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16화 (116/131)
  • 〈 116화 〉 Ep12. 배신자의 밤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5월 24일.

    김진혁 중령은 무단 결근했다. 신분이 군인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탈영이나 다름없던 거라 친위대장 차지연이 노발대발하며 수색대까지 편성했지만 은서의 만류로 성사되지 않았다. 사복 차림을 하고 있던 은서는 차지연의 집무실로 찾아가 명령을 내리듯 이렇게 말했다.

    "사정이 좀 있었어요. 별 일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대체 무슨 사정이기에 그러십니까?"

    "제 말 못 알아들어요? 개인 사정이라구요! 신경 끄세요!”

    "예, 예···."

    그리곤 진혁이네 집을 다시 찾아가봤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시아버지는 진혁이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고, 진혁이의 동료들인 친위대 경호실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다 못해 제국익문사를 쥐락펴락하는 비서실장님 조차 고개를 저으니 정말로 탈영이라도 한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는 은서는 이제 경호원들을 끌고 나와 해질 무렵까지 종로 길거리를 서성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혁아 어딨어···."

    은서가 그렇게 종로 바닥을 서성이는 동안 김진혁 중령은 양복에 넥타이까지 번듯하게 차려입은 채로 서울시 중구의 남대문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냥 뭔가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난 너를 걱정하는거야. 우린 그림자처럼 살아도 여한이 없지만 넌 스스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았어. 유학까지 다녀온 녀석이 날개 한번 펼치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살기만 할거냐?>

    남자의 일생은 남대문 시장에서 시작됐다. 46년생 김진혁은 5살 때 한국전쟁을 만나 이리저리 피난을 다닌 탓에 고향이란 것의 기억이 없었다. 그나마 유년기의 추억 속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 한다면 동대문 시장. 70년대 지금은 반듯한 아스팔트 바닥에 커다란 건물이 즐비하지만 50년대는 흙바닥에 1층 건물들이었다. 건물이래봐야 콘크리트나 벽돌로 대충 쌓아 올린 허름한 잿빛 도시. 한국전쟁의 상처가 겨우 아물어가던 그곳에서 어린 소년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 엄마! 나도 이제 학교 가면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겠지?!>

    <그럼~>

    그 소망은 과연 이루어졌을까?

    시장바닥을 거닐던 김진혁은 그 사이로 꿋꿋이 버티고 있던 2층 높이의 허름한 학교 건물을 찾아갔다. 어둑어둑한 저녁무렵의 그곳에서 그네에 걸터앉은 그의 머리에 옛날의 일들이 떠오르고만다. 과연 행복했을까?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오줌쌌대요~ 오줌쌌대요~>

    흙바닥이 깔려있는 나무 아래 그네에서 어린 소년은 당황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림이지만, 그런 황당한 놀림 조차도 제대로 맞서지 못했던 소심한 소년이었다.

    <으아앙!!>

    그래서 그냥 울었다. 오줌싸개라 불려도 울었고, 누구랑 사귄다며 놀림 받아도 울었다. 서글퍼서, 슬퍼서, 화가나서. 그럼에도 소년이 할 줄 아는건 갓난아기 시절 그대로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순진한 울보였었다.

    <우리집에 놀러올래? 같이 놀자!>

    어느날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도 어린 소년은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30대가 된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얼척이 없는 단순한 이유였는데, 대문 앞까지 찾아가놓고 초인종을 누르지 못한 것이다.

    '친구를 사귀고 싶었는데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안났지. 눌렀는데 엉뚱한 사람이 나오면, 내가 잘못 찾아온거면.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으니까. 그런 상황조차 무서웠으니까.'

    근본적으로 성격이 결함이었다.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친구네 집까지 찾아가놓고서 무서워서 초인종을 못 누른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누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발걸음을 돌리고 마는 국민학교 시절의 김진혁은 외톨이였다.

    <눌렀는데 다른 사람이 나오면 어떡해? 무서워···.>

    김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중학교로 향한다. 국민학교 내내 친구가 없었던 까까머리 소년은 50년대 말 중학교에 입학하여 검은색 교복을 입고 있다. 덩치가 커지기 시작한 학교 친구들은 소년을 학교 뒷편 으슥한 곳으로 끌고가 멱살을 잡기 시작했다.

