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00화 (100/131)

〈 100화 〉 Ep11. 사이공 철수 작전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대통령궁이 폭격을 당했다.

남베트남의 공군 F-5 전투기는 자국의 대통령궁에 폭격을 가하곤 기수를 돌려 북베트남에 항복해버렸다. 대통령은 무사했지만 사이공에 찾아온 첫번째 위기에 사람들은 술렁이고 있었다. 아군 조종사가 조국을 배신한 것이다.

그 배신자는 오랜시간 이어진 한가지 질문에 대한 비극적인 결론이었다. 건국이래 계속되어온 남베트남 군인들의 혼란. 마음속에 계속되어온 누구도 알아주지 못했던 근본적인 질문.

<나는 누구에게 충성해야하지?>

북베트남에는 호치민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리더가 있었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부터 독립운동을 해온 영웅. 청렴결백하며 온화한 리더십으로 국민들에게 '호 아저씨'라고도 불리는 그 할아버지는 베트남인이라면 모두가 존경할만한 정통성 있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남베트남은 다르다. 쿠데타의 쿠데타를 당하고 다시 쿠데타의 쿠데타를 당하며 또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는 혼란 속에 군부와 정계엔 존경받지 못하는 무능아들이 있었을 뿐이다. 정당성 없는 정부에 정당성 없는 지도자, 정당성 없는 장군들 밑에서 군인들은 늘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북베트남의 붉은군대가 쳐들어왔다. 반란하면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부하던 장군님들은 막상 외적이 쳐들어오니 우왕좌왕 하다가 모든 것을 말아먹었다. 고지를 지켜야할까? 고지를 버려야할까? 전략적인 후퇴를 해야할까? 전선을 사수해야할까?

<결국엔 미국이 지원해주지 않을까?>

돌아오지 않는 미군을 애타게 기다리며 남베트남 국군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입고 있는 군복부터 총까지. 전차와 전투기 헬기까지도 미국이 지원해준 최신장비로 '치장'한 백만대군은 호치민의 가난한 군대 앞에 물만난 솜사탕처럼 녹아내렸을 뿐이다.

<나는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지?>

다낭에서의 참극은 질문에 대한 또다른 대답이었다. 노인과 아이들, 임산부까지 버려두고 자기들 먼저 도망친 그들은 군인이 아니었으며 단지 '나'였을 뿐이다.

<충성할 필요 없어! 내가 먼저야! 이딴 나라는 집어 치우고 나부터 살길을 찾아야 해! 난 가족이 보고 싶다고!>

그런 이유로 수 많은 군인들이 싸움조차 해보지 않은 채 군복을 벗어던졌다. 자신이 남베트남의 군인이었단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며 혹여라도 그 사실이 들키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들은 그저 '나'였을 뿐이다. 인생에 '나'보다 중요한 건 없었으니까.

"내가 왜 싸워야 합니까! 이딴 나라를 지켜줄 가치가 있나요? 장군님도 도망치시죠! 어차피 패배할 싸움이고 망해버릴 나라입니다."

하지만 쑤안록의 언덕에서 레민다오 장군은 다른 대답을 했다.

"여긴 쑤안록이야. 이곳이 뚫리면 수도 사이공이 공산당 손에 넘어가고 말겠지."

도망치려던 병사는 다시 물었다.

"저기 언덕 너머로 수 만의 적군이 몰려오고 있어요. 하지만 저흰 6천밖에 없죠. 어차피 질거 왜 아까운 목숨을 버려야 합니까?"

"우리에겐 아직 국민이 있으니까."

국가는 망해도 국민은 남는다. 우리에겐 아직 지켜야 할 사이공의 시민들이 남아 있었다. 장군의 절박한 호소에 도망치려던 장병들이 부끄러운듯 고개를 떨구었다.

"무기를 들게. 우리에겐 아직 사이공이 남아있네. 국가에 충성할 수 없다면 국민에 충성하고 그들을 지키겠다는 일념아래 싸워보게. 망해가는 나라라 할 지라도 우리의 조국이 아니겠나?"

그는 병사를 다그쳐 다시 군복을 입게 했다. 총을 쥐여주는 장군의 손길은 아직 앳되기만 하다.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43세의 젊은 베트남인은 자신의 보병부대와 잔존 병력을 긁어모아 쑤안록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것이 고작 6천. 하지만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지금에 와서도 자신과 함께 항전을 결심한 이들은 진짜 애국자였다.

