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Ep13. 8월 총선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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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녀의 신혼여행지는 금강산으로 정해졌다.
신혼여행이 산으로 가버린 건 단지 그곳에 산이 있었기 때문으로, 한푼의 외화를 아끼고자 국내여행을 미덕으로 권하던 이범석 총리의 추천이 맞아떨어져 채택됐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금강산을 오르던 은서는 구슬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순서를 바꿔야겠는데? 밥보다 산이 먼저잖아?"
이은서와 김진혁, 신혼부부인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금강산 중에서도 비로봉으로, 청명한 하늘아래 암석 바위들이 도전적으로 서있는 그림같은 곳이었다. 녹색빛깔의 여름숲 위로 구름이 지나고 용이 지나가는 듯 한 긴 폭포가 어울린 신선들의 땅에 보랏빛꽃이 만발한 절경이었다.
은서는 원래 백두산에 가고 싶었지만 최전방이라 위험하다는 이유로 기각됐고, 마침 금강산은 등산코스부터 호텔, 골프장, 온천까지 개발되어 관광명소로 급부상하던 중이라 관심을 끌었다.
금강산의 절경은 옛날부터 유명했는데 조선왕조 시절에도 명나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1926년엔 스웨덴의 왕세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신혼여행을 오기도 했다. 그가 말하길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엿새 가운데 마지막 하루는 오직 금강산을 만드는데 쓰셨을 것'이라 하였으니, 비로봉을 정복한 은서 생각에도 그 말이 맞았다.
호텔과 골프장은 금강산의 풍경이 한폭의 병풍처럼 보이는 위치에 있었는데, 진혁이와 은서가 골프내기를 하니 장군들에게 과외를 받았던 은서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래서 원하시는게···."
승리자가 된 은서는 유혹적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오늘 밤...?"
식은땀을 흘리는 신랑 김진혁의 머리 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황태녀의 도전적인 사랑 공세에 오늘 밤은 죽었구나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이런 두 사람을 애써 못본척 고개를 돌리는 이가 있었으니 호위를 위해 따라왔던 김훈 중령.
'난 왜 여기 있는거냐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자신의 표정을 숨긴채 고개를 저었다.
황태녀는 신혼여행도 혼자서 올 수가 없는데, 황제의 뒤를 이을 예비 권력자이기에 친위대 경호실부터 비서실이 줄줄이 짐을 들고 금강산으로 따라왔다. 이것도 모자라 M16 소총으로 무장한 친위대 병력이 따라왔으니 금강산 곳곳에 저격포인트로 예상되는 길목을 순찰하며 황태녀의 안전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은서가 골프채를 정리하며 물었다.
"진희언니는 어때? 잘 지내?"
"뭐 그럭저럭?"
"갑자기 임신했다며 사라져서는 연락도 없고 어디서 뭐하고 지낸대?"
"뭐··· 제주도에 가서 그럭저럭? 이래봬도 나이가 30 후반이잖냐? 네가 이해 좀 해주라."
"인사정도는 하고 가지··· 경사스러운 일인데 축하도 못 받고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진 거 같아."
"비서실도 비서실만의 규율이 있는 거 아니겠냐? 조선시대로 치면 궁녀가 임신을 한 셈인데 궁에 남아있긴 좀 그랬나보더라. 그래도 비서실장님이 출산휴가까지 넉넉히 챙겨주시니 괜찮더라고."
김훈중령이 알고 있기론 그랬다. 덕수궁의 제2부속비서관 박진희는 출산휴가를 받아 임시로 출궁한 상태. 제주도로 무기한의 휴양을 가서 몸을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공식적인 이유고 뒤에 숨은 내막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대화를 듣던 김진혁 중령만이 알고 있었다.
'출산 휴가가 아니라 연수를 간거겠지. 빌어먹을 년···.'
진희에게 납치되어 고문까지 당했던 탓에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지만 딱 여기까지. 폐하와 비서실장님의 뜻으로 제국익문사 요원이 되었다니 그냥 참아주기로 했다.
진희는 엄선된 여성 요원들의 감시아래 제주도 한라산 깊은 곳 비밀 별장에 격리되어 있는데, 군의관이 24시간 상주하면서 건강상태를 체크해주고 있으며, 낮이면 제국익문사 요원이 되기 위한 이론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밤이 되면 CIA 요원시절 알고 있던 정보들을 모두 실토해야 하니 사실 연수라기보단 배신자의 재교육과정에 가까웠다.
