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Ep5. 숙청의 밤 (1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평양 시내의 고급 식당 VIP룸에서 이범석 총리가 가소로운 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자넨 절대로 날 이길 수 없어.”
최형욱 중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도 싸우겠습니다.
“난 분명 기회를 줬네.”
그들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한식집에 검은 전투복을 입은 대한제국 친위대 특수임무대대(이하 특임대)가 들이닥쳐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꼼짝마! 모두 손들어!”
최형욱 중장이 성난 표정으로 물었다.
"결국 이렇게 나오시는군요."
이범석 총리는 고고히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술 잘 마셨네.”
“저희를 잡아가시면 구 중장이 황태녀 전하를···.”
“황태녀 전하는 처음부터 우리 보호 아래 있었어.”
“......?!”
이범석 총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 온 건. 황태녀 전하 석방에 대한 협상이 아니라, 자네를 살릴지 죽일지에 대한 협상이었거든.”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협상은 결렬된 거 같구만. 잘가게 최 장군.”
식당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정문과 후문, 창문에서 난입해온 특임대가 반역자들의 퇴로를 막은 다음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는 모든 이들을 사살했다. 반역을 일으킨 장군의 부관들이나 경비대원들이었고 교전 시간은 고작 37.5초가 걸리지 않았다.
예정된 작전대로 상황이 완벽히 정리되자 식당의 정문으로 4성 장군 한 명이 당당히 걸어들어왔다. 40세의 남자 차지연. 충성심 하나로 4성 장군을 단 친위대장이 어깨에 힘을 주며 특임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폐하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 조국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어긴 자. 모조리 체포한다!”
“예!”
친위대의 난입 소식을 들은 장군 한 명이 구석에 숨어서 무전기에 대고 다급히 연락을 돌렸다.
“지금 당장 인질을 죽여!”
하지만 그의 명령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크, 큰일입니다! 김훈 중령이!]
“무슨 일이야?”
[으아악!]
“연대장! 연대장!”
그들이 믿고 있던 생명줄. 인질로 잡고 있다 굳게 믿었던 대한제국 황태녀 이은서는 굳건히 잠긴 기갑연대장의 집무실에서 김훈 중령과 김진혁 중령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런 사이 김훈 중령 휘하 299명의 친위대가 일제히 변절의 변절을 거듭해 자신들과 함께 있던 7군단 특공연대를 모조리 제압해버렸다.
특공연대장의 머리통에 총알구멍을 낸 친위대 장교 한명이 무전기에 대고 낮게 깔린 중저음톤으로 말했다.
[반역자는 죽었다. 항복해라.]
“말도 안 돼··· 김훈 중령이 경친왕을 버렸다고? 황제의 편에 붙었단 말야? 어떻게 이런···.”
망연자실하던 반역자에게 군홧발이 날아왔다. 차지연 대장으로부터 일격을 당한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감히, 태양과 같으신 황제 폐하께 반역을 일으키다니···.”
바득바득 이를 가는 차지연 대장에게 느긋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쯤 해두고 이리 오게. 차 장군.”
“?!”
차지연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난 방에 달려가니 70먹은 노인이 텅빈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 익숙한 체격, 그리고 익숙해보이는 경호원을 끼고 있는 남자.
“총리님!”
“늦었구만. 자네 기다린다고 보다시피 술 한 병을 다 비웠지 뭔가?”
“죄송합니다. 김훈 중령으로부터 연락이 늦게 와서···.”
이범석 총리가 웃으며 말했다.
“반역자들은 다 체포했나?”
“예, 최형욱 중장을 포함한 장성들 전원을 체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황태녀 전하께서 말씀하셨지. 법치국가 대한제국을 만드시겠다고.”
“중앙청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군법대로 해, 군사재판을 열어서 3심까지 보장해줘. 6개월이 걸리든 1년이 걸리든 상관없으니까.”
“허나 그렇게 되면···.”
“어차피 사형은 확정이야. 3심까지 진행하는 건 황태녀 전하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드리는걸세.”
차지연 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마음의 준비라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전하의 부하들이었어. 그들을 하루 아침에 처형해버린다면 마음 고생이 심해지겠지. 미끼 역할을 하신다고 마음고생이 심하셨을건데 두 번씩이나 누를 끼칠 순 없는 게 아닌가?”
