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Ep11. 사이공 철수 작전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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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1일.
대한제국 황태녀 이은서는 남베트남 현지 교민들의 마지막 철수를 책임질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헬기를 타고 날아온 그곳 평양. 서북방위사령부에서 이은서는 지휘통제실에 자신의 장군들을 불러모았다. 부사령관과 참모장, 각 분야별 참모들 그리고 해군 제독과 공군 장성을 한명씩 불러서 자리하고 있었다.
"서북방위사령부는 원수가 지휘하는 통합작전사령부로 육해공군 그리고 해병대까지 지휘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예! 전하!>
군복을 차려입은 5성장군 이은서가 말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월남의 현지 교민들을 철수시킬 마지막 작전을 진행합니다.”
은서는 평양의 지휘봉을 쥐며 말했다.
"외교부는 현재 민항기를 동원해서 현지 교민들을 철수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황이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어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상태죠."
그리곤 테이블에 펼쳐진 베트남 지도를 쳐다보며 말했다.
"월남은 이미 중부전선까지 뚫렸습니다. 제국익문사의 보고서와 현 정세를 종합해보면 앞으로 한달. 그 안에 우리 국민들을 철수시키지 못하면 그들 모두가 적의 포로로 붙잡히는 대참사가 일어날겁니다."
그러자 부사령관인 전장군이 물었다.
"미국이 참전해서 월남을 도와주는 가능성. 정말로 없겠습니까?"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최악을 가정하고 행동해야죠."
"미국이 월남에 항모를 보냈답니다. 지원의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텐데요?"
"월남엔 미국인도 있어요. 그들을 철수시키려고 보낸걸겁니다."
무거운 침묵 속에 고심하는 장군들의 표정이 엿보였다. 동맹이 무너진다는 건 군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껄그럽고도 속이 쓰리는 일이었다. 지구상에 공산주의 국가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 생각했을 때 적개심이 드는건 덤.
"공군도 수송기들을 긁어모으고 있다죠? 얼마나 동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객원으로 참여한 공군 장성이 말했다.
"황실 전용기인 공군1호기와 별개로 10대의 군용 수송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전력을 설명해드리자면, 전임 국방장관 김신 장군께서 도입하신 C-130 허큘리스 3대, C-54 스카이마스터가 7대입니다."
그러자 은서가 되물었다.
"공군이 가진 수송기가 더 있을텐데요? 작계상에 동원 전력으로 기록된 수송기가 20대 정도로 알고 있는데···."
"C-123 프로바이더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항속거리가 1600km 밖에 안됩니다. 필리핀을 경유한다고 해도 베트남까지 가기가 어려워서 이번 작전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마닐라에서 사이공까지도 1600km 정도 아닌가요?"
"이론상 항속거리가 그 정도입니다만 철수 작전임을 고려하면 탑승인원을 초과하는 무리를 할 가능성이 높지요. 안전을 생각하면 프로바이더는 무리입니다."
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군 제독에게 물었다.
"해군은 어떤가요? 저랑 함께 다니게 될건데요. 이번 작전에 동원할 수 있는 수송선이 얼마나 될까요?"
"운봉급 전차상륙함을 13척까지 동원할 수 있습니다. 한 척당 500명씩 수용한다면 6500명 정도는 거뜬히 가능할 겁니다."
그러자 참모장이 물었다.
"수송도 중요하지만 호위병력도 중요할 겁니다. 특히 이번 작전은 전하께서 직접 출정하시기로 되어 있으니 중요한 문제죠. 친위대 말고도 특수부대를 대동하시는 게 어떠실런지요?"
"특수부대요?"
"사이공은 전쟁터일 겁니다. 모든 피난민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진 못할거고, 그들을 호위해서 항구까지 안전히 데려올려면 역시 특수부대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외교부가 현지 교민들을 설득해서 미리 항구로 집결시켜놨을텐데요. 굳이 특수부대까지 필요할까요?"
하지만 참모장은 부정하며 말했다.
"전하께서 상상하시는 그 이상의 난민들이 쏟아질겁니다."
"제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면 항구를 가득 메울 정도인데 근거를 들어볼까요?"
"사이공의 피난 작전은 조선 사람만 데려온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설마···."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그 설마가 맞습니다. 대한제국과 월남의 우호관계는 10년이 넘었으니까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인간 관계를 맺었겠지요. 현지 주민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사람도 있을거고, 사업을 벌이던 사람이 있을거고. 이게 큰 변수로 작용할겁니다."
그 말에 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긴··· 외교부와 제국익문사의 예상 인원이 오락가락했었죠. 예컨대, 우리 국민 남성을 데려오면 그와 결혼한 베트남 여성을 데려와야 하고, 베트남 여성을 데려오면 그녀의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일가친척이 줄줄이 피난을 요청하는 그런 상황."
"바로 그 문제입니다. 전하."
참모장이 말한 '변수'란 그랬다. 베트남도 농경사회라면 대가족을 이루고 있을진대 그들과 인적관계를 맺은 인간 사회의 그물망이 얼마나 거대할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냐는 것.
그들과 엮여있는 조선 사람이 많았다.
