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52화 (52/131)
  • 〈 52화 〉 Ep6. 위화도 위기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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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코칭이 도통 끝나질 않는다.

    이 남자 이연. 그동안 못 했던 아버지 노릇을 이 기회에 모조리 해보려는지, 오후 다섯시 사령부 연병장에서 이루어지는 간단한 체력단련조차 직접 코칭을 해주고 있었다.

    28세 딸래미 옆에서 함께 구보를 뛰는 57세의 남자. 대한제국의 황제 이연.

    "속도가 늦구나! 좀 더 빨리!"

    "아니 좀!!!"

    뛰는 자세부터, 숨쉬는 패턴, 속도까지 하나하나 지도해주며 딸의 체력을 길러주는 이 남자의 자상함. 뒤이어 외치는 딸의 반항.

    "아버지, 나도 운동은 꽤 하거든요?"

    "호오? 그래?"

    그렇게 즉석에서 시작된 연병장 8바퀴 달리기 시합. 누가 누가 오래 그리고 빨리 달리는지 내기를 벌인 결과. 28세의 이은서는 57세의 아버지에게 뒤쳐져 2등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2등은 꼴지다. 나약한 녀석.

    "이건 말도 안돼···."

    "환갑을 코앞에 둔 아비조차 못 이기다니. 넌 역시 내 사랑이 필요하겠구나?"

    "에?"

    결국 은서는 저녁식사까지 아버지와 함께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한 젓가락씩 자상하게 올려주는 고기반찬을 꾸역꾸역 먹으며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딸의 마음 속엔 달리기 시합 조차 이기지 못한 패배자의 원망이 있었을 뿐.

    식사 이후엔 집무실에 틀어박혀 교범을 쌓아두고 공부를 하려니, 거기까지도 쫓아와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는 정말 집요한 아버지였다.

    "아니, 공부는 진짜로 아버지보다 잘한다니까? 내가 여자라서 진거지 머리는 엄마 닮아서 훨씬 좋거든요?"

    "그래, 그 머리로 사관학교 밑바닥을 찍었단 말이지?"

    "아, 아니 그건···."

    그렇게 재미있게 딸내미를 놀리던 아버지의 눈에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이 공부를 하겠답시고 펼쳐놓은 교범.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군사작전 지도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에서 사투를 벌이는 군인들이 담긴 사진. 그에 대한 각종 기록들.

    "너 지금 장진호 전투를 공부하는구나?"

    은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야··· 나도 일단은 사령관이니까. 전략 같은것도 공부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자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그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책으로 배울 필요 없어."

    "어째서?"

    "니 앞에 있잖냐?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지휘관이."

    "......!"

    은서는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한번 교범을 읽어본다.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수 많은 지휘관들의 명단. 미 육군 7사단 데이비드 G. 바 소장부터 제1해병사단 올리버 스미스 소장,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야 당연히 아는거니 그렇다 치고.

    대한제국 측은 1사단장으로 경친왕 이열이 있었고, 3사단장으로는 백선경 소장이 있었다. 그 위로 그들을 지휘하는 군단장이 있었으니···.

    대한제국 황태자 이연.

    그가 장진호 전투의 한국군 사령관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도 전선을 직접 누비던 군단장으로.

    "아버지··· 황태자 신분으로 직접 전선을 누빈거야? 눈보라 몰아치는 장진호 전투까지?"

    과거를 알게된 은서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심지어 아버지만 그랬던 게 아냐. 경친왕 전하도···."

    "니 애비가 한국전쟁의 영웅이라고 누누히 말했잖냐?"

    "난 그게 그냥 안전한 곳에서 지휘만 한 줄 알았지··· 아버진 그 때 황태자였으니까···."

    "전쟁사 공부할 때도 졸았구만."

    "......"

    이연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장진호 전투는 말이야. 가장 험난한 환경에서 가장 위태롭게 싸운 전투야. 전차마저 얼어버릴 눈내리는 설원에서 끝없이 펼쳐진 중공군을 상대로 사투를 벌였지."

    "한국전쟁 막판에 중공군이 참전해서는··· 하마터면 통일이 물건너갈 뻔했으니까. 거기서 이겨서 백두산까지 반격해 올라갔다고 들었는데···."

    "그래, 맥아더 장군과 수 많은 영웅들이 만든 작품이었어."

    "어떻게?"

    "우린 방심하지 않았거든."

    "아버지···."

    은서가 아버지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냈다. 살아생전 처음 받아보는 딸의 존경에 이연이 부끄러운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중공군은 정말 강력한 상대였어. 사람들이 인해전술만 기억해서 오합지졸로 착각하는데, 당시 놈들은 국공내전에서 단련된 베테랑들이었거든. 방심했다면 이 나라는 분단국가로 남았을거야."

