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41화 (41/131)

〈 41화 〉 Ep5. 숙청의 밤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사령관님~!"

징그럽게 태도를 바꾼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은서의 집무실에 찾아와서 아양이란 걸 떨어보고 있는 49세의 남자 최형욱. 계급은 중장으로 서북방위사령부의 부사령관이다. 은서가 없는 동안 1인자로 군림해있던 섭정같은 남자다.

49세의 아저씨가 떠는 어설픈 아양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은서가 방어적인 자세로 말했다.

"왜, 왜 이래요? 징그럽게···."

"아이고~! 업무 때문에 힘드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제가 성심성의껏 도와드릴 수 있었을텐데요!"

"어이구, 예. 예···."

못믿는 눈치로 바라보는 은서에게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최형욱 중장은 책상위에 놓여있던 서류를 집어들고 말했다.

"이건 이번 달 포상에 관한 서류군요!"

"아 그거··· 서북방위사령관 명의로 일선부대 장병들에게 상장을 수여하는거 맞죠?"

"예! 부대에서 추천이 올라오면 검토해본 뒤 그대로 내려보내고 있습니다. 서명해주시면 일주일 정도의 휴가가 제공될테니 병사들이 아주~ 좋아할겁니다."

이런식으로 부사령관의 조언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서류가 올라온 배경과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은서는 하나하나씩 서류의 산을 치워 낼 수 있었다.

“근데요, 내용은 이해가 되는데 여전히 가부를 결정하는 게 힘들어요. 이런걸 하는건 진행을 시켜도 되는지 심사를 하는거잖아요?"

은서의 말에 최형욱 부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이런이런 일을 진행하고자 하는데 사령관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고 여쭙는 절차지요."

"근데 내가 부족해서 그런지 다 맞는말 같으니까. 계속 진행하세요. 그렇게 하세요. 승낙만 해주고 있으니 이거 이러다 큰일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걱정어린 은서의 표정을 살피며 최형욱이 대견하다는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너무 부담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선 부대 장군들이 꼼꼼히 검토하여 올리는 것들이니 반려를 해야할 정도로 엉망인 내용은 없을겁니다."

"근데 이 서류는 뭐에요?"

은서가 마지막으로 남은 서류 하나를 가리켜 물었다.

"아, 이건 조만간 있을 훈련에 관한 겁니다. 예하 군단과 사단들이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진지 이동 훈련을 실시하는 내용이죠. 이동 위치는 작계 3015에 근거해서 움직이고, 그 다음엔 포병부터 전차까지 사격 훈련을 실시하니 전투 감각을 기르는데 아주 좋은 훈련이 될겁니다."

"흐음··· 작계라···."

"폐하께서 합참이랑 직접 계획하신 작전이죠. 대한제국을 분명 승리로 이끌어줄겁니다!"

그렇게 부드러운 조언을 들으면서도 은서는 서명을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 시국에 훈련을 해도 될까요? 아직 국경분쟁이 한참인데?"

"데프콘4로 낮아지지 않았습니까?"

"만약 화전양면전술 같은거면? 앞에선 협상하는 척하고 뒤에선 기습을 준비할 수도 있잖아요."

그 말에 부사령관이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에이, 미국과 대한제국의 정보력을 너무 낮게 보시는겁니다. 그리고 미국의 전술핵이 우리를 지켜주는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역시 핵인가···."

"일상적인 훈련이라 걱정 안하셔도 될겁니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여러 부대가 교대하는 식으로 후방으로 빠져서 훈련을 진행하니까 안보위기를 초래할 걱정도 없을거구요."

"역시 그렇죠?"

은서는 그렇게 부사령관을 믿고 훈련 계획서에 서명을 했다. 2주에 걸쳐 39만명이 훈련을 실시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서명을 받아낸 부사령관 최형욱이 기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론 제가 이렇게 옆에서 모시며 조언을 해드리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부탁할게요! 부사령관님!"

이렇게 은서는 서류의 산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다음 차례는 황태녀로서의 공식 일정. 진희의 시간이었다.

***

진희가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이 나라 대한제국에서 공주님을 상대로 옷입히기 놀이를 할 수 있는 드문 여성이다.

거무칙칙한 사령관의 제복을 벗고 한복으로 갈아입는 소녀의 모습이 그녀를 흡족케했다. 대기업 재벌가 따님들 조차 함부로 입을 수 없는 대한제국 황태녀의 한복이 눈부실 지경이다.

이런 모습을 ‘영 아니올시다’라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으니 진혁과 김훈. 장소는 평양 시내의 커다란 시장. 남자와 여자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건 김훈 중령이었다.

