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98화 (98/131)

〈 98화 〉 Ep10. 국가가 무너지는 날 (1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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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남았다.

모두가 복도 밖으로 쫓겨난 황제의 집무실에서 장인어른과 예비사위, 외동딸만이 남아 눈치 싸움을 시작했다. 무릎 꿇은 진혁이는 군인 정신을 담아 첫 포문을 열었다.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사위가 되려는 청년을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냉소적인 표정을 담아 경고의 목소리로 답했다.

"내 딸이 주고 말고를 논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김진혁 중령?"

나는 황제다. 그리고 내 딸은 황태녀다. 어딜 감히 딸을 달라 그러나? 무엄한 자식. 그런 황제의 마음을 읽어낸 청년은 자신의 태도를 고쳐 다시한번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저를 따님에게 주십시오!"

"그건 김진혁 중령 자네 부모님이 결정하셔야 할 문제지. 날 폭군으로 만들 셈인가?"

"허면···."

"이럴 땐 말이야. 납작 엎드려서 이렇게 하면 돼."

아버지는 사위가 되려는 청년에게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죽여주십시오. 폐하.>

"......?!"

"애초에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말에 '저질렀다'는 표현은 왜 나온건가? 하마터면 내 소중한 심복에게 총알구멍을 낼 뻔했어."

"죄송합니다! 폐하!"

"귀엽긴···."

이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심복으로 삼은 것도 나고 내 딸내미 옆에 붙여놓은 것도 나다. 가만 놓고 보니 둘이 잘 어울리겠다 생각한 것 또한 나다. 그런 둘이 눈이 맞아 내 앞으로 왔으니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꺼이 허락하마."

"감사합니다! 폐하!"

"이럴 땐 장인어른이라고 하는거다. 진혁아."

"예! 장인어른!"

이연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 앞에 쭈그려앉아 말했다. 장인어른의 부드러운 손길이 사위의 어깨로 향하니 토닥토닥하여 진혁이에겐 황송하기만 하다.

"내 딸을 지켜줘서 고맙다. 진혁아.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넌 정말 이 아이를 위해 뭐든지 했구나."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도 날 위해서냐?"

그러자 진혁이는 옆에 꿇어있는 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충심이 아니라 사심입니다."

그러자 은서가 감동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진혁아···."

그런 그녀에게 진혁이의 고백이 시작됐다. 김종규 장관을 시작으로 복도에서 대화를 엿듣던 세사람까지 충격으로 몰고가는 폭탄선언이었다.

"전하는 부모님을 빼면 제 인생 모든것의 최초십니다. 사적인 대화를 나눠보는 최초의 여자였고, 처음 사귀어보는 친구였으며, 첫키스는 커녕 손잡아보는 것조차 처음이었죠."

"나랑 대화한게 처음이었어?"

"예. 여자대 남자로서 대화해본 게 인생 통틀어 처음입니다."

"그럼··· 정말로···."

"제 인생 모든것의 첫경험이셨죠."

그 이외에도 정말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진혁이의 머릿속에 떠오른 은서와의 추억들. 바나나를 먹던 것, 데이트를 하던것,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다방에 가는 것도 처음. 술친구조차 은서가 처음이었고 하다 못해 '눈싸움'을 하는 것조차 은서가 처음이었다.

"저는 왕따였으니까."

그는 왕따였으니까. 국민학교 시절부터 단 한번도 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지독하게 겉돌아 외롭게 지내던 소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투신자살까지 했던 소년은 기적적으로 살아나 황제와 공주를 만났다.

<내가 너의 편이 되어주마>

병문안을 온 황제 폐하가 건넨 위임장이 구원이었고, 그것이 고마워 인생을 바쳤으며, 뜻있는 애국자의 길을 알려주겠다는 폐하의 가르침을 따라 사관학교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갔던 소년은 거기서조차 인종 차별로 지독한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그렇게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보내 대한제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 친위대까지 들어온 청년은 나이 서른살. 황제 폐하와 삼자대면을 해 '딸(황태녀)을 제게 주십시오' 외치는 순간까지도 정말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

<진혁아~♥>

친구라는 건 어떻게 해야하는지, 연인이라는 건 어떻게 해야하는지, 대화로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 것도, 즐겁게 해주는 법도 몰라 한참을 고민해 각목처럼 서있던 소년은 고자가 아니라 모태솔로였던 것이다.