연륜있는 총리의 분부에 차지연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각하.”
“마음이 여리신 분이야··· 각별히 잘 모시게.”
“예!”
그렇게 꼬박 밤을 지새운 이범석 총리는 새벽녘 평양의 길거리에 나와 오래된 성문을 감상하고 있었다. 서울의 숭례문과 비슷하게 생긴 중세 건축물로 이름은 ‘보통문’이다.
70대에 이르러 심근경색을 두 번이나 겪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총리지만 폭풍같은 새벽을 보낸 그의 모습은 꼿꼿하고 힘이 넘쳐보였다. 옆에는 구남철 중장이 서있었다.
이범석 총리가 말했다.
"반역 사실을 제보해줘서 고맙네 중장. 자네 공이 컸어."
이범석 총리의 말에 구남철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여전히 믿기지 않습니다. 총리님.”
“뭘 말인가?”
“총리님과 황제 폐하. 그리고 비서실장 이화, 중앙정보부장 김재필, 그리고 보안사 애들. 이번 반란의 규모를 정말로 몰랐던겁니까?”
“모르는 게 이상한가?”
“모르기엔 너무 거대한 반란이었습니다. 27만명에 달하는 정규 전투병력을 지휘하는 장군들이 벌이는 반란 모의를 보안사에서 몰랐다는건···.”
이범석이 나지막이 말했다.
“조국(祖國), 참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이네. 무수히 많은 애국자들이 생각없이 이름을 올리는 단어지. 근데 그거 아는가? 이 단어처럼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건 없다네.”
"각하...."
"내 인생에서 조국이란 두 번 다시 국권을 빼앗기지 않는 강력한 조국이었어."
“그야말로 영웅의 길이 아닙니까?”
이범석 장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고도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지.”
비서실장 이화는 군대 경험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프랑스 유학파로 국내에 돌아와 중앙정보부 제1차장까지 역임해봤지만 군인이 된 적은 없다. 그런 여자가 국가의 모든 첩보망을 틀어쥐고 황제 옆에서 비선실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내각 총리인 이범석 입장에선 참으로 달갑지 않은 그림이었다.
“그런 그녀가 조국이란 이름을 달며 보안사령부까지 쥐락펴락했어.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 이번 일은 전적으로 그녀의 실책일세.”
“조국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가 위험에 빠뜨릴 뻔했군요.”
“군에 관한 정보는 군인이 해야 맞는거야. 더러운 일이라도 때론 불가피한 때가 있겠지."
“그럼 그녀는 어떤 처분을 받게 됩니까?”
“글쎄··· 폐하께서 어떤 판단을 내리실지 모르겠군.”
이범석 총리는 평양의 성문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남철 중장.”
“예, 총리님.”
깍뜻이 고개를 숙이는 구남철 중장에게 이범석 장군이 냉소적으로 물었다.
“자네는 친일파 아버지를 두고 있었지?”
“그것은··· 저와 상관 없는 문제입니다.”
“자네에게 기회를 줌세. 민족의 역사 대대로 애국자로 불릴 수 있는 기회일세.”
그 말에 구남철 중장의 눈이 번뜩였다.
“어떤 분부라도 받들겠습니다!”
“자네에게 내 자리를 물려줌세.”
“총리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각하! 저는 군인으로 정치에는···.”
이범석 장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총리가 아닐세. 장군.”
“그러면···.”
“위대한 영웅이 완전한 권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꾼다.”
“세상을··· 아름답게?”
"조만간 부르겠네."
이범석은 장군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를 떠났다.
***
그 시각 덕수궁 회의실에 중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어깨에 4성 장군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전직 군인. 그러나 지금은 폐지를 줍고 다니는 잊혀진 영웅.
친일파 출신으로 한국전쟁의 영웅이 된 사나이. 백선경 장군이 황제 앞에 나타나 인사를 올렸다.
“충성!”
뜻하지 않은 인물의 등장에 현직 장성들과 국방대신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경멸어린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백선경 장군이 말했다.
“폐하께 청을 올리고자 왔습니다.”
