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Ep4. 덕수궁 비서실장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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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16일 새벽 3시.
은서의 여중생시절.
추적추적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M48 패튼 전차 6대가 한강 다리를 넘고 있었다. 선두에는 검은 제복을 차려입은 40대 남자가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제1공수여단이 총리관저를 확보했답니다."
"우남 선생은?"
"이범석 장군님께서 협상 중이십니다."
김종규 소장의 말에 남자가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광복 이래로 계속된 정치싸움. 내각총리대신 이승만과 대한제국 황제 이연간의 권력다툼이 1960년 5월 16일부로 막을 내렸다.
국방대신 이범석 장군이 이승만 총리과 결별하며 시작된 기습 쿠데타는 청년 장교들이 주도하며 황제에게 권력을 안겨주려 하고 있었고, 황제가 중앙청에 입성하여 친정(親政)을 선포하기만 하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완전히 종식될 것이었다.
이 때의 시간 새벽 3시.
입헌군주제 대한제국에서 실권을 거머쥔 황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가는 그의 머리 속엔 대한제국의 가슴아픈 50년대 현실이 아른거렸다.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 실업자 270만명, 지속되는 가뭄으로 굶주리는 농민들. 탐욕스럽고 무능한 공무원. 이 나라는 미국의 구호물자가 없으면 기본적인 생계조차 유지 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나라.
한국전쟁만 통일로 끝내면 만사가 해결될 줄 알았건만, 무능한 정치인들의 지리멸렬한 권력다툼 속에 대한제국의 삶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고 참다 못한 청년장교들이 들고 일어나 영웅의 통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사위는 던져졌어."
지옥같은 조선 반도의 모든걸 끝장내기로 결심한 새벽 3시. 남자의 눈 앞에 한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인애황후 서씨(仁愛皇后 徐氏)
한강에 전복된 리무진을 뒤로한 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버티고 있는 불굴의 여인. 가녀린 몸으로 6대의 탱크를 막아서는 철의 여인이 첫사랑을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가지마.”
“많이 다쳤군.”
여자는 언제라도 쓰러져 죽을 거 같았다. 비내리는 오월의 새벽. 리무진을 타고 광란의 질주를 해서 온 이 여자는 남편의 쿠데타를 막겠다며 비내리는 날 상처입은 몸으로 전차를 막아서고 있었다.
“약속했잖아···.”
여자와의 약속을 어긴 남자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 민주국가의 황제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던 황후와의 약속이었다.
“지난 15년간 행복했었지? 전쟁통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어도 진짜 행복했는데··· 예쁜 딸도 얻고···."
촛불이 서서히 꺼져가는 기분이었다. 여자도 남자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서로가 서로간에 첫사랑이었던 애틋한 부부의 마지막 시간은 비내리는 한강대교에서 야속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을까?”
남자는 눈을 감았다. 흐르는 눈물이 빗속에 섞여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참 다행이었고 그래서 참 불행했다. 혁명이라는 대의와 사랑이라는 감정 사이에 남자는 답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답은 시간이 정했다. 꺼져가는 촛불 속에서 흐느끼는 아내가 마지막까지 쥐어짜내 유언같은 말을 남겼다.
“절대로, 절대로, 남을 불행하게 하는 정치는 안돼. 알았지?"
"나는···."
"사랑해."
환한 미소로 남편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아내의 마지막 시간. 5월 16일 새벽 3시. 대한제국의 황후 서민애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었다.
***
1973년 3월 7일. 은서의 국회 연설이 끝난지 몇시간 후.
덕수궁에 위치한 황제의 집무실에서 제복 차림의 은서가 뭐라뭐라 마구마구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이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왠일인지 멍-한 표정으로 턱을 괜 채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 그의 눈에 들어온 딸의 모습이 어쩐지 먼저 간 아내의 모습 같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듣고 있어?"
"......"
"아버지!"
은서의 외침에 이연이 말했다.
"그래, 니 연설. 정말 형편없더구나."
"예, 예 그러시겠죠. 그래서 해줄거야? 말거야?"
"뭘 말이냐?"
"덕수궁 제2부속비서실 부활시켜달라고. 내 수행팀. 공식일정을 수행하고 싶어도 스케줄 짜줄 사람이 없잖아."
