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53화 (53/131)

〈 53화 〉 Ep6. 위화도 위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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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오해가 있을겁니다!"

미국 대사와 외교부 장관의 반응이었다.

저녁 11시가 넘은 서북방위사령부, 황제의 명령과 부탁 속에 전진배치되어 차려진 대한제국 국군의 최고 지휘부는 온전히 조선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미국 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이 불러온 미국의 장군들.

미8군사령관, 주한미해군사령관, 주한미해병대사령관, 주한미특수전사령관, 주한미공군사령관까지 대한제국에 주둔중인 모든 미국부대의 장군들이 줄줄이 찾아와 대한제국의 장군이 반. 미국 장군이 반인 어마어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에 대비되는 대한제국의 수뇌부들로 따져보면 황제 이연과 국무총리 이범석, 국방부장관 김종규, 그 밑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있었고 육군참모총장으로 구남철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외에도 공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그 외에도 무수한 장교와 관계자들이 서북 사령부의 지휘통제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별들이 우글거리는 최고 지휘부에서 가장 높은 사령관의 자리에 앉아있는 황제 이연이 미소지으며 미국 대사에게 물었다.

"오해라기엔 너무 뻔하지 않은가?"

남자는 영어로 말했다. 이 남자 이연, 원래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던 망국의 황태자. 국적을 조선인으로 바꾸고 황제가 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통역 대신 영어로 말하는 게 직성이 풀리는 2개 국어의 사나이였다.

"1년 전 저희 대통령 각하께서 중국에 방문하실 땐 평화를 논하고 있었습니다. 절대로 이런 분위기도 아니었고 이런 낌새도 없었는데··· 아무리 경친왕 때문이라 해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놈들은 백두산에서 우리 장교를 죽였고, 지금은 4자회담을 파기하고 소련과 단일대오를 형성했지. 그것도 모자라 곧바로 위화도를 무단으로 점령했는데 아직도 공산당 놈들을 믿는건가?"

"중국이 그러잖습니까? 위화도에서 발생한 일은 자기들과 관련이 없다고. 저는 그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러자 통역병으로 부터 대화를 듣던 합동참모의장이 말했다.

"그럼 위화도에 있는 중국군은 뭐 귀신이라도 된답니까?! 이건 화전양면전술이에요! 위장평화공세라구요! 미국이 중국에게 놀아난겁니다!"

통역을 통해 합참의장의 말을 들은 미국대사가 식은 땀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말이 되는 소릴... 중국은 그럴 나라가 아닙니다! 그럴 국력도 없구요!”

"소련이 있잖아요! 소련이! 놈들이 소련이랑 붙어먹은 거 보면 모르겠습니까? 이건 세계3차대전을 앞두고 책임을 우리 자유진영에 떠넘기는 술책입니다! 이건 유엔이 나서야해요! 유엔!"

박박우기는 합참의장의 고성에 미국 관계자 누구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중국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게 이상하다는 눈치면서도 위화도가 점령당했다는 사실은 확실했기에 분명 침공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저녁 11시가 되었음에도 잠도 못자고 있는 건 반격하여 전쟁을 하느냐, 아니면 위화도를 버리고 꼬리를 내리느냐를 정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대한제국 모든 장병들과 주한미군 장병들이 실탄이 든 총을 들고 잠도 못 자며 비상대기 하고 있는 건 물론이다.

미국 장성들의 낌새를 이상하게 여긴 합참의장이 경고하듯 말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우리 대한제국과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는 동맹국입니다. 설마 동맹국이 침략을 당했는데 조약을 어기고 우릴 버리진 않겠지요?"

그러자 김종규 국방장관이 말했다.

"그럼 할 수 없지. 독자적인 행동에 나서는 수밖에."

그러자 미국대사가 물었다.

"무, 무슨 독자행동을 말하는겁니까?"

"미국이 우릴 버리면 핵개발을 해서라도 스스로를 지켜야지요."

"무슨 미친 소릴!"

"미국이 우리에게 약속했지요? 대한제국이 침공을 받으면 미국이 지켜줄테니 핵개발은 하지 말라고. 국제사회의 핵확산 방지 정책이 미국의 핵우산으로 돌아가는데 이제와서 토사구팽하듯 버리면 세상 천지 어느 동맹이 미국의 말을 믿어준답니까?"

"......"

"동맹으로서 신의를 지키십시오. 위화도는 분명 대한제국의 영토였고 우린 지금 침공을 당한겁니다. 데프콘1으로 올리고 전쟁 시작해도 이상할게 없단 말입니다."

김종규 국방부장관은 생각했다.

대한제국 뿐만 아니라 모든 동맹국이 미국의 선택에 주목할 것이다. 전쟁의 위기에 처한 지금. 미국은 대한제국을 지켜줄 것인가?

<전쟁이 나면 우리가 지켜줄테니 핵개발 만큼은 하지 마라>

미국은 과연 그 약속을 지킬까?

