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Ep5. 숙청의 밤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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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는 리무진을 타고 평양에 갔다.
따뜻한 6월의 평양. 과거 경친왕이 지배하던 대한제국 이북 땅의 중심지. 1950년 까지는 소련의 영향 아래 공산주의 북한이 수도로 삼았던 붉은 도시. 그러나 지금은 대한제국의 손으로 돌아온 자유의 땅. 제2의 수도로 불리는 곳이다.
조선반도 5천년 역사에 가장 군사적인 이미지를 가졌던 옛 고구려의 수도가 평양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한제국의 평양도 상당히 군사적이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위치한 곳도 여기고, 서북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야전군급 부대 ‘서북방위사령부’의 본청이 위치한 곳도 여기. 곳곳엔 콘크리트 벙커나 대공포가 숨겨져 있고, 넓직한 대로를 빼곡하게 채우는 태극기 사이로 군인들이 지나다니는 말 그대로 군사도시였다.
이곳 주민의 3할은 군인이거나 군인의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하는 전략적 요충지라 군부대가 굉장히 많이 주둔하고 있다.
이런 이유인진 몰라도 평양 시내엔 군가가 방송으로 울려퍼지고 있었고, 리무진을 타고 가던 은서도 익숙한 멜로디에 홀려 자기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무슨 노래고 하니 1957년 경친왕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대한제국의 군가 멸공의 횃불이다.
“음···.”
옆에 앉아있던 진혁이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가사를 바꿔야 할 거 같습니다만."
"왜?"
"공주님은 사나이가 아니시잖습니까? 여군도 육사 장교가 되는 세상인데다 공주님이 5성장군이 되셨으니···."
"뭐 어때? 노래는 노래일 뿐인걸."
그렇게 마냥 한가롭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은서의 눈에 평양 주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난한 것도 아니요, 굶주린 건 더더욱 아니고, 비참하게 사는 것도 아니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시선에 어쩐지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겁먹은건가?
"왜 저렇게 겁에 질린거지?"
진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평양은 작계 3015의 핵심 지역이니까요."
"작계 3015?"
"예, 3차대전 발발시 대한제국은 동북아 최전선에서 공산주의 파도를 막아내는 방패가 되거든요. 수백만 붉은 군대와 싸우게 될텐데 거기에 대비한 작전 계획서가 있죠."
"그 계획서 이름이 작전계획 3015다 이거지?"
"예. 거기 따르면 신의주부터 나선까지 이어지는 압록강-두만강 전선이 1차 방어선이구요. 거기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미국의 지원군을 기다리는겁니다."
"못 막으면?"
"지체없이 포기하고 2차 방어선까지 후퇴하겠죠. 안주시부터 함흥시까지 일건데 거기 바로 아래가 이곳 평양. 결전의 장소입니다.
여기가 뚫리면 국군은 의정부까지 후퇴해야하고, 의정부도 뚫리면 수도 서울. 그러니 여기서 사생결단을 보는게 작계 3015의 핵심이죠. 이런 이유로 평양은 주민 3할이 군인이고 항시 이렇게 안보 의식을 고취시키는 군가를 틀어준답니다.”
"와, 너 되게 잘 안다?"
“친위대 장교로 폐하 옆에 있었으니까요.”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 역시 아버지가 감시하려고 붙인 스파이. 많은 걸 알고 있는 잠재적인 이중간첩이다.
'정보를 잔뜩 뜯어내야겠어.'
그렇게 결심하며 은서는 넌지시 다른 말을 던졌다.
“핵무기도 있겠네? 여기. 주한미군기지에 있으려나?”
"그건 저도 모르겠지만, 이북에 있는건 확실할겁니다. 2차 방어선에서 결전을 벌이다 본토에서 미국 지원군이 도착하면 900여 발에 달하는 전술핵미사일을 퍼부은 다음 밀고 올라가는 게 반격의 시작이니까요."
그러다 진혁이 문득 이상함을 느껴 은서를 노려보았다.
"근데 어째··· 묘하게 심문 당하는 기분입니다만?"
"응? 아냐 아냐 편히 말해. 다 들어줄테니까."
모른척 웃어재끼는 은서에게 진혁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대한제국 황태녀 전하십니다. 국가기밀 최고 등급까지 열람할 자격이 있으신 분이 저한테 정보를 얻고 다니시면··· 에휴··· 그냥 폐하께 여쭤보시죠."
"헤헤··· 너무 표났니? 그래도 봐주라. 아직은 아버지가 꺼림직 하거든. 아버지인지 웬수인지···."
"에휴... 어쨌든 이정돕니다. 이북지역 전체가 최전방."
