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70화 (70/131)

〈 70화 〉 Ep8. 한국식 입헌군주제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독립신문에 광고가 끊긴지 2달이 지났다. 젊은 기자들의 언론자유 운동이 시작된 게 1월 초였는데 그 때부터 줄곧 기업들이 독립신문에 광고를 주지 않아 현재까지도 백지광고를 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문사 사장은 회의실에 간부들을 불러모아 대책 회의를 했다.

“광고주들이 광고를 끊은지 2개월째인데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잖아? 어쩔거야 이거?”

그러자 간부 한명이 말했다.

“수익의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하던 탓에 상황이 어렵습니다. 월급은 매번 나가는데 계속 적자만 기록하고 있으니 이대론 다 굶어죽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하자고?”

“그냥 잘라버리시죠. 광고주들이 광고 안주는 거 이유가 뻔하지 않습니까?”

“......”

"결단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결국 신문사 사장은 결단을 내렸다. 3월 8일, 시국선언에 참가했던 청년 기자들이 대거 해고됐다. 기자들이 당일 출근했을 땐 자리에 책상이 없었다.

“뭐야? 내 책상 어디갔어?”

그러자 직장 상사가 면목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설마 지금 해고된겁니까? 시국선언에 참가했다고?”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 직원들과 사무실의 분위기가 싸늘했다.

"이게 말이 돼요?"

"......"

자신의 싸움을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던 동료들이 차갑게 배신하는걸 느꼈을 때 젊은 기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왜 이래? 다들 언론의 자유를 원했잖아! 기자로서의 사명감은 어디로 사라진거야? 언제는 힘내라며 응원해주더니 정리해고 한다니까 못본척 외면하는거야? 니들이 그러고도 기자야?!"

같은 시각 제국신문이나 황성신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리해고를 거부하며 꿋꿋이 사무실에 남아 투쟁하던 기자들이 경비원과 옛 동료들의 손에 붙들려 사무실 밖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거 놔! 씨발!”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권력도 아니고 같은 동료가 배신을 하다니! 얼마 먹었냐? 얼마 먹었냐고 이 씨발 새끼들아!!!"

신문사 밖으로 던져지는 기자들의 표정에 분노보다 당황이 서려있었다. 군대도 중앙정보부도 아니다. 동료 기자들과 경비원들에 붙들려 정의롭고 사명감 넘치던 청년 기자들이 쫓겨나고 있었다.

버려진 길거리에서 허망한 표정을 짓는 기자가 말했다.

"차라리 군대를 보내 씨발···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같은 기자가 동료 등에 칼을 꽂아? 언론의 자유! 시민의 눈과 귀! 그런 사명감들은 어디로 팔아먹고 돈의 노예가 된거냐고···."

그리고 다음날. 3월 9일자 신문엔 핵발전소를 배경으로 찍힌 황제와 황태녀의 사진이 1면에 실려있었다.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하여 직원들을 격려하는 황제 폐하와 황태녀 전하. - 독립신문>

<석유 위기 앞에서도 굳건한 대한제국의 전력산업. 황실과 내각의 혜안이 빛을 발하다. - 제국신문>

<바다로 나아가는 대한제국의 경제! 26만톤급 유조선의 진수식 현장 - 황성신문>

신문 3사가 모두 황실의 소식을 1면으로 내세우며 항복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러자 다음 날 3월 10일엔 광고주들이 광고를 넣어 언론이 '정상화' 되었다.  이런 '정상화' 작업에서 '정상화' 되어버린 기자들이 대략 57명.

장준호의 시국선언 이래로 촉발된 언론 자유 운동은 고작 2개월만에 반격당하며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대학가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를 시작으로 서울 전역 29개 대학에 일제히 경찰이 들이닥쳐 학생회를 압수수색한 것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비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학생을 뒤로하고 경찰들은 각종 집기와 책상 서랍, 책꽂이 등을 뒤져가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고, 증거가 되겠다 싶으면 가차없이 상자에 담아 경찰차로 가져가고 있었다.

몇몇은 체포당하기도 했다.

“이거 놔요!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래?”

“닥치고 따라나와!”

이렇게 압송당하는 학생들은 자기가 뭔 죄를 졌는지도 듣지 못한 채로 수갑이 채워졌고 경찰차로 우겨지듯 쳐박혔는데, 학생들을 걱정하는 교수가 달려나와 경찰의 멱살을 붙잡고 항의하듯 따져물었다.

“대체 우리 학생들을 데려가는 이유가 뭡니까!”

경찰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국가기밀입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 수사하는 거니까 방해하시면 공무집행방해죄로 끝나지 않을겁니다."

"국가기밀? 무슨 놈의 기밀이 죄없는 대학생들을 잡아가는거야!"

"교수님도 조만간 소환장이 날아갈겁니다. 잠자코 기다렸다가 부르면 출석하시죠."

그렇게 돌아가는 경찰차엔 수갑이 채워진 학생과 압수수색된 등사기, 그리고 전태일의 편지가 300장 넘게 실려 있었다.

