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Ep12. 배신자의 밤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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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이네 집은 강남에 있다.
60년대부터 개발이 이루어진 곳으로 학창시절 자살 미수 사건이 있었을 때 황제의 위임장에 싸인을 함으로서 받은 일종의 선물이었다.
도심 속 넓은 한강의 경치가 잘 보이는 아파트 501호는 집이 좋다는 것도 1등급이지만 특유의 경치 덕분에 모든 부자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신도시였다. 거기에 교육환경도 매우 좋으니 돈있는 부자들이 너도나도 이곳으로 이사와 땅값이 날이면 날마다 치솟고 있었고, 아버지는 폐하께서 주선해주신 안정적인 공기업 일자리에서 일하며 먹고사는데도 부족함이 없었다.
바로 이 선물. 강남의 아파트가 어떻게 자신의 손으로 들어왔는지 30살이 된 김진혁은 소년 때와 다르게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리무진에서 내린 김진혁은 5층 높이의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걸 받은덕에 폐하의 치세가 시작됐지.'
때는 1962년이었다. 정말 말도안되는 나비효과였다. 소년 김진혁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간 황실의 직속 변호사는 학교의 모든것을 뒤져 증거와 증인을 수집했다. 그것을 들고 법정으로 가니 진혁을 괴롭히던 모든 놈들에게 자비없는 최고 형량의 징역이 선고됐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재판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선거가 있던 것이다.
1960년 친위쿠데타의 공식적인 명분은 '혁명'이었는데 부패공직자와 친일파들을 뿌리뽑아낸다는 명분 아래 3년동안의 군사정권이 있었다. 당시 국회를 해산하며 약속했던 건 ‘3년뒤 선거로 평가받겠다’ 였으니 바로 1963년이다.
권력을 빼앗겼던 자유당은 혁명을 부정하며 선거를 통해 복수를 결심했지만, 동시기 이어진 재판에 자유당 국회의원 아들이 껴있어 선거에 영향을 주고 만다.
재판 과정에선 아버지가 아들의 성적을 조작하기 위해 교장과 선생을 매수해온 일이 보도되었고, 그런 아들내미는 죄없는 애를 괴롭혀가며 불량서클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걸 만회하려고 언론을 매수하려다 또 다시 들켜버려 역풍을 당하니, 내 아들을 감옥에 보내지 말아달라며 울고불고 질질짜는 문제 의원의 태도 조차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어 자유당 전체의 문제로 싸잡아 비난이 이어졌다.
노골적인 선거개입.
하지만 황제는 자기 딸 때문에 죽을뻔한 소년을 위해 재판을 하고 있었을 뿐. 그 과정에서 유감스럽게도 증거가 많이 나왔고, 보도가 많이 됐을 뿐이며, 황제가 많이 나왔을 뿐이다.
재판을 빙자해 이연이 선거에 개입한 결과 대한제국의 하원은 63총선에서 친위정당인 한국독립당의 대승으로 끝나 현재에 이른다. 영웅의 후광에 눈이 멀어버린 국민들은 67년 선거에서도 71년 선거에서도 습관적으로 1번을 찍었다.
이승만 이래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자유당의 천하는 그렇게 막을내렸다. 사분오열된 야당 사이로 신민당이 생겨나 민주주의자들을 하나로 규합하니 그것이 바로 지금이다.
이 모든 나비효과의 시작이 소년 김진혁이 싸인한 위임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 대한 보상이 바로 한강뷰가 끝내주는 강남의 아파트.
'어쨌건 벌 받을 놈들이 받은 것 뿐이니까.'
그렇게 주차장에서부터 한참을 아파트만 올려다보며 생각하던 진혁이에게 은서가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
"아뇨, 그냥··· 옛날 생각이 좀 나서요."
"옛날 생각?"
"뭐랄까··· 오늘 저녁 뭐 먹을지 정하는 것보다 의미 없는 생각이랄까···."
이상한 비유에 은서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집에서 먹는거 아니었어? 외식하게?"
"그래서 하는 생각이었어요. 어차피 어머니가 차려주실건데 내가 그걸 생각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그런 비유죠."
"대체 뭔 생각을 했길래···."
여전히 갸웃하는 은서의 손을 잡고서 진혁이는 앞길을 재촉했다. 남자친구가 손잡아주니 마냥 좋단다. 얼굴을 슬그머니 붉히며 집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패션은 진혁이로 말할 것 같으면 잘빠진 정장. 은서는 긴 치마에 꽃무늬 블라우스였다.