"이북지역 전체···."
"보고 계시는 평양 주민들 중 표정이 유달리 어둡다 싶은 분들이 있을건데요, 신의주나 나선 등지에서 내려온 피난민 분들이십니다. 공주님이 달갑지 않겠죠. 민주주의 같은 것보다 당장의 안보를 중요시 하는 분들이니까요."
진혁의 말 그대로였다. 친위대의 리무진 행렬을 바라보며 유달리 어둡고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은서의 눈에 띄었다.
"애국심에 똘똘 뭉쳐있던 경친왕이 반역죄로 죽었어. 그래놓고 차기 황위를 28세 소녀가 쥐게 됐는데 아마 의구심이 가득하겠지. 휴우···."
은서는 그렇게 단념하며 고개를 저었다.
"공주님은 월남전의 영웅이십니다. 분명 마음을 돌리실 수 있을겁니다."
"연륜이란게 있잖아. 28세 신출내기 지휘관이랑 중년 남성의 베테랑 지휘관은 다르다고. 나조차 지금 자신이 없는데···."
원망스러웠다. 모든게. 경친왕도 그래선 안됐고 그를 죽인 아버지와 비서실장도 그래선 안됐다. 모든것이.
***
별도의 취임식은 갖지 않았다. 별 다섯개의 황태녀 이은서 원수는 리무진을 타고 서북방위사령부로 도착하는 즉시 사령관의 임기를 시작했다.
초병들이 리무진 행렬에 충성을 외쳤고, 사령부 본관 정문에선 장군들이 일렬로 서서 자신들의 새 지휘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부사령관 최형욱 중장이 있었다.
"충성! 중장 최형욱, 대한제국 황태녀 전하를 뵙습니다!"
은서는 긴장감을 담아 경례를 해줬다. 서있는 장군들을 보니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건 몇 일 전 아버지가 해준 덕수궁에서의 이야기 때문이다.
<은서야. 이번엔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하마. 난 널 서북방위사령관으로 무리한 인사를 단행해서 장군들 동향을 분석할거다. 누가 불온한 마음을 품고, 누가 충심을 품는지 구분해서 황실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를 법대로 숙청할거니까.>
눈앞에 보이는 수 많은 장군들 중 반역자가 있다. 아직은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각오를 품고 기회를 엿보는 자들. 비즈니스 미소에 경멸의 감정을 숨기고 칼을 갈고있을 놈들을 떠올리며 은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미끼야. 미끼로 이 자리에 있는거야···.'
그렇게 두려운 마음을 품으며 자신의 새 부하들을 바라본다. 언제 어디서 등뒤에 칼을 꽃을지 모르는 적들. 그런 그들을 걱정하는 딸에게 한 아버지의 약속.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애비를 믿어라. 반란이 일어나든 총부리를 들이대든. 모든건 예상범주니까. 니 애비와 여기있는 내 부하들은 프로거든. 모든 걸 대비하고 준비하고 있으니 믿고 따라오면 돼. 알겠지?>
‘정말 믿어도 되는걸까? 아버지.’
은서는 장군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령부 본관으로 들어간다. 대한제국 27만 장병을 총괄하는 거대한 현대식 건물. 미사일을 때려박아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근콘크리트의 사령부가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장군들 중 한명이 경멸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3성 장군(중장)의 군단장이다. 어느 부대의 장군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 남자의 표정엔 이런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 했다.
'네가 우리들의 지휘관이라고? 황제의 딸이면 뭐든지 가능하다 그건가? 너같은 낙하산은 우릴 지휘할 자격이 없어.'
그 남자의 표정은 공격적이고 위협적이기까지 했지만 은서는 참아내기로 했다. 이 분위기와 감정. 수 년 전 월남과 동일했으니까. 소위 시절 자신의 숙소에서 경멸의 표정으로 바라보던 박철민 상사의 표정과 완전히 똑같았으니까.
'미끼로 끝나진 않을거야. 완벽히 장악해주겠어. 너를 지배하고 충성을 받아냈던 것처럼. 지켜봐 철민아.'
은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휘통제실로 향했다.
***
지휘통제실에 도착한 은서는 새삼 놀랐다. 아버지의 남자 김진혁 대위가 했던 그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정말 간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확한 설명이다.
작전계획 3015에 관한 내용이 지휘통제실 곳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령부의 지하 벙커에 위치한 넓은 회의실 전면에 이북지역과 만주지역이 담긴 지도가 걸려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말단 장교인 은서지만 채명진 장군의 사령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은서기에 익숙한 분위기가 있는데 사령부엔 병사가 없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없다. 채명진의 월남 사령부보다 급이 높은 야전군급 사령부라 더더욱 그렇다.
