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67화 (67/131)

〈 67화 〉 Ep8. 한국식 입헌군주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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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에 백지광고가 걸렸다.

언론을 장악하려는 황실과 이에 맞서는 신민당, 기자들의 전면전이 시작됐다.

이쯤에서 대한제국의 언론 역사를 살펴보자. 모든 것은 1960년 5월 16일 이연의 친위쿠데타를 기준으로 한다. 그 이전과 이후의 기성언론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1920년 일제강점기 시절 창간되었던 신문사는 처음엔 민족지였다. 조선인들이 주도하여 조선말로 쓰는 신문은 자연스럽게 조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식민탄압에 맞서는 긍지높은 기자들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일제 치하에서 친일파들의 영향을 받아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신년사>

<모두가 화합하는 큰 길에 일본과 조선은 한몸으로써 사변 목적 달성에 어긋남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 중일전쟁 2주년>

조선인들의 신문이 일본제국을 찬양하던 시대.

그러다가 1945년 광복을 맞이했을 땐 다시 조선인들의 애국적인 신문으로 노선을 갈아탔는데 이들은 여기서 실수를 저지른다.

<대한제국은 미국의 주도아래 입헌군주제가 될 것이고 황실은 상징적인 존재로 남을 것이다. 이는 일본의 천황제와 비슷하니 이승만 총리와 자유당 정권에 붙어야 한다.>

대한제국의 입헌군주제를 일본의 천황제로 겹쳐봤던 사장의 안목이 인생 최대의 실수가 됐다. 실수에 대한 댓가는 1960년 5월 16일 치르게 된다.

쿠데타가 일어났다.

자유당 정권 아래 이승만의 2인자로 군림하고 있던 군부대신 이범석이 배신을 하면서 시작된 일로 이연이 주도한 친위 쿠데타다.

그의 지휘아래 군부가 전차를 끌고와 중앙청을 제압했고, 영웅을 보며 자란 혈기왕성한 청년 장교들이 황제의 친정을 지지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모두가 영웅의 통치를 기다리는 5월 16일. 기득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대한제국의 입헌군주제는 일본의 천황제와 다른 길을 가버렸다.

이승만 총리가 하와이로 망명하고, 군인들이 한국독립당을 창설하여 황제의 친정을 선포하는 5.16 혁명이 신문사의 운명에 종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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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5. 16. 혁명공약>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민족 독립과 통일의 영웅이신 황제 폐하와 함께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부는 첫째. 애국을 제일의 국시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민족정신의 길을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조국의 명예를 더럽혔던 민족의 배신자들을 단죄하고 역사를 바로세워, 어려운 시기에도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것만이 참된 가치임을 후손들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 (중략) -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국방대신 이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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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들이 숙청당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연이 하필이면 한국전쟁의 영웅이었으니까. 영웅들 중엔 분명 친일파 출신도 있었으니까. 그런 그가 전우들을 토사구팽하다니.

그 시절 신문사의 사장은 억울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한국전쟁에 공을 세운 영웅이었어! 백두산에서 함께 태극기를 꽂은 전우가 아닌가? 둘도 없는 전우인 백선경 장군까지 숙청하겠다고? 그렇게 하면서까지 권력을 쥐고 싶었냐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야!!!>

그 날 두 신문사는 민족반역죄로 강제 폐간을 당했다

그들이 이승만이 아닌 황실에 줄을댔다면 계속해서 기득권을 누렸겠지만, 수년간 계속되어온 이승만과 이연간의 정치 투쟁 속에서 잡은 동앗줄은 썩은 동앗줄이 되어버렸다.

이후에도 군부는 기업이나 자본가, 사회 지식인들도 조사하여 친일 혐의를 발견하는 족족 민족반역죄로 처벌. 다른 기업인에게 운영권을 넘겨주는 식으로 길들이기 작업에 들어갔고, 그 이후로 대한제국 기득권에서 친일파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언론의 빈자리는 황실과 군부의 주도아래 창간된 독립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이 차지하여 현재에 이르렀는데, 지금까지의 혁명 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 있던 동명의 신문사와 별개의 조직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권의 나팔수가 1974년 반기를 들었다. 이를 주도한 것은 그 시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젊은 기자들.

