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Ep14. 포항엔 석유가 없다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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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의 전쟁준비가 시작됐다.
황제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곳이 덕수궁이 된다. 덕수궁은 이 나라의 정치적 중심지로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곳.
중국 vs 대한제국
불가능해보이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황제의 회의가 소집되니, 그의 부름아래 군부를 구성하는 최고 구성원들이 헬기를 타고 서북방위사령부에 왔다. 국방부장관 김종규, 합동참모의장, 공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그리고 육군참모총장 구남철. 이들은 모두 황제로부터 지시를 받아 모종의 임무를 수행중이었다.
조명이 낮게 깔린 서북방위사령부의 지휘통제실. 자리에 모인 그들을 둘러보며 이연은 말했다.
"일단 종규부터 가지. 레민다오 장군과 협상은 어땠나?"
김종규 국방부장관은 보고서를 들춰보며 답했다.
"월남에서 망명온 해군 함정들을 인수하라는 명령이셨지요? 협상은 잘 끝났습니다. 호위구축함 1척, 호위함 6척, 초계함 3척이 우리한테 편제됐으니 나머지는 해군에서 진행하면 될겁니다."
이 시기 부산항엔 다른 나라의 해군 함정들이 정박해있었다. 월남전의 패배로 떠돌이 신세가 된 남베트남 해군인데, 필리핀으로 도망치던 중 망명정부 소식을 듣곤 배를 돌려 부산으로 왔다.
하지만 영토도 없고, 주권도 없는 망명정부 입장에서 해군을 운용하기엔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버려지듯 방치되는 신세가 되었는데, 협상 끝에 대한제국이 인수하기로 일단락됐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그 친구들이 뭘 원하던가?"
"국토수복운동을 도와달랍니다. 제국익문사가 옆에 붙어서 비정규전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그쪽에서 별도 인원이 선발되면 특수부대로 보내 훈련을 시켜달라는데 김재필 장관도 긍정적이더군요."
레민다오 장군은 고향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는 망명정부의 대통령이 된 그 남자는 공산베트남을 내부적으로 붕괴시켜 민주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제국익문사의 능력을 직접 겪어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 남자는 자유 혁명을 위하여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해군을 포기하고 그 댓가로 첩보 능력을 얻은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고 헌데 10척이나 되는 함선을 운용할 인원이 있어야 하잖아? 그건 어떻게 할건가?"
그러자 해군참모총장이 답했다.
"육상근무자 중 승무원 경험자들을 재배치할 생각입니다. 거기에 예비역들 중 희망자를 받아 복직시키면 문제 없을겁니다."
"대함 미사일은?"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하푼이 있습니다. 중공 애들이 가지고 있는 소련제 스틱스 미사일이 걱정되긴 합니다만···."
그러자 공군참모총장이 확신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공군에게 맡겨주십시오! 우리가 보유한 F-4 팬텀 II는 현존 최강의 전력입니다. 해상이든 공중이든 다 쓸어버리겠습니다!"
하지만 이연은 불신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그 팬텀 전투기 말이야. 중공엔 J-7이 있잖아? 미그 21 라이선스 생산한거. 월남전에서 팬텀과 미그기가 싸웠을 때 크게 고전했던 걸로 아는데?"
당대 최강은 맞다. 얼마나 최강이냐면 이거 수입했다고 동북아를 통틀어 최강의 공군력으로 급부상했을 정도. 그야말로 최신중의 최신 기종이었다.
하지만 이거라고 만능은 아니었는데 미국이 F-4 전투기를 만들면서 기관총을 빼놓은 탓에 근거리 전투능력이 뒤떨어지게 됐다. 미사일 만능주의에 젖어 기관총도 없이 월남전에 투입한 결과 미그기와의 교환비는 3대 1. 이전 기종들과 비교하면 처참한 실전기록이었다.
그럼에도 공군참모총장은 고개를 저으며 확신을 갖고 말했다.
