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79화 (79/131)

〈 79화 〉 Ep9. 중앙정보부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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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59분 59초였다.

마른하늘에 친 날벼락이 이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승리의 기쁨도 안심도 없었던 5월 6일, 경호에 허점이 있었다면 황제 폐하가 암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게 충격이었던 비서실장 이화는 이렇게 말했다.

"비서실장 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괘종시계에서 묵직한 종소리가 울린다. 집무실에서 산삼이 들어간 삼계탕으로 점심 수라를 떼우고, 식후의 담배를 즐기던 황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들은건가?"

"들으신 게 맞습니다. 비서실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습니다."

"대체 왜? 경호작전을 성공시킨 총책임자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물러나겠다는 거야?"

"잘못해서 사직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이화는 살기를 담아 황제에게 말했다.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오기 위함입니다."

"......?!"

이화는 어제 밤 중앙정보부의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보고했다. 체포한 적군파 대원들을 심문한 결과 폐하를 암살하려던 게 맞았지만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언제부터 준비한 작전인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고문을 했나?"

"중요한 정보는 이미 얻었습니다. 고문을 하든 말든 그런건 김부장이 알아서 판단하겠죠."

"무슨 정보?"

"의지입니다. 달래고 협박하고 으름장을 놔도 입을 열지 않는 놈들의 의지를 통해 대한제국을 전복시키려는 야망의 열기를 느꼈으니까요."

"그래서 놈들의 수괴인 김일성 모가지를 따오겠다고? 자네가 직접? 부하를 시키지 않고 왜?"

"김일성 찾겠다고 보낸 요원이 일곱입니다. 그 중 여섯명이 죽었는데 중정에서 엄선한 블랙 요원들이었죠."

"나머지 한 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집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블랙요원이 무슨 뜻이고 어떤 운명을 지녔는지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비밀이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을 남길 수 없는 영웅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아래 기꺼이 나선 이들.

"포로가 됐을 가능성이 높겠군···."

"충성심이 깊은 친구였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조국의 이름을 대지 않을테죠."

"가족은 있나?"

"없습니다. 국가가 집이고 가족인 녀석들입니다."

"......"

"중국의 첩보력만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련의 KGB까지 관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련 놈들까지 김일성을 비호한다고?"

"요원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소련이 지켜준다 해도 반드시 작전을 완수할겁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가고자 하니 사직을 허락해주십시오."

"왜 하필 이 실장이어야 하나?"

이화는 덤덤하게 말했다.

"전 그들을 사지로 보낸 총책임자입니다. 킴 필비 사건을 아시는지요?"

"킴 필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MI6 요원이 소련의 간첩으로 밝혀진 사건입니다. 기관 내에서도 소련을 상대하는 중요 요직을 맡아서 신임 국장으로 유력시 되던 인물이었죠."

"영국 첩보 기관의 수장 자리가 소련 스파이에게 넘어갈 뻔했다?"

"예. 미국 CIA까지 완전히 속아서 서방 진영의 첩보망이 줄줄이 뚫린 첩보계의 대참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멍청이들인가?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해? 우리로 비유하자면 김재필이가 소련군 스파이라는 거 아니야?”

영국과 미국이 줄줄이 속아넘어간 이유에 대해서 이화는 정말 간단하게 단 한줄로 요약해서 황제를 납득시켰다.

“금수저니까요. 영국 상류층 출신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은 특권층. 그런 작자가 공산주의자일 거라곤 누구도 상상 못했을 겁니다.”

“출신 때문에 의심을 못했다는거군?”

“63년에 소련으로 망명해서 직접 밝히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을 정도니까요.”

“아무튼 결국. 자네 말인 즉. 소련의 첩보 능력이 그정도라는 거 아니야? 영국 상류층을 포섭해서 공산당 스파이로 만들 정도의 능력.”

“저희도 한번 당했었죠. 월남전에서 월맹에 협력한 기갑연대 작전참모. 군생활 경력이 10년이 넘은 영관급 장교였는데 소련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침투력입니다."

"그걸 잡아낸 덕에 자네가 중정의 실세로 군림할 수 있었지. 내가 그건 인정해주겠어."

"네. 그래서 제가 가야합니다. 중정은 KGB를 이길 수 없으니 최고중의 최고가 가야죠. 제가 직접 가서 김일성을 암살한 다음에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이화의 분노에 이연이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 실장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인 거 같아."

