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11화 (111/131)

〈 111화 〉 Ep12. 배신자의 밤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1975년은 세계 여성의 해였다.

유엔에서 여성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지정하니 딱 이 해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역사적인 첫 해를 장식할 여성들의 리더는 누가될 것인가?

타임지가 주목한 후보는 이은서였다.

자신들의 5월 첫째주 미국판 표지에 대한제국의 황태녀를 그려넣으니, 그 용모는 검은베레를 쓰고 있는 별 다섯개의 여장부. 휘날리는 태극기 앞에 선 조선반도의 공주님이었다.

타임지에서 조선 사람을 표지에 넣은건 처음이 아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혜조대제(의친왕 이강)가 한 번 올라갔고, 그 다음해에 이연이 또 한번 올라갔다. 이 시기 미국사회가 온통 한국전쟁에 주목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 황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녀가 3연속으로 타임지를 장식하는 기록을 세운다.

타임지를 시작으로 미국사회에서 이은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사이공에서 보여준 철수작전이 기적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 입장에서 이은서는 신기한 존재였다.

여자인데 장군이었으니까.

그것도 20~30만에 달하는 병력을 거느린 육군 원수다. 별이 다섯개인 General of the Army. 미국에서 5성장군은 전쟁기간 중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영웅들만이 달 수 있는 계급이다. 육군만 따져도 맥아더, 아이젠하워, 조지 C. 마셜, 오마 브래들리까지 쟁쟁한 2차대전의 영웅들인데 지구 반대편에선 왠 젊은 여자가 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황태녀.

하지만 결코 상징적인 계급이 아니었다. 1년 내내 평양에 있는 사령부로 출근해 실질적인 지휘 업무를 보았고, 월남이 무너진다는 소식에 자신의 군대를 끌고가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루니 과연 싹이 남다른 인재였다.

타임지가 정리한 이은서의 타이틀은 다음과 같았다. 대한제국 황태녀, 수십만 대군을 거느린 육군 원수, 베트남전 참전용사, 위화도 분쟁의 해결사, 사이공 철수 작전의 영웅, 미국 은성무공훈장 수훈자인 미합중국 해병대 대위 이연의 딸.

과연 눈이 멀어버리기에 충분한 타이틀이다. 하지만 타임지는 냉철하게 숨은 속셈도 간파해냈다. 대한제국 황제 이연이 3대 세습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공을 몰아주고 있다는 것.

베트남전에 딸을 보낸 것도 아버지였고, 수십만 대군을 20대 소녀에게 맡긴 것도 아버지였으며, 그 덕에 위화도 분쟁과 사이공 철수 작전을 지휘할 동력을 얻었다. 하지만 들어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건 이은서의 능력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비교했을 때 여왕은 실권이 없는 상징적 존재지만 은서는 다르다.

두 사람의 차이가 어느정도인지 타임지는 극단적인 예시를 들었는데, 은서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20~30만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해 아버지를 상대로 2차한국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런 권력을 사용하여 이미 국경분쟁을 해결했고, 사이공의 국민까지 구출하여 명예직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리하여 1975년 기준 세계 모든 여성을 통틀어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여자가 된 이은서에게 타임지가 헌정한 별명.

The Iron Princess

철의 공주

그런 은서가 마침내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녀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파란옷을 입은 유엔의 관계자들이었다.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달려온 그들은 적십자사 직원들과 함께 부산항에 텐트를 쳐놓고 구호캠프를 만들고 있었다.

그 뒤로 은서를 맞이한 건 타임지를 보고 달려온 외신기자들이었다. 얼떨결에 여성운동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녀를 취재하기 위해 달려온 백인 기자들이 많았다.

“구출작전의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환한 미소를 짓는 은서는 익숙한 영어실력으로 답했다.

"우리나라에도 항공모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은서는 모르고 있었다. 속도가 9노트(시속 16km)밖에 안되는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다 방금 내린 이 여자는 타임지에서 자길 두고 무슨 소리들을 했는지 알 턱이 없었다.

“Carrier?”

"Yes! Aircraft Carrier!"

은서는 해맑은 표정으로 부연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진짜 항공모함이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나 몰라. 헬기 띄워서 구조했으면 쉽게 끝날걸 어휴··· 9노트 밖에 안되는 전차상륙함 끌고 사이공에 있는 강까지 들어갔다 나오는데 얼마나 진을 뺐는지···.”

그렇게 말하던 은서는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다는 걸 알았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튼 제가 황위에 오르면 항공모함부터 건조해야지 그런 생각을 해버렸달까요? 헤헤···."

은서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부산항에 정박한 13척의 수송함에선 긴 항해에 지친 사람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돌아왔어! 내가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어! 대한제국 만세!>

이 날 많은 이들이 영웅으로 불렸다.