옛 전우를 만난 이연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랫만이군! 백 장군.”
백선경 장군이 주위를 둘러보곤 입을 열었다.
“저랑 폐하. 단 둘이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그러자 장군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위험한 인물입니다! 폐하!”
“전 위험하지 않습니다. 장군.”
덕수궁 석조전의 서양식 회의실 안에 둘러앉은 수 많은 장군들.
김구 선생의 아들로 유명한 국방대신 김신이 떨떠름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 밑으로 영웅을 동경하며 자란 후배들이 적개심을 담아 수근거리고 있었다.
"저 자가 무슨 낮짝으로···."
"간도특설대 출신이라지? 독립군 선배들을 적으로 두고 싸웠을거야···."
대한제국은 이랬다. 애국가조차 독립군가를 쓸 정도로 광복군 출신이 주름잡고 있는 나라. 그들과의 파벌싸움에서 밀린 일본군 혹은 만주군 출신들은 한국전쟁 이후로 휩쓸려나가듯 군복을 벗어야 했다.
백선경 장군은 그나마 한국전쟁의 영웅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끝끝내 4성 장군을 달았지만 그 뿐. 전역 이후로 자신을 불러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달라진 세상을 실감하며 다시금 힘주어 말했다.
“반역에 대한 문제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해결할테니 독대를 윤허해주십시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독대가 시작된 곳은 황제의 집무실. 비서실장 이화조차 빠진 남자와 남자. 군인과 군인간의 대화. 조용해진 그곳에서 백선경 장군은 무릎을 꿇었다.
“무슨 짓인가?”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무슨 의도로 온건지 알 수 있었다. 의도를 간파한 이연이 비장하게 물었다.
“내가 뭘 할지 알고?”
“그들을 숙청하려는 것 아니십니까?”
“반란을 진압하려는 것 뿐이지.”
“반란을 유도하신 건 폐하입니다. 경친왕을 반역죄로 몰아 죽이시곤 장성들을 달래지도 않은 채 28살 황태녀 전하를 그곳으로 보내셨지요.”
백선경 장군은 확신을 갖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들의 반역을 의도하신 게 아닙니까?”
이연은 침묵을 지켰다. 부정하진 않겠다. 그런 뜻이 담겨있는 무게 있는 침묵이었다.
“그들은 저 때문에 반역자의 오명을 자처했습니다. 이 못난 선배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며 철없는 짓을 벌였지요. 그들은 제가 가면 해결됩니다. 제가 가서 무기를 내려놓고 자리로 돌아가라 설득할테니 부디 용서를···.”
그러자 이연이 말했다. 그 남자의 마음에도 절박함과 좌절이 묻어있었다.
“적어도 절반! 절반 만큼은 충심을 지켜줄거라 믿었어! 그들의 충심이 일개 개인이 아닌 국가로 향하는 자가 최소한 절반은 있을거라고! 그렇게 믿었으니까!”
“항상 최악을 대비하신 폐하십니다. 1945년 독립하자마자 전쟁을 대비하고, 저같은 놈까지 군에 받아주신 폐하셨지요.”
백선경 장군이 절박한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헌데 이번엔 왜 최악을 가정하지 않으셨습니까? 누가 얼마나 반역을 일으킬지 몰랐다면 모두가 반역자라고 가정하고 대비하셨어야지요.”
“자넨 나를 너무 많이 아는군.”
“폐하와 경친왕 전하, 그리고 저까지 백두산에 올라가 태극기를 꽃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찌 잊겠습니까? 그 날 보았던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 제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는데요.”
이연이 고개를 돌려 담배를 찾으며 말했다.
“요즘 폐지를 주으며 다닌다지?”
“......”
“미국가서 살라니 거절하고, 안 간다기에 연금을 줬는데 고아원에 몽땅 기부하고 폐지를 주운다? 영웅이란 칭호가 그리도 탐이 나던가?”
“......”
“따지고 보면 자네 때문일세. 한국전쟁의 영웅이 폐지만 줍고 다니니 후배들이 저러는 게 아닌가?”
“저는 그저 폐하의 대의를 도왔을 뿐입니다.”
“무슨 대의?”