"하지만 폐하. 월남과 서한만은 전장 환경이 다릅니다. 월맹놈들의 미그기는 산 속에 숨어서 치고빠지는 게릴라전을 펼쳤지만 바다 한가운데선 그럴만한 곳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서한만에서 벌어질 중공과의 공중전은 철저히 원거리 전투가 될것입니다.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AIM-7 스패로우 미사일로 시계외 교전능력을 확보했으니 분명 압승이겠지요."
"총 몇 대나 되겠나?"
"이남지역에 배치된 대대까지 모두 서북지역에 몰아주면 50대입니다. 여기에 미국으로부터 E-2 호크아이 조기경보기도 공여받아 실전배치중이니 믿어주십시오. 압승일겁니다."
그러자 묵묵히 서있던 합참의장이 지휘통제실 한가운데 있는 지도 한켠. 서한만 일대의 해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한신이었는데, 한국전쟁까지 참전했던 노련한 장군이었다.
"중공의 공군기지는 신의주 맞은편에 있는 이곳 단둥입니다. 하지만 요격미사일을 우려해 랴오닝 반도 쪽으로 돌아서 서한만 북쪽으로 진입해오겠죠. 최초 교전시 우리는 머릿수에 밀려 후퇴하는 척 하며 이곳 전남포까지 적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리곤 육군참모총장 구남철이 말했다.
"공군에 미국에서 수입한 호크 지대공미사일이 있을겁니다. 이남 지역의 것을 싹 쓸어와 배치하면 4차중동전쟁의 이스라엘 꼴이 되겠군요."
그러자 이연이 물었다.
"욤키푸르 전쟁을 말하는건가?"
"개전 후 7일만에 미제 F-4 팬텀과 A-4 스카이호크 전투기 100대가 격추당한 충격적인 패배였지요. 이집트가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지대공미사일 때문이었는데 이걸 정 반대로 보여주는겁니다."
개전후 단 7일. 일주일만에 100대의 전투기가 떨어진 것이다. 스펙상으론 최강인데 어쩐지 실전결과는 처참한 F-4.
제4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를 놓고 벌인 격전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은 지대공미사일이 대활약을 했다. 방심한 이스라엘이 크게 고전했던 전쟁.
이제 그것을 반대로 해본다. 대한제국이 이집트가 된거고 중공이 이스라엘이 된다. 대한제국이 보유한 호크 지대공 미사일이 중공의 미그기들을 하늘에서 떨어뜨릴 것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빙산의 일각.
이연의 지침아래 대한제국은 한도 끝도 없이 작정하여 군비증강을 하고 있으니, 이범석 총리는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일본 대사를 만나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거 같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우리 전투기를 빼앗아 가다니요!"
"빼앗다니? 우린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것 뿐일세."
뻔뻔하게 차를 마시는 이범석 총리를 향해 일본대사는 호소하듯 말했다.
"태평양을 건너오던 F-4 전투기는 우리 일본에 올 물건이었습니다. 이게 왜 방향을 틀어 대한제국으로 가고 있냔 말입니다. 대체 무슨 작당을 하신겁니까?"
일본대사가 이범석 총리의 집무실을 쳐들어온 건 결국 미국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과 F-4 팬텀 전투기의 E형 수입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조선땅에 있던 D형보다 한단계 개선된 것으로 일본이 큰맘먹고 수입한 것이다. 최초인도분량 10대가 76년 초부터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었는데 미국이 변심해서 이걸 대한제국에 주기로 했단다. 멀쩡히 돈을 주고도 사기를 당한 일본은 자국의 물량을 3개월 뒤에나 받는 것으로 밀려났으니 화가 안날리가 없었다.
"이건 심각한 외교적 결례입니다. 그냥 넘어가지 않을겁니다."
"따질거면 미국에 따지게. 우린 미국에 정당한 댓가를 주고 산거니까."