은서의 인터뷰 처럼 9노트 밖에 안되는 거대 수송함을 목숨걸고 조종한 해군 장병들이 영웅이 됐고, 마지막 한 명의 피난민까지 구출하기 위해 잔류한 이대현 공사가 영웅이 됐다. 장갑차를 타고 적진을 뚫고가 사람들을 모아낸 친위대와 김훈 중령이 영웅이 됐고, 사이공을 누비며 국민들을 구조한 대사관 직원들과 해병대 장병들도 영웅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자 한 명이 주목을 받아 마지막 국민 2명을 찾아낸 공로로 영웅으로 인정받으니, 언론의 자유를 꿈꾸는 신민당에서도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 모두가 황제의 초청을 받아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니, 훈장을 받아야할 이들이 너무 많아서 여의도 광장을 빌려 행사를 진행했다. 참석 인원이 무려 2천여 명을 넘어간 행사였다. 그들 모두에게 훈장을 일일이 수여하는 것도 어려운 고로 장병들은 처음부터 훈장을 달고 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그들의 대표로 이은서가 복귀 신고식을 올렸다.

"신고합니다! 서북방위사령관 이은서 외 2,182명은 1975년 5월 17일부로 교민 전원을 구출하여 복귀하였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그리곤 뒤를 돌아 모두에게 명령했다.

“전체 차렷! 황제 폐하께 경례!”

<충성!>

그리곤 뒤이어 외치는 이은서의 우렁찬 경례가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것은 군인 이은서의 절도있는 외침이었다.

“충성!”

그 뒤로 은서는 대표자들과 함께 단상위로 올라가 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딸의 가슴에 예쁜 리본의 훈장을 달아주는 이연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고생많았다 은서야. 정말 자랑스럽구나!"

하지만 은서는 여전히 군인 마인드였다. 귀여운 딸내미로 돌아오기엔 자신을 찍고 있는 방송사 카메라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눈치가 보였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딸내미의 모습에 이연이 폭소를 터트렸다.

“이제 와서 공손한 척은! 얼굴에 좋아죽는 표정이 다 보인다 이 녀석아.”

"히히···."

그렇게 웃음을 숨기지 못하던 은서는 훈장을 하나 더 받았다. 미국에서도 훈장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가 수여하는 훈장으로 주한미국대사 슈나이더가 대신 전달했다. 붉은 리본이 달린 훈장은 남중국해에서 7함대와 백악관 사이에 생긴 작전상 실수를 발견해 이를 제보함으로서 미국인들의 철수를 도와준 공로를 높이 사 수여된 것이었다. 그래서 훈장의 이름도 공로훈장이다.

아버지가 받은 은성무공훈장에 비하면 급수가 낮지만 어디 명예에 급수를 따지랴? 그야말로 훈장이 쏟아지는 포상의 날이었다. 은서는 여기까지 와서야 슈나이더 미국 대사가 건네 준 타임지를 보고 폭소를 터트렸다.

'그놈의 철혈공주!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다시 돌아와버렸어!'

한국 나이로 30세. 만 나이로 28세인 은서의 제복엔 중년의 장군들 마냥 약장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서가 갖고 싶었던 진짜 선물은 따로 있었다. 이제부터 진혁이랑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검은 베레모의 예비 신부 이은서는 신랑 김진혁의 손을 잡고 리무진 향해 달려나갔다.

“가자 진혁아! 우린 해야할 일이 많잖아!”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았다. 진혁이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고, 거기서 나도 한번 ‘아버님! 아드님을 제게 주십쇼!’ 말해보고 싶었으며, 결혼 반지도 고르고 싶었고, 웨딩드레스도 고르고 싶었다. 웨딩드레스 하니 생각난건데 결혼식은 어떤 식으로 해야할까?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서양식이 좋을까? 화려한 비단을 걸친 동양식이 좋을까? 집은 직장이 있는 평양에서 구해야 할텐데 살림살이는?

하지만 이 모든걸 따지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있었다. 은서는 이화를 찾아가 17분간 대화를 나눈 뒤 꽃가게에 들렸다. 흑장미를 사기 위해서다.

***

은서가 31송이의 흑장미를 샀을 땐 벌써 저녁이었다.

덕수궁에서 비서실장님께 여쭤보니 실미도 요원 31명이 모두 무사히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서는 사복차림으로 포니 승용차를 탄 채 일반인으로 위장하여 동대문에 가고 있었다.

미소가 활짝 핀 은서는 흑장미의 꽃향기를 맡으며 운전중인 진혁이한테 말했다.

“오늘 진짜 정신없었다 그치?”

“그러게요. 피곤하셨을텐데 내일 가시지 그러셨습니까?”

“꼭 오늘 하고 싶었어. 가족분들이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실테니까. 그분들에겐 일분일초가 중요하잖아.”