“영웅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나라. 폐하가 이 나라를 독립운동가들의 나라로 만들겠다 하시기에 생각했지요. 나같은 놈은 낄 자리가 없겠구나.”
그러면서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반면교사가 되자. 민족 반역자의 오명을 쓰고 평생을 살면 폐하의 혁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버렸습니다.”
“일부러 연기를 했다?”
“후손들은 폐지나 줍고 다니는 민족의 배신자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나는 커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백선경 장군은 자리에 일어나 다시금 힘주어 말했다.
“애국자가 되어야지. 민족이 어려움을 겪든, 고난을 겪든, 위기에 처하든, 항상 잊지 않고 노력하여 도와야지. 그런 교훈이 이 나라에 확고히 뿌리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폐하는 물러터졌습니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세우시겠다면 저같은 놈이나 이완용 후손 같은 놈들 모두 벌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는 다시금 힘주어 말했다.
“프랑스를 보십시오! 1차 세계대전 베르됭 전투의 영웅이던 페탱 장군이 2차대전 이후로 어땠습니까? 나치 독일의 부역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밑으로 얼마나 많은 민족 배신자들이 사형을 당했답니까? 폐하는 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적사항에 친일파라는 빨간줄 하나 긋는다고 그게 무슨 청산이랍니까? 연좌제가 나쁘다구요? 부모 잘 만나 유산 물려받고 떵떵거리며 잘 사는 놈을 함께 처벌하는 게 뭐가 나쁩니까?"
그는 확신을 갖고 말했다.
“폐하는 물러터졌습니다. 그런 식이면 누구도 청산됐다 생각치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나섰지요. 폐하의 대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전 민족의 반역자니까.”
“다른 이도 아니고 백 장군, 자네가 어찌 그런 말을···.”
“폐하를 군인 대 군인으로 존경한 전우였으니까요.”
“......”
"한 평생 군인으로 살아온 저에게 한국전쟁을 누비던 폐하의 모습은 늘 영웅 같았습니다.
당신 옆에서 함께 싸우는 순간 순간이 영광스러웠고, 당신과 함께 백두산에 태극기를 꽃던 날이 제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습니다. 폐하는 저에게 그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폐하! 폐하께서 만드시려는 영웅들의 나라. 그것이 실현되려면 누군가는 악역이 되어야 합니다. 영웅은 악을 무찔러야 인정을 받으니까요."
그러자 이연이 힘을 주어 말했다.
"악역을 자처하겠단 뜻으로 들리는군."
“폐하를 위해 악역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 후배들은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이연은 고개를 저었다. 전우를 바라보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는 말했다.
"허락하지 않겠네. 평생 누릴 수 있는 부를 줄테니 제발··· 한국을 떠나주게. 가서 편하게 살아."
"폐하···."
"자넨 친일파이기 전에 내 전우였어. 동생에 이어 자네까지 죽이고 싶진 않아."
"......"
가까웠지만 가까워질 수 없었던 전우들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연은 나지막이 떠올렸다. 한국전쟁의 끝. 북한군을 몰아내고 백두산 천지에서 태극기를 꽂았던 세 남자의 1950년 12월 25일. 동생 이열(경친왕)과 백선경 장군이 함께 했던 그날의 대화.
“형님! 지금 제일 생각나는게 누구요?”
동생 이열이 물었을 때 백두산 천지를 감상하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 딸, 이 모습을 같이 봤으면 참 좋았을텐데.”
눈 내린 12월의 백두산은 몹시 추웠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지만 장진호 전투에서도 싸워 이긴 세 남자의 강인함을 대자연조차 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강인한 형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맥아더 장군께 비행기를 빌려야지···.”
이연의 말을 들으며 백선경 장군이 미소지어 말했다.
“공주님이 지금 다섯 살인가 그러셨지요? 부산에 계신 걸로 아는데 선물이라도 하나 들고 가셔야겠습니다.”
그가 웃으며 답했다.
“선물은 했잖아? 통일로.”
세 남자는 그렇게 자신들의 손으로 이룬 통일을 만끽하며 한참을 웃었다. 그것은 남자들의 마지막 추억.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전우들의 이야기.
1973년 현재. 이연은 홀로 남은 집무실에서 말 없이 담배를 찾았다.
Ep.6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