"아니, 장병들 마음 얻기도 바쁜 판에 첫 공식 일정이 시장 나들이냐? 군인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데 여기서 장병들 마음을 어떻게 얻으려고?"

진혁의 생각도 같았다.

"사령부 내에 우군을 확보하는 게 먼접니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진희의 생각은 달랐다.

"사령관이기 전에 대한제국 황태녀 전하세요. 이북 주민들의 민심을 얻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과업이죠."

은서의 생각은 모두와 달랐다.

"난 여기서 장병들의 마음을 얻을거야."

"......?"

모두가 침묵으로 은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군인?' 이라는 고심, '그냥 놀러온거죠?'라는 의심, '이게 무슨 바보같은 소리냐?'는 한심함의 눈초리가 십자포화로 쏟아졌다. 그럼에도 은서의 생각은 단호했다.

"진혁아. 네가 그랬지? 평양 주민의 3할은 군인이거나 군인의 가족이라고."

"예, 그랬죠."

은서가 손가락 세개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장병엔 세가지 계층이 있어. 장교랑 부사관. 그리고 병사.

그 중 장교랑 부사관은 간부라 평양에 가족을 데려와 사는 경우가 많잖아? 그들 가족이 이곳 시장에 장을 보거나 생계에 종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이곳에서 마음을 얻기 시작하면, 가정에 돌아간 그들이 내 이야기를 하면서 장병들 귀로 들어갈거야.

즉. 주민들의 마음을 얻으면 장병의 마음까지 함께 얻을 수 있다는 말씀!"

"부녀자를 노린다?"

김훈 중령의 반응이 빨랐다.

“노리는 정도가 아니라 확실한 마음을 얻어야지.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고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동질감을 얻을 수 있어.”

"그렇다면?"

“난 오늘 여기서 스트릿뜨 푸드를 배 터지게 먹고 갈거야!”

즉. 여기서 유세 활동을 벌이겠단 이야기.

은서는 팔을 걷어붙이며 새로운 전장 평양의 시장터로 당당히 걸어들어갔다.

이는 진혁의 시간이기도 했다. 눈에 띄는 위압감의 친위대 병사가 아닌, 일반인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위장 경호를 하는 경호실의 사람들이 필요한 때다. 신문을 배달하는 앳된 소년으로 위장한 요원부터 음식을 배달하는 자전거 탄 아저씨까지. 곳곳에 일반인으로 위장한 경호원들이 은서의 주위를 감싸듯 역동적이고 은밀하게 지키고 있었다.

"친위대 경호실의 그림자 경호는 VIP를 안정적으로 경호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받는 위압감을 최소화시킬 수 있죠."

진혁의 솜씨에 김훈 중령이 혀를 내둘렀다.

"이야, 신기하네··· 딱 봐도 17살 꼬마아이 같은데 쟤가 나랑 동갑이라고? 서른네살?"

"분장에 영혼을 쏟아부었네요···."

화장 하면 자신있어하는 진희조차 혀를 내두른다.

이렇게 경호가 그림자처럼 이루어지는 사이 은서는 황태녀의 한복을 잔뜩 뽐내며 평양 주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눈길을 끄는 게 중요했다.

'내가 대한제국 황태녀다!'

이렇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며 은서는 시장 바닥의 먹거리를 공략했다. 순대는 평양 바닥에서도 통하는 인기 음식이다. 간이고 뭐고 소금에 찍어 맛깔나게 입에 집어넣으면, 황태녀를 쳐다보던 주민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수근거렸다.

"저저 신문에 나오던 황태녀 전하 아닙네까?"

"어머어머 진짜네? 순대를 저렇게 잘?"

서북방언을 쓰는 주민과 서울말을 쓰는 주민이 섞여서 은서의 귓가에 맴돌았다. 평양 토박이인 주민과 군인 남편 따라 올라온 부녀자일거라고 은서는 추측했다.

'내가 월남에서 별에별걸 다 먹었는데 순대 하나 못먹을라고?'

그렇게 한가득 집어삼키며 환하게 비즈니스 미소를 지어보였다.

에피타이저를 먹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메인디쉬를 먹을 차례다. 평양의 먹거리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을 거쳐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탄생한 통일 대한제국에서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주한미군.

전후 가난해진 평양 땅에 미군부대가 들어오니 이곳에서 유출되는 보급품들이 평양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미제 군수품들이 주민들의 사치품이 되고, 먹다 남은 음식물이나 불법으로 유출된 식료품들이 지역 음식과 결합해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 문화를 탄생시켰다.

평양식 부대찌개.

