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Ep13. 8월 총선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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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녀의 결혼식은 1975년 6월 28일 토요일에 열렸다.
이날 아침부터 세종로는 교통통제에 들어갔고, 과거 조선총독부로 쓰였던 중앙청은 일제의 잔재를 정복했다는 선언이라도 하는듯 거대한 태극기를 세로 형태로 걸어놔 국가적인 행사를 준비했다. 곧이어 친위대 소속 수도방위사령부의 헌병대가 지프차를 타고나와 열병식의 시작을 알리니, 그 뒤로 검은색 장갑차와 전차, 병사들이 행진하며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껏 달아오른 서울의 밤.
석유파동을 완전히 이겨낸 대한제국의 서울은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고,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거리에 인산인해를 이루어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제국 황태녀 이은서
태조 이성계 이래로 500년간 이어진 긍지높은 대한제국 황실의 후계자. 영웅의 딸, 그 자체로 영웅. 39만 대군을 거느린 5성장군, 베트남전 참전용사, 위화도 분쟁의 해결사, 사이공 철수 작전의 영웅이며, 대한제국 특전사 출신의 여장부.
The Iron Princess.
그녀를 태운 리무진이 덕수궁을 출발하니 차량 행렬만 13대였다. 맨 앞엔 친위대의 하얀색 모터싸이클이 길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시민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와아아!>
<행복하세요!!!>
이날의 결혼식은 대한제국 황실이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존경을 받는지 시각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 종로에 모인 인파만 경찰추산 170만 명.
이 나라 황실로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고, 아들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인데, 손녀는 월남전에 다녀온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화신 같은 집안이라 야당인 신민당조차 축하성명을 발표하며 신사협정을 지켰다.
황태녀의 결혼식장은 창덕궁. 조선왕조시절 270년간 쓰인 궁궐이 지금은 황실의 사유지로서 결혼식장으로 쓰이게 됐다. 이곳에선 M16 소총으로 무장한 친위대가 사열하여 황실을 기다렸는데 , 리무진 행렬이 창덕궁 앞 교차로에서 정차하면 6성장군의 대원수 제복을 차려입은 이연이 리무진에서 내렸다.
그런 아버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순백의 웨딩드레스 은서가 내리니 비서진들의 도움아래 끝도없이 길게 펼쳐진 치맛자락이 레드카펫을 장식하게 되었다. 오늘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부님.
수줍어하는 딸내미에게 아버지가 손을 잡고 물었다.
"준비됐니?"
"응."
"가자."
친위대의 호위 속에 부녀의 오붓한 행진이 시작됐다. 처음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넘어야 했다. 레드카펫이 깔려있는 궁궐안에 노랫가락이 울려퍼지니 이것은 황실가(皇室歌). 본디 대한제국의 애국가로 1910년까지 쓰이던 건데 지금은 독립군가에 자리를 내주고 황실의 행사때만 쓰이고 있다.
전문합창단이 오케스트라처럼 부르는 황실가는 통일된 대한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듯 웅장하게 울려퍼졌으며, 특별한 날에만 들을 수 있어서 그런지 매번 새롭게 느껴졌다.
<상제는 우리 대한을 도우소서, 독립부강하여 태극기를 빛나게 하옵시고, 권이 환영에 떨치어 오 천만세에 자유가 영구케 하소서>
아마 은서는 몰랐을 것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제대로 된 문화도 없이 방황하던 대한제국이 자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를 확립하고 있었다는 사실. 당장 지금의 결혼식도 급조된 측면이 강했는데 이 나라가 황실 행사부터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해야 했던건 가슴아픈 이유가 있었다.
대한제국.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겨 장장 35년간 식민통치를 당했던 나라. 그 기간동안 남의나라 지배를 받으며 얼마나 많은 문화가 훼손되고 단절되어 왔을지 통계조차 낼 수 없었다.
고종황제가 독살당하고, 순종황제가 꼭두각시 인형으로 전락하는 동안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일본에서 볼모처럼 지냈다. 1910년부터는 황실 전체가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당해 일본 황실의 일원처럼 취급되었고 그런 탓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미국땅에 잔류하여 이승만과 망명정부를 차린 의친왕이라고 온전했냐면 그것도 아닌것이 객지에서 독립운동 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이념 차이로 사분오열되는 걸 막고자 스스로 황제가 되었을 때 그는 망명정부에 이승만과 김구를 비롯한 주요 요인들을 모아놓고 술을 나눠마셨다. 그것이 대관식의 끝이었다.
이 나라는 독립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 틈바구니에서 38도선 기점으로 남북이 분단되고 1950년엔 한국전쟁이 터졌다. 이연이 황위를 물려받았을 때 조선반도는 보릿고개가 만연해있었다. 결국 ‘돈이 없어서’ 대관식을 하지 못한 황제는 중앙청 본회의실에 국회의원들을 모아두고 6성장군의 대원수 제복으로 계승을 선언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랬던 대한제국이 제구실을 하기 시작한 건 1960년대의 일이었다. 이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이북지역에 희토류 채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공격적인 산업화를 곁들였을 때 겨우겨우 여유를 찾았다.
