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09화 (109/131)
  • 〈 109화 〉 Ep11. 사이공 철수 작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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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t‎‎.m‎‎e/No‍‍v‎‎‍el‍‎‎Po‎‎rt‍al

    월남이 멸망했다.

    세계지도에 베트남 공화국이란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1975년의 4월 30일의 맑은 햇살아래 부패한 나라의 대통령궁에선 혁명가들의 깃발이 휘날렸다. 남베트남민족전선, 자유진영에겐 베트콩이란 멸칭으로 불리던 그 세력은 이제 남베트남 공화국 임시혁명정부의 구성원으로 통일의 주역이 된다.

    붉은군대는 탱크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었다. 사이공에 남아있는 지지자들이 별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나와 환영하니 사이공은 더 이상 사이공이 아니게 되었다. 그곳은 이제 베트남의 영원한 혁명가, 독립운동가 출신의 민족 영웅인 호치민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베트남은 처음에 2개의 공산국가가 남북에 공존하는 형태를 취했는데, 남베트남에 발생한 혼란과 전후 수습 과정을 거쳐 1976년에 단일국가를 수립한다. 이렇게 탄생한 공산 베트남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라고 했다.

    그들은 다행히도 조선반도의 1950년대와 다른 길을 갔다. 반대파를 탄압하자니 남은 증거가 별로 없어 색출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우리의 통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베트남을 떠나라'는 입장으로 전환해 반대파의 탈출을 부추기는 쪽으로 노선을 전향한다.

    제국익문사의 작전이 주효한 것으로 보이지만, 베트남이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미적지근하게 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국 옆에서 킬링필드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검붉은 혁명가들의 타락한 공산혁명이 1970년대 내내 20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남자부터 여자, 노인은 물론이거니와 갓난애기까지 죽여버리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극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 조차 두렵게 만들었다.

    어설픈 공산주의자들의 어설픈 혁명 속에 자국 사람까지 휘말리니 베트남은 이제 공산주의와 공산주의간의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그것이 끝나면 중국과의 국경분쟁도 해결해야 했다. 협상이 잘못되면 이것도 전쟁이 될 수 있다.

    공산주의자가 공산주의자와 싸우고 승리한 공산주의자가 또 다른 공산주의자와 전쟁을 각오해야 하는 전쟁의 광풍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휘몰아쳤다. 비극의 시간 속에서 캄보디아 학살은 소문으로만 전해지다가 1979년이 되어 증거가 나온다. 악마와 싸워 이긴 베트남이 진실을 밝혔고 미국의 기자들과 영화계가 그것을 알렸다.

    하지만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

    1975년 4월 30일.

    은서는 수송함을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루한 항해 속에 월남의 패망을 현실로 받아들인 황태녀는 멍하니 난간에 서서 망망대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

    진희 언니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김훈 중령과 친위대원의 감시 속에 남베트남의 경찰 한명이 찾아와 은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분은···?”

    “전하를 꼭 찾아뵈어야겠다며 난동을 피우셔서요.”

    “나를?”

    그러자 남베트남의 경찰이 말했다.

    “저희 어머니를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은서의 표정이 굳어져버렸다. 월남전 시절을 말하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로 보이는 베트남 여성을 무수히 만나보긴 했지만 남베트남의 경찰이 어머니의 이름을 대며 자신을 찾아온다면 필시 그분일거라고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아들이라고 있는 두 녀석이 서로 싸우다 집을 나갔지. 한 명은 경찰이었고 한 명은 학생이었는디··· 둘 다 나가서 무얼 하고 있는지 5년 째 돌아오지를 않어.>

    자신이 죽였던 베트남의 어린 소년. 그 소년의 어머니. 어머니의 장남인 바로 그 경찰일거라고. 그래서 은서는 두려운 표정을 지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고쳐지었다. 두려워 하기에 앞서 인간이라면 꼭 물어봐야할, 반드시 알고 싶었던 정보가 있었다. 오만가지 걱정과 생각들이 유창한 베트남어에 담겨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할머니는 잘 계세요?! 혹시 배를 타고 여기에 오셨나요!? 몸 편찮으신덴 없으시구요? 제가 그분을 19번 도로에서 만났으니까 안케 지역··· 사이공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인데! 모시고 싶어도 14만 대군을 뚫고갈 방법이 도저히 없어서 내가 진짜 한참을 걱정했는데!”

