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40화 (40/131)

〈 40화 〉 Ep5. 숙청의 밤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나 왔다."

이 남자 김훈. 이은서 소위가 공주가 되든 황태녀가 되든 한결 같이 반말을 쓰는 남자. 그의 마음속에 이은서는 영원히 자신의 띨띨한 후배일 뿐. 참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였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자신의 선배를 바라보며 은서가 놀라 물으니 머리털이 곤두선 듯 해 우스울 지경이었다.

"뭐, 뭐야?! 오빠가 왜 여기로 와?"

"황태녀 전하께 예의를 갖추십시오. 김훈 중령님."

진혁의 말에 은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령?"

"저기 어깨에 계급장 보시면 대나무잎이 두갭니다."

"뭐야 진짜네?!"

김훈 중령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니가 있는곳이 황궁인데 어쩌겠냐? 따라다니면서 지켜야지."

"아니 근데 이젠 좀 존대 좀 써주지? 너무 무례하지 않나? 내가 이래 봬도 황태녀인데?"

그러자 김훈 중령이 헛기침을 하며 사령관실에서 절도 있는 경례를 올렸다.

"충성! 중령 김훈 외 299명은 1973년 6월 30일부로 황태녀 전하의 호위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 성!"

"......"

정작 당사자가 말이 없자 김훈 중령이 나지막이 말했다.

“경례 했으면 받아주셔야지요. 황태녀 전하.”

냉소적으로 노려보는 김훈 중령에게 은서가 풀 죽은 모습으로 말한다.

"미안해... 오빠는 그냥 반말 쓰자. 내가 적응이 안된다."

"에휴···."

진혁이 왠지 깊게 한숨을 쉬고만다.

그 때 사령관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는 은서의 소리가 있자 부드럽게 열리는 그곳에 익숙하고도 그리운 얼굴이 보였다.

박진희. 8년 전 은서를 위해 절규했던 여자. 그녀의 단식투쟁을 막기 위해 망치까지 들으려 했던 덕수궁 제2부속비서관. 황실의 모든 여인을 책임지던 비서실의 여인이었다.

"언니!!!"

"공주님!"

밝게 웃는 진희의 얼굴에 감동의 눈물이 아른거렸다.

“왠일이야? 설마 내 부속비서관으로 돌아온거야?”

"네! 공주님! 이젠 황태녀 전하시네요!"

"와아 언니!!!"

그렇게 얼싸안고 부비부비하며 어리광까지 부리는 28세 소녀의 모습에 행복이 서려있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이래 한참을 고생해온 은서에게 세상 반가운 친언니 같은 존재였다.

"미술관으로 가셨었다는 것 같은데···."

진혁이 중얼거리자 진희가 답했다.

"직장을 여러번 옮겼었어요. 사실··· 황실에 대한 배신감으로 안 오려고 했는데 공주님이 계시니까···."

"미안해 버리고 가서···."

슬픈 표정으로 부벼대는 은서를 끌어안고 진희가 말했다.

"버리긴요. 오히려 저희가 버리고 간 기분이었는데요···."

"다른 분들도 오신거야?"

"전부 다 그대로세요."

"우와아···."

은서의 얼굴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행복하고 그리웠던. 그래서 한없이 반가운 소녀의 눈물이었다. 8년의 시간동안 쌓여 온 그리움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이 순간이 어린애로 돌아가버린 풍경이었다.

그렇게 감정을 정리하고 자세를 가다듬은 11분 53초의 시간. 서북방위사령관의 집무실에서 4명의 사람이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진희가 먼저 말했다.

"비서실장님이 제게 분부하신 건 딱 하나에요. 황태녀 전하의 참모가 되어달라는 거죠. 사생활부터 식사, 일정 관리나 필요하면 경호까지. 모든 분야의 참모긴 한데···."

말끝을 흐리자 김훈 중령이 말했다.

“군사 분야에 대해선 아는게 없으시겠죠. 정치면 모를까.”

"예. 제가 할 수 있는건 황태녀 전하로서의 업무를 보좌하는 게 전부에요. 군대쪽은 아무래도···.”

은서가 결심의 각오로 말했다.

"괜찮아! 언니가 제일 중요해! 내 사생활은 중요하니까!"

그러자 진혁이 말했다. 은서의 전담 수행원으로서 누구보다 제2부속비서실의 부활을 염원했기에 간절함과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모든 분야에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황태녀 전하의 취향을 맞춰드리는 것부터 정말 모든 것에서요. 경호 차원에서도 중요한데··· 일단 한가지는 분명히 하고 가죠."