바나나와 고무 농장 한가운데 위치한 쑤안록. 무성한 정글 숲으로 강이 흐르는 언덕. 수도 사이공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에 서있는 그 남자는 날아오는 치누크 헬기를 쳐다보며 결연하게 말했다.

"당신은 어서 돌아가시오."

그 장군의 곁에는 취재하러 나온 외신 기자들이 서있었다. 자신을 연신 찍어대는 백인 남자에게 레민다오 장군은 말했다.

"미국에 돌아가거든 하나만 말해주시오. 우리들이 여기서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는 웃으며 백인 남성에게 손짓을 했다. 어서 가라고. 어서 가지 않으면 여기서 총을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여기는 곧 있으면 전쟁터가 되니까. 쑤안록은 기자들이 돌아다니기에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레민다오 장군은 장병들에게 말했다.

"공산당이 몇 개의 사단을 보내든 상관없다. 싸우길 각오한 전사들이여! 모조리 부셔버리자!”

<조국을 위하여!>

결사대로 탄생한 6천의 장병 앞에 4만명의 붉은 군대가 몰려 오고 있었다. 숫적으로 따지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 하지만 벼랑끝에 몰린 애국자들이 품은 싸움의 각오는 4만과도 같다.

그렇게 쑤안록 전투가 시작되었다.

***

은서의 함대는 1975년 4월 21일 베트남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문제가 하나 있는데 사이공은 해안도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교민들이 철수를 기다리는 사이공에 배가 들어가려면 구불구불한 메콩강을 타고 상류로 가야 했다. 갑판위에서 메콩강을 바라보던 은서에게 제2부속비서관 박진희가 말했다.

"본국에서 날아온 전보에 의하면 사이공으로 몰려오는 북베트남 군대만 14만 명인데 도시도 언제 포위될지 모르는 상황이래요."

"우리가 타고있는 수송선 속도가 고작 9노트야. 진짜 엄청나게 느리지."

"시간이 촉박한데··· 그렇다고 교민들에게 해안가로 나오라고 할 수도없고···."

"그랬다가 북베트남군에게 걸리면 그대로 포로가 될거야. 그럼 남은 방법은 딱 하나지."

은서의 함대는 메콩강 하구에 김훈 중령의 기계화보병을 상륙시켰다. 기계화보병은 장갑차와 함께 싸우는 보병으로, 이동시엔 장갑차를 타고 전투시엔 하차하여 싸우는 식으로 기동력과 방어력을 동시에 제공받는다.

은서의 직속 친위대가 이런 편제로 되어있던건 평양에 처음 부임했을 때 반란이 터질 것을 걱정해 친위대장 차지연이 장갑차를 보낸 탓이다. 즉 군인대 군인으로 전면전을 상정한 호위병력이었다. 그 전투가 지금은 베트남에서 무수히 벌어지고 있었다. 은서는 이들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메콩강 하구에 상륙하는 장갑차에 친위대는 물론 해병대까지 태워서 사이공으로 보냈다.

"메콩강을 따라서 사이공으로 돌진해! 먼저 가서 사람들을 항구에 모아줘!"

하지만 멀찍이서 들리는 폭음을 들으며 김훈 중령이 외쳤다.

“야! 근데 곧 있으면 사이공 포위될 거 같은데 어떡하냐? 이거 타고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그러자 은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태녀가 허락한다! 버려!”

“뭐 임마? 장갑차를 버려?”

"포위망 완성 되기 전에 한 명이라도 빨리 들어가야지. 9노트 밖에 안되는 수송선으로 언제까지 밍기적댈거야?"

"야 그래도···."

"빨리 가서 뉴포트항에 우리 교민들 모아놔. 먼저 오는 순대로 바로바로 출항시킬거니까! 그리고 티우 대통령께도 황태녀가 도착한다고 말씀드려줘. 이래봬도 국빈이잖아?"

"너 솔직히 말해! 처음부터 장갑차 회수는 고려도 안하고 있었지?"

그러자 은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봐야 9대잖아? 뭐 어때? 사람이 먼저다! 작전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 돌격 개시!"

“이 띨띨아!!”

“화이팅! 오빠 달려!”

