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47화 (47/131)

〈 47화 〉 Ep5. 숙청의 밤 (1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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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헬기 3대가 평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검정양복의 사내들과 지긋한 70대의 노인. 내각총리대신 이범석이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평양 시내에 있는 한 고급 식당이었다. 이곳엔 반역을 주도한 서북방위사령부의 장군들이 VIP룸에 모여서 결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범석 총리는 이곳에 황실을 대신한 협상단으로서 반역의 수괴인 최형욱과 일대일 협상을 벌였다.

"제 잔을 받으시지요. 장군님."

최형욱 중장이 깍듯이 일어나 총리에게 술을 권했다.

"저승길 문턱까지 갔다 온 노인에게 약주를 권하는 겐가? 짓궂은 젊은일세."

"장군님."

"지금은 대한제국의 총리일세. 최 장군."

이범석 총리가 최형욱 중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지금이라도 군을 물리고 황태녀 전하를 풀어주시게."

"그건 곤란합니다 각하."

"풀어주면 총리인 내가 책임지고 없던 일로 해주지. ‘풀어주겠다’ 그 말만 해. 나머진 내가 알아서 수습해 줄 테니까."

"저흰 군인으로서 뜻을 품고 일어났습니다. 영웅에게 영웅의 명예를 돌려주기 위해 후배로서 뭉쳤을 뿐이지요."

"뜻있는 군인은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걸세. 중장."

"그러는 각하야 말로 황제 폐하의 이름을 빌려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까? 1960년 5월 16일. 그 날의 일로 황제 폐하는 군을 등에 업고 친정을 하고 계십니다. 대한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전제군주제처럼 돌아가는 순간이었죠."

“황제 폐하는 민족을 위해 사는 뜻있는 분일세.”

"저희도 영웅을 위해 일어났을 뿐입니다. 목적을 달성하면 언제든지 군을 물리고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최 장군."

"각하!"

"자네와 나의 대의는 완전히 달라. 나는 민족을 위해서 일어난 거고 자네는 친일파를 위해 일어났을 뿐이지."

그 말에 최형욱 장군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분은 친일파로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폐하의 허락을 받아 대한제국에 돌아왔고 1950년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워 북진통일의 주역이 되셨지요. 그런 그분이 과거를 용서받고 영웅으로 대접 받아선 안되는겁니까?"

이범석 총리는 단호히 말했다.

"공은 과를 덮을 수 있네. 하지만 용서를 하는 것과 영웅으로 칭송하는 건 다른 문제 아니겠나?"

"용서를 해주셨다는 분이 백선경 장군님을 취직도 못하시게 만들고 가난에 쪼들려 폐지를 줍게 만드십니까? 그게 어딜 봐서 용서해주신 겁니까!"

"우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네."

이범석 총리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폐하께선 1960년 친일 잔재를 청산하실 때 누구도 죽이지 않으셨네. 단지 이 자가 반역자다. 이 자가 민족을 배신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런 일을 했다. 신상정보에 빨간 줄 하나를 추가했을 뿐이야."

"하지만!"

“미국으로 망명하겠다는 자들도 그대로 보냈어. 덕분에 이완용 자식 새끼들은 미국가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재산이야 우리가 대부분 환수했지만 그것도 100%는 아니었지.”

“그럼, 각하 말씀은 백선경 장군님이 스스로 자처해 가난한 생활을 하고 계신단 겁니까?”

"나야 모르지."

"각하!"

이범석 총리는 태연하게 술잔을 홀짝이며 말했다.

“난 단지 영웅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고 싶었어.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끝까지 싸운 이들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나라. 그런 사람들이 대대손손 영광을 누리는 나라. 폐하 밑에서 일해온 수 많은 시간들이 그것을 위해 쓰여졌을 뿐이네.”

“백선경 장군님도 영웅이십니다.”

“아무 것도 안했다고 분명히 말했네.”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저는 절대 믿지 않을겁니다."

그 평가에 총리가 웃으며 말했다.

"다시 강조하지. 우린 그 자에게 아무 짓도 안했고, 모든 건 법대로 이루어졌을 뿐이야. 피흘린 자도 없으니 자네들은 아무런 명분도 없지. 그러니 선택하게. 명분없는 반역자로 죽을 것인지 평화롭게 옷만 벗고 끝날지.”

“피를 흘리지 않았다구요? 경친왕 전하가 죽었는데도요?”

“그 자는 국군통수권자의 허락없이 적을 도발했네. 그건 반역이야.”

최형욱 중장이 속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강조해 말했다.

"황태녀 전하는 저희 손아귀에 있습니다. 저희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시면 절대 풀어주지 않을겁니다."

"호오? 자신만만하구만."

"그분을 구속하고 있는게 구남철 중장이지요. 그도 친일파의 아들이라 원한이 아주 깊을겁니다."