진혁이네 부모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황제 폐하를 만난 전과 후로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 그 이전엔 알콜중독자와 집나간 마누라 정도의 분위기였고, 그 이후엔 장성한 아들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는 금슬 좋은 중년 부부의 분위기였다.
이미 여러차례 데이트를 하면서 알만한 거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은서였지만 진혁이네 부모님 만큼은 아는 게 없었는데, 이 녀석이 과거 이야기는 도통 안해줬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가는 내내 은서는 계속해서 꼬치꼬치 물어봤다.
"아버님은 어떤 분이셔?"
"좋은 분이십니다."
"어머님은?"
"역시 좋은 분이시죠."
이런 식으로만 말하니 은서의 얼굴에 핏줄이 섰다.
"야 이 곶··· 아니, 우리 서방님? 시부모님 뵈어야 하는데 점수 좀 딸려면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린겁니다. 좋은분이라는 거 외엔 딱히 말씀드릴게 생각이 안나는데요?"
"너 진짜 이럴래?"
"아니, 정말 그거 외엔 없는데···."
하지만 이내 그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은서가 501호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을 때 '좋은 분이다' 외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하~!!!!"
시아버지 되실 분이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절을 올렸다. 절받는 사람은 며느리가 될 이은서. 대한제국의 황태녀였다.
"어...어어어어???"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시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아, 아버님?"
"아이구 아버님이라뇨! 고귀하신 황태녀 전하신데 하대하지 않으시구요? 어서 이리 안으로···."
마음속에 공허한 결론이 내려졌다.
'하하, 정말 좋은분이구나···.'
군신관계에서 신하란 좋은 사람이 아니면 죽음뿐이다. 시댁은 신하였고 자신은 군주였다. 조선시대도 이러진 않았을테다.
'김진혁··· 고귀하다 고귀하다 입버릇처럼 타령하더니 이게 다 아버님께 배운거였구나?'
그나마 다행인건 시어머니까지 이러진 않으신다는 거였다. 뒤에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마는 것이 '이 양반 또 왜 이러나?' 싶은 표정이셨다.
그렇게 들어온 진혁이네 부모님의 집. 방은 3개고 옷갈아입는 드레스룸이 1개, 화장실이 2개. 3인 가족이 살기엔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은 집인데 이곳이 강남인 걸 생각하면 덕수궁까지 출퇴근은 어렵지 않다.
'여기 진혁이 방도 있겠네?'
분명 여기서 먹고자고 하면서 출퇴근 했을 게 분명하다. 지금은 평양에서 근무를 보고 있으니 무리겠지만, 과거 덕수궁 생활할 때는 여기서 출퇴근 했을것.
'흐흐흐··· 여기 네 옛날 사진도 있다 이거지?'
그렇게 진혁이 방부터 들어가려고 했지만 앞을 막아서는 신랑께선 이렇게 경고하듯 말했다.
“제 방은 안됩니다.”
“어허, 마누라가 좀 보자는데.”
“부부간에도 지켜야 할 비밀이란 게 있는겁니다.”
“내가 황태녀인데?”
“아까 전엔 전하라 부르면 질색을 하시더니. 좋을대로 취사 선택하시는군요.”
“......”
아니나 다를까 시아버지는 여전히 며느리를 45도 굽혀진 허리로 내시라도 된 마냥 예를 올리고 있었다. 허리를 굽히려는 시아버지와 허리를 피게하려는 며느리간에 벌어지는 사투가 밥먹을 때까지 이어지니, 며느리 노릇을 해보려는 은서는 긴 치마를 가볍게 잡으며 꽃이라도 된 마냥 절을 올리며 말했다.
"소녀, 이은서라고 하옵니다. 이렇게 오늘 제 아버님과 어머님을 뵈오니 몸둘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아, 아니··· 아버님이 맞긴 한데···."
당황하는 시아버지를 향해 며느리는 더욱 더 공세의 강도를 끌어올렸다.
"소녀 이렇게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어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서방님을 맞이하오니, 이제 저희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지 않겠사옵니까? 부디 저를 황태녀가 아닌 며느리로써 대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나이다···.”
"이, 이러지 마시고···."
