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34화 (34/131)

〈 34화 〉 Ep4. 덕수궁 비서실장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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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화는 무단결근했다.

밀린 서류들이 직원들 손에 들려 덕수궁 비서실장실까지 왔다가 도로 돌아가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비서실장의 불참으로 국회 하원 운영위원회의까지 연기되버리자, 정무수석비서관 최원철이 직접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조차 해결방법은 없다. 굳게 잠긴 비서실장실 앞에서 한숨을 쉬는 게 전부일뿐.

“아니, 도대체 왜 안나오시는거야?”

그의 옆에는 애타는 심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덕수궁 제1부속비서관 박철승이 있었다. 황제의 일정을 챙기는 제1부속비서실의 총괄로 이화의 뒤를 이은 비서실 2인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엔 공주의 단식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불쌍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공주님이 수라상을 거르고 계신데 이런 다급한 순간에 여쭤볼 분이 안 계시니. 이거야 원···.”

1부속비서관의 말에 정무수석 최원철이 놀라 물었다.

“아니 또? 이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폐하께라도 보고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것이··· 보고를 드려봤는데··· 아시잖습니까? 공주님 속마음 모르는 건 저희들이나 폐하나 똑같은거. 에휴···.”

“이런···.”

그 때 두 사람의 등뒤로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정무 수석님! 운영위원회의는 어떻게 됐죠?”

익숙한 여인의 물음에 정무수석 최원철이 깜짝 놀라 답한다.

“아, 예! 무기한 연기되버린 걸로···.”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보니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로 서있는 비서실장 이화가 있었다. 출근한답시고 양복을 차려입긴 했는데 모양새가 영··· 누가 봐도 지각생의 몰골이었다.

“그런데 설마··· 지금 일어나신건?”

원철의 물음에 1부속비서관 박철승이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다.

“천하의 비서실장님이?”

두 사람의 의심어린 눈초리에 이화가 거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정이 있었어요. 어쨌든 운영위는 다시 잡아주시구요.”

“아, 예···.”

그 다음 1부속비서관 박철승을 노려보며 물었다.

“공주님이 뭐 어떻다고 하셨죠?”

“아! 예··· 하루 종일 방에 나오질 않으시는데 수라상도 거르고 계십니다. 이제 저녁 수라를 올려야 하는데···.”

“저녁 수라는 예정대로 올리세요. 공주님은 제가 직접 찾아뵙죠.

현재시간 17시 50분. 해가 중천에 떠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지난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

공주의 방은 잠겨있었다. 그러자 이화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강제로 열고 들어간다. 깜짝놀라는 1부속비서관과 정무수석의 눈초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친 걸음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녀.

커텐쳐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책상에 앉아 스탠드 하나를 켜놓고 공부중인 대한제국 공주 이은서가 눈에 들어온다.

“공주님, 저 이화입니다.”

“......”

은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내는것도 기절을 한 것도 아닌, 오롯이 책에 꽂혀서 공부에 미쳐있는 여대생 같은 모습이다.

“저랑 대화좀 하시죠.”

“바빠, 돌아가.”

“듣자하니 아침이랑 점심을 모두 거르셨다던데요.”

“그딴거 먹을 시간 없어.”

그말에 화가 솟구친 이화가 공주방을 닫고 멋대로 불을 켜버린다.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진 환경에 은서가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저랑 대화좀 하시죠.”

“싫다고 했잖아!”

“경친왕이 죽었어요.”

그 말에 은서가 펜을 떨구며 말했다.

“죽다니?”

이화가 고개를 푹 숙인채 허망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죽였어요. 중정애들로 수성군 전하를 사주해서 암살했거든요. 내일이면 국방대신 명의로 반역 혐의가 발표될거고, 경친왕의 죽음은 아버지의 반역을 말리려던 아들이 우발적으로 벌인 사고로 포장될거에요.”

“이런 씨발!”

은서가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기여코!”

“진실을 아는 사람은 저랑 황제 폐하. 그리고 중앙정보부장 김재필. 사건의 당사자인 수성군 이환. 이렇게 네사람 뿐이겠죠.”

“이 악마···.”

“공주님, 지금 제 모습이 어때요?”

“넌 살인자야.”

그 말에 이화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쵸? 저 진짜 나쁜년 같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황제 폐하랑 경친왕 전하는 형제잖아.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 평생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형제였는데···.”

“죽여야 했어요. 죽이지 않으면 대한제국이 세계3차대전에 휘말렸을테니까.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테니까.”

“그게 말이 돼!?”

“중국, 소련, 미국. 그들은 모든 문제를 책임질 희생양이 필요했어요. 저는 그들에게 경친왕을 던져줬죠. 이 사람의 잘못으로 하자고.”