13척에 달하는 전차 상륙용 LST 수송함들이 느릿느릿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장갑차는 사이공을 향해 월남의 정글길을 질주했다.

은서의 직속 친위대는 최형욱 장군의 반란 당시엔 300명이었다가 규모가 줄어 100명이 되었는데 보유하고 있는 장갑차는 9대다. 인원이 줄은 대신에 구성은 더 정예화 되었는데 100명의 친위대원 대부분이 월남전 참전 용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 은서를 위한 배려였다. 공수지구대 3팀으로 은서의 마지막 전우인 김훈 중령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밑으로 장교나 부사관들까지 전부 다 참전용사들. 병사로 참전한 징집병이었으나 말뚝을 박아 하사까지 된 친구들도 있었고, 공수지구대에서 싸운 특전사 출신의 부사관들이 많았으며, 장교들 역시 대부분이 은서 한 명을 보고 들어온 월남전 참전자들이었다.

100명의 전우들이 돌아온 월남의 정글은 여전히 머리속에 생생한 익숙한 전장이라 당황하지 않았고, 타고다니는 M113 장갑차는 월남전에서부터 쏠쏠하게 써먹던 물건이다. 그 장갑차는 눈먼 총알이 날아온들 자신들의 안전을 완벽하게 책임지고 있었다.

김훈 중령은 무전으로 부하들에게 말했다.

[대응사격은 하지 마라! 오로지 사이공을 향해 돌진하는거다!]

[베트콩이 점점 늘어납니다. 교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린 교전국이 아니야. 싸울 권한도 이유도 없어. 지금은 1초라도 더 빨리 사이공으로 들어가야 해.]

이렇게 친위대와 해병대는 9대의 장갑차에 의지해 전장 한복판에서 광란의 질주를 벌였다. 북베트남군도 남베트남군도 '저 새끼들은 뭐지?' 하는 표정이지만 M113 장갑차를 쓰는건 남베트남도 마찬가지라 아군으로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4월 21일 당일. 사이공에 도착한 친위대와 해병대는 현지 대사관의 직원들과 장갑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사이공 곳곳의 피난민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났다. 4월 22일이 되면 13척의 대한제국 수송선들이 사이공 뉴포트항에 입항했다. 은서가 배에서 내렸을 땐 400명에 달하는 교민들이 출국 수속을 마친 채로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 생각보다 많이 모였는데?”

감탄어린 은서의 목소리에 마중나온 김훈 중령이 성을 냈다.

“너 이 씨 내 장갑차 버리기만 해봐! 아주 죽는다?”

"어이구 무서워라~ 걱정하지 마~ 13척이잖아? 피난민 다 태워도 장갑차 실을 공간은 충분히 있을걸?"

자신만만하게 웃는 은서의 해군에 400명의 피난민은 가볍다. 수송선 1척에 태워도 많은 자리가 남았고 빈 공간에 장갑차 3대를 실어서 먼저 출항시켰다. 이러고도 남은 수송선이 12척이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송선이란 수송선은 모조리 긁어온 은서의 선택은 틀리지 않은듯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은서는 한적한 뉴포트항을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오빠. 뭔가 이상하지 않아? 내가 아무리 어리긴 해도 대한제국의 황태녀잖아? 왜 아무도 마중을 안나온거지?"

남베트남의 대통령은 커녕 군인 한 명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사관 직원조차 마중 안나온 것은 덤이었다. 그런 은서를 조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김훈 중령은 말했다.

"일단 여기서 이러지 말고 대사관으로 가자. 직원들이 너를 기다리고있어."

은서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가볍게 수긍했다.

"뭐··· 전쟁이니까 어쩔 수 없지···."

이 순간에도 남베트남은 전쟁중이다. 장군이고 대통령이고 모두가 바쁠것이다. 대사관 직원들도 친위대와 해병대를 대동하여 교민들을 설득하고 있을테다. 그런 상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은서지만 마음 한켠에선 여전히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국빈이야. 대통령은 못해도 총리급 인사는 마중나와도 됐잖아. 대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길래···.'

사실 별로 심각해보이지 않았다. 총성 한번 들리지 않는 고요한 뉴포트항. 새들이 지저귀는 4월 22일의 사이공은 이곳이 전쟁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평화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태풍의 눈이었다.

태풍의 눈은 고요한 법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