"일본을 재무장 시켜서 세계3차대전에 끌어들이겠다 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미국은 어떻게 구워삶으셨구요?"
"구워삶은게 아니야. 중국의 콧대를 눌러주기로 한거지."
"콧대를··· 눌러준다?"
"대한제국은 말이야. 세계3차대전이 시작되면 중국과 싸워야 할 위치에 있어. 미중전쟁, 미소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셈이지."
"그런데요?"
"조선 뒤에 느긋히 앉아 안락하게 지내는 자네들과는 다르단 말이야."
일본 대사가 불쾌한 표정으로 노려본다.
"외교적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 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니 한번쯤 기선제압을 해둘 필요를 느낀거야. 언제까지고 국경분쟁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뭘 하고 계신겁니까?"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전쟁. 외교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쟁. 인구 8억의 대국과 5천만의 소국이 하는 협상이 공정할리 없겠지만 전쟁에서 이기면 달라진다. 서해바다의 70%를 넘길 필요도 없어지지."
"중국과 전쟁이라니 진심입니까?"
"기울어진 운동장은 힘으로 보정한다. 그것을 위해 전투기를 추가로 구매했고 최신 공대공미사일과 대함미사일을 무상으로 공여받았지. 전투기와 함께 날아다니며 적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조기경보기는 진작에 들여왔고, 지대공미사일도 추가 제공받기로 합의됐어. 전자전기라는 게 눈에 띄길래 그게 뭐냐? 우리도 써보자 했더니 기밀이라며 안된다더군. 그 대신 나이키 미사일을 추가로 받았지. 먼 거리에서 500kg의 탄두를 내려 꽂을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미사일 말이야."
그래서 이범석 총리는 결의에 찬 눈동자로 살기를 담아 말했다.
"가네무라상. 내가 딱 한마디만 해줌세. 내 말 똑똑히 듣고 본국에 전하게."
노인의 말은 딱 하나였다.
"정명가도(征明假道)"
그러자 일본 대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명나라를 치게 길을 내어라? 그건 임진왜란때···."
"자네들이 했던 말이지. 중국을 치게 길을 열라면서 우릴 공격했었잖나?"
"그게 지금과 무슨 상관입니까?"
이범석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장한 표정으로 일본대사를 내려다보는 노인의 눈에도 전쟁의 결의가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쟁은 일본을 향한 것이 아니다. 명나라.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되어버린 그들을 향해서다.
"우린 중국과 전쟁을 할거야. 최신 전투기가 더 필요했지. 언제 어떻게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 급매물이 필요하던 차에 너희들 물건이 눈에 들어오더군."
"그래서 저희껄 가로채신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전투기를 내놔. 서해 바다에서 석유가 나온다면 싼 값에 팔아줄테니까 잠자코 길이나 열란 말이야."
정명가도.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열라는 게 결국은 전투기를 내놓으란 뜻이었다. 명나라는 중공이 됐고 길은 전투기가 된 셈. 말뜻을 이해한 일본 대사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집무실의 소파에서 총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미친소리냐는 표정이 눈에 서려있지만 입밖으로 꺼낼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총리의 얼굴에 광기가 서려있었다.
'조선 놈들이 드디어 미친거 같군··· 제정신이 아니야···.'
1591년, '정명가도'를 처음으로 꺼낸 야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바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명나라를 정복해 천하를 거머쥐겠다는 야망이 고작 조선에 가로막혀 좌절되니 도요토미 가문의 집권조차 허망히 무너지며 역사속의 비웃음거리로 사라진 것이다.
그걸 가장 잘 알고있는게 대한제국일테다. 임진왜란의 당사국이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을 좌절시킨 장본인이었으며 피해자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들이 석유에 눈이 멀어 정명가도를 입에 올리니 일본의 전투기까지 강탈하고 있었다.
역시 미친놈들이 분명했다. 조선이 드디어 미쳤다.
이런 미친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