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65화 (65/131)

〈 65화 〉 Ep7. 악마와의 동맹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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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3년만, 딱 3년만 질질 끌어 1953년 7월 27일쯤 끝나줬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치열했던 미국과 일본간의 전쟁.

도쿄가 불바다가 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공격을 당하는 엄청난 패배. 패전국의 책임 속에 맞이한 1950년의 한국전쟁은 일본에게 마지막 기회였다.

국가의 모든 군대가 해산당하고, 재벌기업이 해체되며, 국가 경제가 농업국가로 전면 개조되는 산업해체의 위기.

그런 판국에 한국전쟁이 코앞에서 벌어지니 미국은 노선을 바꿨고, 일본을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군부대가 일본에 주둔하며 달러를 쓰고, 공군기지를 지어 미국의 폭격기들을 보급시켰으며, 장비 수리를 위한 공장을 지어 고용을 창출하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들어올 상황이었다.

<한국이 분단국가가 되어줬더라면>

한국 놈들이 전쟁에서 이기지만 않았어도. 아니. 이기더라도 몇 년정도는 끌어줬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일본은 세계 순위권을 달리는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 했을텐데.

1950년 6월에 터져 12월에 끝나버린 한국전쟁은 일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라인이 압록강-두만강까지 올라갔고 이로인해 일본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후방이 된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의 중요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국은 소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전쟁으로 가난해진 그들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미국의 원조가 불가피하다.>

그런 이유로 경제원조가 한국에 쏠렸고, 일본이 맡았어야 할 군사동맹의 역할도 한국이 맡았다.

일본은 여전히 군대 보유를 금지당했고, 경제는 전면적인 산업해체 계획이 그대로 실행되어 농업국가로 전락했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은 강해질 필요가 없었다. 눈 앞에 통일한국이 있으니까.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의 한 경제학자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미국의 막대한 경제원조 속에서도 한국의 경제성장이 너무도 지지부진하다. 그들은 1950년대까지 빈국이었고, 1960년이 되어서야 산업화를 시작했으며 1970년 현재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

<그들은 왜 성장하지 못했는가?>

1970년에 나온 일본의 논문이 그 원인을 찾아냈다. 공무원의 총체적인 무능, 경제성장을 주도할 관료들의 부재, 무리한 군비증강으로 인한 재정부담. 인구라고는 고작 몇천만 밖에 안되는 주제에 중국과 소련을 동시에 상대한다며 군사력에 몰두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쟁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화는 돈이 된다.>

논문으로 입증된 결론이 70년대 일본의 정계를 강타하며 중립국의 꿈으로 이어졌다. 뒤쳐진 경제력을 끌어올려 다시한번 위대한 일본이 되려면 지금은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실리적 야망이 1973년 대한제국에 짓밟혔다.

경제를 희생하며 무리하게 키운 군대는 역설적으로 동북아 최강의 육군대국. 한국전쟁의 실전경험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육군전통에 미제 첨단 무기를 잔뜩 들여와 무장시킨 자유진영 최강의 군대.

총병력 83만. 예비군까지 합하면 350만에 달하는 대군이 소련과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단련되고 있었고, 그런 그들이 비무장 상태의 일본을 급습했다.

미국이 지켜주지 않았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철수, 미일동맹 파기, 일본의 중립국 선언. 한일동맹 거부. 모든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이었고,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일본은 더 이상 외교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일본은 군대가 없었다.

***

1973년 12월 20일 서울의 겨울.

대한제국과 일본간에 국교정상화논의가 최종 타결된다. 양국의 관계회복을 축하라도 해주듯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날씨. 조인식은 경복궁의 근정전에서 이루어졌다. 큼지막하게 걸린 태극기 아래 테이블을 차려놓은 양국 대표가 협정에 조인하며 악수를 나눈다.

이범석 총리의 지지율이 완전히 회복되는 노인의 행복하고 뿌듯한 순간.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자신의 뜻을 관철하여 옳음을 입증해낸 영웅의 고집.

조약엔 크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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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12. 20. 제2차 한일기본조약 요약>

1. 한일 양국은 동등한 주권국가로서 외교 및 영사관계를 수립한다.

2. 일제강점기 및 그 이전에 맺었던 양국간 모든 조약은 무효로 한다.

3. 일본은 1952년 대한제국이 선포한 평화선을 인정한다. 독도는 대한제국의 영토이며 양국 사이에 있는 바다의 이름을 조선해(Sea of Korea)로 합의한다.