"그래, 알고 있네. 일제강점기 시절 아버지가 순사였다지?"

"저희들이 제시한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십쇼. 하나라도 빼먹으시면 그 자가 무슨 짓을 할 지 저도 장담 못합니다."

최형욱 중장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이범석 장군은 술을 따라 마셨다. 그리곤 말했다.

"근데 이상하지 않은가?"

"뭘 말입니까?"

"자네 말대로라면 백선경 장군은 황실의 보복을 받아 취직도 못하고 폐지를 주으며 산다는 건데···.”

그렇게 말하며 최형욱 중장을 노려보고 물었다.

"친일파 아들이라는 구남철 중장은 왜 군단장씩이나 하고 있는거지?"

"그건···."

이범석 총리가 웃으며 말했다.

“최 장군. 이제 그만 포기 해, 자넨 반역자야. 명분이 아무리 잘났어도 외적을 향해야 할 총이 내부로 향하는 건 잘못된게야.”

“각하의 5월 16일은 지금이랑 다르답니까? 각하의 총도 그 땐 내부를 향했습니다!”

그 말에 이범석은 야수의 눈빛으로 최형욱 중장에게 말했다.

“차이를 하나 더 말해줘야 알아듣겠군.”

“뭡니까? 그 차이.”

“난 성공했고 자넨 실패할 거라는 거.”

최형욱 장군이 기가차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성공한 반란은 혁명이 된다. 이겁니까?”

“아니, 그 땐 이승만이 적이었지만 지금은 나 이범석이 적이란 거지."

이범석 총리가 가소로운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넨 절대로 날 이길 수 없어."

"그래도 싸우겠습니다."

"난 분명 기회를 줬네."

그들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

그 시각 은서는 7군단 기갑연대의 연대장 집무실에 강제로 앉혀져 있었다. 겉보기론 연대장 자리에 평범히 앉아있는 황태녀지만 김훈에게 총이 겨눠져 있는 상태.

"총 내리십시오! 김훈 중령!"

진혁도 김훈에게 총을 겨누며 상황이 일촉즉발의 상태로 흘러갔다. 그러나 당사자인 은서는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책상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그건 마치 산송장 같았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김훈이 은서에게 물었다.

"......"

속에서부터 썩어문드러져 죽어가는 은서의 입에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반역을 일으켰어. 넌 권력자로서 선택을 해야겠지. 맞서 싸우거나 죽거나."

"......"

"총 한번 제대로 쏘질 못해서 손을 덜덜덜 떨고, 기껏 각오를 담아 쏜다는게 자기 자신조차 통제하지 못해 폭주해버리는 너같은 녀석이 과연 황제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

"이은서, 여기서 기회를 주마."

그러더니 김훈 중령은 총을 은서가 앉아있는 책상에 올려놨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 다시금 말했다.

"날 쏴봐."

"오빠를··· 왜?"

"난 반역자니까. 특공연대에 너의 동선을 흘린 것도 나. 그들이 눈앞에 닥쳤을 때 앞장서서 인질로 삼은 것도 나. 이 자리에 강제로 앉혀놓고 총을 겨눴던 것도 나야."

은서는 조심스럽게 총을 잡았다. 그리고 김훈 중령에게 겨눈다. 하지만 덜덜 떨리는 손이 방아쇠를 당길 의지 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길 의지조차 없는거냐? 넌?"

"난···."

"민주주의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겠다고했지? 하지만 넌 황제가 되는 순간부터 피를 보게 될거야."

"어째서?"

"혁명을 해야하니까."

"혁명?"

김훈 중령은 연대장의 집무실을 자유롭게 맴돌며 은서에게 말했다.

"이 나라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나라야. 아버지가 하루종일 집무실에 앉아 서류만 보고 있으니까 마냥 착해보이지? 그도 아니면 TV처럼 아이들 안아주며 환하게 웃어주는 인자한 황제로 보이던가?

독재정치를 한다고 해봐야 언론을 장악해서 유리한 뉴스만 내보내는 여론조작. 그정도 밖에 안 보이니 권력 내려놓는게 쉬워보였을거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빙산의 일각이지. 이 나라는 군대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군사독재 국가니까.”

은서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아직도 오빠 말이 이해가 안돼."

김훈 중령이 은서의 뒤로 돌아가 귓가로 속삭이듯 말했다.

"이범석 총리님의 원래 직업이 뭐였지?"

"군인.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항일 투쟁을 한 독립군."

“그럼 이범석 총리 다음으로 유력한 한독당 부총재 김종규 의원은?”

“군인, 대한제국 친위대장. 4성장군. 우리 아버지의··· 오른팔이었어.”

"중앙정보부장 김재필은?"

"군인···."