황태녀의 신혼여행과 배신자의 재교육이 이루어지는 7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같은 시각 대한제국은 8월 총선을 앞두고 뜨거운 선거전이 한참이었다.
황제의 권력이 연장될 수 있을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8월. 땅끝 해남에서부터 북녘땅의 끝자락 함경북도 온성까지 하원의석 300석을 놓고 벌이는 국회의원들의 전쟁이었다.
선거운동이라 하면 대체로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 마을 광장 같은 곳에 군중들을 모아 연설을 하는 것이었는데, 과거 50년대는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아 난장판으로 돌아갔다. 후보자들이 고무신을 뿌려가며 유권자를 매수하는가 하면, 정치깡패를 고용하여 상대후보의 연설을 폭력으로 망가뜨리는 경우가 빈번하여 황제(혜조대제)가 우려를 표했을 정도였다.
이남이 이렇다면 이북은 달랐다. 빨치산 토벌로 곳곳이 교전중이라 선거는 꿈도 꾸지 못했고, 항복하고 무장해제된 북한군 잔당들은 지하조직으로 흘러가 마피아가 됐다. 마약을 밀수해오거나 정치깡패가 되거나. 구역을 점거해서 자리세를 뜯어가는 등의 행위가 파다하여 50년대 내내 치안상태가 최악을 달렸다.
그랬던 것이 1960년 이연의 직접 통치가 시작되어 이범석 총리와 힘을 모았고, 정치깡패부터 마피아까지 씨를 말려버리는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안정화를 일궜다. 이 시기 조선의 주먹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정재가 조리돌림을 당하며 부하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건 유명했던 이야기. 안정된 치안 속에 질서있는 선거로 군중들은 삼삼오오 거리에 모여 후보자들의 연설을 들었고 누굴 찍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70 대한제국의 선거란 '누가 더 말빨이 쌘가?'로 겨루는 언어의 전쟁.
여당인 한국독립당의 경우 황제의 친정이 허락되는 헌법상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나 볼법한 연설을 밥먹듯이 했는데, 민중의 영웅인 이연의 후광만 받아도 표심이 쏟아지는 탓이었다.
어느 후보자가 한 연설이다.
<저를 뽑아주시면 황제 폐하와 함께 이 나라를 천년의 제국으로 만들 것을 굳게 약속드립니다! 분열된 나라는 죽음뿐입니다! 황제 폐하의 깃발 아래 똘똘 뭉친 우리 한국독립당에게 힘을 실어주십시오!>
이렇게 연설해도 합법이다. 그리고 꽤 잘 먹히는 선거전략이다. 이연이 1960년 친위쿠데타로 헌법을 바꿔놨기에 가능한 일로, 독립운동가 출신에 한국전쟁 승리의 주역이라는 압도적인 정통성이 그것을 정당화시켰다.
이런 정치판이 신민당에겐 큰 문제였는데, 입헌군주국이라 명목상 신하의 위치에 있지만 정적으로서 황제에 맞서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진 것이다. 신민당의 부총재 김대정은 유세현장에서 이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었다.
<대한의 국부이신 혜조 대제께선 살아 생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독립되는 우리나라의 평민이 될지언정 합병한 일본의 황족이 되진 않겠다. 이것은 그분의 마음속에 민족에 대한 열망 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까지 담겨 있었을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폐하께 딱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황상이시여! 전제군주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당신의 말이 진심이라면, 국민과 역사 앞에 진정한 영웅이 되고자 한다면, 독립운동을 함께한 동지들에 대한 의리가 있다면 이제는 민주주의여야 합니다.>
<세습직 권력자가 통치를 하는 것은 절대권력으로 가는 길이며,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헌법이 바뀌지 않고 계속된다면 이 나라는 언젠가 불행해질 것입니다. 황제 폐하. 정치적 중립을 지켜주십시오. 이것은 폐하를 위한 충언입니다.>
같은 시기 신민당의 김영현 총재는 부산에 출마하여 뜨거운 유세전을 이어갔다. 이범석 총리는 서울 종로에 출마했는데 이곳은 중앙청부터 덕수궁까지 몰려있어 정치1번지로 꼽혔다. 거기에 이범석 총리의 고향이기도 했던 터라 압도적인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이범석! 이범석!>
단지 연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것 만으로도 환호성이 쏟아졌다. 덕수궁 앞 시청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한국독립당의 연설장은 지지자들의 파도와 같았는데, 한국광복군의 장군으로 독립영웅이기도 한 그는 황제와 버금가는 영웅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영원한 2인자는 압도적인 승리를 자신했다.