"흐음···."
은서가 요구한 건 8여년 전 사관학교로 '던져지며' 해체된 자신의 비서실을 말하던 것이었다. 황실의 여인을 보좌하는 전속 비서들이었지만, 마지막 여인이었던 은서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해체된 비극의 팀이었다.
"그 전에 제 이야기부터 들어보시죠."
이화가 은서에게 말했다.
"아우... 또?"
"공주님 연설. 순 엉터리였다니까요?"
은서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백번이고 천번이고 맞는 말이구만!"
"촉나라가 삼국통일을 못한건 국력이 부족해서에요. 위나라랑 비교했을 때 인구랑 영토가 턱없이 작았는데 그만하면 잘 싸운거 아닌가요?"
"그놈의 삼국지!"
은서는 깨달았다. 아까 전 연설하면서 봤던 이화의 '가소로운' 표정. 뭔 대단한 뜻이 있길래 그런 표정을 지었나 했더니 엉뚱하게 삼국지 때문이었다. 이화가 '가소롭게' 여긴 부분은 구체적으로 이 대목.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명재상 제갈공명이 나라를 틀어쥐고 수차례 북벌을 감행해도 위나라를 이길 수 없었죠. 그에겐 인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화의 지적은 이랬다.
"촉나라는 모든게 불리한 조건이었어요. 지형은 험난했고 인구도 적었고. 그런 상황에서 한나라의 부흥이라는 대의를 위해 다섯번에 걸친 북벌을 감행했죠. 그 작은 나라가 위나라 같은 강대국이랑 접전을 벌인건 제갈공명이라는 뛰어난 영웅이 있었기 때문이라구요.”
은서가 발끈하며 말했다.
"그 조그만 나라가 다섯 번씩이나 전쟁을 벌였으니 망했지!"
“위나라를 멸하지 않으면 망할 운명이었어요!”
“그 대단한 영웅께서 인재라고 쓰신게 누구였죠? 마속이었죠? 읍참마속! 인재가 얼마나 없었으면 그런 사람을 썼다가 다 이긴 전투를 말아먹어!”
"그건!"
"위나라를 봐요. 조조 때부터 구현령을 선언해서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인재로 등용했잖아요. 리더는 이래야 한다니까?"
"아니 그런걸로 따지면 촉나라도 얼마나 많은 인재를 가림없이 등용했는데!"
“아이구, 예~ 예~”
"......"
이연은 한숨을 쉬며 서랍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니들은 싸워라. 나는 책이나 읽을란다. 이런 느낌으로 지루하게 책장을 넘기는 남자의 모습에 두 여자가 이상함을 느낀다.
"근데, 아버지. 아버지는 왜 말이 없어? 내 연설에 가장 불만이 많았을 사람이 아버지였을건데?"
이화도 거들어 말했다.
"폐하도 한 말씀 해주시죠."
"소감이고 자시고···."
이연은 책장을 넘기며 무심하게 답했다.
"삼국지가 뭐하는 소설이냐?"
"에?"
은서와 이화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놀라 물었다.
"폐하?"
"아버지 설마··· 삼국지를 몰라?"
"누누히 말했을텐데? 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학교를 다녔다고."
은서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교양소설인데··· 황제씩이나 된 사람이 삼국지를···.”
“위나라 촉나라 거리는 거 보면 후한 말기의 난세를 말하는 모양인데 그거 역사책에 딱 한페이지 나온다. 통일국가 한나라가 3등분이 나고, 사마의가 세운 진나라로 통일되더니 5호 16국으로 쪼개졌지. 난세조차 평정 못한 사람들이 뭐가 영웅이란거냐?”
“아, 아니··· 엔딩이 좀 별로긴 한데···.”
“애초에 이 실장 자네도 그렇고, 은서 너도 그렇고 논점을 완전히 착각하고 있잖냐?”
"뭐가?"
"위나라고 촉나라고 둘 다 전제군주제다. 근데 그걸 민주주의에 갖다 붙이고 있으니 순 엉터리지."
은서는 그제야 아버지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화 역시 마찬가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반박거리가 그의 머리 속에 있었다.