한일수교반대시위를 기점으로 잠깐이나마 언론의 자유를 맛본 이들이 황실과 결탁한 광고주들의 협박 속에서도 꿋꿋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들의 앞엔 장준호가 있었다.

1974년 1월 10일. 서울 YMCA 회관 2층에서 선언문이 낭독됐다. 대표자는 사상계의 발행인이자 신민당 언론자유위원장 장준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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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1. 10. 언론자유청원백만인서명운동 선언문 일부>

지난 날 한일간의 수교문제로 발생한 모든 혼란은 결국 언론의 자유를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언론이 한일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보도하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신속하게 보장해주었다면, 지난 날의 혼란은 없었을 것이며, 혼란으로 발생한 유혈사태의 참상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언론의 자유없이 우리 민족의 정의는 불가능한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황실은 영웅이란 이름 아래 국민을 현혹하고, 언론을 장악하여 검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제한하여 국민이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없도록 방해하였다.

이에 우리는 정보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 방법으로 황실에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백만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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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에 소속되어 있던 젊은 기자들이 신민당의 장준호와 결탁하여 투쟁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

YMCA 회관 밖에서 진을 치고 대기하던 검정 양복의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칩니까?"

요원의 물음에 행동대장은 답을 하지 못했다. 인상을 구긴 검정양복의 사내는 쓴맛을 다시며 망설이고만다.

"끌어내기는 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 온 게 아닙니까? 발표회장에 뛰어들어서 모두 잡아들이시죠. 이미 뒷문까지 요원들을 대기시켜놨습니다. 특히 저기 요주의 인물들도 있지 않습니까?"

"장준호가 있잖아."

"......"

"독립운동가 잡아들였다가 무슨 후폭풍을 맞으려고. 진짜 씨발 귀족씩이나 된 양반이 왜 저기서 지랄이야? 안돼 이거 일단 돌아가서 차장님께 보고부터 하자. 전원 철수!"

그렇게 중정은 정치개입에 실패한 채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서 착각한 게 있었다.

장준호는 작위가 없다. 그는 귀족이 아니었다.

***

장준호를 놓고 벌인 중앙정보부의 고민은 국내파트를 총괄하는 2차장을 거쳐 중앙정보부장 김재필에게 올라갔고, 자신들의 대선배인 덕수궁 비서실장 이화에게 올라가 최종적으로 황제에게 전달됐다.

덕수궁 석조전의 집무실. 오늘도 홀로 담배를 찾는 중년의 황제에게 이화가 말했다.

"선동입니다."

"선동?"

"장준호. 그 사람이 서명운동에서 말했죠. 국민의 알권리를 신속하게 보장해줬다면 이번 일은 없었을거라고."

"그랬다더군."

"한일수교 반대시위 당시 언론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었습니다. 중정 2차장이 파견한 요원의 경고도 무시한 채 자기들 맘대로 기사를 실었죠. 시위가 터진 최초 원인도 사상계였고 그 뒤를 따른 언론사들이었는데 이제와서 황실을 탓하다니. 이건 완전히 적반하장입니다."

그러자 이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동안 언론통제를 해온건 맞잖아? 사실 살짝 후회하고 있었거든. 언론을 이용해서 일본쪽 반응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면, 반정부시위가 조금 줄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야."

"확실히 그 점은 저의 실책이었습니다. 중립국 타령 하던게 설마 진심이었을거라곤··· 그럴줄 알았다면 일본인들이 평화를 염원한다는 걸 집중 부각해서 관제 보도를 실시했을텐데요."

"근데 이 실장. 그거 알고있나? 우리 지금 이런 시국에서도 언론장악을 논하고 있어."

"아···."

이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여튼, 젊은 기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거기에 야당도 가세하여 전국구 시위를 작당하고 있구요."

"장준호 그 사람 말이야. 이범석 장군의 부하였잖아."