    오만상을 지으며 걱정하는 은서에게 남베트남 경찰이 말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네?”

    털썩 주저앉으려던 은서를 진혁이가 잡아주었다. 망연자실하는 표정을 짓는 황태녀 모습을 보곤 남베트남의 경찰이 걱정하듯 말했다.

    “걱정하시는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평소에도 편찮으셨거든요. 1년 전 쯤에 돌아가셨으니까 마음쓰실 필요 없습니다. 일어나세요.”

    “아···.”

    고개떨군 은서의 어깨가 축 쳐지고 말았다. 주저했고, 하지 못했고, 하지 않기로 마음 먹어버렸던 잘못된 판단아래 하지 않았던 사과는 결국 영영 기회를 잃어버렸다.

    “죄송해요···.”

    “병으로 돌아가신건데 사과는요.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절 이렇게 구해주셨으니 어머님도 크게 기뻐하실겁니다. 그러니 부디···.”

    “아저씨의 동생. 제가 죽인거에요.”

    그 말에 경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안해요. 할머니께 사과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그 때의 나도 무서웠으니까.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 같았으니까.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사실 진짜 변명이긴 한데···.”

    “그 녀석 일은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은서가 당황하듯 물었다.

    “신경쓸 필요 없다뇨?”

    “녀석은 내다버린 자식이니까요.”

    “내다버리다니···.”

    그 경찰. 이제는 난민이 되어버린 남베트남의 사내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은서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기껏 벌어서 학교 보내놨더니 불순한 사상만 배워서는 혁명이니 뭐니 떠들던 놈입니다. 집 나간 그 녀석이랑 연락 끊고 산지도 한참이니까 그 자식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십시오.”

    “그래도 아저씨 동생이잖아요···.”

    "빨갱이를 동생으로 둔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더니 하소연하듯 은서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까놓고 말해서 그런 놈들이 멸망시킨 거 아니겠습니까? 베트콩이 되어 여기저기 테러나 벌이고 멀쩡한 사람 선동하기나 하고. 그딴 녀석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도 망할 일은 없었을 겁니다."

    “......”

    "그러니 제 동생 죽였다고 짐처럼 갖고 계시면 훌훌 털어버리십시오. 죽어 마땅한 녀석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아저씨의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인데 어떻게 그런···."

    "그 녀석 때문에 경찰 생활 하는 내내 힘들어 죽을 뻔했습니다. 베트콩을 동생으로 두고 있다며 너도 간첩 아니냐는 의구심이 쏟아지는데 내가 그거 풀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참···."

    그렇게 말하더니 자세를 고쳐잡아 말했다.

    “아무튼, 저희 시민들까지 구조해주신 점 베트남 공화국의 경찰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충성!”

    은서는 먹먹한 마음을 숨기고 아픈 마음을 감추어 굳은 표정을 담아 경례를 받아주었다. 슬퍼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허탈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뒤돌아 난민들 사이로 터벅터벅 들어가는 경찰의 뒷모습은 자신이 생각했던 형제의 모습과 너무도 많은 것이 달랐으니까.

    “이게 이념 전쟁이란 거겠지. 형제마저 적으로 갈라놓을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은서의 말에 옆에 서있는 진혁이가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수십년이 지나도 싸울거야. 베트남 사람들.”

