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37화 (37/131)

〈 37화 〉 Ep5. 숙청의 밤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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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봉식이 끝이 아니었다.

호텔 이화에 성대한 축하 행사를 열고서 각국 대사들과 장성들을 초대했고 여기서 샴페인을 마시며 사담을 빌미로 이런저런 정치적 이야기를 나누는 사교계의 장이 열렸다.

아버지와 함께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모든 내외귀빈을 만나고 있는 은서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살려줘···.'

이게 끝인 줄 알았지. 잠자고 밥먹는 시간을 빼면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3일이 내내 바빠서 차 안에서 잠을 자야 할 지경이었다.

차안에서 연설문을 달달달 외워서 국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번 더 실시. 의원들의 무수한 기립박수를 받아냈고, 현충원에 가서 호국 영령들을 참배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 11명의 묘를 찾아가 환한 미소로 경례를 올렸다. 행복했지.

근데 끝이 아니었다. 단체란 단체는 다 만나고 다녔다.

대한제국광복회(독립운동유공자회), 한국전쟁참전유공자회, 월남전참전자회를 만나 인사를 올렸고, 위안부피해자모임과 강제징용피해자모임도 찾아가 인사를 올렸고, 그 외에도 이 나라에 존재하는 황립보훈처 산하 모든 유공자회와 단체를 찾아가 황태녀 자격으로 인사를 올린 것이다.

"아버지, 살려줘··· 잘못했어···."

리무진 안에서 절박히 호소하는 딸의 절규에 아버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토닥여준다.

"이 나라 황실이 누구 덕으로 유지되겠느냐? 아직 멀었으니 분발하거라."

"이렇게 바쁘게 할 필요는 없잖아···."

근데 이상했다. 종묘는 기어코 안갔다. 역대 조선왕조의 임금들께 인사를 올리는 자리는 왜 없는 것인가? 이상함을 느낀 은서가 물었다.

"애국을 하는건 좋은데 정작 조상님은 안뵙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아버지 위로 이 나라 군주가 28명이 계셨는데?"

리무진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좀 미뤄야겠다."

그 남자가 종묘를 찾아간 건 1973년 5월 25일 금요일. 무려 일주일이나 질질끈 다음이었다. 조선왕조의 모든 왕과 왕후를 모신 왕들의 사당. 대한제국에 새로운 황태자. 아니, 최초의 황태녀가 책봉되었음을 조상님들께 엄숙히 보고하는 유교식 행사가 마침내 종묘에서 열렸다.

은서는 드디어 보았다.

아버지가 동양 황제의 면류관과 곤복을 입은 모습을. 살아생전 익선관과 황룡포를 단 한번도 입어본 적 없다는 서양식 양복의 남자가 마침내 그걸 입었다.

'그래도 조선의 임금이긴 하네. 아버지···.'

은서도 소원대로 면류관을 써봤다. 곤복도 입고 유교적 전통에 맞춰 제례를 올리는 조선왕조 최초의 여성.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최초로 세자의 위치에 오른 황태녀. 선조들과 첫 인사를 올리는 뜻깊은 순간.

하지만 여기서 은서는 보고 말았다. 아버지가 종묘 제례를 일주일이나 미뤘던 이유. 그 남자의 야망이 눈에 들어오고 만다.

황금색 커텐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종묘. 그곳에 모셔진 역대 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단지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특히 세종대왕의 정실부인인 소헌왕후의 신주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검은글씨로 한자가 적혀있는데···.

昭憲皇后

소헌황후

세종대왕의 정실부인. 소헌왕후가 소헌황후로 적혀 있었다.

‘소헌황후? 세종대왕님은 황제로 추존된 적이 없는데? 소헌왕후님이 어떻게 황후로 모셔져 있는거지?'

은서는 그렇게 다른 신주단지도 돌아봤다. 역대 모든 왕과 왕후들의 칭호가 왕(王)이 아닌 황(皇)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아버지, 설마···.'

은서는 얼마 전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있었던 폭풍같은 대화의 한 장면.