"그 놈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입니다. 지금도 중국 땅에 망명해서 조선노동당을 이끌고 간첩을 보내고 있죠. 폐하까지 암살하려 했는데 죽일 이유가 차고 넘칩니다."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했다.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잘 들어봐. 나는 어제 자네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

이화는 단호히 말했다.

"폐하는 조선황실 역사상 최고의 자질을 갖추신 분이죠.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쓰시는 능력. 그 용병술로 저를 봐주십시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내 비서실장이 잘 어울리는 인물이지."

"폐하!"

이연이 냉정하게 말했다.

"사심이 아니야. 객관적으로 내 감각에 따라 판단했을 때 안된다고 하는거야."

"저는 폐하께서 직접 키우신 인재입니다.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주셨고, 밑바닥부터 요원 생활을 해서 스스로 제1차장 자리를 달았죠. 제가 바로 적임자입니다."

"이 실장 자네의 요원 시절은 주먹구구식이었어. 대한제국의 옛날은 가난했고 뭐든지 처음 해보는 신생 국가였으니까. 그나마 자네가 유학이라도 다녀왔으니까 뭔가 해볼 수 있었던 거지."

"주먹구구식이었던 중정을 체계적으로 뜯어고친 건 제 작품입니다."

"그래, 그렇게 해서 현대식 프로그램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시킨 정예 요원이잖아? 현역 요원인 그들조차 살아남지 못했는데 은퇴한 자네가 가겠다는건가?"

"전 그들의 선배입니다. 그들이 갖지 못한 노련함과 현장의 감각이란 게 있습니다."

"하지만 익명성이 떨어지지. 중정 1차장 시절부터 외부에 너무 많이 노출됐어. 본명은 몰라도 얼굴은 천하가 알텐데 어떻게 스파이 노릇을 하겠다는건가?"

"그건···."

"백번 양보해서 김일성이 자네를 모른다고 치지. 하지만 오랜 사무직 생활로 무뎌진 몸과 감각은 예전만 못할거야."

"전 아직···."

'1927년생 올해로 마흔여덟 본명은 최···."

"폐하!"

이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20대처럼 살라고 해서 진짜 20대로 착각하면 안돼. 그건 외모와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지 작전을 20대처럼 뛰라는 말이 아니란 말이야."

이연씨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인 이화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정 김일성 모가지가 따고 싶거든 최고의 작전을 가져와. 황제인 내가 책임지고 밀어줄테니까."

그리고 말했다.

"그리고 잠을 그렇게 자서야 어떻게 20대 처럼 살겠나?"

"......?"

고개를 갸웃하는 이화의 모습에 이연이 재차 강조하여 말했다.

"저녁 9시에 자서 4시에 출근한다고? 그래놓고 다시 17시간을 근무한다는건가?"

"그야···."

"분명히 말했지? 내가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건 군인이라 습관이 된거라고."

"전 폐하의···."

"난 분명히 말했어. 나보다 늦게 일어나도 된다고. 아침 수라상도 당직이 가져오면 될 일이지 자네 때문에 제1비서관 밑으로 모든 비서실 직원이 새벽부터 고생중이잖아? 이게 뭐하는 짓이냔 말이야."

"......"

"그래놓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 덕수궁은 블랙기업이다. 이연은 악덕 상사다."

"......?!"

"내가 회장이면 너도 부회장쯤 되는거야. 비서실의 총책임자가 4시에 일어나기 시작하면 밑에 직원도 4시에 일어나야겠지."

"그건···."

이연이 살벌한 눈빛으로 이화를 몰아붙였다.

"내가 악덕상사면 너도 악덕상사야. 악덕의 악덕이 줄줄이 타고 내려가는거지. 그러니 모든 책임을 내게 뒤집어 씌우는 짓은 그만두고 먼저 모범을 보여봐. 9시에 출근해."

결국 악덕상사의 부하는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오겠다는 결심을 접어야 했다. 덕수궁 비서진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업무를 준비하는 짓도 모두 자기 책임으로 뒤집어 쓴 비서실장은 전 직원의 출근 시간과 당직 스케줄을 재조정해야 했다.

그것은 언젠가 이화의 집무실에 들렸다가 발견한 수면제에서 시작된 이야기. 이연의 걱정어린 진심이었다.

***

그래서 결국 이화가 한 것은 북파공작원을 꾸리는 일이었다.

전권을 위임받은 이화는 국방부장관 김종규를 시작으로 친위대장 차지연까지 전화를 돌려 이렇게 말했다.