    <시험시간에 답을 알려달라고? 그러다 선생님에게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

    시험시간에 답을 공유해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저항할 용기가 소년에겐 없었다. 선생님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는 쪽지 시험에서 뒷자석의 친구에게 답을 알려주는데 실패한 소년은 응징을 당했다.

    <너 때문에 망쳤어!>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한 친구는 복도에서 소년을 만날 때마다 뒤통수를 치며 지나갔다. 싸우는게 무서웠고 이길 수 없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냥 맞아주고 참아내었다.

    소년의 학창시절은 이제 고등학교로 올라간다. 60년대가 되었지만 집안 형편은 너무도 어려웠다. 거미줄이 낮게 드리우는 단칸방에 모여사는 가족은 이제 2명. 아버지는 술에 찌들어 행패를 부렸다.

    <이 오라질 년이! 남편이 들어왔는데도 보이질 않아!>

    <아버지··· 엄마는 나갔잖아···.>

    불행한 집안 형편에 나아지지 않는 학교 생활. 덩치 큰 친구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더더욱 커지고 근육이 붙어 군인을 방불케한다. 10대의 끝자락을 맞이한 남학생들은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신체적인 전성기. 학교에서 좀 논다 싶은 애들은 폭력써클을 결성하기에 이르고, 약한 학생들을 골라 주먹질을 하며 협박하니 마치 종놈을 부리는 듯 했다.

    옥상에 끌려가 구타를 당하는 10대 후반의 소년은 바닥에 드러누워 온 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이젠 용기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그들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내가! 돈 가져오라고! 했냐! 안했냐! 앙?!>

    <미안해···.>

    가난해서 뜯길 돈조차 없던 소년의 얼굴에 동젼 3개가 던져졌다. 담배를 사오란 뜻이었지만 미성년자가 그런걸 살 수 있을리 없다. 소심한 성격에 안하겠다 버티던 그는 또 얻어맞았고, 학교 뒷골목에 끌려가 맞았으며, 방과후 친구의 집에 끌려가 또 다시 맞았다. 심지어 남자끼리인데도 자기 고추를 만져보라며 성추행을 당하니, 다음 날 교무실에 찾아가 선생님께 일러봤지만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 니들이 알아서 해. 바쁘니까.>

    훗날 이 일진은 국회의원의 아들로 밝혀진다. 냉담한 반응의 선생님은 뇌물을 받아먹고 편의를 봐주던 부패 공무원. 저항할 힘이 없었던 약자는 학교의 옥상에 올라가서 자살을 시도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소년의 나이 30세. 친위대의 엘리트 장교가 된 김진혁 중령은 잘 빼입은 양복차림으로 같은 장소를 찾아왔다. 저 멀리 덕수궁이 아득하게 보이는 이화여고 맞은편의 남자 고등학교. 자신이 투신자살을 시도했던 옥상에 올라와 난간을 내려다보는 그는 여전히 이곳이 무섭다.

    '여기서 뛰어 내렸는데 나무에 걸려 살았었지. 정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신기할 정도라니까.'

    아찔한 높이였다. 안전장비가 있다면 모를까 맨몸으로 여길 뛰어내리라면 거절하고 싶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김진혁 중령은 뒤를 돌아 옥상 출입구를 바라본다. 그곳엔 이화여고 1학년 3반에 다니는 어린 소녀가 서있었다.

    이은서.

    자살하려는 소년 앞에 찾아온 동갑내기의 어린 소녀. 자신을 대한제국의 공주라고 밝히는 겁없는 소녀는 진혁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죽을 용기로 싸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쉬우면 그걸 배수진 삼아서 싸워! 어차피 죽을거면 이판사판 사생결단으로 싸워보라고! 아쉬울 거 없잖아! 어쩌면 이길 수도 있어!>

    하지만 30세가 된 김진혁 중령은 황태녀 전하의 과거를 향해 소년 김진혁을 대신하여 이렇게 말했다.

    "전하의 말엔 조금의 틀림도 없었죠. 이론적으론 정말 완벽한 조언이었어요. 싸우면 됐으니까. 그 시절에 싸울만한 힘이 있었더라면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거기선 손을 잡아줬어야 했습니다. 내가 너의 편이 되주겠다고. 함께 싸우자고. 좀 더 강조하여 말해주었다면 여기서 뛰어내릴 일은 없었을텐데. 내게 필요했던 건 싸울 용기가 아니라 함께할 친구였으니까."