하지만 경제가 좋아졌다 해서 끝이 아니다.
1970년대는 안보위기가 터졌다. 백두산과 위화도에서 국경분쟁을 벌이며 아군 장교들이 도끼를 맞고 죽는 판이니 국민들의 단결과 안보의식 함양이 국책사업처럼 여겨졌다. 은서의 황태녀 책봉식조차 열병식으로 떼우며 5성장군의 계급장을 달아주는 것으로 해결하니 이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전통이었던 것이다.
장장 65년의 대장정이었다.
막상 여유가 생기니 전통 혼례는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대관식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든것이 제로에 가까웠던 대한제국은 은서의 결혼식조차 군대식으로 하게되어 이 나라는 결국 군대야말로 자신들의 65년 전통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은서의 결혼식. 결혼식장으로 쓰이게 된 창덕궁과 황실가로 쓰이는 애국가가 변화하는 세월 속 마지막으로 남은 잔재이고 산물이었다.
하지만 군대식 문화라 해도 어느 군대의 문화인가?
은서가 창덕궁의 마지막 관문에 당도했을 때 이를 짐작할 수 있었으니,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큼지막한 대문에 두 명의 장군이 예도를 들고 서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하.”
해군제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예비역 대장은 손원일 제독. 독립운동가로 망명정부에서 일한 손정도 목사의 장남이며, 대한제국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 해군 건설을 위해 군생활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제국해군의 아버지였다.
“사이공 철수 작전 감명깊게 보고 있었습니다.”
명망높은 군 원로의 칭찬에 은서가 배시시 웃어버렸다. 두 사람 모두 머리 속에 같은 생각을 하고 싶었는데 ‘항공모함이 갖고 싶어요!’라는 한마디가 지켜질 수 있을지 내심 궁금했다.
손원일 제독의 반대편에 서있는 장군은 나이가 다소 많아보였는데 올해로 78세. 이범석 장군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분으로 말하자면 중일전쟁과 한국전쟁을 모두 뛰어본 노련한 명장 김홍일 장군이었다. 중화민국에서 장군으로 활약하며 중일전쟁을 누볐고, 한국광복군에서도 활약하다 대한제국 육군에 돌아와서 한국전쟁까지 활약. 노련한 경험으로 승리의 주역이 된 군부 최고의 원로였다. 가슴에 훈장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영웅은 젊은 황태녀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수 많은 순국선열들이 지켜온 나라입니다. 부디 소중히 여기시고 아름답게 발전시켜주십시오.”
“네!”
두 장군이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을 힘차게 열고 칼을 높이 들었다. 황제의 손을 맞잡고 천천히 들어오는 신부의 입장에 수 많은 귀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이범석 총리를 필두로 문무백관들이 양복과 제복을 입고서 도열해있으니, 여기에서는 예도를 들고 있는 군인들의 복장이 달라졌다.
대한제국 국군의 전신인 한국광복군의 제복을 차려입은 독립운동가들이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서 예도를 들고 있으니 마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대한제국 국군의 뿌리는 우리다.>
문무백관의 가장 끝 앞자리에 서있는 이범석 총리는 한국광복군의 장성 출신이었고, 상원의장 안수진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전직 국방부장관 김신 하원의원은 망명정부의 총리였던 김구 선생의 장남이었다.
그 외에도 수 많은 한국광복군 출신과 망명정부 출신들이 문무백관의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레드카펫의 끝에는 은서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신랑 김진혁이 서있었다. 딱히 대단한 집안도 아니고 계급도 중령에 불과하지만 친위대의 멋진 흑색 제복이 누구보다도 멋있어 보였다.
‘진혁아···.’
신부 이은서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사뿐사뿐 걸어나가는 은서의 머리 위로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칼의 관문을 만들어 반겨주니 황태녀의 영광스러운 입장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그런데 황태녀의 결혼식에서 주례는 누가 섰을까?
대한제국은 국교가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유교라고 할 수 있지만 이건 종교보단 철학에 가까운 개념이다. 교황이나 추기경 같은 종교지도자가 없기에 행사를 주관할만한 대표가 없었다.
‘국민’의 대표인 총리가 주례를 서준다면 민주주의에 있어 더할나위 없었겠지만, 그를 대신해 주례를 서기로 한 남자가 있었으니 월남전의 총사령관 채명진 예비역 대장이 주례의 자리에서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내리는 사이공의 연병장에서 은서의 손을 잡아주었던 그분을 보자 은서가 환한 미소로 외쳐버렸다.