"전하는 제 인생 모든 것의 최초이십니다. 최초의 친구, 최초의 연인, 그리고 최초의 부부가 되고 싶습니다."

"고마워 진혁아···."

“최초로 끝나선 안되겠죠. 전하는 제 유일일 것이고 마지막이 될겁니다. 사랑은 첫사랑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래서 진혁이는 장인어른을 바라보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니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제 첫사랑을 당당하게 쟁취해야겠습니다."

사위될 녀석의 당돌한 선언에 황제는 피식 웃으며 기쁘게 말했다.

"패기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비밀을 하나 말해주마."

이연은 은서를 의식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 녀석도 처음이야.>

"아, 아버지?"

귓속말을 엿들은 딸의 경악. 그걸 무시한 채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버지의 고발.

<이 녀석 맨날 입버릇 처럼 이야기하지? 공부가 취미라고.>

"예, 폐하···."

<놀아줄 친구가 없어서 공부를 한거야.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오만해서 친구란 친구가 다 진절머리를 내며 떠났거든.>

"이건 모함이야! 어디서 거짓말을 해! 진혁이 너 이거 잘 생각해야한다? 너 이거 믿으면 우리 결혼생활 단단히 각오하는게 좋을거야!"

은서의 필사적인 부정에도 이연은 말했다.

"그럼 네가 아는 친구 이름 다섯명만 대봐라. 그럼 인정해주마."

"훈이 오빠랑 진희 언니랑··· 비서실 애들···."

우물쭈물 하는 황태녀는 기가 죽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불쌍한 녀석. 하지만 이젠 번듯한 친구가 생겼으니 아무래도 괜찮을테다. 이연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빠 미소를 지어 말했다.

"이 녀석이 있잖냐? 네 베스트 프렌드."

"아···."

"어정쩡한 친구 백 명보다 진짜 친구 한 명이 나은 법이야. 네 인생 평생의 동반자이기도 하니까 싸우지 말고, 서로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면서 어려운게 있으면 힘이 되어주고. 알았지?"

"응··· 아빠···."

딸내미 입에서 나오는 귀여운 두글자에 이연이 함박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월남에 보내달라는건 허락하마. 전권을 부여할테니까 가서 네 신념에 따라 행동해봐. 그걸로나마 네 마음이 좀 편해진다면 그렇게 해야지."

"고마워···."

"밑에 유능한 참모들 많으니까 그 사람들 의견에 귀 기울이고, 어려운게 있으면 언제든지 힘을 빌려. 사령관이나 황태녀로서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오면 네 마음에 물어보면 돼."

"내 마음?"

"군인으로서의 양심. 너라면 절대 나쁜 선택을 하지 않을테니까."

그것은 아버지이기에 앞서 노련한 전쟁영웅으로서 가진 그 남자의 안목이었다. 그녀라면 절대 국군의 역사에 수치가 될 일을 하지 않을 테니까.

<국군은 국민을 지킨다>

누구에게 배운건지 참 멋진 말이었다.

***

황태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간단한 파티가 열렸다. 3월 31일의 끝무렵. 9시가 훌쩍 넘어버린 칠흑같은 어둠의 덕수궁에서 마른 안주와 맥주 따위를 내오는 게 고작이었을 뿐인 그런 파티.

이연은 딸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성대한 잔치라도 벌이고 싶은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수가 없구나.”

“괜찮아. 충분히 행복한걸?”

"월남에 가기로 결심했으니 내일부턴 바쁠거야. 진혁이 부모님은 내가 잘 말씀드릴테니까, 월남에서 돌아오면 그 때 찾아뵙고 날짜도 잡아보자."

"응!"

하지만 이연은 마음 한 켠이 영 불편했다.

“축하 파티를 맥주랑 오징어로 떼우는 황제도 참··· 이런건 기록에 안남았으면 싶은데.”

하지만 이런것도 전부 대한제국 실록에 남을테다. 황태녀 전하의 결혼이 결정된 날 폐하는 맥주와 오징어로 파티를 여셨다고. 훗날의 역사가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안타깝게 볼까?

결혼도 그렇다. 마음 같아선 내일이라도 당장 날을 잡고 성대하게 열어주고 싶다. 하지만 상황은 '하루'를 내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나 바빴는지 이범석 총리조차 간단한 축하 인사만 올린 뒤 곧바로 돌아갔을 정도니까.

