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29화 (129/131)

〈 129화 〉 Ep14. 포항엔 석유가 없다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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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2월 1일.

이연이 평양에 왔다.

시내를 달리는 황제의 리무진 행렬 위로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으니 날이 무척이나 추워보였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눈을 분주하게 치워내는 장병들 너머로 서북방위사령부 청사에 도착하면 장성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황제를 맞이하였다.

<황제 폐하께 대하여 경례!>

<충성!!!>

별 3개를 달고 있는 부사령관 전 장군 밑으로 각 참모들 모두 군기가 바짝들어 있었다. 다리는 붙이고 허리는 곧게 펴서 90도를 유지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충성을 외치니 과연 군인이다.

하지만 리무진에서 내린 이연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다름아닌 은서 때문이었다. 설 연휴때 봤으니 4주만인데 그새 배가 더 나와 이젠 서있는 것도 버거워보였다. 그런 녀석이 진혁이 보조를 받으며 장성들 맨 앞에서 아비를 기다리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참 걱정을 일으키는 딸내미였다.

"너 왜 나와서 기다리고 있냐?"

"그야, 황제 폐하의 행차시니까."

"황제이기 전에 니 애비다. 그리고 넌 홀몸도 아니지. 한참 몸 사려야 할 녀석이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반가워서 그래."

씨익 웃는 녀석의 얼굴이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민애가 은서를 낳을 때도 한참을 고통스러워했는데 이젠 은서가 그럴걸 생각하니 아비로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정작 이 녀석은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짓다니.

"담배는 끊은거지?"

딸내미의 물음에 이연은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망설임이 담긴 그의 대답에선 죄책감이 느껴졌다.

"네 앞에선 피지 않으마."

결국 금연은 실패했다. 다시 시도하지 않을거다. 손주를 생각한다면 필사의 각오로 끊어야겠으나, 중공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 속에 담배가지고 씨름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심 딸내미 눈치가 보여 이연은 무안한듯 화제를 바꾸어 말했다.

"아이 이름은 정했냐?"

"아직···."

"너 말이야 내가 공산당보다 싫다고 했었지?"

"그, 그건!!"

표정을 보니 훤히 읽혔다. 허둥지둥 부끄러워하는 은서에게 아버지란 남자는 이제 '공산당보다 훨씬 나은' 존재로 고정이 된 모양이다. 독기가 바짝 올라 단식 투쟁까지 하던 처음과 비교하면 감격이 절로난다. 그래서 이연은 안도의 미소를 담아 딸에게 물었다.

"조선의 전통이란 말이다. 손주의 이름은 할애비가 지어주는 법이거든. 괜찮다면 그 전통 내가 따라도 되겠냐?"

"뭐 좋은 이름이라도 있어?"

"남자 아이라고 했었지?"

고개를 끄덕이는 은서의 뱃속 아이는 남자아이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대한제국에선 황태녀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0살짜리 아이를 두고 정치적인 계산을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이연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고민했던 이름을 선물로 주었다.

"한별, 이한별로 하거라."

그러자 은서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이한별? 한자가 아닌데? 순우리말 이름이야?"

"그래."

"황손인데 그래도 돼? 조선황실 500년 동안 유례가 없는 일일텐데···."

이연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말했다.

"내 나라 내 조선이야. 내가 독립시키고 통일한 나의 작품이지. 500년 황실 역사를 모두 합해도 나보다 훌륭한 임금은 없을거다. 그러니 뭘 하든 내 자유 아니겠냐?"

"하긴···."

'어련하시겠어요.' 라는 표정이 은서 얼굴에 훤히 보였다. 그것조차 참 귀여운 딸내미다. 그래서 이연은 이유를 하나 더 붙여줬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의 첫 아들인데. 예쁜 이름으로 지어줘야지."

그리곤 머리를 마구마구 쓰다듬어줬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뿔이난 표정조차 귀엽기만 하다. 마냥 어리기만 하던 녀석이 벌써 엄마가 된단다. 봐도봐도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짓는 이연이 평양에 온 이유는 다름아닌 중공군 때문이다. 서해바다를 놓고 중국과 전투가 벌어지면 서북방위사령부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은서가 총사령관으로있는 이곳은 다른 야전군급 사령부와 다르게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까지 총괄하는 통합작전사령부에 가까운데 총사령관도 별이 다섯개인 원수로 정해져있다. 이 정도의 권한은 한국전쟁기 맥아더 장군이나 돼야 찾아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은서가 맥아더 같은 지휘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므로 이연이 직접하고자 여기에 온 것이다.