김훈 중령이 말했다.

"뭘 분명히 하자는 거냐?"

"이곳은 적진입니다."

"적진? 여긴 황태녀 전하의 부대잖아. 그것도 야전군급 사령부라고. 애당초 난 이해가 안됐어. 뭐가 위험하다고 급하게 가란건지···."

"오면서 들으신 게 없습니까?"

"없어. 황태녀 전하를 지키지 못하면 대동강 물에 빠져 죽으란 소리만 잔뜩 들었지 뭐."

"비서관님도 들으신 거 없으십니까?"

진혁의 물음에 진희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은서가 말했다.

"뻔하지. 일부러 말 안 해준 거야."

"일부러요?"

진혁의 물음에 은서가 확신을 갖고 말한다.

“숙청의 생명은 보안이니까.”

숙청이란 말에 김훈 중령과 진희가 깜짝 놀라 물었다. 둘의 반응을 담담히 보며 은서가 긴장어린 말투로 답한다.

“서북방위사령부 휘하 장군들 중 반역을 모의하는 세력이 있어. 보안사령부도 ‘있다’ 정도만 파악했지 구체적으로 누가, 얼마나, 언제 하는 건지에 대해선 모르나봐. 그래서 내가 미끼로 온거지. 반역자들이 날 노리고 행동을 개시하면 그 때 한꺼번에 처리하는 작전으로.”

"아니, 아무리 그래도 황태녀 전하를 미끼로 쓰다니···."

배신감에 치를 떠는 진희를 향해 은서가 말했다.

“괜찮아. 내가 동의해서 온거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피를 봐야해. 사령부 휘하 군단장 3명, 사단장 12명, 그 밑으로 영관급 장교들을 스탈린 처럼 모조리 숙청하는 걸 보기 싫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

"스탈린?"

“2차대전 직전 소련에 그런 일이 있었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모조리 체포해서 죽이거나 시베리아 노역장으로 보냈거든. 1937년부터 1년간 68만 명이 죽었는데 대한제국에 이런 꼴을 만들면 안되는 거잖아. 내가 미끼가 되어 정말로 나쁜놈만 골라내서 법대로 처리한다면··· 피를 안봐도 돼.”

그러자 진혁이 말했다.

"그래서 여기는 적진입니다. 보이지 않는 적이 24시간 황태녀 전하를 노리고 있다고 가정하고 사생활부터 경호까지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죠.”

진혁의 설명을 듣고서야 김훈 중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하지만 진혁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제 생각엔 일단 황태녀 전하의 먹거리부터 책임져야 합니다."

"먹거리요?"

진희의 물음에 진혁이 답했다.

“황태녀 전하의 식단은 사령부 내 급양대가 담당하고 있는데, 적인지 아군인지도 모를 녀석들이 독이라도 탔다간 속수무책으로 당할겁니다. 그리고 걔네들 요리는 전하의 입맛에 안 맞아요.”

은서가 놀라 물었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매일 식사 때마다 반찬을 남기시니까요.”

"좀 그렇긴 해···."

"그리고 식단으로 끝이 아닙니다. 황태녀 전하는 지금 경친왕 전하가 쓰시던 관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계시는데, 잠자리가 불편하신지 매일 뒤척이다 새벽 1시쯤 잠에 드십니다.

경비도 문제죠. 사령부 병사들이 해주고 있는데 여기는 적의 앞마당 같은 곳이라 구조를 훤히 꿰고 있을겁니다.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암살 시도가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에요.”

그러자 김훈 중령이 말했다.

"오케이. 이해했다. 친위대가 관사까지 철저히 지켜주지."

하지만 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은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언니?"

"그러니까··· 음···."

그렇게 뜸을 들이던 진희가 말했다.

"운전 기사 2, 정비원 1팀, 주방장 및 조리원 6, 요리 재료는 덕수궁에서 직접 받아오고, 방탄 기능을 갖춘 리무진 2대, 월남에서 싸우다 오셨으니 잠자리를 가리진 않으실테고 아마 관사에 퀘퀘한 남자 냄새가 나거나, 분위기가 안좋다거나 하는 환경적 이유겠죠. 관사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도록 업자를 불러보죠. 그리고···."

"아, 아니··· 잠깐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진희가 확신어린 눈으로 말했다.