<중앙정보부 휘하로 특수부대를 창설코자 하니 지원을 요청합니다. 성적이 제일로 우수한 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중요한 조건 한가지를 덧붙인다. 이화로부터 전화를 받은 김종규 장관이 식은 땀을 흘리게 할 정도로 살벌한 조건이었다.

[부대 전입과 동시에 사망처리 될거에요. 가족들도 그들이 죽은 걸로 알겁니다. 진행하는 모든 작전은 영원히 국가1급비밀로 분류될거고 해당 작전의 존재는 공식적으로 부정될겁니다. 성공해도 영웅이 될 수 없고 생포되면 존재가 부정되어 구조를 바랄 수 없을테니 이 점을 분명히 강조해주세요.]

“그건 너무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지원자만 받으려고 하는겁니다.]

"암살 임무 같은건 특임대에 줘도 되잖아? 중정에서 직접 무장병력을 거느리겠다는 건 무슨 소리야?"

[특임대는 공식적으로 대테러부대죠. 지금 만들 부대는 블랙옵스(Black Ops)라고 부르는 흑색작전의 전담팀이에요.]

"그래서 기밀유지가 생명이니 중정이 직접 관할하겠다?"

[예. 그들로 중국으로 도망친 조선노동당 1호를 암살할겁니다.]

결국 김종규 장관은 이화의 요청을 승인해줬다. 김일성을 암살할 결사대를 만들겠다는데, 황제가 용인한 그녀의 분노를 누가 말릴까?

아무튼 그래서 김종규 장관은 장군들과 함께 후보군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엔 많은 종류의 특수부대가 있었다. 이화의 요청에 따라 최고의 요원만을 엄선할 생각이다.

그 전에 전화부터 한 통 돌린다. 특임대는 친위대 소속인데 얘네들은 황제 폐하의 명령만 받는다. 그래서 김종규만의 특별한 힘이 필요했다.

"나 김종규인데 차지연이 바꿔."

덕수궁 친위대장실에 전화를 건 김종규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그것은 수행비서로 추정되는 놈의 목소리.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직접 덕수궁에 오라고 하십니다.]

김종규가 핏대를 세우며 대꾸했다.

"야 임마! 내가 전임 친위대장이야! 선배님이 부르시는데 감히 뭐 어쩌고 어째?"

권력의 관계는 제도만으로 정의되지 않는 법. 어린노무 자식이 선배님이 부르시면 바로 튀어와 인사를 올려야지 어딜 거만을 떨고있나?

[예, 차지연입니다.]

"너 많이 컸다?"

[서, 선배님?!]

"너 그 자리에 꽂아준 것도 나라는 걸 잊은건 아니겠지?"

[하오나 전 지금 친위대장으로···.]

"잔말 말고. 너 비서실장한테 부탁받은거 있지? 그것 때문이니까 당장 국방부로 튀어와."

[아무리 그래도 국방부장관이 친위대장을 오라가라 하는 건 좀···.]

"너 말고도 친위대장 할 사람 많아. 폐하께서 누구 말을 들어주실 거 같나?"

결국 선후배 관계로 찍어눌린 차지연은 지프차를 타고 '친위대 선배'인 김종규에게 달려왔다. '누가 더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실력자인지' 겨루는 둘만의 신경전이 고작 전화 한통으로 끝난 것이다.

대한제국 친위대 특수임무대대는 대테러작전부터 특수경호, 요인 암살까지 다재다능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예 요원들이다.

차지연을 국방부로 부른 김종규는 명단을 훑어보며 이렇게 말했다.

"특임대에 유 대위랑 서 중사 있지? 걔네들 튀어 오라 그래."

전직 친위대장 김종규는 아직도 특임대의 내부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유대위는 소령으로 진급하고 서중사는 상사로 진급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들은 김종규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최고의 엘리트 요원이었으니까. 그걸로 모자라 다섯 명의 요원을 추가로 불러 은밀하게 면담을 실시했다.

김종규는 특임대 다음으로 특전사를 치고 있다. 검은베레를 상징처럼 쓰고 다니는 특수부대로 월남에서도 큰 활약을 했다. 황태녀 전하가 복무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특수부대는 해군에도 있다. 해안정찰, 첩보, 장애물 제거, 기뢰를 탐색하는 것부터 수중폭파까지 해군을 위한 모든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UDT' 부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해양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는 강인한 남자들의 해난구조대 ‘SSU’.