사령부의 지휘통제실. 상석에 앉은 이연은 딸내미를 옆에 앉혀두고 부사령관부터 참모장, 각 분야별 참모들, 그리고 해군, 공군, 해병대에서 파견온 장군까지 불러모아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대한제국은 중공과 전쟁을 한다."

그러자 장성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당황하듯 물었다. 특히 은서의 참모장인 박 장군이 그랬다.

"폐하! 갑자기 전쟁이라니 중공 놈들이 미치기라도 한겁니까!?"

"석유가 나왔거든."

"......"

이연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면서 고심하듯 말했다.

"서해바다. 그 중 평양 앞바다인 서한만 지층에 석유가 깔려있어. 그걸 얻으려면 먼저 바다의 국경부터 명확히 확정지어야겠지. 하지만 우리에게 국경이 있나?"

황제의 물음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국경은 있다. 하지만 없느니만 못한 분쟁덩어리다. 백두산에서도 분쟁, 위화도에서도 분쟁, 하다 못해 바다에서도 분쟁. 근데 거기에 시한폭탄마냥 석유가 나왔으니 도대체 얼마나 더 싸워야 할지 모두가 막막해했다.

"주장을 해봐야 인정을 안해주니 없는 것이나 다름 없지. 외교로 풀고 싶어도 석유라는 거대한 자원이 걸린 이상 쉽게 풀리지 않을거야."

그러자 박 장군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럼 결국 전쟁으로 풀어야 하는겁니까?"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총잡이들이지."

싸움에는 목표가 있어야 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버린 중국을 두고 우리가 가져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 이연은 서울에서 이범석 총리에게 말했던 그대로를 장군들에게도 말했다.

"중공이 주장하는 서해바다의 경계선은 압록강 기준으로 동경 124도선. 서해바다의 70%가 중국것으로 넘어가는 말도안되는 수준이지. 우린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50대 50을 관철시킨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서한만을 반드시 확보한다."

그러자 해병대에서 온 장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서한만을 확보하신다면 설마!"

"랴오닝 반도 아래쪽. 대한제국과 중국 사이에 장산군도라는 섬들이 있지. 중국에선 창하이현이라고 하는데 이곳을 점령하면 서한만 전체를 실효지배할 수 있게돼. 거기가 우리의 전략적 목표가 될거야."

그러자 모든 장성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게 맞나?>

<중공의 영토를 점령한다고?>

두려운건 은서도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걱정스런 표정을 담아 아버지를 잡고 말했다.

"아버지, 갑자기 왜이래? 전쟁이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외교부가 협상을 벌이고 있어. 서해바다를 정확히 반으로 잘라 50대 50으로 나눠갖자는 제안이지. 하지만 이것 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불공평한 협상장이야."

"그래도···."

"인구 8억의 대국과 5천만의 소국이 벌이는 협상이 공정하길 기대하나? 얕잡아 보여도 단단히 얕잡아보이겠지. 이걸 해결하려면 전쟁밖에 없어."

"이길 자신은 있고?"

그러자 이연은 말했다.

"군인의 본분은 이기는거야."

그렇게 이연의 지침이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하달됐다. 장군들이나 은서나 열심히 경청하면서도 속으론 두려워했다. 우리가 중공을 이길 수 있나? 인구 8억의 거대한 대국을. 하지만 이런 와중에 오로지 황제만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함을 넘어 무모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작전회의가 모두 끝나고 장성들이 빠져나갔을 때 쯤 은서가 물었다.

"전쟁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

"말했잖냐? 이미 협상하고 있다고. 타결 가능성이 제로라 문제지."

"전쟁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다칠거야."

"은서야."

"아버지!"

아련히 바라보는 딸내미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소중한 나의 딸. 대한제국의 황태녀. 언젠가 황위에 오를 몸. 누구 닮아 똘망똘망 예쁜 눈을 가진 녀석을 보며 아버지는 말한다.

"넌 나이가 어려서 모르겠지. 한국과 중국이 이렇게 되버린 이유."

이연은 옛날 일을 떠올렸다.

