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33화 (33/131)

〈 33화 〉 Ep4. 덕수궁 비서실장 (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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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이었다.

형과의 전화 통화가 끝나고 경친왕은 자신의 아들 이환을 집무실에 불러놓고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이환이 비관적으로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뭘 말이냐?"

"아버지가 황위에 오르시려면 미국의 환심을 얻어야 한다고 누누히 말씀드렸는데요.”

경친왕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환심을 얻은 것이다. 빨갱이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가 한 팀임을 증명한 것이지.”

“이번 일로 미국은 아버지를 버릴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환이 위스키를 들이키며 비장하게 말했다.

“중국과 소련이 위협을 느꼈으니까요.”

“놈들이 위협을 느끼면 좋은 게 아니냐? 미국이 왜 등을 돌린다는게냐?”

“놈들이 하나로 뭉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고 항의하는데 미국이 좋아하겠어요? 아버지 때문에 세계3차대전이 터질지도 모르게 됐는데요.”

“아까 형님도 중국과 소련 이야기를 하더구나.”

“놈들 사이가 얼마나 나빴는지 아버지는 모르시는군요. 둘은 1958년 이래로 분쟁을 벌였어요. 이념부터 정책, 사상까지 복잡한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경문제죠.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끔찍하게 길거든요. 그래서 자기들끼리 무력충돌까지 벌인게 중소관계니까요."

"그건 회담으로 해결됐잖느냐?"

이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 때의 앙금이 완전히 씻겨내려갔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그들은 이북지역에 배치된 주한미군이 두려워서 할 수 없이 손잡은거에요!”

경친왕은 들리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해 침묵을 지켰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눈치가 아들한테도 훤히 보였다.

“미국은 공산권의 분열을 바랬죠. 국경분쟁으로 소련과 다투던 중국에게 접근해 화해를 시도하고, 그렇게 냉전시대의 새 국면을 열어서 평화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한 애들이에요. 근데 그런 판국에 무력시위를 하셨어요? 중국 상대로?”

“놈들은 백두산에서 우리 장교를 죽였어!”

“그건 외교로 해결했어야죠! 누가 누구껀지 구분도 제대로 안되는 백두산에 국경을 명확히 그어서 분쟁 안 나게 했어야지 아버지가 왜 나서셨냐구요!”

이환이 아버지를 증오하듯 노려보며 말했다.

“미국에서 핵폭격기가 오고있다고 했죠? 항모전단도 오고 있구요.”

“그래, 우리와 함께 싸울 지원군이지!”

“아버지 때문에 세계3차대전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경친왕은 여전히 확신을 갖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니, 세계3차대전은 일어나지 않을거다! 핵전쟁이 두려운건 모두 똑같은 마음이니까!”

“전쟁은 늘 우발적으로 터지곤 했죠!”

이환이 허망하게 웃으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소련과 중국은 주한미군을 빼지 않으면 전쟁까지 하겠다 경고하고 있어요. 그런 미국도 한반도의 자국 이익은 포기 못하겠다 벼르고 있죠.”

이환은 그렇게 말하며 탁자에 놓여있던 위스키를 모조리 들이켰다. 미친듯이 술을 퍼마시는 아들을 바라보며 경친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너 대체 왜 그러냐?"

“근데 그거 아세요? 국군통수권자의 허락 없는 전투 행위는 반역죄에 해당하는거.”

이환이 품에서 권총을 꺼내든다.

“아버지를 반역죄로 처단하면 대한제국은 결백을 증명할 수 있어요. 꼬리를 자르고 둘러대면 그만이니까.”

"뭐, 뭐?!"

"그러게,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지 그러셨어요."

총성이 울렸다. 경친왕이 피를 토했다.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었다.

"환아···."

이환이 눈물을 흘리며 죽어버린 아버지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상대였어. 대한제국 황제··· 그 남자는 아버지가 말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비열한 인간이었다고···.”

총소리를 들은 부관과 서북방위사령부 병사들이 사령관실로 쳐들어왔다.

"이게 무슨···."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부관을 향해 이환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김재필 부장에게 연락하세요. 수성군 이환(水城君 李桓)은 황위 계승권을 영구히 포기한다. 미국으로 망명하길 청하오니 목숨 만큼은 살려달라고.”