“쓸데없이 삼국지 이야기 할 여유 있으면 여기 앉아서 나랑 같이 나폴레옹 전기나 읽자꾸나.”
"나폴레옹?"
"그래, 혼란스러운 프랑스 사회를 수습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아 황제가 된 영웅의 이야기지."
이화가 가소로운 표정으로 은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혁명으로 왕을 쫓아낸 민중들이 제 손으로 황제를 옹립한 이야기. 인재도. 충분히. 많았던. 프랑스의 전성기였죠."
은서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설마 지금··· 자기 자신을 나폴레옹으로 착각하고 그런거 아니지?"
"폐하는 나폴레옹 그 이상이십니다."
이화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은서가 혐오스럽게 답했다.
"아무리 자아도취가 심하기로서니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이연이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아무튼 말이다. 독재국가고 민주국가고 정치는 혼자 하는게 아니란다. 좋은 리더라는 건 결국 인재를 부리는 용병술에 달린거거든. 뛰어난 인재를 선별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할 줄 아는 능력. 제도와 상관없이 모든 지도자에게 필요한 기본 자질인거야."
이연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 자질은 내가 가르쳐주마. 황태녀가 되겠다고 결심해줘서 고맙다. 은서야."
아버지의 인사에 은서는 고개를 빤히 돌려 시선을 피해버렸다.
"계승법을 바꾸는 거라던가 경친왕과의 권력 다툼 같은건 애비가 알아서 할테니 푹 쉬어. 이 실장이 널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 있으니까 확인해보고."
"선물···?"
이화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공주님을 위해 계속 알아보던 게 있었거든요. 많이 늦긴 했지만."
"날 위해서? 뭘?"
이연이 말한다.
"네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못하고 있었어. 나도 그렇고 이 실장도 그렇고. 사과의 의미로 하는 선물이니까 꼭 따라가보거라."
***
그 선물이란 일종의 환영식을 말하는 거였다.
그날 저녁 덕수궁 비서실의 안내로 따라간 곳은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이화 호텔. 황실과 국내의 한 대기업이 반반씩 투자해 설립한 특1급의 호텔로 민간이 운영함에도 황립의 지위를 허락받은 조선 최고의 현대식 호텔이었다.
이곳의 연회장엔 월남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축하연이 열리고 있었는데, 참가자 모두가 훈장을 하나씩 받은 영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높게는 장성급부터 낮게는 병사들까지. 각자 계급은 달라도 이 순간 만큼은 똑같은 영웅으로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공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연회장의 문이 열리자 훈장달린 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은서가 열띤 박수를 받으며 천천히 들어왔다. 그녀 역시 이곳의 사람들 처럼 훈장을 받은 영웅이었고 참전 용사였기에 연회장에서 만큼은 그들의 전우나 다름 없었으리라.
"19번도로 전투의 영웅께 대하여 경례!"
"충성!"
군인들의 박력 넘치는 경례소리가 연회장이 쩌렁쩌렁 울린다. 은서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그들에게 맞 경례를 하는 은서의 몸짓과 표정. 손가락 마디 하나 하나에서까지 행복과 자신감이 한가득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도감을 주었다.
안도감.
연회장의 참전 용사들에게 엿보이는 미묘한 감정을 읽어낸 진혁이 연회장 구석에서 샴페인을 마시던 이화에게 물었다.
"공주님의 마음의 병. 이분들도 알고 계신겁니까?"
"당연하죠."
이화가 미소지으며 답했다.
"똑같은 전장에서 똑같은 고충을 겪은 분들이니까. 서로가 척하면 척이었던거죠."
훈장을 달고 있는 박승진 소령이 보였다. 이제는 중령이 된 은서의 직속 상관. 월남전 내내 무시로 일관하던 남자가 은서 앞에 나타나 대뜸 큰 절을 올렸다.
"뭐에요? 일어나요! 부끄럽게 왜 이래 정말!"
"아닙니다! 공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소신의 불충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으아아. 하지마요 제발!"
은서가 얼굴을 가린채 방방 뛰었다. 그녀의 옆에는 선배였던 김훈 소령도 서있었다. 그 역시 월남전의 참전 용사였으니까.
"너도 빨리 엎드려!"