    그 때 학교 옥상에서 누군가의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그 때 싸웠더라면 내 손으로 죽일 수 있었을텐데. 생각해보면 영 아쉽단 말이야?"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건달 한명이 옥상에 나타났다. 은서가 서있던 바로 그 자리에 나타난 양아치는 십 수년이 지났어도 얼굴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다름아닌 '그 놈'이니까.

    "국회의원 아들내미가 이젠 건달짓을 하고있나보군."

    "니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말도안되는 빽을 동원해서 말이야."

    소년을 옥상에 끌고가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팼던 폭력써클의 리더. 하지만 황제라는 거대한 권력을 만나 감옥이라는 지옥에 떨어진 패배자. 30살이 된 국회의원 아들내미는 이제 건달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할 줄 아는거라곤 싸움 뿐이었나보다.

    "그래서, 날 여기로 부른 이유가 뭐지?"

    사실 김진혁이 시장바닥을 돌아다니고 학교 옥상까지 올라왔던 건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남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선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협박까지 한 녀석은 그 때의 그 녀석. 지금의 이 녀석.

    "보상을 받아야겠더라고. 잃어버린 세월이 너무 아쉬워서 말이야."

    "무슨 보상?"

    "이번에 황태녀랑 결혼한다지? 이야··· 그 때 그 찌질이가 이젠 이 나라 왕이 되신다네?"

    "왕이 아니라 부마겠지. 그리고 난 정치 같은 것도 안할거다."

    "왕이건 부마건 그런 건 됐고. 이렇게 만난것도 구면인데 니 덕좀 봐야겠다."

    그렇게 말하는 건달새끼의 주변엔 동료들이 대여섯명씩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 인원을 다 합해보니 20명이나 되는 양아치 집단. 손에는 각목이나 쇠파이프까지 들고 있으니 작정을 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조폭은 다 일망타진된걸로 아는데. 황궁 코앞까지 이런 놈들이 나타나는걸 보면 배후가 있는 거 같군."

    "말 그대로야. 우리를 고용하신 높은 분이 계시거든."

    "그래서, 내 덕을 보겠다는게 뭘 말하는거지? 돈? 권력? 인사청탁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러자 그 건달이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해버렸다.

    "너 핵무기에 대해서 알고 있지? 그거 불고 나랑 같이 작업 하나만 치자."

    "......?!"

    "왜? 놀랐냐? 내가 신분에 걸맞지 않은 충격적인 정보를 알고있나? 전개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막 대가리가 안 굴러가? 말했잖아~ 우릴 고용한 높으신 분이 계시다고~"

    "양아치들인 줄 알았는데 간첩 집단이군."

    "좋은 말 할때 순순히 같이 가자."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대한제국 친위대다. 분노했고 실망했지만 배신할 생각은 없다.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마음먹었으니까.

    "널 고용해서 여기로 불러낸 걸 보면 나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거 같은데 대체 누구 짓이지?"

    "그거야 따라와보면 알거 아냐? 쥐어 터지기만 하던 왕따 새끼가. 왜? 덤벼보게? 니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소년 시절의 김진혁은 못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30살의 김진혁이다. 대한제국 친위대 엘리트 장교. 특임대까지 복무했었던 황제 폐하의 수족은 20명이 덤빈들 굴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 김진혁은 각오를 담아 말했다.

    "하나 말해주지. 넌 유죄다. 핵무기란 단어를 입에 올린 순간부터 군사기밀누설죄, 적과 내통하여 이적행위를 하였으니 국가보안법 위반, 황제 폐하의 친위대인 나를 협박하고 납치를 시도하고 있으니 현행범이다. 난 지금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으니 정당방위가 적용되겠지."

    "뭔 개소리야?"

    "널 여기서 죽여도 합법이란 소리야."

    "이런 미친새끼가···."

    싸우기로했다. 어린 소년을 지나 청년이 되고 남자로 태어난 김진혁 중령은 손 마디마디부터 어깨까지 천천히 풀어가며 살의의 각오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친위대에! 두 번은 없다!"