4. 일본의 총리는 일본국을 대표하여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식민통치 시절 자행한 모든 행위를 인정한다. 이에 대한 모든 재발 방지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5. 일본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존속한 대한제국의 망명정부가 조선왕조 및 대한제국을 계승한 적법한 정부임을 인정하고, 양국이 해당 기간동안 교전을 벌인 당사국임을 확인한다.

6. 일본은 세계 평화와 자국의 방위를 위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수 있으며 대한제국은 이를 지지한다.

7.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보상금 및 패전국으로서의 전쟁배상금은 별도 협의된 조약문에 따라 분할 지불한다.

8. 쓰시마섬(대마도)은 일본국의 영토이며 대한제국은 이를 주장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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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입장에선 150% 만족할 협상이었지만, 일본 입장에선 불평등하고 부당한 조약이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조선해(Sea of Korea)로 하자는 것도 억지. 워싱턴에 허락도 없이 지들 맘대로 세운 망명정부를 정통정부로 인정해달라는 것도 억지. 그것도 모자라 승전국 지위까지 요구하는 어거지.

총리가 와서 사과하라는 4번의 조항은 원래 천황이 오라는 조항이었다. 대한제국이 ‘천황이 사과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라며 박박 우기다가, 미국이 겨우겨우 중재하여 총리 선에서 매듭지었다.

배상금은 1965년에 주장했던 것보다 수 배가 올라간 규모. 무리한 협상을 하는 와중에도 대마도엔 여전히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어 합의를 해주는 거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초 배상금 문제는 미국이 지원해주기로 논의되고 있었지만, 미국이 태도를 바꿔 '빌려주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고, 기한내에 모두 상환하라며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미국은 일본에 집권중인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친미국가가 되지 않으면 어떤 도움도 주지 않겠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일본 내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협상은 대한제국이랑 했지만 고개는 미국에게 숙이는 느낌. 1945년에 이어 1973년까지. 중립국의 꿈을 포기하는 총리의 속이 쓰렸다.

협상을 마치고 나오는 경복궁의 입구. 지금은 중앙청으로 쓰이고 있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일본 총리의 눈에 들어온다.

"이걸 아직도 쓰고있군."

일본의 외무대신이 답했다.

“자존심 없으면 죽을 것 마냥 어거지 피우던 놈들이 입법부 건물은 아직도 우리것을 쓰다니요. 참 웃기는 일 아닙니까?”

“웃기는 일이지. 경복궁의 전각을 헐고 지은 조선총독부니까. 나 같으면 볼 때마다 속이 쓰려 당장이라도 폭파시키고 싶었을텐데.”

"더러운 새끼들···."

“듣자하니 이 나라 황제는 실용주의자라 하더라고. 돈이 궁한거지. 총독부 헐고 경복궁 복원하려면 예산낭비가 심할테니까.”

"어쨌건 협상은 계획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일본의 총리는 미소지어 말했다.

"그래, 각오한 것보다 나은 협상이었어. 노력한다고 했지 한다고는 안했거든. 제 놈들이 닥달해봐야 결국 우리 헌법인데 조약 따위로 어떻게 바꾸겠어?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평화헌법의 개정은 불가능해."

"예. 저희는 민주국가니까요."

"우린 절대 세계3차대전에 끌려가지 않을거야."

단지 노력만 할 것이다. 쓰시마 쇼크 같은 빌어먹을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위대를 정식 출범하며 재무장을 하겠지만 한국에 도움이 될 육군 전력은 최소한으로 할 생각이다. 일본은 섬이다. 국가 방위는 해군과 공군만 있으면 충분하다. 어차피 평화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일본의 참전도 없다.

헌법은 국민이 개정을 거부하는 이상 계속 효력을 가질테니까.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놈들이 세계3차대전에 휘말려 잿더미가 되는 동안에도 일본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 다음 세계를 주도하는건 오로지 자신.

<평화는 돈이 된다>

총리의 꿈은 여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

조선땅의 반정부시위가 막을 내렸다.

“동해바다 이름이 조선해가 된다고? Sea of Korea?”

“그걸 받아들일 만큼 일본의 국력이 약했던거야. 우리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마도도 무혈 점령이라더니 진짜 충격적이네···.”

대마도를 소풍나가듯 무혈점령한 사건부터, 대한제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들만 담긴 협상안까지. 배상금의 규모는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한 규모.

화염병까지 날라다닐뻔했던 여론이 완전히 뒤집혔다. 하지만 여론이 뒤집힌 진짜 이유는 한일동맹이다. 협상의 내용을 본 시위대들은 수근거렸다.

“동맹한다 한다 하더니 하게 생겼냐?”