그 남자의 황태자시절. 군단장으로 참전한 한국전쟁 때 최후의 결전을 뽑으라면 장진호 전투일 것이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개마고원의 겨울이란 전차가 얼어버리고 죽은 시체가 벽돌처럼 얼어 방패막이로 쓰이게 되는 참혹한 전투였다.

단순히 인원만 많을 줄 알았던 중공군은 오랜기간 국공내전을 겪으며 단련된 강군이었고 한치 앞도 모를 싸움 속에서 이연의 대한제국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기적의 승리를 거뒀다.

<가자 백두산으로!>

그대로 유엔군과 함께 북진을 시작한 이연이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았던 그 순간이 한국전쟁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대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모든 문제가 거기서 시작되었지."

"백두산이 뭐길래···."

"난 당연히 백두산이 우리 것인 줄 알았어. 내 전우들이 그랬고 우리 민족이 그랬거든."

대한제국 입장에서 백두산이 과거에 누구의 것이었는진 중요하지 않았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였고, 자신들의 적이었으며, 그들과 싸우다 얻은 백두산은 일종의 전리품이었으니까. 하지만 중국의 입장은 달랐다.

<중국은 조선반도의 전쟁에 개입한 적 없다. 인민지원군은 의용군으로 중국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것이며, 당의 입장과 무관하므로 우리에게 패전의 책임을 묻는 건 부당하다.>

<장백산(백두산)은 간도협약에 따라 중국 인민이 획득한 정당한 우리 영토이며, 대한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것이므로 즉각 반환되어야 한다.>

중국이 자신들의 참전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중공군의 소속 때문인데, 조선을 돕기 위해 중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민병대를 결성하여 북조선을 도왔다는 것. 그러니 중국 정부 입장에선 무관한 것이고 당연히 패전의 책임도 없다는 게 골자였다.

"너라면 그 사실을 믿어주겠냐? 중국의 군인들이, 중국의 무기를 들고, 중국의 지휘관과 함께 참전했어. 그런데 의용군을 자칭하면서 패전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니. 말이 안되잖냐?"

"말이 안되지 당연히···."

"그 이후로 장장 25년동안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았어. 중국에 패전국의 책임을 묻긴 커녕 국경 협상조차 하지 못했지. 그러는 동안 놈들은 더욱 강해졌고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지. 서해바다의 70%를 가져가겠다 으름장을 놓는데 너 같으면 받아주겠냐?"

"......"

"놈들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질거다. 인구는 더 늘어날 거고, 군대는 더 첨단화될 것이며, 수 많은 핵무기를 들고 우릴 압박하려 들겠지. 시간은 절대 우리편이 아닐거다."

이연은 호소하듯 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동등한 외교는 동등한 힘이 있어야 가능한거야. 평화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얼마나 큰 힘을 가져야 할까? 아버지···."

"적과 대등한 수준의 힘."

"중국과··· 대등한 힘?"

"중국과 대등한 힘, 소련과 대등한 힘, 일본과 대등한 힘, 미국과 대등한 힘. 그 누가 우릴 노리더라도 단호히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힘! 그게 외교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거야."

이연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 중국의 모든 요구사항을 그대로 수용해주면 된다. 서해바다를 70대 30으로 나누고, 서한만 대부분을 중국에게 내주며,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대부분의 석유 자원을 중국에게 양보해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백두산 천지까지 중국의 요구에 따라 100% 양도해주면 조선은 당장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전쟁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전쟁을 해서 만주벌판을 정복하고 중국인들을 무릎꿇려 조선인들의 노예로 삼자는 것도 아니다. 조선을 천자의 나라로 만들어 인접국의 조공을 받는 아시아 제1의 강대국으로 만들 생각도 없다. 단지 서한만이 갖고 싶었을 뿐이다.

그곳의 자원이 너무도 간절하게 필요했을 뿐이다. 백두산 천지도 양보를 할 지언정 50%는 갖고 싶었다. 단지 그것조차도 관철되지 않아 전쟁밖에는 할 수 없는 인구 8억 대 5천만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연은 딸의 어깨를 부여잡고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이 시대에 평화는 없어. 이념에 따라 편을 나누고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싸우는 것 뿐이지. 우린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거야."

그 시대의 이름을 역사가들은 냉전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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