월남은 기회의 땅이었으니까. 미국의 눈먼 달러가 끊임없이 쏟아지던 외화벌이의 기회. 한 때 대한제국보다도 경제력이 좋았던 그곳은 돈을 벌기 위해 나가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기업을 꾸리고 있는 사업가부터 일하러 간 노동자까지. 심지어 불법체류자까지 있을텐데, 해외 생활이 오래되면 친분을 쌓는 일이 많을테고 눈이 맞아 결혼하는 일도 많을테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그런 그들이 국가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을 경우 십중팔구 딜레마가 생긴다.
<친구와 가족을 버리고 나 혼자 도망가야 한다고?>
자신은 조선 사람인데 가족들은 조선사람이 아니다. 피난 대상이 '순수 조선인'으로 한정될 경우 가족을 모두 버리고 도망가야 하는 끔찍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모두 데려가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배우자, 친구, 현지협력자를 데려가다보면 그들 밑으로 가족들이 딸려와 피난민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것이다.
이걸 한 명의 남자를 통해 비유해보자.
사업가 김아무개씨는 베트남전쟁 당시 국군을 따라가 사업을 벌였다. 현지에 기업을 차린 그는 군에 협력해 군수물자를 관리하거나 도로 등 기반산업을 깔아주는 사업을 했을테다.
하지만 사업이 혼자되겠나? 현지에서 베트남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이들이 도와준 덕에 국군은 반듯한 길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안정적으로 보급받아 유능하게 싸울 수 있었다.
김아무개씨의 월남 생활이 3년이 지났다. 그는 사람 됨됨이가 좋아 베트남 노동자도 친구처럼 대했고 그들의 가족과도 서스럼 없이 어울려 지낸다. 그러다 한 여자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는다.
이뻐 죽겠다. 내새끼.
자. 이런 배경으로 김아무개씨 밑에 딸려있는 피난민의 인원을 추산해보자. 그와 함께 일했던 베트남 사람을 30명이라 가정한다. 그들에겐 각각 부모님이 2명 있고 동생이 3명 있다.
이 경우 김아무개씨 한명만 바라보는 베트남 난민은 150명까지 불어난다. 여기에 아내와 아이 둘 자신을 합하면 난민의 수가 154명을 불어나는 것이다.
<이 사람들도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제 가족이란 말입니다!>
<이 사람들도 같이 가야해요! 우리 사업을 도와준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이들을 놓고갔다간···.>
김아무개씨의 요구에는 무시할 수 없는 정당성이 있다. 그 남자가 월남에 사는동안 했던 사업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자. 대한제국 국군을 위한 군수물자 생산, 수송, 기반시설 건설 사업.
북베트남 입장에선 적군을 위해 일한 부역자나 다름없다. 자본가 밑에서 쏠쏠하게 돈까지 벌고 있었을 그들이 공산주의자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를 괴롭힌 대한제국을 위해 일한 놈들이다! 사상도 의심되는군. 재교육이 필요하겠어.>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김아무개씨 입장에선 공포감이 밀려온다. 버림받은 가족과 직원들이 북베트남 군인들의 손에 끌려가 재교육센터로 보내지거나 처형되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피난민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공포 바이러스는 모든것을 초월할테니까.
<그런 미래는 감당할 수 없어요··· 제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함께 죽을래요!>
결국 김아무개씨는 의리를 택하기로 한다. 함께 도망칠 수 없다면 같이 남아 최후를 함께하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이 심리를 지배한다. 결국 대한제국은 김아무개씨를 구출하지 못하게 된다.
154명은 3촌 이내의 가족만 따진 수치다. 혈연으로 얽히지 않은 친구도 있을테고, 애완견 누렁이도 데려가고 싶을거고, 놓고가는 재산이 아까울 수도 있다. 이렇게 범위를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예상 철수인원이 고무줄처럼 달라져 외교부와 제국익문사가 1만에서 2만까지 피난민 규모를 전혀 다르게 산출하고 있었다.
'실제론 더 될지도 몰라.'
은서는 최악중의 최악까지 가정하며 만약을 생각해 참모장에게 답했다.
"전쟁으로 복잡한 상황에 그들을 안전히 데려와서 피난시킬려면··· 확실히 정예 병력이 있어야겠군요."
그러자 은서의 부관인 김진혁 중령이 나섰다.
"제가 최고의 요원들을 압니다."
"그게 누군가? 친위대 특임대?"
"그보다 더욱 최고의 요원들이 있습니다."
그러자 참모장이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특임대보다 더욱 최고의 정예 요원들이 있다고? 그게 누군가?"
"그게 보안사항이라··· 죄송하지만 전하께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곤 은서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장군들이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뭐야, 장군인 우리들도 모르는 기밀 사항이 있어? 근데 저 녀석은 어떻게 아는거야?>
그들은 모르는 1급 비밀 정보. 김진혁 중령은 황제의 심복으로 황태녀를 보좌하는 몸이라 알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김진혁 중령이 이은서 원수에게 소근거렸던 최고의 정예 부대
<김일성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직 모르시죠?>
<자살이래잖아? 신문에서 그러던데?>
<사실 암살입니다. 제국익문사가 특수부대를 꾸려서 진행한 1급 비밀 작전이었죠>
그러자 은서가 화들짝 놀라 소근거렸다.