가장 말단 장교래봐야 대위쯤 되는 애들(내 또래고 나보다 계급이 낮다. 당연히 애들이지)이 불쌍한 표정으로 잔심부름을 하고 있고, 별 1개의 준장과 소령부터 대령까지의 영관급 장교들이 저마다 알 수 없는 서류들과 군용 장비를 만지작 거리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병사란 존재는 아마 사령부 바깥에서 경비를 서는 그정도 역할이 전부였나보다.
'아, 나도 원래 저기서 경비나 서고 있을 짬밥인데···.'
그렇게 무심결에 생각하는 은서였다. 지하벙커의 지휘통제실에서 전문가들의 알수 없는 설명을 들으며 멘탈이 반쯤 나가버렸다.
'미안해요 여러분. 저한테 열심히 보고해주시는데 전 지금 뭐라고 하시는건지 하나도 못 알아 듣겠어요. 페바가 뭐죠?'
은서의 속마음을 어떻게 읽었는지 진혁이 귓가에 대고 소근거렸다.
"Forward Edge of Battle Area. 아까 리무진에서 설명드렸던 방어선 같은걸 생각하시면 됩니다."
진혁의 설명에 은서가 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고마워, 진혁아···."
그제야 은서는 눈앞에 막대기를 들고 지도를 가리키고 있는 대령 계급의 아저씨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 발발을 대비해 우리 국군은 FEBA-A부터 B, C, D 까지 구축하고 있으며 서북방위사령부 휘하 3개 군단, 그 밑으로 12개의 사단이 신의주부터 만포, 중강까지 맡고 있습니다. 총 병력 39만 5171명···."
"잠깐!"
은서가 대령 아저씨의 말을 멈추고 물었다.
"제가 알기론 27만인데요. 39만명이나 되나요?"
그 말에 장성들이 불편한 기색에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대령 아저씨가 천천히 자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보병사단만 27만입니다. 그외에 사령부 직할 군수지원사령부, 화력여단과 정보통신여단, 특수기동지원여단, 공병단, 헌병, 근무지원, 항공, 방공 등을 합하고 거기에 해병대와 공군, 예비 전력까지 합하면 39만이 넘습니다."
"해병대랑 공군까지 저희가 지휘하나요?"
"네, 서북방위사령부는 5성 장군인 원수가 지휘하는 사령부입니다. 계급으로만 따지면 합참의장님보다도 높아 저희를 지휘할 수 있는건 황제폐하 뿐이십니다. 따라서 육군부터 해군, 공군과 경찰, 소방까지 필요한 모든 민관군 병력을 통제할 수 있는 특수 지휘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너무 초월적인데?"
"그도 그럴게 대한제국에서 원수 계급장은 황실이 아니면 누구도 달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계급 자체가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고 머리 아파···.'
머리가 어질어질거렸다. 정상적인 28세 나이면 대위로 최전선에 복무하고 있었을 장교가 이러고 있다. 내 손에 대한제국 국군의 절반이 쥐여져 있었고, 거기에 경찰과 소방관을 통제한다는 정신나간 권력까지 쥐여져있었다.
‘살려줘···.’
멘탈이 바스라지고 있었다.
바스라진 멘탈 속에 지능이 50% 디버프 걸려버린 은서는 이해 못하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의 심각한 문제였다. 채명진 장군과 대화할 시간이 3시간만 더 있었다면 알지 않았을까?
그가 계급장을 걸고 황제와 다투었던 문제도 이것이었으니까. 민관군 모든 분야를 통제하는 매머드급 사령부. 서류상의 병력과 실질적인 병력이 일치하지 않는 유일한 곳.
군이 경찰을 통제하고 지자체에 압력을 가하며 서북지역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문자 그대로의 군벌.
채명진은 이들의 규모를 줄여서 군부의 힘을 빼야한다 생각했고, 이연은 이곳에 자신의 충신을 앉혀서 서북지역 전체를 군으로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원했다. 그리고 경친왕은 이 자리에서 황제를 무시하고 독단을 행사하다가 중앙정보부에 암살당했다.
그 자리에 28세 소녀가 미끼로 앉아 있었다. 공격적이고 불신어린 눈으로 쏘아대는 장군들의 시선을 온 몸으로 받으며.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있는 은서를 바라보며 군단장 중 한명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고작 이 정도냐? 네 밑에 대한제국 군의 절반이 있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구나. 넌 안돼. 황태녀라고 해도 이건 무리다.'
군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구남철. 평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기갑부대를 두고 있는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