<귀찮으니까 조선왕조 전체를 황제국으로 치자꾸나.>

<대한제국 선포 이전에 25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분들 모두를 황제로 추존하자고? 어느 나라 예법이야 그건?>

<귀찮잖냐? 이 나라가 지금은 황제국인데, 같은 나라 옛 조상님들을 일일이 왕이니 황제니 어찌 다 따지느냐? 난 그런거 모른다.>

<이 자리엔 나를 포함한 29명의 황제가 있었던거다. 부패한 나라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있었고, 막강한 권력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진 태종 이방원이 있었지. 그의 아들은 백성을 사랑해 문자까지 만드니 나는 그분을 세종대제라 부른다.>

은서는 떨리는 눈으로 면류관을 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신주단지 앞에 절을 올리며 술잔을 올리고 있는 아버지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버지, 세종대왕이 왜 황제로 바뀌어 있는거야? 정말로 이 나라 조선 전체를 황제국으로 바꾼거야? 아버지가··· 역사를 고쳤다고?'

그 남자의 말대로 조선은 황제국이 되어 있었다. 1897년 광무개혁 이후 뿐만 아니라 그 이전. 1392년 태조 이성계의 건국 때부터 모조리 조선 '제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자의 종묘는 이렇게 천자국의 종묘가 되어 있었다.

***

모든 행사가 끝난 같은 날 금요일. 은서는 아버지를 다시 경복궁 근정전으로 데려갔다. 은서가 옥좌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이 옥좌. 왕의 옥좌였지? 황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말했다.

"경복궁은 고종 황제 시절 복원됐다. 처음부터 제국의 궁전이었던 셈이지."

"웃기지 마. 조선 건국 때 지어진 경복궁은 왕의 궁전이었어. 엄밀히 말하면 복원을 한거잖아. 그러니까 이 옥좌는 처음에 왕의 옥좌였던 셈이지."

"그래, 그렇다고 치자."

"조선은 왕국으로 시작했어. 그러다 고종황제 시절 광무개혁으로 제국이 됐지. 근데 어째서 종묘의 모든 임금이 황제로 추존되어 있는거야?"

"말했잖냐? 내 위로 모든 분들을 황제로 치겠다고."

"그렇다고 그걸 진짜로 했어? 동양 예법에 불가능한 일을?"

"예법은 필요없어. 내가 법이니까."

황태녀의 제복을 차려입은 은서가 아버지를 노려보고 말했다. 그 남자 대한제국의 6성장군. 대원수. 83만 대한제국군의 총사령관. 대한제국의 황제에게.

"조선왕조 500년이 천자국이 되어버렸어. 모든 왕이 황제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거지? 누가 뭐라 안해?"

이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할 나라가 누가 있겠냐?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제국을 칭하는 나라는 조선이 유일한데. 일본은 전범국이 되어 군대 조차 보유 못하는 나라가 됐고,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어."

"아버지, 분명히 말하는데··· 부정적인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그냥 안 믿겨서 그래. 진짜로 조선왕조 500년이 천자국이 된거야?"

"그래, 내 명령으로 그렇게 된거야. 종묘의 모든 신주단지를 천자의 이름으로 올렸고, 조선 땅에 모든 왕의 무덤이 황릉으로 격상됐으며, 비석에 써있는 모든 글자도 왕(王)을 지우고 황(皇)을 새겨넣고 있지.”

이연이 딸을 노려보며 냉소적으로 물었다.

“왜? 싫으냐? 선조분들을 황제로 추존하는 일. 민족적인 감정으로 따져보면 좋은 일인데, 넌 어째 기분이 안좋아 보이는구나?”

"아니, 말했잖아. 안 믿겨서 그런거라고. 진짜로 이런 짓을 하는데 누구 하나 이의제기를 안했다고? 중국이 진짜 아무 말도 안했어? 걔네들 수천년 동안 천자국이었는데? 그 콧대 높은 놈들이 진짜 아무 말도 안했다고?"

"놈들은 지금 문화대혁명 중이야. 지들 스스로 공자의 무덤을 부수는 애들이지. 자기들이 자기 역사를 봉건 잔재로 취급하며 단절을 선언하는데 대한제국이 천자국을 칭한들 신경이나 쓰겠냐? 그들 입장에서 우리는 봉건 잔재에 매달리는 적폐 세력으로밖에 안 보이겠지."

"그럼 진짜로··· 세종대왕님이 세종대제가 된거라고? 앞으로 자라나는 애들도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울거고?"

“그래, 학부대신한테도 그리 명했다. 모든 교과서를 그렇게 뜯어고치라고. 이 나라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황제국으로 남을테니까. 내가 역사를 그렇게 고칠거니까.”