***

일련의 사건은 언론에 조금도 보도되지 않았다. 신문사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돌아와 정중하게 보도자제 요청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다른 나라 정보부에 안걸릴리 없다. 대한제국 곳곳엔 미국 CIA가 첩보망을 깔아놓고 있었는데,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한국지부장이 미국대사관에 찾아와 정보를 공유했다.

“대학생들이 대거 체포되었다구요?”

대사의 물음에 CIA 한국지부장이 답했다.

"예. 중앙정보부에서 모종의 이유로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도중에 경찰로 이관이 됐다고 합니다. 넘어온 증거물이나 신고사유, 수사 진행 속도를 고려해보면 황실에서 사주한게 분명합니다."

“설마 그 국가보안법인가 뭔가 하는겁니까?”

"예. 이번에 대학생들이 유인물을 만들어서 황실이 다니는 곳곳에 뿌리려는 시도를 했다는군요. 경찰에선 이걸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보는 분위기입니다."

“대체 무슨 내용의 유인물이길래···.”

그러자 CIA 한국지부장이 편지 한장을 넘겼다. 경찰로부터 빼돌린 증거품의 사본이었다.

-----------

3월 17일. 이 편지가 황태녀 전하께 무사히 전달되어 평화시장에서 알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974. 1. 1. 전태일 올림.

-----------

그걸 천천히 읽어본 미국대사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우리가 나설 문제가 아닌 거 같군요."

"좀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만약 중앙정보부에서 조작한 거면 어떻게 합니까? 기자들과 학생들을 엮어서 모조리 날려버리면···."

하지만 CIA 한국지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서 등사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편지도 수백장이 나온걸 보면 일단 학생들이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는 건 분명해보입니다."

"......"

"한가지 이상한게 있긴 합니다. 굳이 중정이 수사하다가 경찰로 사건이 이관됐다는 부분이죠."

"그게 이상합니까?"

"대한제국의 중앙정보부는 국내와 국외 정보를 모두 총괄하고 독자적인 수사권도 갖고 있는 초법적 기관입니다."

"그런데요?"

"은밀하게 구린 짓을 하기 좋은 기관이거든요. 제가 황실이었다면 중정 선에서 해결했지 경찰에 맡기진 않았을겁니다."

"......"

CIA 한국지부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이 편지를 있는 그대로 볼지, 아니면 공산주의자의 소행으로 몰아넣을지는 한국인의 관점에 달렸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논란이 될테니 저희는 중립을 지키는게 상책이라 봅니다."

“하아···.”

그러자 미국대사는 깊은 한숨을 쉬며 편지를 덮어버렸다. 그런 그를 보며 CIA 지부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대한제국 황실은 우리 영향권에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어찌 되건 미국의 국익에 해가 되지는 않을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국 대사가 물었다.

“하지만 황태녀는 솔직히 좀 모르겠는데요?”

“정치성향 말씀이십니까?”

"제가 보기엔 민족주의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매일같이 한복을 즐겨입고, 전통음악을 연주하며, 붓으로 그림 그리기 같은걸 좋아하니 민족주의자에 가깝지 않을런지?"

그러자 CIA 한국지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미국의 편으로 싸웠습니다. 그녀는 친미주의자가 맞을겁니다."

“하지만 반전주의자 같던데?”

"CIA는 공주가 베트남에 파견됐을 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얼마나? 누구로?”

“그린베레(Green Beret). 그녀가 베트남전에서 싸우던 시절 우리측 특수부대와 합동작전을 펼치는 일이 많았죠."

그것은 그 백인이 옛날에 했던 공작. 은서를 친미주의자로 만들기 위해 미국군 장교를 통해 했던 립서비스.

<이 소위는 영어도 잘하고 전투 감각도 뛰어난데. 현지인의 생각까지 꿰고있네요. 덕분에 베트콩을 찾는게 수월했어요. 이참에 우리팀으로 오지 않을래요?>

<와! 진짜요? 당신들 그린베레잖아요! 특수부대의 원조!>

<당신이라면 충분히 그린베레의 자격이 있는걸요?>

그 때의 일화를 설명들은 미국대사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린베레로 대한제국 공주를 감시하고 있었다구요? 베트남전에 가있었다는 건 군부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던데요?"

"말했잖습니까? 황실은 우리 영향권이라고. 그들은 저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곤 회심의 미소를 지어 말했다.

"그녀가 우리에게 받아먹은 게 얼마나 많았는데요. 초콜릿이나 전투식량 같은 사소한 것부터 포격 지원까지. 기브 앤 테이크라고. 받아먹은 만큼 또 얼마나 잘 싸웠는지 보고서 만으론 모르실겁니다."

"베트남전에서부터 암암리에 공주를 친미주의자로 키워냈다고?"