1945년 일본에 최초의 핵공격이 발생한 이래 무수히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확보에 열을 올렸다. 그 가운데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이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그들은 이렇게 해놓고서 핵확산방지조약을 체결해 후발주자들의 핵개발을 강력히 막고 있다. 경제 제재를 걸거나 ‘우리가 지켜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해주거나.

그런데, 중국과 대한제국간 국경분쟁으로 그 약속이 시험대에 올랐다. 대한제국이 백두산부터 위화도까지 연이은 분쟁에 시달리며 존망의 위기에 몰려있는 상태.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며 협박까지 당하고 있는 지금.

미국은 대한제국을 지켜줄 것인가?

미국에게 세계3차대전은 두려운 시나리오다.

대한제국을 돕다가 소련과 전쟁이 터지면 워싱턴부터 뉴욕, 텍사스, 캘리포니아까지 북미 전역이 핵무기를 얻어맞을 수 있다. 코딱지만한 조선반도 지키자고 자국이 망하는 셈이다.

미국도 반격할 것이다. 모스크바부터 블라디보스토크, 베이징부터 상하이까지. 전세계에 핵전쟁이 벌어져 수십 억 인류가 방사능 폭풍 속에 절멸할지도 모른다.

조선반도 하나 지키자고 나섰다가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미국은 여전히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김종규는 생각했다.

‘놈들이 우리를 버리면?’

미국입장에선 간단한 선택지가 있다. 대한제국을 포기하면 된다. 조선반도를 버리고 일본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 방위전략을 새로 짜면 된다. 이렇게 되면 핵전쟁은 피하고 미국땅도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김종규는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대한제국만으로 끝나지 않겠지.'

미국의 모든 동맹국이 대한제국의 최후를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미국에게 버려진 조선이 중공과 소련의 침략을 받아 공산국가로 바뀌는 모습을.

<한 번 버린거 두 번은 못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면 가장 공포를 느끼는 건 대만이다. 그들은 중국과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나라. 핵개발에 국운을 걸지도 모른다.

일본은 어떨까? 미일동맹에 의구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2차대전기 미국으로부터 핵공격을 당해 그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조선반도에 주둔한 소련군을 맞대며 핵개발의 유혹을 느끼기 충분하다.

유럽은 어떤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이 핵개발에 돌입할 것이고, 이미 핵을 보유중인 영국과 프랑스가 추가 생산에 돌입할 것이다. 그들의 전략적 목표는 오로지 하나.

'죽을 때 죽더라도 모스크바 만큼은 지옥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논리가 당연시되며 유럽의 모든 동맹국이 소련과의 전쟁을 대비한 핵개발에 돌입할 것이고, 종국엔 지구상 모든 국가가 자주국방이라는 논리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미래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

조선반도 하나 포기했다가 핵개발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미래. 이쪽도 미국에겐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미국대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시간을 주시오! 워싱턴과 상의를 하고···.”

이 모든 시나리오는 일개 대사 따위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진짜 판단은 백악관에서 열띤 회의를 벌이고 있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참모들이 할 것이다. 그들은 서방국가의 맹주니까.

‘닉슨 대통령이 도청 사건 때문에 궁지에 몰려있을텐데 과연···.’

종규의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다. 미국은 이미 백두산 분쟁 때부터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고, 위화도에 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접하곤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그 남자. 지구상 모든 남자를 통틀어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미합중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결단.

<위화도와 백두산의 주권은 대한제국에 있으며, 미국은 공산진영의 모든 야욕을 단호히 반대한다.>

미국은 유엔안보리에서 ‘위화도에서 중국군을 철수시켜라’ 윽박을 질러댔고,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역시 중국과 소련을 규탄하며 대한제국의 편을 들어줬다.

김종규 국방부장관은 결론을 내렸다.

‘인류가 멸망할 지언정 핵개발 만큼은 용인할 수 없다 이거군.’

바득바득 규탄의 목소리를 내는 서방 강대국들에게 중국과 소련은 이렇게 답했다.

<위화도 사태는 조작이다.>

수작부리지 말라는 태도로 책임을 떠넘기는 공산 국가들. 평행선을 달리는 회의 속에 마지막 시나리오가 발동된다.

세계3차대전.

미국 제7함대가 중국 베이징을 겨냥해 서해 바다로 달려오고 있었고, 한반도에 전진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노련한 장교들 손에 반짝반짝하게 닦여지고 있는 사이, 중국과 소련에서도 격납고에 숨겨진 핵무기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위화도에서 출발한 나비효과는 세계3차대전이라는 폭풍으로 서서히 진화하는 중이었다.

***

이런 상황에 중앙정보부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서북방위사령부의 사무실 하나를 비워놓고 임시 회의실을 차린 김재필과 고위 관계자들이 덕수궁 비서실장 이화와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연변지역의 우리 애들은요? 보고된 거 없나요?"

이화의 물음에 김재필이 답했다.

