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09 (9/94)



〈 9화 〉09

“아, 맞다! 여기 혹시 빠른 있어요?”

수현이 술집으로 향하던 도중에 갑자기 생각 났다는 듯이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학생회 쪽이나 동아리 같은 곳들이야 뚫어놓은 집들이 한 둘쯤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번개 성격의 모임이었으므로 검사를 하게 되면, 1명 때문에 1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아, 맞다...”

“헐.”

두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여자 하나, 남자 하나였다.

“어... 저희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여자 아이가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혹시 집에 돌아가야 하나 하는 눈빛이었다. 특별히 기억이 나질 않는 것으로 봐서는 이후에도 접점이 없었던 아이인 것 같았다. 뭐, 아니면 반수해서 s로 갔을 수도 있고.

“괜찮아요. 우리 인원 많으니까 돌려막기 하면 될 거예요. 대신  박자 늦게 들어오세요!”

수현은 걱정말라는 듯이 말했다. 어차피 민증 검사라는 것이 그렇게 디테일 하지 않기에, 적당히 닮아 보이는 얼굴이면 된다. 바빠서 정신 없는데, 맨 앞에 확인한 민증을 자세히 기억할 알바도 없었고. 심지어 이정도 인원이면 빠르게 검사하느라 얼굴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 민증만 들고 있지 않으면 된다.

그들은 다행히 테이블을 길게 연결할 수 있는 술집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아마 8시가 넘었으면 자리가 대부분 차서 자리 잡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2 팀으로 나눠 테이블을 3개씩 붙여 앉았다.

수현은 15명 정도가 먼저 신분증 검사를 받을 때, 나머지 인원이 들어가서 이미 검사 받은 신분증을 허리 뒤로 넘겨 받는 수법으로 빠른 년생들이 검사를 통과할  있게 했다. 역시 알바는 거의 얼굴 확인도 하지 않고 앞자리 확인만 하고는 민증을 돌려주었다.

그들은 완전 범죄를 끝내고는 서로  웃으며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어색했던 기운도 잠시였다. 무언가 나쁜 짓을 같이 하면 더 가까워 지는 법이다. 게다가 수시가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동갑이 많기도 했고, sky라는 결과를 받은 행복한 상태의 20대들은 서로 금방 편해지고 친해졌다.

전생에서 연희 앞에서 소위 ‘힘자랑’을 했던 외고 4인장은 이번에는 그럴 기회를 놓쳤다. 이미 수현, 소영과 친해진 상태에서 자리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는 연희에게 무작정 접근하기에는, 사실 그들이 그만큼 강하지도 성격이 나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이에나 무리였다고 볼 수 있다. 강한 수사자가 있다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초반에 분위기를 잡지 못하면 뒤에 힘을 받기는 쉽지 않다.

수현이 앉은 테이블에는 연희와 소영, 그리고 병훈이가 추가 되었다. 외고 4인방이 조용하자 병훈이가 특유의 분위기 메이커 다운 모습으로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현이 일부러 그런 병훈에게 맞장구를 적당히 해주며 서포트를 해주었다. 자기소개나 게임을 추진하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수현은 병훈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자신은 회귀를 했음에도 저렇게 까지는  수없었다. 저건 재능의 영역이었다. 병훈은 아마 방송계로 나갔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수현은 살짝 물을 들이켰다.

병훈은 슬슬 술이 오르자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 다니기도 하고, 테이블을 섞어가기도 하면서 사회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수현이 너, 술 좀 자주 마셨지?”

조금 전에 수현이 앉은 테이블로 옮겨 온 여자 아이가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가늘게  눈으로 취조하듯한 말투였다.

“나? 한...두 번? 정도 밖에 없는데?”

수현이 대답했다. 물론 돌아 온 후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전생까지 합치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바닷물만큼 마셨지. 심지어 죽기 전에도 마셨다.

“거짓말...”

여자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수현을 흘겨보았다.

“나도 쪼끔 그런 의심이 드는데?”

옆에서 연희가 붉어진 얼굴로 여자아이에게 동조했다.

“응? 뭐야,   날라리처럼 생겼나?”

수현이 놀란 표정을 연기하며 얼굴을 만졌다.

“아니이. 그런 건 아닌데, 막 좀 자연스럽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있었어.”

연희가 말하자, 여자애가 그녀에게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돌려막기? 그거 나도 얼마 전에 친구한테 배운 건데.”

수현이 말했다. 사실 예전에 학생회 선배한테 배웠던 것이지만.