"한참 부족해요! 정말 말 그대로 모든걸 책임져야 하니까!"

그러더니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장병들의 마음을 못 얻고 계시단거잖아요. 장군들이 반역을 품건 말건 징병되어 오는 병사들은 별개 아닌가요? 그렇죠?"

그 말을 듣던 김훈 중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병사들이야 몸 건강히 전역하면 그만이지요. 괜히 반역에 연루되서 인생 종치는건 원치 않을테니까요. 병사 뿐만 아니라 기간만 채우고 전역해서 사회로 가려는 단기 부사관이나 장교들도 반역과 무관할겁니다. 이 나라는 징병제니까. 마음에도 없는 군대에 온 친구들이에요.”

"그럼 이것들과는 별개로 장병들의 환심을 살 수 있도록 행사 일정들을 잡아봐야겠네요."

그 때 은서가 말했다.

"가능하면 평양의 주민들까지."

진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주민들요?"

“응, 날 엄청나게 적대적으로 봤거든. 황태녀로서 그분들의 환심을 얻고 싶어.”

"네, 그것도 고려해볼게요."

그렇게 첫 날의 회의가 끝났다.

***

모든 예상이 진희대로 돌아갔다.

은서가 잠을 못자던 이유. 남자들은 느낄 수 없는 남자의 냄새. 오랫동안 쓰여온 경친왕의 관사는 여인의 생활공간으로 쓰기에 영 좋지 않았다. 뭣보다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운동을 좋아하던 그 남자의 관사는 곳곳에 아령이나 운동기구들이 어지러이 방치되어 있었고, 사냥을 좋아했기에 엽총이라던가 사슴머리 장식이나 호랑이 가죽 같은게 을씨년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심리적인 요인이 클 것이다. 은서 입장에서 보면 자신과의 권력다툼 과정에서 죽은 희생양이나 다름 없으니까. 그 남자의 흔적 모든게 심리적인 압박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이화에게 모든 설명을 들었던 진희는 그렇게 판단해서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다.

관사를 대대적으로 개조하기 시작했고, 친위대와 협력해서 경호에 유리한 구조로 재배치 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덕수궁 비서실에 연락해서 추가적인 지원군을 받아냈다. 덕수궁의 전담 주방장이 오고 운전기사와 리무진, 정비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 여자가 하는 것. 바나나.

삼시세끼 덕수궁 주방장이 직접 믿을 수 있는 수라상을 내오되, 장병들이 먹는 것과 동일한 식단으로 맞춰 그들이 느낄 심리적 박탈감을 사전에 차단하는 세심한 배려를 했다. 그들과 완벽하게 똑같은 음식이 서로 다른 요리사들을 통해 올라오니 그들로선 누가 한 요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진희는 꼬박꼬박 바나나를 올렸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바나나를 다과상으로 올려내 은서의 입이 심심할 때마다 만족을 시켰다. 그런 진희를 보며 부관인 진혁이 물었다.

"예전부터 이상했는데, 바나나를 왜 저렇게 좋아하시는겁니까?"

그 물음에 진희가 입술을 깨물고서 나지막이 답했다.

"황후 마마께서 돌아가시던 날 공주님과 드신 과일이 바나나였거든요. 덕수궁 석조전 앞 분수대에서 바나나를 나눠먹던 모녀간의 시간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래서 공주님께 바나나는 사치품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혼의 음식인거에요."

그리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밀크티를 만든다.

'준비물은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홍차. 뚜껑이 느슨하게 닫히는 백자기. 이 때 홍차 잎은 스리랑카산을 사용할 것. 뜨거운 물 1리터에 티스푼으로 가득 여섯 스푼의 차를 넣고 6분간 진하게 우려낼 것. 우려낸 차는 새하얀 백자기 찻잔에 따라내고, 차의 온도가 80도씨 이하로 식으면 우유를 조심스럽게 첨가. 여기에 설탕을 약간만 공주님이 좋아하시는 황금 비율로.'

이렇게 담아낸 밀크티를 내놨을 때 은서는 편안한 미소로 밀크티를 마시며 행복에 잠겼다. 모든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이 편안해지는 영국식 티타임이었다.

"전하의 사생활은 정리된 거 같군요. 월남에서 처음 돌아오셨을 때부터 계셨다면 좋았을텐데···."

진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글쎄요, 전 전쟁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어쨌든. 사생활이 정리됐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장병들의 마음을 얻을 차례인 것 같습니다.”

“네. 아낌없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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