***

같은 날 자정이었다. 야간통행금지령을 알리는 사이렌이 나지막히 울리며 서대문형무소의 밤길을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경친왕이 죽었습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필이 누군가에게 말했다. 눈앞엔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불꺼진 형무소의 복도를 걸어가며 방 하나하나마다 하얀 국화꽃을 놔주고 있는 여인. 덕수궁 비서실장 이화였다.

“CIA에 통보하세요. 책임자를 처벌했다고. 소련과 중국에 통보하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

“예.”

“경친왕 아들은 뭐하고 있죠?”

“친위대 특임대가 구금한 상태입니다. 계승권을 포기할테니 미국으로 망명을 허락해달라고 하더군요.”

“미국은 안돼요. 놈들이 수성군을 데리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프랑스로 보내고 우리 애들이 감시하도록 하죠.”

"예."

이화의 발걸음이 고문실로 향한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방 하나하나마다 국화꽃을 놓아주었다. 그걸 바라보던 김재필이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뭐 하시는겁니까?"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졌어요.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운동가들을 가둬다 고문하거나 사형시키는 용도로 쓰였죠. 그래서 보다시피 국화 꽃을 놔주며 추모하고 있는거에요.”

“헌데 지금 이 시간에 하시는 이유가···.”

이화가 나지막이 말했다.

“속죄... 해야죠. 방금 전에 나쁜 짓을 했으니까.”

이화의 말에 김재필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쟁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알아요.”

“황제 폐하께서 지시하신거고, 제가 주도하여 진행한 작전이었죠. 책임자는 전데 왜 실장님이 죄책감을 느끼시는겁니까?”

“폐하께 조언한 건 저였거든요.”

“조언과 결심은 다릅니다. 선택권은 폐하께서 갖고 계셨지요.”

"알아요."

“선배님!”

김재필 부장이 답답한 표정으로 옛날의 호칭을 입에 담았다. 그 단어에 이화가 미소지으며 답했다.

“네, 재필씨.”

“대체 왜 이러십니까?”

“사람을 죽이는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잖아요.”

“저흰 중앙정보부 요원이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음지에서 일하는 존재. 필요하면 고문도 해야하고 사람도 죽여야 하고. 온갖 궂은일 더러운일 다 하는 그런 존재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했잖아요. 조국을 위해서.”

“헌데 왜···.”

"제가 여기서 무슨 일을 당했는 지 알아요?"

그 물음에 김재필은 답하지 않았다. 오랜시간동안 선배 밑에서 일해온 후배였기에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뭔가 아주 끔찍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주먹을 부르르 떠는 후배에게 이화는 천천히 기억의 조각을 털어놓는다.

“여고생 시절이었어요. 1945년 8월 1일. 경성감옥이라 불리던 이곳에 잡혀와 고문을 당했죠. 경성에 잠입한 독립군에 대해 아는걸 모두 털어놓으라고.”

“......”

“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실에서 동료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으면서, 거꾸로 매달려 얻어맞고, 폐에 물이 들어갈 때까지 고문을 당하면서 어느 날은 성고문까지 당했었죠.”

이화가 나지막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무 아팠어··· 슬프고, 괴롭고, 힘들고. 이름 모를 동료들의 비명소리에 잠들며 다음 날엔 어떤 고문을 받을지 두려움에 떨다가···.”

국화꽃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너무 강하게 쥔 나머지 꽃이 으스러지고만다.

그러다 웃었다.

“황제 폐하를 만났어요. 광복 직전의 일이었죠. 미군부대랑 광복군을 끌고 여길 오셨는데, 서울진공작전에 성공했다나봐요. 발가벗겨져 울던 저를 발견해서는 군복을 입혀주고, 괜찮냐고. 따뜻하게 말해주던 이연씨가 너무 반가웠거든. 그래서 그분을 영웅이라 생각해버렸어요.”

그제야 깨달았다.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이 으스러지고 말았음을. 손에 들린 허무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말했다.

"비밀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다고. 필요한 모든걸 말해달라고. 나는 대한제국의 황제가 될 몸이니까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겠다고. 그러던 그 남자에게 내가 뭐라고 말했게요?"