“그치? 대마도까지 점령해놓고. 일본 놈들하고 완전히 앙숙인데.”

“헌법 개정해야 된다며? 걔네들이 해주겠냐고.”

일본의 속셈을 한국이라고 모를리 없었다. 한일간에 군사동맹이 체결되려면 일본의 군대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이 개정되어야 하는데, 헌법의 개정은 국민의 찬성이 필요하니까. 대마도 사태로 촉발된 일본인들의 혐한감정을 생각하면 그게 통과될리 만무하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었다.

조선 사람 조선 시위대가 내린 결론.

“이젠 우리보다 일본인들이 더 싫어하겠군.”

그것이 어떻게 결론날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안보 측면에서 당장에 해결된 게 없다는 건 분명한 결론이었다.

대한제국은 여전히 중국-소련 동맹을 일본 없이 상대해야 했고, 그런 한편으로 미국이 군축이라는 이유를 들어 주한미군의 감축을 추진하고 있어 신경을 긁어댔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들렸다. 김종규의 유능한 국방과학연구소 직원들이 다련장로켓의 첫 실험을 성공리에 마친다. 그들은 그렇게 만든 36발 다련장로켓 발사기의 이름을 K-136으로 지었다. 다른 이름은 구룡. 아홉마리의 용이다.

포방부의 야망이 궤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다음 목표는 보병용 화기의 국산화였다. 국방예산 증액이 좌절되면서 자국 기업이 직접 생산하며 수출까지 할 수 있는 저렴한 국산 소총이 필요했다. 미국의 명품 소총 M16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경험으로 소련제 AK-47의 장점을 접목시켜봐야지. 김종규의 건의 속에 황제의 전폭적인 지원이 떨어졌다.

그리고···.

미사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국방예산의 증액 실패 속에서도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가는 연구 예산 만큼은 13.5배의 기적적인 증액을 이뤄낸다.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겠다>

자주국방을 향한 국방부장관 김종규의 야망이 주한미군 감축과 맞물려 급격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1973년 12월 25일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덕수궁 비서실장 이화는 휴가를 쓰고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몇일 전 일본 총리가 방문하여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올린 곳으로 폭풍같았던 시간이 지나간 형무소는 조만간 일제의 식민지배를 고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재사용될 예정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으며 쓰러져 간 수용소의 방 한 칸 한 칸마다 하얀 국화꽃을 놔주는 이화의 얼굴에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그녀 옆에는 자신의 후배였고 지금은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는 김재필이 있었다.

"이번에 피해보상금··· 신청하셨습니까?"

"저요?"

"일제강점기 시절 피해를 입으셨잖습니까? 피해자로서 마땅히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만···."

그러자 이화가 웃으며 말했다.

“전 피해자가 아니에요.”

“지난번엔 분명···.”

“제가 왜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는 줄 알아요?”

김재필 부장은 형무소의 저녁날 이화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여고시절이었어요. 1945년 8월 1일. 경성감옥이라 불리던 이곳에 잡혀와 고문을 당했죠. 경성에 잠입한 독립군에 대해 아는걸 모두 털어놓으라고.>

그 때의 말을 떠올린 김 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제 폐하의 비밀을 지켜주셨다 하셨지요.”

“네. 제가 그 때 고문에 못이겨 비밀을 털어놓았다면 서울진공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을거에요. 이연씨도 일본군에 체포되어 살아남지 못했겠죠.”

“허면···.”

이화가 웃으며 말했다.

“모르셨구나? 저 이 나라에서 작위를 가진 귀족이에요. 여차하면 상원의원에도 출마할 수 있는 남작인데.”

“......”

“제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힌트를 드릴까요? 제국의 귀족 명단 중에서 남작을 가진 사람들을 쭉 훑어보시고 그 중 여성인 사람을 찾아보세요. 최씨로 시작하는 여자가 있을거에요. 그 중 한명이 저랍니다. 1대에서 끊길 존망이 위태로운 가문이랄까요?”

“......”

“믿음직한 후배니까 알려주는거에요. 덕수궁 비서실장이 최씨라는 거 폐하랑 총리님 빼면 아무도 모를거거든요.”

“한번··· 찾아보지요.”

"제가 받을 보상금은 다른분께 양보할게요. 그 돈 조금이라도 아껴서 경제 개발에 쓰면 더할 나위 없겠죠.”

"다른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실까요?"

"아뇨, 그런 건 우리가 예단하지 말기로 해요. 각자 스스로가 판단하는 거에요. 국가도 사회도 누구도 강요하지 말도록하죠. 우리는 그런 선택지를 만들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했으니까."