하지만 시아버지는 여전히 며느리를 상전보듯 했다. 진혁이랑 데이트 할 때도 그랬지만 황태녀라는 직함이 심리적인 장벽으로 버티고 서있는 듯 했다. 진혁이도 모자라 시아버지조차 자신을 임금으로 떠받드니 은서는 참다 못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로 했다.
"제 나이 열다섯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숙연해졌다. 은서에겐 어머니, 모두에겐 황후마마가 되시는 분. 모두가 알고 있는 그분의 마지막.
"교통사고셨지요. 하필 그 날이 저희 아버지께는 혁명을 일으킨 날이셨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엄청나게 말이 안되는 우연이었다. 비내리는 한강다리에서 황후가 몰던 차가 교통사고를 내고, 하필이면 황제가 거길 지나가고. 그렇게 우연처럼 맞아 떨어진 부부간의 마지막 시간이 아무런 뒷소문 없이 끝났을리 없다.
"제 나이 10대시절 내내 어머니가 실은 암살을 당한거라더라. 암살을 한 사람이 저희 아버님이라더라. 숙덕이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더랬지요."
그러자 진혁이가 걱정하는 모습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하,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난···."
“어린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자랐을까요?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아버지일까? 내 아빠가 내 엄마를 죽인걸까? 아닌걸 알면서도 그런 소문들이 귀에 들어오더랍니다.”
황실에서 그 소문을 잠재우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황제의 후광으로도 지우기 어려울 만큼 황후는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발생한 소문들은 학교라는 공간까지 들어와 교실에 암암리에 퍼지며 어린 은서의 귀에도 들어가니, 재잘대는 여학생들의 뒷소문이 심기를 건드리기 일쑤였다.
<닥치지 못해!>
<왜 그러니? 우리가 떠들든 말든 뭔 상관이야?>
<아니라잖아! 시간대를 따져봐도 말이 안되고, 폐하는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었고 황후마마는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었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뻔한 음모론을 믿어선 바보같이···.>
그렇게 주절대면 더더욱 역효과가 나서 은서를 고립시켰다. 은서가 공주라는 권위를 내세워서 입이라도 틀어막았다면 괜찮았겠지만, 황실의 입장은 은서의 신분 공개를 금기로 여기고 있었다.
<니가 무슨 공주라도 돼? 남이사 뭐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야 당연히··· 음모론은 안되는거잖아···.>
<여기 무슨 지켜보는 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이야기하는데 뭔 상관이람? 니가 공주라면 조용히 해줄게. 근데 아니라며?>
이야기가 이렇게 전개되면 은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성질만 내다가 대화가 뚝 끊겨 뒤돌아 서고 마는게 학창시절의 이은서. 이제는 황태녀가 되어 모두에게 떳떳히 자신을 밝힐 수 있는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믿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아버지가 흘리시는 눈물을 봤으니까요. 하지만 그 뒤로 정사를 돌보시느라 얼굴 한번 보이질 않으시니 어린 소녀가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은서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진혁이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저에겐 이렇게 멋진 친구가 있습니다. 힘들때도 슬플때도 언제나 저만 생각하고 지켜주던 소중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전 황태녀와 신하가 아닌 부부로서 인생의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저를 상전이 아닌 가족으로 대해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의 벽이 차츰 무너져갔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지는 밥상을 똑부러지게 먹어 치우며 덕수궁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는 거 같다는 아부를 곁들이는 이은서는 설거지까지 자처하며 못해본 딸노릇을 가감없이 해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댁과의 사이는 가족이 되었다.
"아이구 참, 내가 한다니까···."
시어머니의 말에 며느리가 답했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래도 손님인데···."
"손님이기 전에 딸인걸요? 그리고 황태녀에요~ 이럴 때라도 손에 물 뭍혀봐야지 아니면 기회도 없잖아요~ 헤헤···."
하지만 은서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시아버지가 자신을 임금 떠받들듯이 하던 이유. 베란다에 앉아 하염없이 흘러가는 달밤의 한강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진혁이에게 말했다.
"이만하면 됐냐?"
"예, 아버지."
"하라고 해서 하긴 했다만 그래도 며느리다. 그리고 네 아내이기도 하지. 그런데 상전으로 모시라니 아니나 다를까 부담스러워 하시잖냐?"
아버지에게 그런 태도를 강요했던 아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가족이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폐하의 은혜 덕분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낮은 자세로 섬기는 것이 신하로서의 도리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다만···."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하가 제 아내가 되고 아버지의 며느리가 되시겠지만, 그래도 엄연히 이 나라의 황제가 되실 몸이니 하나부터 열까지 신중을 기해야 할겁니다."