이범석의 뒤를 이을 한독당의 2인자 김종규 부총재는 자신의 고향인 충청남도 부여에 출마하여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북출신 강경파인 박영철 의원은 중공과 국경을 맞댄 군사도시 신의주에 출마하여 튼튼한 안보를 강조해 표심을 모았다.
이북지역으로 말할 거 같으면 중공과 소련을 맞대고 있어 만성적인 안보위기에 시달리는 지역인데, 험준한 지형과 추운 기후로 사람들의 성격도 강인한 측면이 있어 보수중에서도 극단적인 성향을 보였다.
보수정당에 속하는 한국독립당 입장에선 후보자만 내도 당선될 수 있는 노다지 같은 표밭이지만, 당선되는 의원들 대부분이 강경파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황제조차 컨트롤이 어려워 골치를 썩혔다. 당장 신의주에서부터 박영철 의원이 이런 소리를 했다.
<내래 마지막으로 딱 한 말씀만 드리갔습네다. 경친왕 전하! 그분은 우리들의 등불이며, 영웅이고, 순교자셨습네다! 믿었던 아새끼한테 배신을 당하셨지마는 우리 모두가 증인 아니갔습네까? 누가 그분을 반역자라 하갔습네까? 그분은 죄가 없습네다!>
성향이 이렇다보니 신민당의 지지기반은 전라도, 경상도를 비롯한 이남지역에 치우쳐져 있는데 한명의 후보자가 전략공천을 받아 특공대처럼 투입되었다. 장준호. 한국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범석 총리의 후배이기도 한 그는 야당인 신민당의 후보로 들어가 박영철 의원이 출마한 신의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상계의 주필로 천성이 글쟁이였던 그는 뛰어난 연설실력은 없었지만, 차분한 어조로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연설로 신의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25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동포 여러분들께 묻습니다. 통일이 좋으셨습니까? 좋으셨을 겁니다. 갈라진 민족에게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었을테니까요.>
<분단되었던 남북에 전화선이 연결되고, 도로와 철도가 뚫리고, 잃어버렸던 형제 동포를 만나 눈물과 호소 환의가 오가던 순간 맞잡은 손은 따뜻했을 겁니다.>
<험난했던 투쟁이 끝났습니다. 피로 물들었던 우리의 전진끝에 종착지는 어때야겠습니까? 그것은 자유여야 합니다. 정치적인 자유, 경제적인 자유, 문화적인 자유, 하나된 민족아래 모든 국민이 주권자의 지위를 갖고,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민주적인 나라여야 할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 눈을 뜨십시오. 자유와 민권이란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가 지켜야 하며 그것이 침해받을 때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자유는 경친왕 전하도 황제 폐하도 아닌 바로 여러분. 우리들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질문이 선거라는 기회를 빌어 이북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의 역사엔 단 한번도 민주주의가 있던 적이 없었다. 조선시대는 왕을 모셨고, 일제강점기는 식민지배를 당했으며, 40년대는 공산주의자들의 통치를 받다가 전란을 겪었다. 50년대의 무법천지 속에 경친왕의 보살핌을 받아 왕으로 모시던 어리숙한 유권자들은 이제 밥을 먹어도 논쟁을 벌였고, 잠을 잘때도 가족과 논쟁을 벌였다.
경친왕인가? 나인가? 우리들은 통치를 받는 것인가? 통치를 허락한 것인가? 민주국가의 시민인지 왕조국가의 신민인지를 가리는 이북지역의 선거는 영웅이길 거부한 독립운동가의 질문으로 시작된 것이다.
1975년 8월 13일 수요일.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이 날에 이루어진 전국단위의 하원의원 선거가 아침 7시를 기해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됐다. 같은 시간 상원에선 독립운동가 출신의 귀족 가문들이 한데 모여 민족대표를 재구성하기 시작하니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진이 중앙청에 있었다.
대한제국의 '한국식 입헌군주제'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점이 있는데 황실도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영국과 일본은 입헌군주제로서 군주는 정치적 중립이 의무화되어있지만 이 나라는 그런게 없다.