시시각각 악화되는 월남의 전황 속에서 수 만의 국민을 안전히 피난시키는 작전은 밤을 새워야 할만큼 촉박했던 것이다. 다낭의 함락이 그렇게 허망이 이뤄질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외교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술이라도 내와. 지금 당장 곧바로 준비할 수 있는걸로.>

그래서 비서실을 시켜 내온게 맥주와 오징어.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파티. 들러리랍시고 참석한 것도 비서실 직원이나 친위대 경호원 정도였을 뿐인 오밤중의 야식이었다.

그래도 일단 파티니까. 진혁이는 친위대의 정복으로 갈아입고 은서는 멋드러진 한복으로 갈아입혀놨다.

“축하드려요 전하!”

비서실의 직원들이 환한 미소로 은서에게 인사를 올렸다.

“고마워!”

은서도 어쩐지 찝찝했다. 황태녀이기 전에 군인이었고, 군인이면서도 참전용사다. 마시고 있는 맥주 한잔에서조차 월남전의 기억을 떠올려버린 군인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축하드립니다! 팀장님!>

월남전 시절 공수지구대 3팀이 생일파티를 벌인 적이 있었다.

<필요 없다니까 진짜···.>

자신의 부중대장인 이승필 중위에 이끌려 찾아온 정글 속 캠프에선 모닥불이 피어나고 있었고 부하들이 옹기종기 둘러 앉아 맥주병과 전투식량을 뜯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할 수 있는 ‘파티’라는 건 최대한도를 따져도 이정도가 고작이었다.

<오늘 생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전쟁터이긴 해도 해야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쁜 미소로 바라보는 박철민 상사에게 이은서 대위는 늘상 그랬던 것처럼 쌀쌀한 태도로 답했다.

<전쟁터에서 생일파티가 할 일이야? 베트콩들 쳐들어오면 어쩔려고 그래? 이럴 시간이 있으면 병사들 경계근무나 도와.>

<그래도 전우의 생일입니다.>

<전우 좋아하시네.>

그 시절 은서는 맥주병을 뺏어서 잔뜩 들이키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막사로 향했다.

그 시절은 전우라는걸 사귀고 싶지 않았던 어두운 시기였으니까. 부하들에게 무시당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상처받은 장교였고, 전쟁터에 버려졌다 생각한 공주였으며, 장렬하게 죽어서 아비 가슴에 대못을 박겠다는 한 맺힌 딸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은서는 한 평생 후회스럽게도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니들끼리 즐겨. 난 필요 없으니까.>

얼마나 속상했을까? 팀장님의 생일이란 말에 맥주와 안주를 구해와 파티 준비를 하던 부하들은 분명 전우였다. 전우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얼마나 큰 마음을 썼을지 은서는 이제야 깨닫고 만다.

무심하게 돌아가는 팀장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표정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30살의 이은서. 결혼을 앞두고 있는 황태녀는 그 시절의 자신을 원망하고 말았다. 그 때 녀석들이랑 생일 파티를 즐겼다면 어땠을까?

<고마워 얘들아!>

모닥불에 둘러 앉아 부하들의 생일 축하를 받는 팀장. 가슴 아팠던 전쟁의 기억들을 나누고 서로 위로해주며 토닥여주는 따뜻한 전우애. 끈끈한 우정으로 뭉친 공수지구대 3팀이 오진수의 특수부대를 상대했다면?

‘함께 싸웠더라면 우린 지금쯤 이 자리에서 함께 축하를 나누고 있었을까?’

은서는 덕수궁의 연회실에 열린 파티를 바라본다. 테이블의 한켠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대화를 나누는 군인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들은 자신과 함께 월남에서 싸웠던 공수지구대 3팀의 특전사들이었다.

<이야! 여기가 덕수궁이구나!>

<우리 팀장님이 공주님라더니 사실이었나봅니다!>

오진수의 특수부대를 멋지게 물리친 전우들. 모두가 함께 살아돌아온 공수지구대 3팀은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고 모두가 행복하게 팀장님의 결혼을 축하해줬다.

<축하합니다! 팀장님!!>

‘모두가 함께 살아돌아 올 수 있었겠지? 이 자리에서 내 결혼을 축하해주면서 마시는 맥주 한잔이 정말 시원했을거야.'

군인 한명이 자신에게 걸어온다. 빳빳한 원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부사관 중의 최고 선임자. 자신의 부하이자 특전사 최고의 정예 요원이었던 박철민 원사.