공군도 특수부대가 있다. 아군 전투기가 적진 한복판에 떨어져도 파일럿 만큼은 반드시 구조해오는 강인한 독수리들의 'SART’, 적진까지 파고들어 폭격 유도를 하고 돌아오는 겁없는 사나이들의 공정통제사 'CCT’가 김종규의 연락을 받아 요원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존재 자체가 특수부대나 다름없는 군대가 있었다.

大韓帝國 海兵隊

대한제국 해병대

'귀신잡는 해병대'로 불리는 그들이 김종규의 연락을 받았다. 해병대는 1945년 8월 23일 창설됐는데 이는 대한제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의 일이다.

황태자 시절 이연이 미해병대 출신이라는 경험을 살려 창설한 사병조직 '조선해병단'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지금도 초대 사령관으로 황제 폐하의 사진을 역사로 모시고 있다. 총사령관은 4성장군. 해군에서 독립된 편제다.

자타공인 제2의 친위대.

황제가 된 선배님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그들중에서 단 1%만을 선발하는 정예 특수부대가 있는데 이름하여 '해병수색대'이다.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전에 적진에 침투하여 정찰을 하거나 비밀 타격 임무를 수행한다.

<대한제국 친위대는 60년 이후에 만들어진 근본없는 짝퉁일 뿐이지. 우리야말로 진짜 친위대인데 체면이 있지 않겠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해병대 사령관(4성장군)의 결의가 전화로 이어지니, 자존심 넘치는 바다사나이들이 제일로 많은 요원을 보냈다.

이 외에도 많은 부대가 있었다. 존재 자체가 비밀에 가까운 수 많은 특수부대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을 찾아 보내니 그들 모두가 인천 앞바다 어느 한 외딴 섬에 모였다.

실미도.

부대번호 684. 김일성 암살을 목적으로 각군 최고의 정예 요원만 모집받은 31명의 북파공작부대가 중앙정보부 휘하로 창설되는 순간이었다.

일반인이나 강제로 들어온 사람은 없다. 죄수는 더더욱 없다. 이화는 김재필 부장과 함께 실미도 훈련장까지 날아와 부대원들을 모아두고 분명히 강조하여 말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웅으로 불릴 수 없을겁니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러면서도 최고의 보상을 약속했다. 김일성을 암살하려면 최고의 사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한다면 원하는 사람에게 황제가 최고의 보상을 지급할 것이다.

그들은 별도의 지옥훈련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최고중의 최고였으니까.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화끈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사나이 기백들이 모여서 가벼운 몸풀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격이 시작됐고 첫 훈련부터 백발백중이 쏟아졌다. 국방부의 신상명세서에 위조된 사망자가 급증했다.

***

혁명가의 저녁날. 별빛이 빛나는 오사카의 변두리에서 오진수는 여전히 조선인 청년을 만나고 있었다. 그에게 달콤한 속삭임을 담아 혁명의 정신을 주입하는 데 성공해서 사격장까지 데려왔다.

<너에게 영웅이 될 기회를 주마. 그들이 속삭이는 거짓된 영웅이 아니라 조선인들을 위한 진짜 영웅이 되는거야.>

손실도 있었다. 오진수에게 5월 5일의 참사가 전달됐다.

"조직이 와해됐다고?"

보고를 올리는 다른 사내가 답했다.

"예. 중앙정보부가 깔아놓은 그물망에 걸린 모양입니다. 남아있는 애들을 안가로 피신시키긴 했는데 그 숫자도 얼마 안되는지라···."

착잡한 마음으로 담뱃불을 붙이는 그 혁명가의 얼굴에 쓰라린 기색이 번졌다.

"복수를 하려 들겠군. 덕수궁이 단단히 화가 났겠어."

"총비서 동지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 애들이 알아서 지켜주겠지. 모택동 동지의 총애를 받는 분 아닌가?"

"대한제국이 복수를 준비할겁니다. 요원들을 활용한 암살은 그동안 계속 실패했으니 외부에서의 공격을 준비하겠죠. 분명 참수부대일겁니다."

"그것 참 요란하기도 하군."

오진수는 사격장에 있는 문세광을 쳐다보았다. 적군파 요원이 코치해주는 권총사격은 다섯발 중 세발을 맞출 정도로 실력이 올라왔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야수의 심정으로 쏘는 한 발의 총탄이면 충분한데 말이야."

대한제국과 적군파.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노리는 그림자 속 사투가 각자의 방법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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