경멸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공주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비참했다. 비참해서 눈물이 글썽였다.

“알아요. 정말 나빴죠? 근데 이것 말고는 모르겠어요. 이 나라 조선은 사방이 강대국이거든요. 서쪽엔 중국이, 북쪽엔 소련이, 동쪽엔 미국이 있죠. 옆에선 일본도 무섭게 크고 있는데···.”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나라는 아무리 강해져도 강대국 틈에 끼어있다는 지정학적 약점이 해소되지 않아요. 그래서 만성적으로 전쟁위기를 달고 살죠. 근데 우리 진짜로 한 번 망해봤잖아요. 일제강점기···.”

“그래서 경친왕을 죽였다고?”

“두 번 망하는 건 피하고 싶었어요. 그게 광복이래 모든 대한제국 수뇌부의 공통된 소망이었죠. 그 결과 이 나라는 경제력에 비해 기형적으로 군대가 커졌어요.”

은서가 답답한 심정을 담아 외쳤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군부의 입김이 거세진다구요! 나라의 존망을 군에 의지할수록 군인들의 힘이 강해지고 말아요. 군사국가라는 게 말뿐인 줄 아세요?”

이화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경친왕 전하는 한국전쟁의 영웅이셨어요. 그 당시 대한제국은 군사지식을 배운 인재가 귀해서 황실이고 독립군이고 친일파고 모조리 군에 쓸어 모아야 했죠. 미국이나 일본에 잔류중이던 교포까지 모조리 섭외해왔는데 덕분에 전쟁은 이겼어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죠.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경친왕 전하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커진거에요. 영웅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던 남자는 27만 대한제국군을 통솔하며 평양의 제왕이 됐는데··· 황제 폐하조차 통제가 안될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죽였다고?”

“죽이지 않으면 죽으니까. 그게 군사 독재 국가의 룰이니까. 어차피 그런 나라라면 최소한 올바르게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이 지배하는게 나으니까.”

이화는 말했다. 눈물을 꾹꾹 눌러담는 결의에 찬 표정이 서려 있었다.

“완전한 권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완전한 권력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완전한 권력으로 군의 폭주를 막아내고. 그렇게 온전히 아름다운 대한제국을 만들어서 후손에게 물려줄게요.”

이화는 말했다.

“약속할게요. 제가 보좌하는 대한제국은 독재국가지만, 최소한 국민 만큼은 불행하게 하지 않을거에요. 그렇게 온전한 나라를 물려받으면 공주님이 원하시는 모든 정치를 해보세요. 그게 민주주의라도 좋으니까.”

이화는 말했다.

“위대한 영웅이 완전한 권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꾼다. 그것이 저의 신념이니까. 이 나라는 아름다워야 하니까.”

이화는 말했다.

“그럴려면 일단 공주님의 계승법을 통과시켜야돼요. 경친왕이 죽은 지금 황위계승권이 붕 떠있거든요.”

그러자 은서가 말했다.

“공부하고 있었어. 어떻게하면 야당의 민주주의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하고.”

책들이 무질서하게 펼쳐진 난잡한 공주의 책상을 바라보며 은서는 괴로워하듯 말했다.

“근데 모르겠어. 아무리 책을 읽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의원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무리한 짓을 저지를텐데···.”

은서의 고민에 이화가 울음을 멈추며 비웃듯 말했다.

“독재자의 딸이 민주주의자랑 편먹겠다고 나서니 답이 안나오죠. 바보 멍청이.”

“그거 말곤 답이 안보이잖아···.”

이화가 손을 내밀며 미소지어 말했다.

“가요! 제가 알려줄게요. 책속엔 답이 없으니까 직접 눈으로 보고 부딪혀보세요.”

“신민당을 설득할 방법이 있어?”

“아뇨, 우린 한독당 강경파랑 싸울거에요.”

“걔네들은 경친왕의 편이잖아. 경친왕이 죽은 마당에 우리한테 화내지 않을까?”

“공주님은 강경파를 설득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를 갖고 계세요.”

“내가?”

“영웅의 딸이자 그 자체로 영웅. 그리고 독재자의 딸이니까. 저만 믿으세요. 덕수궁 비서실장이잖아요.”

그렇게 두 사람은 중앙청으로 향했다. 그러기 전에 일단 밥부터 먹고.

***

밥을 먹고 오니 벌써 저녁이었다. 달밤의 중앙청 정문에서 이화가 말했다.

“공주님, 잘 들으세요. 경친왕과 한독당 강경파는 자발적인 동맹관계였어요.”