<다시한번 결혼 축하드립니다. 팀장님.>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그 전우는 자신의 팀장이자 대한제국 황태녀에게 술을 권했다.

<아시죠? 원샷.>

<원샷!>

이까짓 술 한잔 까짓거 다 마셔주지. 참전용사의 결연한 각오로 벌컥벌컥 들이키는 술 한잔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황태녀의 축하 파티는 엉망이 될테니까. 공수지구대 3팀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누가누가 술 잘마시나 씨름을 벌이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끝이 없을테다.

'내가 제일 잘 마실걸?'

하지만 그런 기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었던 불가능한 기억이 머릿속에 고장을 일으켜 꿈처럼 사라져갔다.

맥주를 마시며 들러리를 서는 덕수궁의 직원들. 옆에 둘러 앉아 자신들을 불쌍하게 쳐다보는 아버지, 진혁이, 진희 언니와 훈이 오빠의 시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너 부하들 생각하지?”

은서의 후회를 깨부수는 그 남자의 목소리는 김훈 중령. 공수지구대 3팀 시절 자신의 선임이었던 마지막 전우였다.

“어떻게 알았어?”

“이 자리에서 부하들 축하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상상하는 표정이 얼굴에 훤히 드러나는구만 뭐.”

“......”

“힘내. 육신은 함께하지 못해도 영혼 만큼은 함께하고 있을거야.”

“그럴까?”

“분명.”

무덤 속에 자고 있던 부하들이 현충원에서부터 따라와 영혼의 축하를 보내는 모습이 상상되고 만다.

<울지 마십쇼 팀장님!>

환청처럼 들려오는 박철민 원사의 목소리가 은서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럴리 없지만 그랬으면 좋겠어서 은서는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얘들아···.'

진희 언니가 비어있는 술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돌아가신 전우님들을 생각하셔서라도 힘내셔야죠. 행복하게!”

“그치?”

“우리 울보 공주님. 뚝!”

“이 씨··· 내가 나이가 몇인데···.”

그 때 예상치 못한 남자가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정중한 양복 차림으로 무릎꿇어 가위를 바치는 중년 남자의 모습.

대한제국 친위대의 초대 대장. 이연의 오른팔이었고 지금은 국방부장관을 하고 있는 김종규 장관이었다.

“장관님?”

“바빠도 사과 만큼은 제대로 드려야 할 거 같았습니다.”

“사과요?”

“이 가위로 전하의 머리카락을 잘랐었죠. 그리곤 사관학교로 보내서 모질게 괴롭히고, 그것도 모자라 월남전에 보내고. 고생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그 때의 행동이 후회돼 도저히 버릴 재간이 안났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제가 아직 원망스러우시다면 이 가위로 제 머리카락을 자르셔도 좋습니다. 복수를 원하시면 부디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어떻게 장관님의 머리카락을 잘라요!”

하지만 김종규 장관은 죄책감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전 공주님의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아녜요. 괜찮으니까 부디···.”

그러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군대로 던져버렸던 문제의 가위가 자신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 가위요. 철로 만든거죠?”

“예, 강철로 만든 평범한 미용 가위입니다만···.”

“원망하는 셈 치고 벌을 드리죠.”

“무엇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대한제국 황태녀 이은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국방부장관에게 어명을 내렸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결혼을 하면 비녀를 꽂았었죠?”

“예, 분명···.”

“이 가위를 녹여서 제가 쓸 비녀를 만들어오세요. 그럼 용서해드릴게요.”

“네, 알겠··· 예???”

은서는 기쁜 마음으로 설레이는 표정을 담아 장관님께 말했다.

“결혼 축하선물. 왕관 처럼 끼고 다닐 황태녀의 비녀. 이 가위로 할거니까요.”

“아니, 어떻게 가위를 녹여 비녀를···.”

“황태녀의 품격에 맞는 최고의 비녀. 기대해도 되겠죠? 장.관.님?”

작전명 동백. 황태녀의 결혼 선물을 위한 국방부의 비밀 프로젝트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위를 녹여서 대한제국 황태녀의 품격에 맞는 최고급 비녀를 만들어야 한다. 최고의 품질과 최고의 멋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장관의 의지에 담겼다.

은서의 3월 31일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4월 1일부터는 바빠질 것이다. 교민들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서 즉각적인 작전에 돌입해야 하니까.

그렇게 결전의 날이 밝았다.

Ep.1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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