    이연이 공부하던 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나만큼 할 필요는 없어.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면 돼. 30대 초반까지는 군인을 하며 리더십을 쌓고, 중반이 되면 내 옆에서 통치하는 법을 배우는거야."

    "아버지···."

    "난 네가 나처럼 직접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됐으면 한다."

    은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난···."

    "넌 머리가 좋아. 상징적인 존재로 아무것도 안 하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야."

    "난 전혀··· 지금도 사령관 노릇 하나 제대로 못하는걸? 부하들 지휘도 서류 읽는 것 조차도···."

    "그야 나한테 반감을 갖고 육사 생활을 소홀히 했으니 그런거고. 넌 원래 머리가 좋잖아. 니 어미를 닮아서 똑똑하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세종대제를 뛰어넘어봐. 최초의 여제라면 최고의 황제도 노려봐야지."

    "......"

    그 때 이화가 들이닥쳤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녀 입에서 튀어나오는 긴급한 보고가 이연을 긴장감으로 몰고간다.

    다시 시작된 국경의 분쟁이 부녀에게 거대한 파도로 몰아치는 순간이었다.

    ***

    ------------------

    <1973년 8월 1일. 중국-소련 공동 성명>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은 전세계 사회주의 혁명과 동북아 평화 질서 구축을 위해 양국간의 모든 감정을 털고 공고한 동맹을 결성하였음을 확인한다.

    우리 양국은 조선반도 일대에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하여 외교적인 노력을 다했으나, 미국과 조선이 무리한 요구를 일삼으며 협상에 불성실하게 임했고, 군사 도발을 일삼아 중국 인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등 패권주의적 면모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확인하였다.

    이에 우리 양국은 더 이상 외교적인 방법으로는 평화 질서의 구축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백두산 국경에 관한 모든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었음을 공식 선언한다.

    이에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강력히 촉구한다.

    첫째. 조선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할 것.

    둘째. 백두산의 국경을 간도협약 당시의 것으로 인정하고 해당 지역에서 군을 완전히 철수시킬 것.

    셋째. 조선반도에 배치된 미국의 모든 핵무기를 철수. 대한제국은 조선반도의 영원한 비핵화를 약속할 것.

    8월 10일까지 위 사안에 응하지 않을시 우리 양국은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며,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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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남지도 않은 짧은 시간. 도대체 무슨 댓가를 치른다는 것인가?

    중국과 소련의 기습적인 선언에 대한제국은 또 다시 데프콘 3가 발령됐다. 은서에게 이번 사건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덕수궁에서 맞이했던 데프콘 3와 다르게 이번의 데프콘3는 서북방위사령관 이은서 원수로서 직접 겪는 군사준비태세였기 때문이다.

    서북방위사령부의 지휘통제실은 당연히 혼란에 빠졌다. 이제 막 대위를 달거나 소령밖에 안된 말단 장교들이 사령부 최고참으로 참모부를 대표하고 있으니 일선 부대에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데프콘3? 명령을 받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평소에 많이 해봤잖아! 얼마 전에도 해봤고···."

    "아니 그야 참모장님이 시키는대로 했으니까. 근데 이젠 내가 직접 지시를 내려야 한다고? 진짜로 내가 해도 돼? 난 일개 말단 장교인데?"

    이런식으로 갈피를 못잡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데, 그들을 통제하고 지시를 내려야 할 사령관 이은서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데프콘3 말로만 잔뜩 들었지 뭘 해야하는건데!!!"

    멍청하게 구는 사령부 장교들을 보며 이연이 한숨을 쉬곤 외쳤다.

    "전체 주목!!!"

    사령부가 일시에 숨죽인 듯 정적이 흘렀다.

    "사령부 생활 한두번 해보나!"

    "......"

    "전쟁이라 생각하고 메뉴얼 대로, 하던대로 하면 될 게 아닌가! 인사참모 대리!"

    "예! 폐하!"

    "전쟁중에 니 상관이 죽었어. 그럼 어떻게 되지?"

    "그 다음 직급의 부하가 권한을 계승합니다!"

    "지금 다음 직급의 부하는 누군가?"

    "접니다!"

    "그래! 전쟁이라고 생각해! 지금 사령부는 적의 폭격을 당한거야. 최고사령관이 죽었고, 그 밑에 네 참모장이 부상을 당했어. 그렇다고 전쟁 포기할거야?"

    "아닙니다!"

    "최후의 1인까지 끝까지 싸워야지! 적을 공격하든 전략적인 후퇴를 해서 부대를 재정비하든! 혼란에 빠진 부하들을 이끌고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거 아닌가!"

    이연이 쩌렁쩌렁 큰소리로 외쳤다.