용건이 끝난 CIA 한국지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잡지랑 옷이나 좀 선물해주시죠. 데이트 할 때 입는 옷 찾는다며 뺀질나게 백화점을 드나들던데, 미국 문화도 분명 좋아하실겁니다."

CIA는 확신하고 있었다. 대한제국 황태녀, Korean Crown Princess는 친미주의자다.

"경친왕이 탈락한 지금. 미국의 국익을 대변할 최고의 후보죠."

***

어느 날.

호텔 이화에서 10명의 대기업 부사장들이 VIP룸에 모여 고급 한식을 즐기고 있었다. 가야금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만찬자리에서 자동차 회사 부사장이 물었다.

“이번에 광고를 다시 넣으셨다고?”

전자 회사 부사장이 답했다.

“뭐, 기사 내는 거 보니까 나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 때 마지막으로 찾아온 VIP가 있었다. 덕수궁 경제수석을 맡고 있는 최 수석이었다.

“아이고! 이거 늦었습니다!”

부사장들이 웃으며 맞이했다.

“허허허 늦다뇨? 저희가 빨리 온건데요! 하하하!”

두 명의 부사장이 단란하게 이야기 하는것을 본 최 수석이 흥미를 갖고 물었다.

“무슨 대화를 재밌게 나누고 계셨습니까?”

전자회사 부사장이 답했다.

“이번에 신문 보셨습니까? 녀석들이 완전히 꼬리를 내렸더랬지요!”

“아 그거요?”

독립신문의 백지광고 사태를 떠올린 최 수석이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그것 때문에 황실이 여간 피곤한 게 아닙니다. 비서실장님도 허구한 날 불려가 청문회장의 방패 노릇을 하고 계시구요.”

하지만 전자회사 부사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 황실은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 사정으로 광고비를 아끼는 것 뿐인데요. 이건 자본 사회에서 늘상 있는 일입니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신문사에 광고 줄지 말지는 기업인들의 자유입니다. 저희가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보여드리는 성의니까 충심으로 생각해주십시오."

부사장의 깍뜻한 인사를 받으며 최 수석은 조용히 술잔을 들이켰다.

“어쨌든 내년도 예산안은 국방예산이 대폭 감소된 채로 짜여질겁니다.”

“그만큼 경제에 투자되는 예산은 늘어나겠군요?”

"황제 폐하께서 경제에 각별히 신경쓰라는 황명을 내리셨습니다. 결심이 세워졌으니 이제 저희들의 할일을 꿋꿋이 하면 되겠지요."

최 수석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10명의 대표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화학, 건설까지.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주시면 황실과 내각이 책임지고 여러분들을 밀어드릴 겁니다. 예산이면 예산 법안이면 법안. 이 나라는 황제 폐하의 권력으로 움직이는 대한제국이니까요."

“황제 폐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회장님도 크게 기뻐하고 계십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대표자들도 마음속으로 같은 소리를 했다. 그들에게 황실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뒷배경이었다. 황제가 직접 나라를 통치하는 독재국가라 막강했고, 세습직 권력인데다 영웅이라는 정통성을 갖춰 민중의 지지를 받으니 안정적이다.

그런 황실에게 무수한 은혜를 받으며, 기업들은 언론장악으로 보답해주고 있었다. 황실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광고를 끊어 압박했고, 좋은 목소리를 내주면 광고를 몰아주었다.

신문의 판매 대금보다 광고 수익이 높으니 신문사들은 저마다 기업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신민당은 중앙정보부라는 표면적인 권력에 속아 언론 장악을 군부독재로 오인하고 있었다. 중정은 지시만 할뿐 보복한 적 없다. 기업이 알아서 했을뿐.

그렇게 정경유착이 이어지는 자본 시장의 그림자 속에서도 자기들만의 대의가 검은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최수석은 말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언론을 두고 쓰이는 격언이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경제 전쟁에서 싸우는 우리들의 펜촉이야 말로 총구보다 예리한 무기라 생각하니까요.”

그리곤 옆자리에 앉아있는 부사장이 따라주는 술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산주의는 실패할겁니다. 소련은 내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해 자멸할 것이고, 중국도 발전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죠. 우린 일본만 꺾으면 됩니다. 놈들은 패전국이라 동남아 국가부터 우리나라까지 막대한 배상금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군대까지 갖춰야 하니 재정부담이 날로 심해지겠죠. 심지어 석유파동입니다. 해볼만한 상대가 된겁니다."

그리곤 잔을 들어 모두에게 말했다.

"저는 돈으로 애국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40년대 한국은 총으로 독립운동을 했고, 50년대는 탱크로 내전을 이겼죠. 60년대부터는 돈으로 경제전쟁을 하고있습니다.

우린 대한제국을 거대한 금융 제국으로 만들거고, 그 때면 이 나라는 독립운동가도 한국전쟁의 영웅도 아닌 바로 우리들. 경제의 주역이 영웅으로 불리겠죠. 이런 뜻깊은 기회를 선물해주신 분을 위해 건배합시다.”

최 수석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위하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