은서가 온몸을 파르르 떨며 ‘아버지’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조선왕조 500년이 모조리 천자국으로 역사 개조되는 엄청난 순간에 자신이 주인공으로 서있었다. 새삼스레 경복궁의 옥좌가 다르게 보였다.

“잘 들어라 은서야.”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넌 애비의 뒤를 이을 황제가 될 몸이다. 어떤 각오로 그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지 황제인 내가 알려주마."

은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에서 제국이라 하면 로마 제국을 뜻한다. 그래서 그 지역 왕들은 황제를 칭하려면 혈연이든 지연이든 로마 제국과의 연결성을 찾아야 했지.

동아시아에서 제국은 천자국을 뜻하고 이는 하늘 아래 모든 천지의 주인을 뜻하는 제왕의 단어야. 그래서 늘 강한 놈이 강한 놈임을 자부하며 천자를 칭했다."

이연은 자기의 딸에게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조선은 다를거다. 조선에서 제국이란 독립을 상징하는 단어니까. 전세계적으로 제국주의 광풍이 몰아치던 1897년,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똑같이 제국을 칭했지. 그게 바로 대한제국. 최초의 황제 고종이다.

이 나라는 일본에게 식민지로 먹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국임을 주장했고 황제국임을 주장했어. 왜? 우린 독립국이고 싶었으니까. 그걸 확실히 표현할 상징적인 단어가 제국과 황제였으니까.

자유를 위해 싸우다 쓰러져간 수 많은 애국지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염원했던 의지가 그 단어에 담긴거다. 그 시대는 나약한 왕국들이 식민지로 전락하던 제국주의 시대였으니까."

“그건 알고 있어···.”

"독일에서 제국은 전쟁범죄자 히틀러가 떠오르겠지. 프랑스에서 제국은 정복자 나폴레옹이, 영국에선 식민지 제국 대영제국이 떠오를테고, 일본에선 히틀러와 함께 파시즘에 물들어 있던 전범국가 일본제국이 떠오를거다."

이연이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우리 조선인에게 제국이란 자주 독립국. 정의롭고 자유롭고 평화롭고 싶었던.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간절함이 있을 뿐이야.

그러니 내 조상님들 황제로 만들어드려야지. 이 나라에서 왕이란 제후국의 왕. 변변치않게 조공이나 갖다 바치는 신하국의 의미가 담겨있을 뿐이니까. 그런 나라의 왕은 이 나라 조선에 아무짝에 쓸모 없으니까."

"자주독립···."

"내가 왜 너를 데리고 애국지사들을 찾아다녔겠냐? 너를 데리고 식민지 피해자 분들을 찾아다닌 이유가 뭘까?

그들을 위해서야. 우린 그들을 위해 제국을 주장하고 황제를 칭하며 약속하는거야. 두 번 다시 국권을 잃지 않겠다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우리의 아들 딸은 독립된 조국에서 자유롭게 살게 할거라고.

그 시절, 약소국은 누리지 못했고 강대국만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의 자유를 위해서."

은서는 겁에 질린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역사의 무게 앞에 짓눌려버리는 28세 소녀의 모습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 대한제국 황태녀. 조선 '황실' 500년의 후계자. 민족의 대표라는 자리가 5성 장군의 계급장보다도 무겁게 느껴지고 말았다.

"아버지···."

"그래, 은서야. 대한제국의 황태녀가 된 내 딸. 넌 내 뒤를 이어 황제가 될거다. 자주독립국의 염원을 담은 간절한 호칭. 니가 물려받을 '제국'이라는 한맺힌 단어를 기억하거라. 이제부터 그 무게를 짊어질 각오를 해야하니까. 장담하건대, 이 나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닐거다."

***

이연은 자리를 덕수궁으로 옮겼다. 자신의 집무실. 비서실장 이화, 친위대장 차지연, 중앙정보부장 김재필까지 모아놓고 황태녀가 된 은서에게 말했다.

"너 의회에서 그랬지? 법치국가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은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법치국가의 근간은 질서다. 법이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권위와 힘을 필요로 하지."

"권위와 힘?"

"사람들이 법을 따르게 할 수 있는 권위, 법을 무시한 자를 체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공권력, 그런 사회를 지킬 수 있는 튼튼한 국방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말처럼 자유 월남은 망할거다. 공권력도, 법의 권위도 무너진 상태에서 그걸 지켜야 할 공권력과 군대조차 부패하고 무능에 찌들었으니까.