"우린 그렇게 하마. 하지만 넌 남편이 될 사람이야.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야지."
"제가 말씀드리는 건 권력에 대한 겁니다. 아버지."
"권력?"
"옛 말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했습니다. 그게 왜 그런줄 아십니까?"
"진혁아."
“암탉이 우는 나라는 모두 망했습니다. 왕이 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왕비가 정치를 하는 나라. 청나라엔 서태후가 있었고 조선에는 명성황후가 있었습니다. 모두 망했죠. 능력도 없으면서 나라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다 기생충이 모이고 눈이 멀어버려서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겁니다. 그래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는겁니다."
“하지만 진혁아···.”
“그 암탉이 바로 접니다. 제가 바로 이 나라 대한제국의 황후가 되는 겁니다. 황후는 정치를 하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말했다.
“하지만 진혁아. 군주한테도 결국 가족이 필요한거야.”
“제가 전하와 결혼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겁니다. 저를 통해 전하에 줄을 대기 위해서죠. 나 좀 추천해달라. 내 사업 추진하게 힘을 써달라. 금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올 거란 말입니다.”
그 남자의 12단계 걱정의 종착지엔 그런 미래가 있었다. 은서와 친하게 지내며 모든 심리의 장벽을 무너뜨린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남편에게 의지하면서 위로를 얻는 그녀에게 인자한 미소로 말한다.
<은서야, 내가 좋은 인재를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
안 그래도 인재난을 겪고 있던 은서는 남편의 추천에 아무 생각없이 그 사람을 기용한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는 진혁이의 삼촌이다. 그 뒤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금보따리를 들고 진혁이나 삼촌, 부모님 등을 찾아와 청탁을 하기 시작하니 은서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선 이런 정책을 펼치는 게 좋아.>
<내가 그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좋은 땅을 알고 있어.>
<내가 알기론 A사의 전투기보다 B사의 전투기가 좋은걸로 알고 있는데 어때?>
어떤 것이 진심이 담긴 조언이고 어떤 것이 청탁일까? 어쩌면 모든 것이 청탁일 수 있다. 하지만 김진혁은 참모가 아니다. 공직자도 아니다. 황제와 한 이불을 덮고 자며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족이 정치적인 조언을 하는 게 정당한가?
폐하는 말씀하셨다.
<내 딸은 황제가 될 몸이야. 하지만 권력엔 기생충이 붙기 마련이거든. 한 몫 챙겨보려는 놈들이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숙주를 괴사시킬 수도 있어.>
그 때 폐하의 시선은 분명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지켜달라는 부탁 안에 숨어있는 진정한 속뜻을 진혁이는 알 수 있었다.
<내 딸은 황제가 될 몸이야. 옆에 붙어서 기생충처럼 챙겨먹을 생각을 했다간, 네 가족들이 무사하지 못할거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조선 초기에 있었다.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문자까지 창제한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이 전략적으로 육성한 성군이었다. 그에게 강력한 권력을 물려주고자 했던 태종은 아들의 장인어른부터 처남까지 죄인으로 몰아 죽여 정치적 장애물이 될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해버렸다.
그런데 지금의 황제 폐하가 롤모델로 삼은 인물이 바로 그 태종이다. 자신의 딸을 세종처럼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은 분이다. 그렇다면 유력한 숙청 후보는 누가 되는가?
“아버지, 지금의 황제 폐하는 전하를 위해서 동생까지 숙청하신 분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전우까지 미국으로 보내버렸는데, 다음 숙청이 아버지를 향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분명 반역이라고 들었는데···.”
“폐하께서 숙청하신겁니다. 저희가 여기서 까딱 잘못했다간 아버지가 경친왕 꼴이 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걱정은 말거라. 난 폐하의 은혜를 입은 뒤로 그림자처럼 살았다. 쥐죽은듯 정해진 일만 하며 가족을 위해 살았어. 네가 부마가 된다 해도 달라지지 않을거다.”
"그건 모르는겁니다."
"난 너를 걱정하는거야. 우린 그림자처럼 살아도 여한이 없지만 넌 스스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았어. 유학까지 다녀온 녀석이 날개 한번 펼치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살기만 할거냐?"
“저는 암탉입니다. 제가 울면 무언가는 망하겠죠. 국가가 망하거나 우리 집이 망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