“뭐 그것도 있지만,  그거 말고도 자연스러움? 여유? 그런거? 말로 하긴 어려운데... 아, 옷도 좀 그렇고...여튼 그래서.”

여자애가 약간 자기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확실하다는 얼굴로 갸웃거리며 말했다.

“옷?”

수현이 이 부분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아 갸웃하며 되물었다.

“응. 남자애들 중에는 진짜 너만 딱 대학생 오빠?처럼 입고 왔잖아. 다른 애들은 아직 다들 고딩 티가 나는데... 난 솔직히 너 최소한 재수거나 선배가 나온 줄 알았어. 일부러 아까 민증도 슬쩍 봤다니까? 막 선배중에 동기인  하는 경우 있다고 언니가 그래서...”

여자애가 약간 미안한 듯 실토했다. 수현이 약간 어이가 없어서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 경우가 있어?”

연희가 놀란 듯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몰라... 우리 언니가 장난친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부러 막 동기인 척 껴서 '저 선배 너무하지 않냐?' '저건  아니지 않냐?' 막 물어보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선배고 그런 경우 있다고 막 겁주더라.”

여자애가 잔을 들어 짠을 하며 말했다. 그들은 20살 답게 원샷을 했다. 여기서는 남기면 모자란 놈이었다.

“여튼 결론적으로는 내가 좀 분위기가 침착하고 어른스럽고 그렇다는 거네.”

수현이 장난스레 분위기를 정리했다.  여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수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20살을 연기한다고 해도, 10살 어린 애들한테 술게임을 지는  자존심이 상한단다. 우린 짬이 달라요!



그들은 조금 더 가벼운 대화들과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떠들고 어울렸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게임을 하기도 하는지 이따금씩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 화장실!”


여자애가 잔을 내려놓으며 선언하듯 말했다.

“어! 나도 같이 가!”

두 여자는 타이밍이라도 맞춘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 동시에 팔장을 끼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문제는 그쪽은 밖으로 나가는 문쪽이었다는 것이었다.

“저기 학우분들, 그쪽이 아니에요. 술이 과하셨네. 이쪽입니다. 이쪽.”

수현은 그녀들에게 다가가 화장실 쪽으로 안내했다. 수현은 자신도 일어난 참에 화장실을 들렀다가기 위해 옆쪽의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수현이 볼일을 마치고 손을 씻고 나오자, 여자 화장실의 고장난 문틈 사이로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는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나치려 했으나 특정 단어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수현이 무슨 향수 쓰나? 되게 좋은 향기 나지 않아?”

연희가 약간 꼬인 발음으로 말했다.

“으음, 맞아... 좀 가을 남자 같은 향?  많이 묵직하던데...약간 나이에 안 맞긴한데, 또 어울리는 것 같긴 해.”

앞에 앉았던 여자애의 말이 들려왔다.

“응? 아닌데...좀 달콤하고...음, 여튼  무거운 향은 아니었는데...”

연희가 애매한 목소리로 말했다.

“엥? 그래? 술마셔서 그런가... 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 뭐...”

여자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연희도 수긍하는 듯했다.

“음, 조금 있다가 기회가 있음 다시  번 맡아봐야되나... 오늘의  훈남이잖아. 옷도 잘 입고. 대학교 선배 스타일.”

여자애가 말했다. 향기 이야기에 멈칫하고 엿듣던 수현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피했다.

“응...그렇지...”

그래서 연희가 약간 부끄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듣지 못했다.

수현이 여전히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로 테이블로 돌아오자, 자리는 다시  번 변해있었다. 그의 테이블에는 2명의 다른 남자아이들이 앉아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자리 한 번 돌았어. 너는 저쪽 테이블~.”

수현이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외고 4인방인 아이들 중에 두 명이었다. 당연히 돌아가는 것이었기에 수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둘이 이렇게 온 의도야 뻔하긴 했지만, 막을 이유도 명분도없었다. 오히려 그 혼자 여기에  박혀 있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기도 했고.

수현은 새 테이블의 아이들과 여울려 나름대로 즐겁게 놀았다.  명은 확실히 기억는 얼굴에 이름도 아는 아이였고, 다른  명은 적당히 친분이 있던 아이였고, 다른 한 명은 전혀 기억에 없는 아이였다. 그들은 다시  번 통성명을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주제는 중구난방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테이블마다 실없는 웃음이 피었을 때였다.

갑자기 수현이 원래 앉았던, 그러니까 지금은 외고인 2명과 연희가 있는 테이블에서 테이블을 후려치는 큰 소리가 난 것이다.

쾅!

근처의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수현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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