떨리는 은서의 눈빛을 의식하며 김훈 중령이 물었다.

“채명진 장군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시나?”

“장군님은 스웨덴 대사로···.”

“그래, 이 나라는 외교관 조차 군인이 하고 있어. 그 뿐일까? 한국독립당 의원 상당수가 군인 출신이고, 교통대신(교통부장관)도 군인이야.”

“......”

“아직 끝이 아니야. 은서야. 1960년 5월 16일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숨이 멈췄다. 심장이 멈추고 흐르던 피가 멈추고 떨리던 손이 멎는 끝에 시간조차 정지해버린 기분이었다. 얼음처럼 굳어버린 공주에게 김훈 중령은 사형선고를 내리듯 그 날의 주인공을 귓가에 속삭였다.

“너희 아버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날.”

"......"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이승만 총리가 군대에 떠밀려 하와이로 쫓겨난 날. 그런걸 반란이라고 하지. 좀 더 고급스럽게 쓰면 쿠데타(coup d'état)라고 하고.”

“하지만 주체는 아버지였잖아. 황제가 총리를 쫓아낸···.”

“친위 쿠데타(Auto-coup d'État)일 뿐이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는 다정히 동생의 어깨를 잡는다. 톡톡 두들겨주면서 오빠가 하는 말.

“이 나라는 군인이 되는게 출세의 길이야. 장군이 되어 전역하면 정치인이 되어 기득권에 들어갈 수 있지. 이런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하겠다면 넌 군부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해.”

"그럴리가 없어···."

"그들을 이기고 민주국가 대한제국으로 만드는 것. 이런걸 혁명이라고 하지. 하지만 혁명은 무수한 피를 뿌릴거야. 그게 국민의 피거나 기득권의 피거나. 둘 다가 될지도 모르고."

"싫어··· 더 이상 전쟁은···."

"그럴 각오도 없으면서 민주주의 대한제국을 만들겠다고 한거야?"

은서가 김훈 중령을 울먹이듯 바라보며 물었다.

"난 피를 보지 않을거야!"

“그럼 독재자가 될래?”

은서의 말을 들은 김훈 중령은 비웃음이 담긴 한숨을 내쉬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친위대 김훈 중령입니다."

수화기 넘어 묵직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2호는?]

"안전한 곳에 모셨습니다. 숙청의 밤, 진행하셔도 됩니다."

[수고했다.]

"뒤를 부탁드립니다. 친위대장 각하."

김훈 중령의 말에 은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친위대장. 차지연 대장을 말하는 것인가?

"친위대장?"

송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김훈 중령이 말했다.

“난 사실 너의 편이야. 현충원에서도, 중앙청에서도, 덕수궁에서도, 여기서도 항상 너의 편이었어. 반역자 행세를 한 건 숲속에서 널 기습한 7군단 특공연대를 속이기 위해서였지.”

“무슨 소리야?”

“너희 아버지가 널 미끼로 보내면서 그랬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아버지를 믿으라고.”

은서는 그제야 떠올렸다. 평양에 오기 전 아버지가 해줬던 약속.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애비를 믿어라. 반란이 일어나든 총부리를 들이대든. 모든건 예상범주니까. 니 애비와 여기있는 내 부하들은 프로거든. 모든 걸 대비하고 준비하고 있으니 믿고 따라오면 돼. 알겠지?>

"그럼 오빠는 날 배신한 게 아니야?"

“그래, 널 배신한 게 아니야. 네 주위에 아군처럼 숨어있던 적을 속이고, 그들을 숙청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뿐.”

갈팡질팡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은서. 그런 은서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김훈. 그런 그의 냉혹한 선언.

“너의 부사령관, 참모장, 그 밑으로 참모부 소속 장교 전체, 2명의 군단장과 12명의 사단장, 그들 밑에 수 많은 대령급 장교들이 죽을 수도 있어.”

믿기지 않는 규모에 은서가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딱 한명. 반역자 색출에 협조해준 7군단장 구남철 중장님을 빼면 모두가 그렇지. 그 밑으로 이곳 기갑연대장도 사형이고, 보병 사단장도 사형, 문 밖에 서서 널 감시하는 특공연대장도 사형대에 오를거야. 방금 내가 한 전화 하나로.”

“말도 안돼!”

“이 나라는 그런 나라야. 경친왕과 황제의 권력 다툼. 결코 아름답지 않았던 영웅들간의 핏빛 혈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나라지.”

"......"

“그러니까 은서야. 내가 너한테 준 그 총의 의미를 잘 새겨둬. 네가 대한제국을 민주국가로 바꾸려면 앞으로 많은 이들과 싸우게 될테니까.”

김훈 중령의 냉담한 선언이 비수로 날아와 은서의 가슴에 꽃혔다.

“혁명은 피로 이루어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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