"하지만 이대현 공사님이 말씀하셨듯 흑장미를 주는 역할은 따로 있었을겁니다. 직접 주실 것 까진 없었죠."

그건 그랬다. 이대현 공사로부터 전해들은 강 소령의 말은 '내 아내에게 가서 흑장미를 받았는지 물어보라'는 것이었지만 정작 은서는 직접 흑장미를 들었다.

“그분들의 생존여부는 비서실장님께 여쭤봐도 알 수 있으니까 흑장미는 확인할 필요가 없었어. 그 대신 내가 직접 주는거야. 난 그들의 책임자였으니까. 직접 알려주고 싶었으니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은서가 훈장을 2개나 받는 동안 실미도 부대원들은 훈장을 받지 못했다. 그 옆엔 제국익문사의 흑색요원 1명이 더 있었다는데 그 역시 훈장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작전에 파견됐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안됐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이 북베트남에 간첩을 파견했다는 사실도 모두에게 비밀이었다.

<흑색요원들은 존재 자체가 비밀이에요. 작전에 성공해도 영웅이 될 수 없고, 포로로 잡혀도 구조받을 수 없으며,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면 미리 지급받은 청산가리로 알아서 죽는게 이 바닥 요원들의 규칙이죠.>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거죠?>

<그렇게라도 안하면 성공할 수 없는 비밀작전이 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그래도 목숨걸고 활약한거잖아요. 조국을 위해 헌신했는데 영웅으로 대접할 방법이 아예 없는건가요?>

<그들이 영웅이 되면 존재가 밝혀질 거에요. 신분이 노출된 요원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죠. 예시를 들어보죠. 황태녀 전하가 실미도 요원이었다면 김일성을 암살할 수 있었을까요? 못했을거에요. 너무 유명해서 얼굴만 봐도 누군지 알아채거든요. 그렇게 잡히면 어떤 최후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건 분명해보였다. 그것이 은서에겐 너무도 가슴 아프고 미안해서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실미도 요원들 전원 생존이라 하셨죠?>

<예, 태국을 거쳐서 내일 모레쯤 돌아오게 될거에요.>

<그럼 제가 직접 전해줄께요. 흑장미.>

제국익문사의 블랙요원들 중에서도 실미도 부대는 처우가 특히 심하다. 부대의 존재 자체가 비밀이어야 하는데다, 유달리 깐깐한 제국익문사가 그들의 신상정보를 위조해 서류상으로 죽은이로 만들었다. 그래놓고 가족들과의 면회까지 금지시키는 것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직설적으로 말해주질 않는데, 그들이 살아있으면 흑장미를 주고 전사했으면 붉은장미를 주는 것이 규칙이다. 아직까지 붉은장미가 배달된 적은 없고 은서도 지금 31송이의 흑장미를 들고 강 소령님 집을 찾아나서고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 496-7번지! 그곳에 제 아내가 살고 있습니다. 거기서 여쭤보라 하십쇼!>

강 소령의 말을 따라 도착한 496-7번지를 찾아가면 아파트가 나온다. 복도식으로 지어진 6층짜리 아파트다. 이화가 알려주길 강 소령의 아내분이 살고 계시는 곳은 601호인데 문 앞에 우유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이곳에 흑장미를 넣어두는 게 은서가 대신 받은 임무였다.

그렇게 30분 뒤. 우유를 꺼내러 나온 미망인이 흑장미를 발견했다. 그것이 암시하는 검은 꽃말을 이해한 여인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것조차도 누구에게 들킬라 꾹꾹 참아가며 소리없이 우는 모습이 외롭고 쓸쓸해보였다.

"제가, 잊지 않을게요. 반드시 꼭 언젠가는···."

은서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며 남몰래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복도를 걸어나갔다. 황태녀 조차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강 소령은 죽은사람이어야 했고 유가족이 황태녀를 볼 일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요하는 제국익문사의 요구에 은서가 순순히 따랐던 건 비서실장님이 말한 마지막 계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만 더 물을게요. 비서실장님. 강 소령님이 실미도에 지원하신 이유. 뭐 때문이었죠?>

덕수궁에서 그렇게 물었을 때 이화는 낮은 목소리로 동정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아드님이 희귀병 환자였어요. 치료를 받으려면 미국까지 가야했는데 치료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죠.>

<치료는··· 성공했나요?>

<얼마전에 계약을 새로 맺었어요. 대학교 졸업 때까지 학자금을 지원해드리기로 했죠. 공부를 무척 잘하는 아이에요. 유학도 가고 싶다는데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할 훌륭한 어른이 되겠죠.>

그것 또한 규칙이랬다. 대원들은 모두 자원자들로 구성되는데 저마다 사연있는 이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제국익문사와 계약을 맺는다. 강 소령의 사연은 아버지의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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