전후 가난했던 사람들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햄이나 소시지로 만들기 시작했던 가난의 상징. 하지만 50년대를 지나 60년대를 거쳐 산업화가 궤도에 오른 70년대에 이르면 냉면과 함께 평양을 상징하는 지역 명물이 됐다.

평안도 일대는 겨울이 몹시 추워 기름진 음식을 즐겨먹는데,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탓에 사람들 성격이 진취적이고 대륙적이다. 햄조각과 함께 고기 조각이 대륙적인 느낌으로 두툼하고 푸짐하게 들어가 씹는 맛이 일품이었고, 간은 심심하고 맵지 않게 되어있어 담백한 맛이 강조됐다.

진희의 추천에 따라 비장의 무기 하나가 추가된다.

60년대부터 한국에 들어온 라면이다. 봉지를 뜯고 라면을 사리로 넣어 끓이면 부대찌개의 풍미가 한층 더 강화된다.

은서는 그렇게 결전의 각오를 다져 32시간을 굶었다가 수라상을 받은 공주님 마냥 거침없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이 황태녀로서 품위가 떨어져 보이겠지만, 인기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황실이라면 다소 품위를 희생해서라도 서민적인 모습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은서라면 더더욱.

‘탈권위’

민주 국가의 정치인들이 줄곧 활용하는 선거전략. 은서는 평양의 시내에서 그런 전략을 한껏 활용하고 있었다.

‘나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담아 주민들에게 행동으로 보인다. 권위는 선망을 끌어내지만 탈권위는 친구를 만들어낸다. 은서는 이북 주민들의 경계감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가족인 장병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황태녀 전하가 나타났다는 말에 너도나도 몰려온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해주고, 악수를 청하는 이들에게 기쁨을 담아 호응해주며, 싸인해달라는 아이들의 요청을 모두 받아내 정성껏 예쁘게 싸인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먹고, 보고, 함께하고. 그러면서 시장 상인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며 맞장구쳐주는 은서의 모습이 한없이 행복해보였다.

언제부턴가 따라 붙기 시작한 방송사 카메라들이 은서를 열렬히 찍고 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은서는 그들에게도 환하게 미소지어주었다.

‘지역 방송인가?’

***

몇일 뒤. 은서의 모습이 영화로 나왔다.

덕수궁에 마련된 작은 암실이었다. 영사기가 뿜어내는 빛줄기로 딸아이의 순대먹는 모습이 예쁘게 나오고 있었고, 영상을 보며 이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최고의 작품.

----------------

1973년 7월 7일 대한뉴스

7월 1일. 황태녀 전하께서 평양의 시장을 방문하시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시장의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시며 평양의 문화에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었고, 안보위기로 신음하는 주민들의 손을 잡으며 말씀하시길

'대한제국의 영토와 국민은 국군이 철저히 지키고 있으며, 민족을 대표하는 황태녀로서 이북 주민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겠다' 하시며 살뜰하게 위로해주셨습니다.

----------------

영화로 만들어진 대한뉴스를 보며 비서실장 이화가 말했다.

"대한뉴스는 1945년부터 나왔습니다. 처음엔 자유당 정권이 주도하여 이승만 총리의 치적 활용으로 쓰였고, 지금은 폐하를 위해 쓰이는 황실의 바른 언론이 되어있죠."

"내 비중이 얼마나 되던가?"

"일상적인 뉴스를 빼면 40% 정도고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 의무적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TV 방송은?"

“보조금을 지급해서 최대한 많은 이들이 칼라 TV를 볼 수 있도록 보급률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칼라TV는 아직 시기상조 아닌가? 불건전한 외국 문화가 칼라 TV를 통해 들어오면···.”

이연의 물음에 이화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무분별하게 즐기도록 두시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국민의 관심이 정치에서 멀어지면 한독당의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니까요.”

“자네답지 않게 우민화 전략을 논하는군.”

그 말에 이화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허락하신겁니다. 결과가 좋으면 수단과 방법은 신경쓰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전 공포정치를 안하시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죠."

“후후후....”

"칼라TV가 보급되면 황태녀 전하의 예쁜 모습을 전국민이 생생하게 볼 수 있을겁니다. 외모도 권력이 될 수 있으니 권력 세습에도 도움이 되겠죠.”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 내 폐하의 비중을 30%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줄어든 자리는 황태녀 전하에 대한 것으로 채워서 이북 지역 민심 개선에 활용하죠.”

“그렇게 해.”

그 남자의 권력, 그 여자의 방식. 덕수궁이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방법.

1973년. 이 나라의 텔레비전 보급률은 생각보다 높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