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03
수현은 잠에서 깨자마자 튕기듯이 일어났다.
한참 물에서 숨을 참던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며 앉아있던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그의 집은 딱 한번 이사를 했다. 그런데 여기는 이사하기 전 그 집에 있던 자신의 방이었다.
머리가 울리는 느낌을 무시하며 후다닥 침대 아래를 바라보자, 강아지 한 마리가 잠에서 깬 눈으로 그를 향해 올려다보았다.
분명히…2년 전(그러니까 자신이 2019년에서 돌아왔다는 가정 하에) 죽었던 토토였다.
수현은 작게 떨리는 손으로 토토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전해져 왔다. 녀석은 이맘때에도 이미 10살을 먹은 노년의 아이였다. 그래서 토토의 반응은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녀석은 조금 귀찮지만 만질 테면 만져보라는 표정으로 눈을 반쯤 감으며 손길을 받았다. 수현은 손을 작게 떨면서도 계속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있을 수 없던 일이다. 여태까지의 기억은 꿈이었던 걸까? 뭐지? 그렇게 생생한 인생이 꿈이었다고?
수현은 일어나핸드폰을 찾았다. 연아의 햅틱. 스마트폰이 아닌 그것. 날짜를 확인하자 분명히 2010년1월1일이었다. 새해. 성인이 된 날.
....난 분명히 아이폰7을 썼는데… 이때쯤은 아이폰이 한국 첫 출시였어.
그런데...어디까지가 자신이 원래 알고 있던 부분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아이폰7이라는 게 자신의 꿈 속 상상인 건지부터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생생한데,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기억들이 정리 되지 않는 듯이 빙빙 돌기만 했다. 마치 기억들이 서로를 거부하듯이 서로를 뇌 밖으로 내보내려고 싸우는 듯 했다.
20살의 황수현과 29살의 황수현이 주도권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수현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토토가 그에게 다가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토토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토토가 결국 생을 다해서, 그래서 화장하기 전의 그 모습이 눈에 훤했다. 아주 강렬했던 기억이었다.
이게….가짜라고? 이렇게 생생한데. 그럼 진짜인가? 진짜면 말이 되는 상황이야?
그는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지만 답이 나오지 않고 시간만 지나갔다. 두통은 잠시 소강 상태를 갖는 듯 했다.
그 시간에 토토는 그의 무릎 위에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수현은 끈질기게 그 작은 생명을 쓰다듬었다. 마치 그게 진통효과를 가져오는 듯 했다.
한참이 지나고, 수현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는 조심스레 강아지를 내려두고 부랴부랴 광화문 교보문고로 갈 준비를 했다. 토토는 잠에서 깼으나, 그가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자 미련 없이 다시 자신의 방석에 늘어져 잠이 들었다.
그는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 회귀를 확실히 증명할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20살과 29살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수현은 광화문에 도착해 교보문고로 빠르게 들어갔다. 휴일이라 사람이 제법 많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사람들을 빠르게 피하며 회계사 관련 수험란을 찾았다. 그리고 빠르게 재무관리와 원가관리회계 수험서를 찾아왔다. 이 둘은 개정이랄 것이 특별히 없는 학문들이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도 풀이방식은 동일했다.
수현은 잠시 눈을 감고생각했다.
분명 나는 회계사 준비를 했어. 지금의 나는 회계는 커녕 그게 뭐하는지 한번도 배운 적도, 아니 제대로 본적도 없는 나이고. 그런데 이걸 풀 줄 알면? 난 진짜 돌아온 거야. 진짜라고! 이걸 풀 정도면 어디에서 한번 스쳐 들은 정도일 수가 없지. 내가 만약 폰 노이만 같은 천재일지라도!
그는 수험서를 든 채로 한동안 숨을 고르다가 책을 폈다. 예제 수준의 문제들을 쭉 살펴보자, 확실히 풀이과정이 빠르게 떠올랐고 정답을 확인하자 그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래, 풀이 와꾸까지!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 이걸 풀었어. 이걸 풀었다고! 이 강사랑 똑같은 와꾸였어!
진짜로….진짜로….돌아온 거야. 돌아온 거라고!
수현은 그러고도 확인차 몇 문제를 더 풀어보았다.