"최근 중국 당국의 순찰이 강화됐다는 첩보입니다. 무장병력까지 순찰을 돈다는데 아마 생각하시는 이유가 맞을겁니다."

그 때 28세의 젊은 소녀가 똘망똘망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북한군 잔당 짓 아닐까요?"

소녀의 물음에 이화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지휘통제실에 계셔야 할 분이 왜 아까부터 여기에 계시는걸까요?”

대한제국 황태녀 이은서. 서북방위사령관 5성 장군이 지휘실에서 빠져나와 자기 옆에 멀뚱멀뚱 서있었다. 이런 깍두기 같은 아가씨.

깍두기가 말했다.

"그야 저쪽에 가봤자 할 수 있는게 없어서요."

“할게 없으시다구요?

“군생활 경력이 30년은 넘은 아저씨들이 3차대전이니 핵전쟁이니 하고 있는데, 28살 밖에 안된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럼 여기선 할 게 있으시구요?”

“딱 봐도 북한군 잔당이 벌이는 짓 같은데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는 회의로 찾나? 첩보부가 찾아야지. 근데 마침 딱 여기서 회의를 하고 계시잖아요.”

"......"

김재필 중앙정보부장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북한군 잔당 짓이라고."

“그야 중국이랑 소련이 계속 말하잖아요. 위화도는 우리랑 관련 없다고. 저는 그게 진심으로 들리거든요.

역지사지로 생각해봤어요. 내가 중국인이면 어떤 입장이었을까? 대한제국이랑 미국이 뜬금없이 위화도를 뺏겼다며 내놓으라는데, 자기들은 뺏은 적이 없어. 근데 안 돌려주면 전쟁을 하겠대. 그러면 걔네들도 화가날 거 아니에요? 자기들 침략하려고 명분을 쌓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지만 정말 중국 소행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닐거에요. 중국의 국력은 미국을 도발할 정도가 못돼요. 한 몇십년 뒤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죠. 모택동이 닉슨 대통령이랑 정상회담 한 게 1년 전인데 곧바로 이렇게 뒤통수를 때린다구요? 에이···.”

그러자 김재필 부장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잘 아시는군요. 저희도 사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변쪽의 요원들을 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죠.”

그 다음에 이화가 말했다.

“그림이 아주 좋아요. 백두산에서 분쟁이 터졌고, 경친왕이 무력도발을 해서 중국이 화가 많이 났죠. 주한미군에 위협을 느끼곤 어떻게든 철수시킬려고 하는데 여기서 위화도가 딱. 중간에 심지를 건드린 셈인데···.”

은서가 확신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죠? 진짜로 딱 북한군 잔당이 조선반도 수복을 노리고 양국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그림이잖아요.”

하지만 이화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요. 위화도는 섬이거든요. 직접 가서 물어보지 않는 이상 니네 어디 군대냐 따져볼 수도 없고.”

이화는 회의감을 갖고 말했다.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어요. 중국이 북한군 잔당을 조종해 미국과 대한제국을 도발하고 있다.”

“그런!”

“여차하면 북한군 잔당 소행으로 몰고가 책임을 피할 수 있죠. 즉, 지금의 사태 자체가 중국 나름대로의 시위일 수도 있는거에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죠?"

“중국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니까. 미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 우리가 소련과 국경을 맞댄 거 만큼이나 두려운거겠죠.”

“그래서 주한미군을 철수시켜라···.”

“하지만 안되는거잖아요. 우리도 두 나라가 위협적인건 매한가지인데. 뭘 믿고 동맹을 물릴까요? 그러다 놈들이 쳐들어오면?”

“대한제국 혼자서 중공과 소련을 한꺼번에···.”

“절대 못 막아요. 그래서 우리는 동맹을 포기할 수 없는거죠. 이래서 협상은 늘 평행선을 달렸어요.”

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물었다.

"근데 비서실장님은 왜 여기 계세요? 아버지 안 도와주시고?"

“저야 1년 전까지 중정 요원이었거든요. 해외 파트를 총괄하는 1차장이었으니까. 여기 이 친구들은 과거에 제 부하들이었구요.”

김재필 부장이 말한다.

"저흰 선배님과 함께 대한제국의 정보라인을 완전히 재편했습니다. 중정의 정치 개입을 최소화하고 그 자원을 좀 더 유용히 쓰기로 했죠. 해외 정보망을 강화하고, 방첩망도 효율적으로 재편하고, 해외 기술 수집에 각별히 신경쓰는 쪽으로요.”

"기술 수집? 산업스파이?"

김재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국을 위해서."

결국 은서는 가르침만 잔뜩 받고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이건 생각 못했겠지!’ 하며 던져봐야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 5성장군 이은서는 여전히 사령부에서 깍두기 신세였다.

그렇게 회의실을 나와 하염없이 복도를 떠도는 은서의 속마음.

‘난 뭘 해야하지?’

그런 그녀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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