“자발적?”

“만성적인 안보위기에 시달리는 이북 사람들이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운 경친왕에 매력을 느끼면서 시작된 동맹이었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공주님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전쟁영웅이세요. 그 때의 활약을 강조하면 대화를 틀 수 있을거에요. 그 다음에 공주님이 거기서 얻었던 경험이나 깨달은 점. 자신의 각오 같은걸 말해보세요.”

“예를 들어서 어떤게 있을까?”

“공주님은 월남전 이후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셨어요.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으셨으니까요. 그 때의 경험을 솔직히 고백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해보세요.”

“전쟁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

은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세요. 이북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전쟁의 승리가 아니에요.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평화죠.”

두 사람의 대화가 여기에 이를 때 쯤. 발걸음이 중앙청 회의실 앞에 멈춰섰다. 국회 하원 운영위원회. 계승법 개정 문제를 두고 의원들이 치열한 설전을 벌이는 은서의 새로운 전쟁터였다.

***

위원회는 시작부터 난장판이었다.

"아니 기래서 경친왕 전하는 어찌 되신겁네까?"

한독당의 강경파 의원이 따져 물었다.

"몇일 째 공개석상에 안 나오시는데 황실은 왜 말이 없는가! 데프콘 2로 격상된 준전시상태에 27만 장병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보이질 않다니!"

여러 의원들이 선두에 서서 난동에 가까운 질의를 날렸지만, 사실 분위기 자체가 이랬다. 한독당 온건파고 신민당 의원들이고 경친왕의 부재에 이상함을 느낀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사건은 여전히 비밀로 감추어져있고 비밀이 지속될 수록 불안감과 의혹이 증폭되고 있었다.

그래서 은서는 선언했다.

“경친왕 전하는 죽었습니다.”

“예?!”

"기게 무슨 소립네까?"

의원들의 물음에 이화를 대신해 은서가 선언의 각오로 이렇게 말했다.

“경친왕 전하는 반역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군부와 내각, 황실의 허락없이 무단으로 군을 움직여 무력시위를 벌인 댓가를 치를 예정이었죠. 하지만 죽었습니다. 사유는 나중에 발표될겁니다.”

“반역이라니, 기게 무슨···.”

"군형법 제3장. 지휘권남용의 죄. 제18조. 불법전투개시 조항에 의하면, 지휘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외국에 대하여 전투를 개시할 경우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경친왕의 무력시위는 명백한 반역이었습니다."

"무력시위는 전투 행위가 아닙네다! 경친왕 전하는 대한제국의 영토에 훈련 목적의 포탄사격을 하신겁네다!"

"하지만 중국 단둥지역을 코앞에 둔 곳이었죠. 그 땐 데프콘3가 발령되어 있었습니다. 실제 상황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야하는 상황에 훈련이 말이 된다고 보시나요?"

은서가 선언하듯 말했다.

“군은 정부의 통제에 따라야합니다. 자신의 지휘권을 남용하여 외국의 군대를 도발한 행위는 이 나라의 법치질서를 무시하는 중대한 반역입니다.”

"기런 어거지가···."

"의원님은 전쟁을 겪어보셨나요?"

은서의 물음에 이북 출신의 강경파 국회의원이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내래 이북에 살았다고 출신을 의심하디 마시라요··· 그 시절 안겪어본 사람은 여기 없습네다···."

"이념논쟁을 벌이려는 게 아니에요. 전쟁의 참상을 말하는거에요. 겪어보셨잖아요."

은서가 절박히 호소하듯 자신의 머릿속 트라우마를 솔직하게 털어냈다.

“경친왕 전하는 미국을 믿고 대한제국을 전쟁 직전으로 몰아갔지만 전 다를거에요. 저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기억하고 그것을 고통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니까요.”

은서는 가슴에 달린 훈장을 바라보며 부끄럽게 말했다.

“언론은 말하죠. 저를 월남의 영웅이라고. 경친왕 전하 같은 전쟁 영웅으로 띄워주는데 사실 전 그 전쟁이 자랑스럽지 않았어요.

전쟁이 고통스러웠거든요.

그래서 전 생각했어요. 우리 나라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 그리고 평화가 되어야 한다고. 우리의 삶과 터전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평화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그 평화를 위해서 지금 이 위기상황은 무력시위가 아니라 대화, 협상, 외교적인 해결법이 되어야 했다고 보는데요.”

"하디마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은서는 말했다. 3초간의 한숨. 5초간의 침묵. 10초간 이어지는 결의. 은서는 월남에서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담아 자신의 입에 올렸다.

“살인과 고문. 제가 저지른 죄에 대해 설명할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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