“장군님!!!”
피식 웃으며 맞이하는 채명진 장군은 1973년에 육군 대장으로 전역한 이후로 외교관 자리를 전전하고 있었는데, 주례를 서달라는 이연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여 조선땅에 돌아왔다. 여전히 친위대 축소와 서북방위사령부 해체를 주장하고 있어 정치적으론 눈밖에 나있지만 이 날 만큼은 신사협정이었다.
“훌륭한 군인이 되셨더군요. 전하.”
“오셨다면 오셨다고 말씀을 하시지···.”
“결혼식이라고 우시면 안됩니다?”
"네!"
채명진 예비역 장군의 선언아래 황태녀의 결혼식이 시작된다. 첫 선언까지도 대한제국 국군의 정신이 깃든 메시지였다.
"오늘 우리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들이 굽어살피는 대한제국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영광스러운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런 선언을 시작으로 신랑과 신부가 마주서서 인사를 나눴고, 채명진 장군의 권고아래 신랑 김진혁의 혼인서약이 이루어졌다.
"나 김진혁은 대한제국 황태녀 이은서를 아내로 맞이하여 기쁠때나 슬플때나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쳐온다 해도 평생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지켜줄 것을 맹세합니다."
그 다음엔 은서의 혼인서약이 낭독되니 이 역시 비슷한 내용이었다.
“나 이은서는 신랑 김진혁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영원토록 함께하며 기쁠때나 슬플때나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의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후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로 대표되는 길고 긴 주례사가 국민학교 교장선생님 훈사 마냥 이어졌고, 신랑 김진혁과 신부 이은서가 결혼반지를 나눠가지며 키스를 나눴다. 이에 맞춰 서울 전역에 오색빛깔의 불꽃놀이가 시작되니, 진혁이는 이런 와중에도 은서의 귀를 막아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이 참, 이젠 괜찮다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새로운 부부의 연을 맺고, 황실의 가족사진을 찍고, 기자들과 국민들 앞에 인사를 나누며, 마지막으로 김진혁 중령을 공작으로 임명하는 작위 수여식이 이루어졌다.
사실 주먹구구식이었던 대한제국이라 부마에게 무슨 작위를 내리고 어떤 훈장을 주어야 하는지도 전례가 없었는데, 황실의 직계후손들만 다는 황금색 대훈위금척대수훈장을 수여하고 공작위를 수여하는 것으로 부마를 만들었다.
공작 작위는 원래 황실 전용으로 비워놨던 작위로 과거에 경친왕 아들인 이환이 이 작위를 갖고 있었다.
진혁이가 대한제국 귀족이 된 것을 보며 환한 미소와 함께 박수치던 이은서. 그녀에겐 김종규 국방부장관이 다가와 결혼 선물을 올렸다.
"이게 뭐에요?"
"일전에 말씀하셨던 비녀입니다. 전하."
선물상자를 열어보니 그곳엔 가위가 있었다. 가위? 분명 가위다. 그런데 손잡이만 가위고 날 부분은 은이 덧대어져서 뭉툭하게 바뀐 가위 모양의 비녀였다. 여기에 자그마한 보석이 달려있는 은가위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가위인데요?"
"그게··· 가위를 녹여서 비녀로 만든다는게 기술적으로 좀··· 그래도 정성을 담아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직접 깎고 다듬고 붙이면서 정성껏 만든 가위니 부디···."
“직접 만드신거에요?!”
“하하 예···.”
“모양이 바뀔 줄 알았는데··· 봐도봐도 가위인걸요? 황태녀 책봉식도 군대식이고, 결혼식도 군대식이고, 비녀마저도 가위니 나 정말 천생이 여장부인가봐···.”
은서는 그렇게 싱긋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묶었다. 그리고 거기에 비녀를 꽂으니 이제부터 머리에 가위를 꽂고 다니는 대한제국 황태녀였다.
"어때요? 이뻐요?"
중년남자 김종규는 아저씨의 취향을 담아 확고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워 말했다.
"최고십니다! 전하!"
“저 진짜 평생 이것만낄거니까 후손들이 뭐라그러면 다 아저씨 책임이야.”
“하하하”
그렇게 짖궂은 표정으로 웃어버리는 은서는 어쩐지 쓸쓸함을 느꼈다. 화려한 하객들이 자신의 결혼식을 멋지게 빛내주셨지만 정말로 꼭 오셨으면 하는 분이 이 자리에 없었다.
은서의 어머니 인애황후 서씨는 교통사고로 1960년에 승하하셨기에 이 자리에 오실 수 없던 것이다. 그래서 먹먹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혹시 그렇진 않을까? 볼 수도 느낄 수는 없어도 이 자리에서 환한 미소로 박수를 쳐주고 계셨을지도. 그렇게 은서는 조금씩 조금씩 어머니의 뒤를 따라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