네 말이 맞아. 그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우리들은 그들의 과오를 답습해선 안돼. 그들의 실패를 교훈삼아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개선하는 게 참전용사를 위한 길이기도 할거다."

그래서 이연이 말했다.

"그러니 일단 군권을 장악하자."

"왠지 불안한데···."

"군대는 국가와 사회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합법적 무장 조직이야. 재난이 됐든 외적이 됐든 사회를 지킬 힘이 필요하거든.

근데 무기를 들었잖냐? 그 무기가 사회 내부로 향하면 법치주의는 무너지고 말거다. 그래서 그들을 확고히 통제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제1원칙이지. 이게 달성되어야 독재를 하던 민주주의를 하던 할 수 있으니까."

"그,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내 나이가 아직 28세야. 뭘 시키기 전에 그건 좀 알아줬으면 하는데···."

이연이 뿌듯한 미소로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월남에서 하던거 보면 군인에 소질이 있던데."

"그야 뭐··· 그런거 같긴 하지만··· 설마 아버지 날더러 서북방위사령관이 되라거나 그런건 아니지?

분명히 말하는데. 난 특전사 1개 팀의 지휘관이었을 뿐 참모일 조차 해본 적 없어. 근데 갑작스럽게 5성장군을 달았다고. 중간과정 다 건너뛰고 거기로 보낼 생각이면 참아줘 제발."

이연의 말을 듣던 비서실장 이화가 천천히 다정하게 설명해줬다. 역시나 서북방위사령부 이야기다. 경친왕의 죽음으로 사령관 자리가 붕 떠버린 야전군급 부대다.

"실은 보안사령부에서 올라온 보고가 있었어요."

"보안사요?"

"대한제국 보안사령부. 군 내 방첩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죠. 장성들 동향을 분석하고 감시하며 쿠데타 방지 업무도 하는데, 최근 서북방위사령부 예하 장성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보고서가 올라왔거든요."

그러자 은서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불온한 움직임?!"

"반란이죠."

이연이 말했다.

"경친왕이 죽은 이후로 서북방위사령관 자리는 공석이었지. 부사령관이 대행직을 수행하면서 합동참모본부의 감독을 받고 있었는데 역시 안될 모양이다. 그 자리엔 사령관이 필요해."

"그러면 능력있는 장군을 앉히면 되잖아. 굳이 내가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숙청을 할거니까."

"......"

"물론 죽이진 않을거다. 직위 해제하고 평생 공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는 정도로 끝낼거야. 나쁜짓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은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쁜짓이라면···."

"반란. 모의를 하는거와 실제로 하는 건 다르니까. 말했지만 군대란 건 국가에서 사회를 지키라고 허락한 유일한 무장 조직이야. 총을 든 무장조직이 법의 통제를 무시하고 반란을 일으키면 마땅히 응징을 해야하지 않겠냐? 법치국가의 제1원칙이 훼손되는 일인데."

"진짜로 하게 되면··· 죽이는거구나. 또 다시."

"그래, 사형이다. 법대로 할려던 숙청이 스탈린 시절 소련이 벌인 피의 숙청으로 바뀌게 되겠지."

"그래서, 내가 거길 가서 불순분자를 찾아내라? 왜 하필 내가 가야되는건데? 아버지 밑에 부하가 그렇게 없어?"

"군의 장성을 숙청하는 일은 보안이 생명이거든. 너도 국회에서 말했잖냐? 월남에선 쿠데타가 10번이나 일어났다고. 군인들 손에 대통령까지 죽었다 했지. 그 꼴 안 보려면 숙청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해야하는거야."

이연은 은서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으며 아버지로서 말했다.

"은서야, 이번엔 거짓 없이 솔직히 말하마.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부탁할테니까 들어다오. 난 널 서북방위사령관으로 무리한 인사를 단행해서 장군들의 동향을 분석할거다. 누가 불온한 마음을 품고, 누가 충심을 품는지 구분해서 최대한 피를 안 보고 숙청할거야."

"그래서 내가 가서 미끼가 되라는거구나?"

"그래, 네 안전은 여기 있는 비서실장, 친위대장, 중앙정보부장이 목숨을 걸고 지켜줄거야.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지원해줄테니까."

이연이 조심스럽게 딸의 표정을 살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이 얽힌 표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 딸의 마음이 상할까 조심스럽게 아버지는 천천히 자신의 바램을 입에 담는다.

"나랑 작전을 하나 해보자꾸나. 법치국가 대한제국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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