그리곤 나지막이 말했다.

"우린 강대국이니까."

이화는 웃으며 마지막 방에 꽃을 놓았다. 후련한 기분으로 떠나는 그녀의 발걸음은 현충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꽃을 놔줄 생각이었다.

그 시각 덕수궁에선 이연이 집무실에 김진혁 중령을 불러놓고 황명을 내리고 있었다. 대한제국 황제라기 보단 노처녀 외동딸을 둔 아버지로서 내리는 부탁 같은 느낌이었다.

"황제로서 명한다. 김진혁 중령. 현 시간부로 내 딸의 남자친구가 되어라."

"폐하?"

당황하는 소년에게 중년의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며칠 뒤 74년이 되면 내 딸의 나이가 스물아홉이야. 이 나라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지. 75년이 되면 30대에 접어드는데 결혼은 커녕 남자친구 한번 없었지 않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당장 지금도 그래. 크리스마스 휴가를 써놓고선 자기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고있어.”

“황실의 명맥을 걱정하시는 건 이해합니다만, 분명 지난번엔 제 마음대로하라 이르지 않으셨는지요? 헌데 갑자기 황명을 내리시어 강제하시다니···."

“내 딸이 그러더구나. 번지수가 틀렸다고.”

"......?"

“모든 문제가 너한테 있다는거야. 이건 중대한 문제야. 조선왕실의 계보가 내 딸에서 끝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눈물을 머금고 극약처방을 내리는거야. 김진혁 중령. 내 딸과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해라.”

"......"

"널 사위감으로 임명하지. 나이 서른되기 전에 결혼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를 만들어놔.”

"통촉을···."

“황명이다. 황실의 존망이 귀관에게 달렸다는걸 명심하도록.”

"......"

남자들의 한심한 대화 끝에 28세(29세 진급대기)의 여인 이은서가 있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자신의 소식이 실려있는 신문지를 읽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대한제국 황태녀다.

"헤헤...  날 더러 민주주의의 수호자래···."

얼마전 평양의 계엄사령관으로 평화시위를 주도한 상식 밖의 일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신민당에서도 이례적으로 황태녀의 지지성명을 발표했는데,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강조해 황실에 책임을 돌렸다.

근데 사진에 못보던 인물이 있다. 장준호. 얼마 전까지 사상계의 주필로 활동하던 그가 신민당에 입당하여 정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이 은서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변화를 줄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황태녀의 방에 노크소리가 들렸고 정장차림에 식은땀을 흘리는 28세(29세 진급대기)의 청년이 들어오니 김진혁 중령이 이은서에게 데이트를 청했다.

'당연히 미쳤냐고 하시겠지?'

식은땀을 흘리는 남자에게 여인이 답했다.

"이야, 니가 왠일이냐? 데이트를 청하고."

"예?"

"까짓거 한번 해준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어, 어어?"

그렇게 석조전 밖으로 뛰쳐나간 두 사람 앞엔 새하얗게 물든 73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눈이 수북히 쌓인 덕수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은서의 동심을 인정사정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빠샤!"

대뜸 눈송이를 만들어 던진다.

"무슨?!"

"야, 눈이 이렇게 쌓였는데 눈싸움 한번 해주는 게 도리 아니냐? 데이트라고 해봐야 어디 갈래? 얼굴 다 팔려있는 공주님이."

"그건···."

"덤벼!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야!"

그렇게 두 사람은 2시간이 넘도록 덕수궁을 뺀질나게 돌아다니며 인정사정없는 눈싸움을 벌였다. 결판이 날리가 없다. 눈송이를 던지는 싸움으로 어떻게 승자가 결정되나? 그렇게 한참을 싸우다 은서가 말했다.

“우리 친구하지 않을래?”

그게 남자친구인지 그냥 친구인지 이해가 안되어 머리를 긁적인다.

덕수궁의 한 켠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희가 행복한 미소로 말했다.

"좋을 때네요."

옆에는 김훈 중령이 서있었다.

"그러게. 참 좋을때지."

"그래서 저흰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돼요?"

"뭐가?"

"사귄지가 1년이 넘었는데 언제까지 비밀로 할거냐구요."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딴청을 부렸다.

"그야···."

"이런식으로 나오면 내가 먼저 고백해버려야지."

"뭐?"

그리곤 선물을 줬다. 작은 상자 안에 반지가 들어 있었다. 1940년생 박진희 그녀의 나이 34세. 은서보다도 나이가 많고 일하느라 결혼시기를 놓친 위기의 여자가 숨겨진 야망을 드러냈다.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1973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p.8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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