이연은 7월부터 8월까지 대외 행사를 3배 이상 늘려 TV출연 빈도를 끌어올렸고, 봉사활동을 하거나 군부대 시찰을 하는 등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벌여 한국독립당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비밀투표제라 누구 찍었다 말은 안하지만 덕수궁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한국독립당을 찍었음은 누가봐도 자명했다.
그렇다면 황태녀는 어떨까?
평양 사령부의 관사에 신혼집을 차려놓은 은서는 선거기간 내내 틀어박혀 자신의 출연빈도를 0으로 만들었다. 밤이면 진혁이와 입을 맞추며 달콤한 사랑을 나눴고, 아침이 되면 제복을 차려입고 사령부로 출근해 업무를 보니 선거 당일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평양 지역의 투표소를 찾은 은서는 기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담담하게 밝혔다.
"황실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투표소에 나와 한 표를 행사하게 된 것은 딱 하나. 국민여러분들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투표소에 나오세요! 여러분들의 소중한 한 표가 대한제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날 아침. 은서는 어느 당을 찍었을까? 비밀투표라 외부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관사로 돌아가는 리무진 뒷자리에서 진혁이가 소근소근 물어보니 은서가 배시시 웃어버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 투표용지에 그려진 신민당의 네모칸이랑 한국독립당의 네모칸이 맞닿은 경계선, 1mm의 오차도 없는 정가운데에 도장을 찍었지."
"그럼 무효표 아닙니까?"
"기권도 권리거든."
황태녀는 투표권을 행사했다. 황실의 마스코트 같은 여인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모습을 보며 수 많은 국민들이 투표장을 찾아 따라하듯 투표를 했을 것이다. 그녀가 끌어올린 투표율은 아마 5%? 아니면 10%를 넘었을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여야에서 보낸 참관인들과 선거관리위원회의 통제 속에 투표함이 닫히고 전국 각지에 마련된 개표소로 모여 집계가 시작됐다. 실내체육관에 책상을 일렬로 쭉 깔아놓고 투표함을 쏟아부어 사람 손으로 일일이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렇게 정리된 투표지는 체육관 한켠을 빼곡히 채운 칠판에 일일이 통계를 냈다.
과거 50년대 정치깡패가 만연하던 시절엔 개표과정에서 투표함이 바꿔치기 당하는 등 암암리에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청렴을 제일의 가치로 내세우는 이범석 총리의 엄포아래 조금의 부정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번 선거에서, 새벽을 넘어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같은 개표작업이 결과를 도출했다.
한국독립당 170석, 신민당 125석, 대조선애국자당 3석, 무소속 2석. 의석이 줄긴 했지만 이범석 총리의 임기가 4년 갱신되었고 이연도 권력 유지에 성공한 나쁘지 않은 성적표였다.
주요 당선자는 종로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확인한 이범석 총리, 충청도의 민심을 석권한 김종규, 전라도의 김대정, 경상도의 김영현이 각각 재선에 성공했고, 신의주에선 장준호가 31표 차이로 박영철 의원을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신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장준호 같이 신념적 이유로 황실에 거리를 두던 소수의 독립운동가들을 영입해 이북지역으로 전략공천했는데, 그 결과 무소속이었던 의석까지 자당으로 흡수하며 125석으로 확대. 불모지에 가까웠던 동토의 땅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한편 상원에선 민족대표이자 제국 귀족으로서 독립운동가문들이 비밀투표를 벌였는데, 상원의장으로 안수진이 재신임을 받으며 큰 변화 없이 선거를 넘겼다. 대한제국에서 상원은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며 정당에 소속되길 거부했으므로 정치적 메시지는 찾을 수 없었는데, 군에서 많은 존경을 받던 최고 원로 김홍일 장군이 건강상 이유로 은퇴를 선언해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선거 결과가 텔레비전 뉴스를 하루종일 장식하던 찰나. 선거 관련 소식들을 뒷전으로 치워버리는 긴급 속보가 나왔는데 사건은 덕수궁에서 시작되었다. 평양에서 온 전화를 받은 이화가 황제의 집무실로 달려가 소식을 전하니 이범석 총리를 접견하고 있던 이연이 벌떡일어나게 만드는 충격이었다.
대한제국 황태녀 이은서 회임.
국가적인 경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