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Ep11. 사이공 철수 작전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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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베트남전쟁을 다시 시작할리 없다.
은서의 그런 생각을 입증하듯 4월 23일 미합중국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월남의 포기를 선언했다. 장소는 미국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툴레인 대학교에서 미합중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연설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미국은 베트남 전쟁 전의 자신감을 되찾을 것입니다. 더 이상 끝난 전쟁에 다시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미합중국은 베트남을 포기한다. 그 명백한 선언적 배신을 대한제국의 사람들은 신문과 뉴스를 통해 똑똑히 목격하고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시작될 사이공의 재앙을 상징하는 종소리 같았다. 자신들이 버려졌음을 알게된 월남의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포드 대통령의 월남 포기 선언이 나오는 상태에서 공항과 항구가 외국인들로 바글바글했던 것이다. 사이공 뉴포트항에선 은서의 12척 수송선 말고도 대만이나 호주의 함선도 있었는데 이들 역시 베트남전 참전국이라 북베트남의 진군을 걱정해 교민들을 철수시키고 있었다. 공항에서도 외국인이 몰려 허겁지겁 탈출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제야 현실을 자각하게 됐다.
<뉴스 들었어? 미국이 우릴 도와주지 않겠대!>
<야야 근데 공항에서 계속 군용기가 이륙하고 있잖아. 외국인들도 잔뜩 피난가던데. 저거 설마 도망치는거야? 우리 버리고?>
<항구에도 큼지막한 배들이 잔뜩 모여있다며! 우리나라 망할 거 같으니까 도망가는거 아냐?>
그것은 분명 마지막 탈출구였다.
<그래도··· 결국은 미국이 도와주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우린 동맹이었잖아···.>
마지막까지 망설여봤지만 4월 24일이 찾아왔다. 사이공에 처음으로 박격포 소리가 들렸다. 쑤안록을 돌파한 북베트남의 군대가 사이공 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곳곳에서 옥죄여오는 박격포 소리와 총성이 사이공 사람들에게 공포바이러스를 심어주어 빠른 속도로 전염되기 시작했다.
<살려줘!!!>
한적했던 뉴포트항에 몰려드는 조선의 피난민들도 3천명으로 불어났다. 무질서하게 몰려드는 사람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보따리를 쟁여매니 출국절차고 뭐고 허겁지겁 수송선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아직 배에 자리는 많습니다!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피난 작전을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는 김훈 중령이 진땀을 뺐다. 그 곁에는 해군 장병들과 소수의 친위대가 있었다. 질서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들에게 김훈은 단호히 명령을 내렸다.
"우리 사람이 먼저야! 조선 사람 먼저 태워! 인과 관계 없는 사람들은 뒤로 끌어내!"
대한제국 국민도 아니고, 그들의 친척도 아니고,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평범한 사이공 주민들까지 몰려와 자기들도 피난시켜달라 외치고 있었다. 조선사람과 베트남 사람이 얽혀서 몸싸움을 벌이는 난장판 속에서 김훈 중령은 절망하고 있었다.
'이런 씨발··· 진짜로 월남이 망하는거야? 미국 놈들이 도와줄 생각이 1g도 없었다고? 그리고 공군은 뭐 하는거야? 왜 아직도 피난민이 이렇게 많은건데? 비행기 다 어디로갔어?'
탄손누트 국제공항엔 대한제국 황실이 쓰는 순백의 공군1호기가 있었다. 그 옆으론 10대에 달하는 공군 수송기들이 태극 마크를 달고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항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미군 기지가 약탈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항에는 미군의 식량창고가 있었는데 공포에 빠진 사이공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비상식량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시장 바닥엔 사재기가 횡행해 식료품이 바닥나니 전쟁을 앞두고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사이공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는데 미군 부대가 대수야? 당장 살길을 찾아야지!>
공항과 기지가 약탈당하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인원 분류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미군 수송기와 대한제국의 수송기들이 복잡하게 얽혀 미국인이든 조선인이든 닥치는대로 태우니 피난 작전을 지휘하던 미군 사령부도 즉각적인 이륙을 독촉했다.
[준비된 항공기부터 즉각 이륙하라! 반복한다! 준비된 항공기부터 즉각 이륙하라!]