“유명했죠.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다가 탈영해선 6천리나 걸어가 독립군에 입대했으니까요. 그 젊은 나이에 한국광복군 2지대로 들어가 이범석 장군과 함께 싸웠고 이후엔 서울진공작전까지 참가했으니 폐하께도 전우인 셈입니다.”

"근데 작위를 안받았다?"

“예. 민주주의 국가에선 특별 계층이 있어선 안된다고 작위를 거부하고있습니다.”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는 영웅이라···.”

"어쨌든 이 사태는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언론은 폐하의 강력한 권력 중 하나니까요."

"즉. 이 실장 자네 말은···."

"장준호를 제거하는 거 외엔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 자가 앞에 서서 언론자유운동을 주도하는 이상 중정은 어떤 개입도 불가능하구요. 경찰도 손쓰기 힘들겁니다."

"흠···."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을 뜸을 들였다. 이화도 자기가 말해놓고 뜸을 들이는데 결국 모든 문제는 이것으로 귀결된다.

"이 실장, 자네가 말해놓고도 지금 불안하지? 내가 하자고 할까봐."

"......"

“나도 정치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야. 내 권력이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안다고. 근데 여기서 독립운동가를 탄압했다간 뿌리부터 금이 간다는 거. 설마 모르겠나?"

"하지만 그가 만약 언론의 자유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론의 자유 그 이상?"

"그 자라면 일본이나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황실은 상징적인 존재로만 있어라. 정치에 개입하지 마라. 여기서 선을 넘으면 공화주의까지 요구할 수 있죠. 황제를 끌어내리고 대통령을 세우자. 대한제국 대신 대한민국을 만들자. 그렇게 나오면 선택지는 두가지로 좁혀집니다. 폐하가 물러서거나 장준호를 죽이거나.”

"......"

"죽이라 하시면 죽이겠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이범석 총리부터 적이 되겠지."

"속이 검은 분입니다. 앞에선 폐하께 충성하면서도 뒤에선 중정의 공작을 틀어막고 있죠. 장준호 주필을 시작으로 과거 독립군 출신 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던데 뭔가 속셈이 있는게 분명합니다."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거군. 황실의 꼭두각시로 만족하진 않겠다. 그런 뜻이겠지."

"결국 폐하의 권력을 위해선 이범석 총리를 시작으로 독립군 계열의 힘을 꺾어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차기 총리로는 김종규 장관이 준비되어 있으니 문제도 없을거구요."

"그냥 놔둬."

"네?"

"이 나라 대한제국. 그래도 명목상으론 민주주의고 입헌군주제잖나? 내 딸내미도 원하는건데 들어줘야지."

"하오시면···."

"공화국만 아니면 돼. 대한민국을 세우자는 소리를 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면 되니까.”

"그렇게 가기 전 어중간한 단계에서 맞서면···."

"장준호가 아무리 날뛴들 결국 야당이지. 이 나라의 여당은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한국독립당이 될 수밖에 없어. 왜? 이범석 총리는 우리 사람이니까."

그러자 이화가 조용히 말했다.

"완전한 영웅이 완전한 권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래. 우리에겐 비밀 프로젝트가 있잖아. 그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숙원. 내가 일깨워준 야망. 그것이 있는 이상 이범석 총리는 나의 권력이 필요해. 우리는 공동의 목표로 뭉친 사이니까."

"그럼 룰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룰대로 해.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식 입헌군주제. 늘 그렇듯 우리식대로 하면 되는거야."

이연이 그렇게 방침을 정하는 동안, 반대쪽에서 또 다른 작당을 하는 세력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대한제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 엘리트들이 새벽녘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피해 학교 안으로 등사기를 옮기고 있었다. 누가 볼새라 낑낑대며 옮기는 청년들의 은밀한 구슬땀이 저녁 9시의 어두운 학생회실에서 유인물을 대량으로 찍어낸다.

<3월 17일. 이 편지가 황태녀 전하께 무사히 전달되어 평화시장에서 알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것은 은서를 향한 편지.

찍어낸 편지가 100장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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