    목숨을 건 혈투를 시작한 김진혁 중령의 마음에 대한제국 친위대의 맹세가 용솟음쳤다. 주먹에 담긴 충성의 의지가 활화산이 되어 터져나가니 건달 새끼의 복부에 파고들어 일격에 7m를 날려버렸다. 기선제압을 당해버린 19명의 부하들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겁먹은 새끼들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을 노려보며 '남자'는 말했다.

    "난 종교를 안 믿지만 신을 믿어. 왜 그런 줄 아나? 인간도 신이 될 수 있거든."

    투신자살을 시도했던 어린 소년 앞에 말도안되는 남자가 나타났다. 대한제국의 황제 이연은 자신을 괴롭혔던 폭력써클의 우두머리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감옥이라는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고작 10대 후반에 불과한 권력 위에는 '진짜' 권력이 있었다.

    검정양복을 입은 황실의 변호사는 어린 소년의 법적 대리인이 됐다. 공산당을 때려잡던 무시무시한 형사들은 학교에 들이닥쳐 불량 학생들을 모조리 잡아갔고, 제국의 검사들은 변호사와 힘을 합해 자비없는 최고 형량의 징역을 구형했다.

    그리고 정의가 실현됐다.

    소년을 괴롭히던 모든 나쁜 학생들이 감옥에 가버렸고, 황제의 도움으로 이혼한 부모님이 화해를 하셨다. 괴롭힘을 당하느라 공부를 하지 못한 진혁이에게 과외선생이 붙어 최고급의 교육 지원이 이루어졌고, 학자금을 받아가며 하고싶은 공부를 원없이 했다. 황제의 코치아래 사관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소심했던 성격을 고치고, 이 참에 미국 육사로 유학까지 가서 국가 최고의 엘리트가 되었다.

    공주님의 물음에 남자가 답한 적이 있었다.

    <공주님이 독재자라 비난하시는 분. 그분이 독재자랍시고 하신게 이 사회에 만연한 학교폭력의 완전한 근절, 교육과 연계된 부정부패 일소.>

    <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정치적인 목적이든 진심어린 목적이든, 위대한 영웅이 완전한 권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 있는데.>

    공주님이 파시스트라 놀려도 상관 없었다. 내 정치성향이 극우중의 극우를 달려 수구꼴통이 되버린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 있다. 폐하께선 전제군주제 개헌을 포기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그분의 영원한 통치를 소망한다.

    신에게 민주주의는 필요 없으니까.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 폐하께서 그것을 증명하셨다. 소년에게 황제란 살아 숨쉬는 신이었으니까. 그분은 이 나라의 학교 폭력을 뿌리째 뽑아버린 학생들의 영웅이니까. 지금도 이 나라는 학교폭력을 중죄로 다스리며, 황실의 후원아래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가 제공된다. 학교에는 전담 경찰들이 순찰을 돌면서 학생들을 보호하니, 황제를 위해 싸우는 지금의 혈투는 성전이나 다름없었다.

    "죽어 이 새끼야!"

    머리 뒤에서 쇠파이프가 날아온다. 육감으로 예측하고 고개숙여 피해낸 김진혁 중령은 돌려차기로 녀석을 날려버린다. 불타는 결의가 담긴 검은 구둣발이 건달의 얼굴에 꽂혀 일격에 기절을 달성했다.

    20대 1로 싸우는 혈투 속에 15번째로 날아오는 쇠파이프는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을 위해 싸우겠다는 성전의 의지는 금강불괴와 같아 등짝에 쇠파이프가 날아와도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20명이 15명이 되고, 15명이 7명이 되며, 7명이 0명이 되어가는 27분간의 혈투 끝에 옥상에서 멀쩡히 버티고 있는 사람은 남자 김진혁 뿐이었다. 하지만 그 때 누군가 박수를 치면서 걸어나왔다.

    "역시 김진혁 중령님. 황태녀 전하를 지키는 수행원은 싸움 실력도 남다르네요."

    "누구냐!"

    어둠속에 잠긴 학교 옥상의 출입구에서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황실에 불만을 품어왔고, CIA와 내통을 하며 황실의 정보를 빼돌리고 있었으며, 십수 년 전의 양아치들을 고용해 김진혁 중령을 납치하려고 했던 높으신 분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박진희.

    배신자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