    "대한제국 국군통수권자, 황제인 내가 이 자리에 있는데 뭘 망설여! 너희들이 책임자야! 지금 이 자리에서 권한을 가진 각 참모진들은 바로 너희들인게야!"

    "예!"

    "너희들이 매년 훈련을 해왔던 건 바로 오늘을 위해서야. 늘 하던대로 메뉴얼대로 해! 전 군에 휴가자 외박자 연락 취하고, 전방에 경계병력 강화하고!"

    "예!"

    그러자 참모부 인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일선 부대에 전화를 돌렸다. 늘 하던대로 메뉴얼대로. 적의 침공에 언제든지 대비하고 막아낼 수 있도록 하라는 사령부의 허락이 일선부대에 전파된다.

    그러자 장군이 없어 허둥지둥하던 일선 군단, 사단도 명령이 내려가면서 대한제국 서북방위사령부의 39만 대군이 야밤의 정적을 깨고 일사분란하게 장비를 챙겨들기 시작했다.

    완전군장을 차려입고 총기를 휴대한 채로 누군가는 창고를 열어 군수물자를 체크하고, 누군가는 언제든지 탄약을 분출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최전방의 보병사단은 벌써부터 트럭에 타고 길목과 산속의 진지를 점령해나갔다. 허둥지둥하던 39만 대군이 황제의 지시에 따라 가까스로 정상 궤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것을 사령부에서 진두지휘하며, 필요하면 전화를 걸어 군단장 대리를 질책하고, 군단장 대리조차 어버버 거리면 직접 예하 사단에 전화를 걸어가며 명령을 내리는 이 남자의 노련함엔 분명 한국전쟁 시절의 경험이 서려있는 듯 했다.

    "아버지··· 진짜 영웅은 영웅이었구나···."

    그 남자는 전화를 하면서도 은서에게 말했다.

    "너도 잘 봐둬. 전쟁터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거야. 안되면 되게하고, 그래도 안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책을 찾아야지."

    "응!"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서북방위사령부의 장교들은 허둥지둥대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고, 한국전쟁에서 부대 지휘 경험이 있던 이연과 현역 4성장군으로 있는 차지연 대장이 참모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가르쳐가며 명령을 내려야 했다.

    그러다 장교 한 명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외쳤다.

    "큰일입니다!"

    "뭐 또! 무슨 일이야!?"

    "위화도가 적에게 점령됐다는 보고입니다!"

    "뭐?"

    그 남자가 3사단 21연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위화도 인근을 관할하던 보병 부대로 서북지역의 군단, 사단, 연대급 부대 배치도를 머릿속에 훤히 꿰고 있던 남자의 판단이었다.

    "연대장!"

    [추, 충성!!!]

    "위화도 보고 니가 올렸지?"

    [그렇습니다! 폐하!]

    "자세히 말해봐! 위화도가 적에게 넘어갔다니? 누가! 언제!"

    [중공군입니다! 21시 30분부로 11번 진지를 점령하러 갔던 중대에서 보고가 올라왔는데, 위화도에 중공군으로 보이는 병력이 있었고 총을 무장하고 있었답니다.]

    "거기 몇 명이나 살고 있는데?"

    [총 20개소. 137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몇 달 전부터 국경분쟁으로 모두 피난한 상태입니다. 그곳은 현재 무인도입니다. 폐하.]

    보고를 듣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답해줄 시간 조차 없었다. 남자는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고 있었고, 빠르게 머리를 굴려가며 자신의 비서실장인 이화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데프콘2 발령할테니까 총리 밑으로 각군참모총장까지 싹 다 여기로 오래그래! 주한미군사령관까지!"

    "네."

    깜빡한 게 있어서 추가로 말했다.

    "미국 대사도 불러. 혹시 몰라.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으니까. 외교부장관이랑 같이 오라그래. 니 부하 재필이도 오라그러고."

    "네."

    남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던 은서에게 말했다.

    "니 자리. 내가 좀 빌려가야겠다."

    "내 자리를?"

    "대한제국 국군 전체를 여기서 지휘할거야. 서북방위사령부는 없는셈 치고 나랑 국방부장관, 합참이 직접 지휘할거니까. 넌 그냥···."

    이런 상황에서 딸래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남자는 한참을 고민했다. 야전군급 부대 사령관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낙하산. 하지만 그렇게 만든 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배우지도 못하게 부하들을 숙청을 해버린 것도 본인. 자기 딸을 전쟁터에 던지고, 미끼로 던지고, 그야말로 사상 최악의 아버지가 바로 본인이기에.

    그래서 남자는 죄책감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다."

    은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뭘 미안해하는지조차 이해하기 버거울 만큼 당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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