잘빠진 흰색의 제복을 차려입은 대한제국의 공군1호기 조종사가 관제탑을 향해 무전을 때렸다.
[여기는 Korean Air Force One. 이륙하겠다!]
황제 폐하도 황태녀 전하도 없는 순백의 공군 1호기는 미국인과 조선 사람들을 태우고 필리핀을 향해 날아갔다. 그 뒤로 무수히 많은 대한제국 공군기가 뒤따라 이륙하고, 미군 수송기나 대만, 호주의 항공기까지 줄줄이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 올랐다. 월남의 패망이 가시화 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사이공에 남아 있었다. 비행기를 놓친 외국인들은 추가 투입될 미군 항공기나 배편을 알아봐야 했다.
상황이 이지경이 되니 도망간 대통령을 대신해 취임했던 쩐반흐엉 대통령은 항복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도 월남은 더 이상 가망이 없었다.
<베트남 공화국은 협상을 원한다. 공격을 멈추어 달라.>
하지만 사이공으로 진입하는 다리까지 접근한 붉은 군대는 단호했다.
<사이공만 함락시키면 끝인데 너희들이 협상할 처지냐? 무조건 항복외엔 어떤것도 받지 않겠다!>
대한제국 대사관은 아직도 피난 준비가 한참이었다. 사이공에 잔류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전화를 돌려 당장 항구로 달려오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어느 직원들은 서류 더미를 닥치는대로 박스에 쓸어담아 밖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대현 공사를 비롯하여 김영진 대사, 박진희 비서관, 해군 제독부터 진혁이까지 모든 측근들이 은서에게 외치고 있었다.
"당장 베트남을 떠나셔야 합니다! 여긴 저희들에게 맡기고 전하부터 몸을 피하세요!"
하지만 상석에 앉은 은서는 여전히 고심중이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사이공에 있었고 뉴포트항에 남아있는 12척의 함선도 빈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모두에게 외쳤다.
"그만!!!!"
"전하!"
박진희 비서관의 외침에 은서가 말했다.
"미국이 월남을 버렸다고 해서 다들 지레 겁먹은 거 같은데 우리 분명히하죠."
은서는 또박또박 강조하여 말했다.
"배는 많아요. 13척 중에 12척이나 남아있죠. 조금 무리해서 사람들을 더 태우고 만선이 된 수송선부터 차근차근 출항시키세요. 이럴 때일 수록 차분히 질서를 지키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러자 비서관 진희 언니가 말했다.
"하지만 사이공이 공격받고 있어요. 일단 먼저 몸을 피하시면 저희들이 뒤따라서···."
"그건 안돼 언니."
은서는 미소지어 말했다.
"현장의 총책임자는 가장 마지막에 나가는거야. 그렇지 않으면 조직의 지휘체계가 붕괴되거든."
"하지만···."
“난 황태녀지만 이 순간은 군인이야. 사령관이 자리를 지켜야 부하들이 안심할거야. 아직은 괜찮다고. 침착하게 행동할 버팀목이 되어줘야지. 그리고 아직 시간이 있어. 사이공에 들린 포탄 소리가 멀거든."
은서는 해군제독을 쳐다보며 말했다.
"본국에선 뭐라던가요?"
"지금 당장 출항하란 명령입니다."
"제독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사이공이 언제 포위될지 모르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교민들이 남아있어요. 전 최대한 많이 그들을 구해주고 싶은데요. 우리가 여기서 최대한 버텨본다면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그러자 제독이 고심하며 말했다.
"분부하신 대로 만선이 된 함선부터 즉각 출항시키고 마지막 함선을 기준으로··· 못해도 25일엔 출항해야 합니다. 그리고 밤은 안됩니다. 사이공의 강을 밝히던 등대들이 모두 나가버렸으니까요."
그러자 은서가 협상하듯 말했다.
"27일까지 부탁드릴게요."
"전하!"
"아직 빈자리가 많잖아요!"
"수송선은 적의 공격을 방어할 능력이 없습니다. 포위된 사이공을 뚫고 가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제독님!"
그러자 제독은 결단을 내렸다.
"4월 26일까지 드리겠습니다. 그 이후론 어떤 명령을 내리셔도 따를 수 없습니다. 부당한 명령이기 전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제발···."