"......"

"아무말도 못했어. 고문을 당하고 희롱당하고 유린당하면서.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게 너무너무 억울했어. 근데 그걸 어떻게 보상해달라고 말해? 날 구해준 영웅인데. 하도 말을 안해주니 그 남자가 이틀 뒤에 병원으로 찾아와서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흐르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그것은 공포도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다. 행복이라기엔 부족했고 기쁨이라기엔 이상했던 무언가 바보같은 눈물이었다. 이화의 기억속에 그 남자의 모습이 바보같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평생을 20대 처럼 살게 해주겠다고 했어. 아직 10대밖에 안된 소녀한테서. 내가 그렇게 나이들어보였나봐."

그렇게 혼자 흐느끼듯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바보같잖아. 죽기 직전까지 고문당하다가 살아난 사람한테. 그것도 몹쓸짓까지 당해서 서러운데 평생을 20대처럼 살게 해주겠대. 멍청한 사람. 기껏 생각해낸 보상이 그런거였어.”

“선배님···.”

“그 때 이후로 다시 학교에 갔어요. 못했던 공부도 하고 좋은 집도 받고. 그러다 거창한 대의도 들었지.”

그 대의란 김재필도 아는 내용이었다.

"우리의 아들 딸에겐 강한 나라를 물려주자. 두번 다시는 외적에게 나라를 뺏기는 수모가 없게 해주자."

“맞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저한테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지 않겠냐고 했었죠.”

"그 이후로 쭉 중정 요원으로 생활을···."

“진짜 멍청하고 바보같은 사람. 내가 힘들어할 거 알면서도 그런 일을 권했어. 구제불능 인간말종···.”

"실장님···."

“그래도 대의는 좋았으니까···.”

그러다 한 3분 후.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김재필에게 물었다.

"폐하가 또 어떤 명령을 내리셨죠? 경친왕 암살 말고 지시한게 더 있으실텐데."

김재필이 무거운 침묵을 이어갔다. 아무리 자신의 선배라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말해선 안될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내 입으로 말할까요?”

“폐하께서 비밀로 하라 하셨습니다. 특히 비서실장님껜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한국독립당 강경파 의원들을 잡아서 협박하라 하셨죠? 고문을 해서라도 조선황실법 개정안에 동의하게 만들라고.”

그 말을 끝으로 이화가 눈물섞인 분노를 토해내며 말했다.

“경친왕 암살은 참을게요. 공주님을 위협한 나쁜놈이고 세계3차대전을 일으킬뻔했으니까. 내가 더 울고, 더 고통 받고, 더 괴로워하면 되지. 하지만 그들은 안돼요. 그 사람들은 이북지역의 주민들을 대표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 것 뿐이잖아요.”

“선배님!”

"그들은 죄가 없잖아요!"

그녀의 외침에 재필이 애가 타는 심정으로 호소하듯 말했다.

“황명입니다. 제가 모든걸 책임지고 진행할테니 제발···.”

"그들이 경친왕을 지지한 건 순수한 의도였어요. 내가 요원 생활을 몇 년 했는데 사람 심리하나 못 꿰뚫어볼까봐?"

"선배님!"

“국민의 손으로 뽑힌 민의의 대변자를 잡아다가 고문하고 협박하겠다구요?”

“공주님을 위해서입니다. 제발···.”

“폐하가 아무리 내 신이고, 내 영웅이고, 내 구원자라지만 절대 용서 못해요!”

"정말 폐하의 뜻을 거스르실 셈입니까?"

"전 황제 폐하의 비서실장이에요. 폐하가 나쁜길로 빠지면 간언을 올려 옳은 길로 인도할 의무가 있죠."

"선배님···."

"더 이상 이 나라에 고문은 안돼요. 조선황실법 개정안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과시킬 테니까 고문 만큼은 하지 마세요."

이화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부탁할게요. 무고한 사람을 협박하고 고문하는 건 나쁜거잖아요."

“......”

"그런거 안해도 이 나라는 충분히 지킬 수 있어. 내가 해보일테니까!"

이화는 그렇게 국화꽃을 버려둔 채 서대문 형무소를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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