지 갈등했었다. 하지만, 하루를 보내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연희가 선수를 쳐버린 것이다.

“미안. 그냥 방금 괜히 좀 조급해졌었어. 여기 분위기가... 할만 한 분위기인데, 넌 계속 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연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수현이 살짝 주변을 둘러봤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혼자 정신의 반을 잠시  있을 고백 타임에 쏟고 있던 지라 여기 분위기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나 모른  할 테니까, 있다가 해주라.”

연희가 눈을 감고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수현이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누가 보면 연애 경험이 꽤 있는  알 것이다.

“...소주는 잘 마시더니.”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수현이 말했다. 연희가 잠깐 멈칫하다가 의미를 알아듣고는 피식 웃었다. 도돌이표.

“걘 마음의 준비를 하고 먹잖아,  생긴  예쁘고.”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

수현이 말하자, 연희가 크게 웃었다. 지하 바의 은은한 전구가 연희의 반달로 접힌 눈을 반짝이게 했다. 수현은 거기에 빠지듯웃을 수밖에 없었다. 둘은 실없이 마주 웃었다.

수현과 연희는 늦은 밤을 합정역까지 걸었다.

“신기하다. 이쪽은 조용하잖아. 저긴 저렇게 시끄러운데.”

연희가 홍대 방향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 길 하나 차인데.”

둘의 손이 수현의 코트 안에서 꼼지락거렸다.

둘은 잠시 말없이 걸었다. 멀리선 작게 진동 소리가 울려오기도 했지만, 둘은 한적한 거리에서 둘이 함께 걷는 거리의 특별함을 느꼈다. 그건 처음 느끼기에 독특했고 신선했다.

둘의 그 조용함은 지하철을 타고도, 내려서도 계속되었다. 누가 하자고  묵언수행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랬다. 군중 속에서도, 길 한 가운데서도 잡고 있는 손에 집중했다.

그리고 조용한 산 아래의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 두 남녀가 섰다. 평소라면 으슥했을 곳이, 오늘 만큼은 로맨틱했다.

“큼.”

수현이 헛기침을 했고, 연희가 작게 웃음을 참았다. 그녀가 뒤를 돌았다.

“연희야.”

수현이 그녀의손을 살며시 잡았다.

“응?”

연희가 천연덕스럽게 돌아서 눈을 반짝였다.  눈빛이 의외로 진지해서 수현은 의외로 어색하거나 부끄럽지않을 수 있었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니까. 진짜인 만큼만 떨릴 수 있었다.

“나,  좋아해. 사실은, 처음 봤을 때부터.”

수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떨림은 있었지만, 진심이 묻어있었다.

“나랑 사귀어줄래?”

그가 이어서 말했다. 연희의 얼굴이 꽃이 개화하듯 피어났다.  모습이 어두운 곳에서도 밝았다.

“응... 나도 좋아.”

둘은 서로를 껴안았다. 겨울의 추위가 가셨다. 둘은 잠시 서로의 눈을 맞췄다가 서서히 감았다. 둘의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았다. 수현은 엉성한 연희의 첫입맞춤을 천천히 맞춰갔다.

“하-.”

둘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눈은 그보다 더 느릿하게 떠졌다.

“애드립이 있었네.”

연희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진짠데. 처음 봤을 때 반했어.”

수현이 그녀를 다시 안으며 말했다.

“근데 그렇게 늦게 말을 걸었어? 나 가버리면 어쩌려구?”

연희가 품에서 꼼지락 거리며 말했다.

“기도했지. 그리고 믿는 구석도 있었어.”

수현이 말했다.

“믿는 구석?”

연희가 눈을 맞추며 물었다.

“그건 비밀. 나중에 알려줄 거야.”

수현이 말했다.

“흐음, 뭐 좋아.”

연희가 가볍게 수긍했다.

“우리 이제 진짜 사귀는 거다?”

수현이 말했다. 연희가 풋하고 웃었다.

“키스했으니까? 물리는  없어. 구속하는 거야.”

연희가 말했다.

“응.”

둘은 다시  번 입을 맞췄다. 이번엔 짧은 입맞춤을 주고받는 것에 가까웠다. 둘은 킬킬거렸다.

“차 시간...  됐지?”

연희가 아쉽다는 듯이 물었다. 수현이 힐끔 핸드폰을 보고는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들어가. 춥다. 가볼게. 내일 볼래?”

수현이 연희를 살짝 건물 쪽으로 밀며 말했다.

“내일 봐.야.지. 먼저 가. 가는 거 보고 들어갈래.”

연희가 그의 말을 정정하며 말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가 가볍게 수현의 볼에 입을 맞췄다. 수현이 재빠르게 돌며바지를 정리했다. 그는 최대한 평범하게 연희에게 손을 흔들며 거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연희가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수현은 지하철을 타고도 무언가 멍한 느낌으로 있었다.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는놀랄 일도, 못 믿을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 그는 지하철에서 내리고 나서, 찬바람을 얼굴에 맞고서야 현실감이 들었다.

그는  수 없는 환호를 질렀다. 몇 사람이 그를 미친놈 보듯 지나갔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정말 20살의  연애처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뛰었다. 덜 치워졌던 눈길에 미끄러져도 상관없이 그는 달렸다.

*

연희는 시야에서 남자친구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또한 멍한 것은 비슷했다. 그녀는 방에 들어와서도 잠시 현관문에 기댄 채로 상황파악을 하며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얼굴부터 따듯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해 온몸에 열기가 확 퍼졌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그녀는 소리 없는 아우성과 함께 침대로 뛰어들었다. 이불이 마구 구겨졌지만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렇게 기쁨을 표출했다. 어제의 고민 따윈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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