    “그럴까?”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고 그러다 냉전시대가 영영 끝나버린다 해도 저들은 계속 싸우겠지. 해외에서 만나도 북베트남 출신과 남베트남 출신은 서로 으르렁대며 싸울테니까. 전쟁이 어땠니 월남은 왜 망했니 서로 다른 깃발을 가슴에 품은 채로 그렇게 자기들끼리 설전을 벌일 거 같아."

    “그렇겠네. 분명···.”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은서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너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말을 놨다?”

    그러자 진혁이도 이상하게 생각해서 은서 손을 툭 놓아버리곤 발뺌하듯 되물었다.

    “제가 방금 그랬습니까?”

    “아, 아니... 그렇다고 다시 존대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존대를 해야죠.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실 분인데.”

    “그 전에 우린 부부인데?”

    “아직 아닙니다. 혼인을 안했으니까요.”

    "그럼 결혼하면? 그 땐 말 놓을거지?"

    "그 때도 당연히 존대를 해야죠. 아내이기 전에 황태녀 전하신데요."

    "이런···."

    다정하게 말해주던 서방님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고자새끼로 돌아왔다. 친구일 때도 연인일 때도 존대를 쓰던 동갑내기 사내자식은 부부가 되기로 약속해도 존대를 썼고 결혼해서도 존대를 쓸 거 같았다. 그래서 절박한 마음에 손가락질하며 명령을 내렸다.

    “어명이다! 김진혁! 나한테 말을 놓도록!”

    “거절합니다!”

    “아니 왜 잘 쓰다가 다시 존대야? 난 그냥 신기해서 물어본거라고! 그냥 반말 써! 동갑끼리 존대쓰기야? 부부잖아 이제! 한참 좋았는데 왜 다시 존대야!”

    투정부리는 은서에게 서방님이 답한 이유는 간단했다. 늘 그렇듯 뻔한 이유. 황태녀 전하가 너무 고귀하게 느껴져서.

    "이 고자야!!!"

    ***

    4월 30일. 제국익문사로부터 전원 구출의 보고를 받았을 때 이연은 제주도에 있었다. 그 남자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것은 꽃구경. 한라산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제주의 노란 들판에 쭈그려 앉아 유채꽃의 향기를 감상하는 게 중년 남자의 오늘 첫 일정이었다.

    담배 연기에 쩔어 사는 전쟁영웅 출신의 대한제국 황제가 중년의 나이를 먹고 꽃구경하는 모습이 영 안어울려서 비서실장인 이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취미가 있으셨나요?”

    “이 꽃에 사연이 좀 있거든. 아직 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

    사연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게 있어 입을 열지 못했다. 좋은 사연이 아닐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서는 어디로 온다던가?”

    “일단 부산에 들리신답니다. 거기서 베트남 사람들을 모아 난민촌을 구성한 뒤 유엔과 적십자사의 도움을 받을 예정입니다. 제3국으로 이민을 원하는 자는 그리 하도록 하고, 정착을 원하는 자는 약간의 심사를 거친 뒤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망명정부는?”

    “인천의 차이나타운처럼 부산에 베트남 타운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구심점이 될 레민다오 장군도 태국을 거쳐서 부산에 오고있구요.”

    “마찰이 생기지 않게 각별히 신경써야 할거야. 우린 단일민족 국가니까. 배타성이 강하잖나?”

    "그 부분은 걱정 안하셔도 될겁니다. 민족을 뛰어넘는 이념의 동맹이 있으니까요. 공산당에 맞서던 반공의 동맹이라 선전하면 배타성도 쥐죽은 듯 사라질겁니다."

    “그 부분은 믿고 맡기지.”

    “네.”

    대한제국에 남베트남 망명정부를 차린다는 건 이연의 아이디어였다. 과거 대한제국이 미국 워싱턴에 망명정부를 차렸던 경험이 있어 그걸 고스란히 남베트남에게 적용한 것이다.