박승진 중령의 말에 김훈 소령이 뻔뻔한 표정으로 답한다.
"전 이미 용서를 받은 몸이라···."
그러자 은서가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빤 절해. 당장."
"뭐?"
"월남에서 제일 많이 괴롭힌 사람이 누군데?"
"야, 야! 그건 선임이니까 교육을 시킨거지 그걸 괴롭힌거라고 하면 어떡하냐?"
그러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박승진 중령이 타이르듯 말했다.
"어허, 공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아, 아니 중령님까지···."
"메~롱!"
결국 쭈삣쭈삣 서서 절을 올려버리는 김훈 소령을 바라보며 은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행복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니 연회장이 조용할 틈이 없었다.
같은 전쟁에 참가한 전우들이 서로간에 웃고 떠들며, 맛있는 만찬을 즐기고, 너는 어디에서 싸웠니 고생이 많았겠구나.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보였고 한편으론 슬퍼보였다.
백호부대 공수지구대 특전사들이 은서에게 선물한 사진첩에는 공수지구대 3팀의 단체사진이 찍혀있었는데, 자신과 함께했던 11명의 부하를 보고는 은서는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 울음은 어느 때처럼 슬픔의 눈물이었지만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 곁에는 함께 싸웠던 또 다른 전우들이 있었으니까. 그들의 위로를 받으며 은서는 마음속의 응어리를 토해내고 또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었다.
슬픔 속의 행복, 행복속의 슬픔 속에서 위로받는 공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연회장 구석에 서있는 이화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전우란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덕수궁의 비서실장까지 된 사람이 그걸 놓쳐선··· 공주님께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버렸죠."
그녀의 말에 진혁이 위로하듯 답했다.
"실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저요, 어렸을 때부터 삼국지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덕수궁 비서실장이 되었을 땐 제갈공명이라도 된 기분이었죠. 비서실장은 황제의 참모장 같은거니까. 포지션이 똑같았거든."
이화가 샴페인을 홀짝이며 말했다.
"근데 제갈공명은 무슨... 잘 쳐줘야 마속 밖에 안되는 멍청이었어요."
"실장님···."
"공주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문서가 내 손에 있었어요. 그럼에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바쁘단 이유로 안 읽어보고 있었거든요. 황실 전용기를 보내자고 한 것도 나였고, 공주님이 가출하실 때까지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것도 나였고. 생각해보면 공주님의 영혼을 저승길 삼도천에 던져버린건 나였을지도 몰라요."
이화가 죄책감에 고개를 떨궜다.
"실장님···."
"내일부턴 새로운 전쟁이 펼쳐질거에요. 경친왕 전하를 지지하는 강경파 세력과 그렇지 않은 온건파 세력이 격전을 벌이겠죠. 거기에 황실 자체를 지지하지 않는 야당이 끼어 3파전을 벌이면 정계가 소란스러울거에요."
"말씀하셨던 권력다툼이···."
"조선황실법 개정안. 대한제국의 황위 계승권을 남자로 제한해놓은 그 법을 고쳐야 공주님이 황태녀에 오르실 수 있으니 반드시 고쳐야죠."
"남녀간의 싸움이 될까요?"
진혁의 물음에 이화가 샴페인을 마시며 비장하게 답한다.
"아뇨, 그건 1차원적인 시선이에요. 한국전쟁의 영웅이냐 월남전의 영웅이냐. 차기 계승권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의 문제니까, 그 밑으로 줄줄이 딸려있는 이해관계자들간의 정치 싸움이 본질이죠."
"영웅과 영웅간의 대결···."
"황제 폐하의 입장을 대변하는 저도 국회에 출석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낼거에요. 공주님의 마음을 돌리는 덴 성공했으니까...."
"비서실장님이라면 꼭 해내실겁니다."
진혁의 응원을 들으며 이화는 샴페인 잔을 들이킨다. 그녀의 시선은 창밖의 중앙청을 향해 있었다. 황위계승전쟁이라는 총성없는 싸움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법이라는 총과 명분이라는 포탄이 오가는 살기어린 전장이었다.
"공주님을 부탁할게요."
이화는 그렇게 말하며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중앙정보부 요원 출신의 살기어린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