<그런 작전이 있었어?>
<실미도 부대라고 흑색작전을 전담하는 부대가 있습니다. 각군 특수부대 중 최고의 정예 요원을 선발한 부대죠. 제가 전해듣기론 제국익문사 휘하로 아직 그 부대가 존속중인걸로···.>
<야 이 씨! 그런건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결심이 선 은서는 장군들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됐네요. 시간이 급하니 최대 자원을 가용하여 최선의 작전을 펼치겠습니다. 각 분야별 참모님들께선 필요한 물자와 병력을 추산해서 조속히 원정군을 편성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눈동자로 결연하게 말했다.
"말씀드렸듯 이번 작전은 제가 직접 출정합니다."
"정말 직접 가시는 겁니까?"
하지만 은서는 단호히 말했다.
"예. 제가 가야합니다. 개인적인 이유만 있는 건 아니에요. 만약의 사태에 빠졌을 때 월남 정부나 미군 함대와 협상할 수 있는 권력자는 황태녀인 제가 제격이거든요."
"그러면 경호 병력이라도···."
"경호병력은 여기 있잖아요."
그녀는 김훈 중령을 바라보았다. 황태녀의 직속 친위대. 100명 규모의 결사대가 자기 관할에 있었다. 거기에 이들은 장갑차까지 있다.
"여차하면 장갑차 태워서 포위망 뚫어주겠지 뭐."
그러자 김훈 중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도 기회가 오는거냐?"
"당연하지. 내 최고의 전력인데."
"보여주마. 우리가 그동안 진짜로 바빴다는걸."
그 뒤로 은서는 사령관실로 돌아가 전화를 넣었다. 덕수궁 비서실에 전화하면 대한제국 최고의 요원이었던 그분이 전화를 받으신다.
<내놔요 실장님!>
기밀정보라 하니 전화상으로 말하면 안될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내놔요’라고만 했다. 하지만 최고의 요원이었던 비서실장님은 알아서 척척 알아듣고 되물으셨다.
<설마··· 지금 그걸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그 설마 맞으니까 내놔요. 복잡한 절차 해결보려면 실장님이 해주셔야죠.>
<하여튼··· 진혁군은 입이 참 싸다니까.>
<황태녀에게 비밀로 하는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실.장.님?>
그러자 실장님은 피식 웃으면서 알겠다고만 했다. 평양의 서북방위사령부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던 그분은 은서의 머리속에 있는 모든 작전까지 유추해놓고 있었다.
알아서 척척 안성맞춤으로 챙겨주는 비서실장님의 솜씨에 암호명 '내놔요'에 해당하던 최고의 비밀부대가 서북방위사령부로 파견됐다. 수송선들이 잔뜩 늘어서있는 평양 인근의 전남포 해군기지. 그곳에 실미도 부대가 나타났다.
"월맹군?!"
은서가 깜짝 놀란건 그들이 입고 있는 군복이었다.
"아, 아니··· 뭔가 비밀부대라길래 유령처럼 입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저 군복은 북베트남 군인들이 입는 옷이잖아?"
그러자 실미도 부대의 팀장이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황태녀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684 부대 지휘관 강 소령입니다!"
"월맹···."
"월남으로 가서 국민들을 구조해오란 황명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월맹의 손아귀에 떨어질 예정이겠지요?"
"그렇죠?"
"그렇다면 대한제국의 군복보다 월맹의 군복을 입고있는 게 위장 측면에서 도움이 될겁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월남군에게 오인 사격을 받으실 수 있어요."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여야 하는겁니다. 이 분야는 저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특기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전하."
그리고 강 소령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암살만 할 줄 알았습니다. 국민을 구조하고 지켜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31명의 모든 대원이 일제히 외쳤다.
<충성!>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는 4월 9일. 서북방위사령관 이은서 휘하로 13척의 함선이 전남포항을 떠나 사이공으로 향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마이크를 잡은 은서는 모두에게 말했다.
"우연히도 딱 13척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조국 수호를 위해 결성한 명량해전의 결사대가 딱 이정도 규모였죠. 그들은 300척에 달하는 적과 맞서 싸워 기적의 승리를 거두고 국가와 국민을 지켰습니다. 하늘에 계실 장군님께 보여드립시다. 후손들이 정말 멋지게 컸다고."
이은서 장군은 주먹을 치켜들고 모두에게 말했다.
"국군은!"
그러자 모두가 외쳤다.
<국민을 지킨다!>
대한제국 해군을 시작으로 친위대와 해병대, 제국익문사까지 함께하는 정예 맴버가 편성됐다. 단 한명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엿보이는 드림팀이었다.
같은 시각 김포 국제 공항에선 민항기들이 무리를 지어 이륙했고 공군기지에서도 황실의 전용기인 순백의 공군1호기와 군용 수송기들이 마지막 정비를 받고 있었다.
사이공 철수 작전은 이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