    그것은 자유의 깃발을 함께 들었던 동맹국으로서 지키는 대한제국의 의리이기도 했다. 국제사회로부터 난민의 지위를 인정 받게 해 지원을 얻어냈고 여기에 적십자사가 함께했다. 망명정부의 지위는 미국이 공인하여 정통성을 갖췄고 이를 위해 이범석 내각의 외교부가 정말로 많은 노력을 했다.

    <망명정부라고? 그럼 당연히 우리들이 참여해야지!>

    망명정부가 생기면 줄행랑을 쳤던 티우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고위공직자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그들의 보따리에 수 톤에 달하는 금보따리가 딸려오는 것도 이연의 머리 속에 계산되어 있었다.

    하지만 재물을 챙겨온다고 해서 조선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갖긴 어려울테다. 이범석 총리는 부정부패하면 학을 뗄 정도라 공무원의 기강을 중요시했고 그들에겐 뇌물이 통하지 않았다.

    <내 구역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그렇다고 상업활동을 해서 경제를 장악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북 지역은 50년대부터 지하자원을 독점해온 기업들이 정부의 사랑을 받았고, 이남 지역엔 수출로 먹고 사는 기업들이 생겨나 재벌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체급은 남베트남 기득권들이 보따리를 들고 온다고 해서 밀려날 체급이 아니었다.

    <배신자다!>

    망명정부 내부도 상황은 녹록치 않을 것이다. 월남 사람들 입장에서 티우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배신자일 뿐이다. 대한제국이 없었다면 버려지는 운명을 맞았을 그들에겐 레민다오라고 하는 최후의 애국자가 대한제국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티우 대통령을 비롯한 월남의 기득권들은 권력에서 멀어져 졸부처럼 호의호식했고, 그러다 사업에 손을 대 말아먹으며, 이런 와중에도 이범석 내각의 국세청에게 세금을 꼬박꼬박 뜯겨나가는 모범납세자가 된다.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더 징수할 수 있지?>

    그들에겐 거대한 불행이 도사리고 있었다. 국세청이 컴퓨터에 꽂혀 있던 것이다. 타자기만 치던 이들이 컴퓨터를 보더니 사랑에 빠졌다. 공무원의 행정처리를 모조리 전산화시키면 부자들의 재산도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조선 땅에서 병무청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변태적인 효율의 공공기관이 정보화시대를 향한 선발대를 자처하며 월남의 고위 공직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옛 말에 이르기를 벤자민 프랭클린 선생께서 말씀하시니 인간은 두가지를 피할 수 없다 했다. 하나는 죽음이고 또 하나는 세금이다.

    그러는 동안 월남 사람들은 그동안 가져보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민주주의다. 신민당의 뜨거운 눈길을 받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직원들이 부산에 만들어지고 있는 베트남 타운을 찾았다.

    부패한 정부 밑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한번 가져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작게나마 소중한 한 표의 경험을 하기 시작하니 레민다오 장군이 망명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하지만 그 남자가 의외의 문제를 꺼내들어 대한제국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우리도 군대를 보유하게 해주십시오>

    대한제국의 역사책을 살펴보니 독립운동의 기록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광복군을 결성해 활약한 대한제국처럼 자신들도 그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거대한 규모였다. 사이공 최후의 날에 배를 끌고 탈출한 남베트남 해군이 대한제국으로 달려오고 있었고, 목숨 걸고 탈출했던 공군의 작은 영웅들도 망명정부에 희망을 품으며 대한제국으로 달려왔다. 졸지에 외국 군대를 품어주게 된 대한제국 군부는 이들의 지휘권을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동지들이여!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베트남 망명정부가 본격적인 국토 수복 운동에 돌입한건 1980년대였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계속되는 혼란으로 베트남에서 난민들이 쏟아져 나오니 이들을 보트피플이라 했다. 허름한 나뭇배를 탄 이들이 세계 전체로 뻗어나가 미국과 호주까지 자리잡으니 망명정부의 깃발아래 하나의 마음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제국익문사의 컨설팅을 받으며 공산 베트남의 전복을 노리는 비밀결사단체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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