꿈이 아니고 진짜였어. 진짜. 그럼… 그럼….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바뀐 듯 정신이 말끔해졌다. 20살의 수현이 29살의 수현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는 반쯤 혼이 빠진 듯이 수험서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천천히 교보문고를 빠져 나왔다. 이제야 조금씩 자신의 인생이었던 것들과,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들이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버릇처럼 인터넷이라도 할 생각으로 핸드폰을 꺼냈지만, 이건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그는 조심스레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멍하니 지하철의 창을 바라보며 무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새까만 터널벽을 멍하니 주시했다.
일단…그래. 비트코인. 그걸 사야해. 그리고…주식! 그래 주식! 내가 매일 보던 주식!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로또라도 봤을텐데!
갑자기 그는 아쉬운 마음에 그런 생각까지 하며 생각을 부풀려 갔다. 욕심은 끝이 없었다.
수현은 그러다 차분히 마음을 다 잡았다.
난 우연히 초월자에게 선택 받은 거다. 그 것 까지 생각했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었겠지. 그러니까 그런 욕심은 금물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그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공책을 꺼내고 맨 위에 비트코인을 크게 적었다. 가격이 한참 오르던 때의 기간과 폭락하던 날짜와 함께. 그리고 기억에 남아있는 금융관련 정보를 생각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인지, 금융 쪽 공부를 하다 보니 관심을 가지게 되어 돈도 넣어보고 이리저리 취미처럼 차트를 보기도 했던 것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래, 올해는 한창 자동차 계열이랑 조선업이 떴었어. 그래서 현기차에서 돈을 넉넉히 풀었었고, 그래서 내가 내년에 현기차 캠프도 가게 되지. 그리고 2010년11월11일! 풋옵션 대박이 있었지. 이건 내가 학교 수업에서 무슨케이스로 발표했던 부분이야. 정확히 기억이나! 행사가 252.5 풋! 단 서너시간 만에 0.01최저가에서 500배였지!
수현은 생각이 나는 대로 공책에 앞으로 일어날 것들에 대해 적어가기 시작했다. 적다가 놓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채워나갔고 정확히 때를 모르는 것들은 어디 쯤이었는지 다른 것들을 참고하여 추정하며 수정해 나갔다.
수현이 몰입했던 시간이 한참을 지났는지 토토가 그의 주변을 맴돌며 눈치를 주었다. 저녁밥을 내놓으라는 뜻이리라. 그는 이 정도면 큰 흐름은 거의 다 적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토의 사료는 제일 저렴한 사료였다. 큰 포대로 파는 별볼일 없는. 그래도 녀석은 특별히 입맛 까다롭게 굴었던 적이 없었다. 주는대로 잘 먹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간식에는 반응을 했었다. 생각해보면 토토만큼 키우기편한 개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잔병치레 없이, 주는대로 잘 먹고, 헛짖음도 없으며, 입질을 한적도 없었다. 아마 다른 집이었다면 주인의 애정에 푹 빠져 행복에 살았을 아이였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돌아오려면 아직 두어 시간은 남았으니 밥을 마저 먹이고 산책이라도 나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현은 멀찍이 떨어져서 토토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만남은 이상하게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끝을 알기에 더 아련한 느낌인 걸까. 끝을 경험했기에 더 아련한 느낌인 걸까. 수현은 슬쩍 눈가를 훔쳤다.
이 당시의 토토는 제대로 산책을 하지 못 했었다. 고3때까지는 자신은 학원으로 야자로 집에 자정이 다되어서나 들어오는 편이었고, 엄마는 일로 바쁜 사람이기도 했고, 토토를 아버지가 사망하며 남겨두고 간 또 하나의 짐으로 생각했기에 싫어했었다. 그러니엄마 몰래 하는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의 산책이 전부였다.
토토가 식사를 끝내고 물을 마시고는 슬슬 누우러 가는 것이 보였다. 소화가 되고 20여분 정도 있다가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침대에 벌렁 누웠다.
수현은 차분히 종자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생각해보았다. 일단 여기저기 최대한 빨리 알바 자리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쯤 외할머니께서 집안에서 드디어 서울 명문대생이 나왔다며 바리바리 모아두셨던 돈을 이백만원 정도 따로 자신에게 주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도 종자돈으로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수현은 머리를 굴렸다. 새 인생이라면 정말 제대로 된 새인생을 만들고 싶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누워있다가 슬슬 졸음이 찾아올 때쯤 그는 벌떡 일어나 토토의 목줄을 찾아 토토 앞에 흔들었다. 해맑게 좋아하는 강아지를 보며 수현은 아련함과 미안함을 느꼈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매일 토토의 산책을 할 것’을 중요 항목 중 하나로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