뒤이어 진혁이가 말했다.
"저도 4월 26일까지 드리죠. 폐하로부터 황명을 받았으니까요."
"황명?"
"전하의 안전을 책임지라는 황명. 그게 있는 이상 4월 26일 넘어서는 못 기다립니다. 버티겠다 고집 피우시면 강제로라도 데려갈겁니다."
"너 정말···."
"안해줄겁니다 결혼."
"야!!!!"
"베트남에서 영혼 결혼식을 한다거나, 독방에 같혀 포로 신세로 결혼식을 한다던가. 그럴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강제로라도 데려가겠습니다. 사지 멀쩡하게 돌아가서 조선에서 하시죠. 저도 번듯한 웨딩을 꿈꾸는 남자거든요."
진혁이의 살벌한 경고에 은서가 쥐죽은듯 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그, 그렇게까지 말하면···."
예비 신랑의 경고에 풀이 죽어버린 신부를 보며 대사관의 회의실이 싸늘해졌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모두의 마음속에 소근거리는 미래의 모습.
<신랑도 보통이 아니구만···.>
<이거 신부가 완전히 잡혀 살겠는데?>
결국 부하들의 만류에 못이긴 은서는 5성 장군의 마음가짐을 고쳐매어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총사령관으로서 명령합니다. 대한제국군의 출항일은 1975년 4월 26일로 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모든 피난 준비를 마치고 완료된 함정부터 순차적으로 출발해주세요."
그리곤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번듯한 웨딩을 꿈꾼다는데 들어줘야지."
그렇게 마지노선을 잡은 사람들은 4월 26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사관 직원들은 친위대와 해병대, 실미도 요원까지 지원받아 조를 이루어 조선인을 찾아 나섰고, 김훈 중령은 해군 장병들과 함께 뉴포트 항에서 질서 유지에 총력을 다했다. 은서는 여기서 한가지 권력을 추가로 썼다. 대사관 직원들의 손에는 황태녀가 사령관 자격으로 작성한 명령서가 들려 있었다.
"장군님의 명령입니다. 즉각 피난 준비를 마치고 항구로 와주십시오."
피난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사이공에 남은 재산이 아까웠던 사업가들이 특히 그랬다. 그런 그들에겐 더욱 더 강경한 어조로 대사관 직원이 말했다.
“4월 26일까지입니다. 황제 폐하로부터 지휘권을 위임받은 현지 총사령관으로서 하는 명령이니 반드시 준수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하의 명령은 곧 폐하의 명령. 폐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반역이나 다름 없는겁니다. 제 말 잘 알아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인 해석이 갈린다. 동행하던 친위대 병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민주주의 국가잖습니까? 황명이긴 해도 그게 다 반역죄로 적용되진 않을텐데요?"
그러자 대사관 직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법적인 영역과 심리적인 영역은 다르거든요."
"예?"
“두고보시면 압니다.”
대사관 직원들의 엄중한 경고에 사람들이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항구로 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이런 상황 까지도 월남의 패망을 믿지 않는 이가 많았다.
<아니 그래도 결국은 미국이 돌아오지 않겠어? 잠깐이면 끝나겠지. 뭐 이렇게 호들갑이람!>
<그래도 뭐 나랏님이 말씀하시는데 따라야지.>
황명을 발동할 수 있는 절차와 범위, 법적인 지위와 거기에 대한 국회의 반대권 같은건 이 순간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나랏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 단순한 한줄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위력이 있었다. 이 나라는 군주제 국가였고 군주가 실제로 통치 행위를 하는 나라니까. 은서가 아버지의 권위를 빌려 처음으로 사용해본 정치적인 힘이었다.
긴급한 상황에서 권위에 복종하게 된 수 많은 조선 사람들이 뉴포트 항구로 쏟아져나오니 그들 곁에는 베트남에서 만난 가족들이 있었고, 함께 일했던 현지 협력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태우고 구불구불한 사이공의 강을 따라 가는 수송선들은 바다에 도착할 것이고 그곳에서 미국 7함대와 합류하게 된다.
그렇게 4월 26일 약속의 시간이 찾아왔다.
사이공에 들리는 총성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