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8화 (18/131)
  • 〈 18화 〉 Ep2. 소년 이야기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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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당보다 싫은 아버지와 오붓하지 않은 대화를 시작한 건 백주대낮의 경복궁, 그 중에서도 핵심 건물에 해당하는 근정전에서였다.

    이곳은 군주가 옥좌에 앉아 국가의 중대한 의식을 거행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1973년 현재는 용도를 상실하여 문화재 취급을 받고 있다. 취급이라 말하면 불쌍하지만, 저 멀리 덕수궁이 황궁 대우를 받는것과 비교하면 분명 ‘취급’이 맞다.

    “귀찮으니까 조선왕조 전체를 황제국으로 치자꾸나.”

    그렇게 대충 말하며 이연은 근정전 안에 있는 옛 옥좌에 앉았다. 황제가 옥좌에 앉는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덕수궁의 서양식 궁전을 쓰던 아버지가 양복 차림으로 경복궁의 옥좌에 앉으니 정말 안 어울렸다.

    "대한제국 선포 이전에 25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분들 모두를 황제로 추존하자고? 어느 나라 예법이야 그건?"

    “귀찮잖냐? 이 나라가 지금은 황제국인데, 같은 나라 옛 조상님들을 일일이 왕이니 황제니 어찌 다 따지느냐? 난 그런거 모른다.”

    “공부 좀 하라니까.”

    “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학교를 다녔다. 조선땅에 온건 1945년부터지. 그런 나한테 동양의 전통을 강요치 말거라.”

    “......”

    “이 자리엔 나를 포함한 29명의 황제가 있었던거다. 부패한 나라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있었고, 막강한 권력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진 태종 이방원이 있었지. 그의 아들은 백성을 사랑해 문자까지 만드니 나는 그분을 세종대제라 부른다.”

    “그리고 그분들의 후손이 당신이라 이거지?”

    “그래, 내가 바로 그분들의 피를 이어받은 조선땅의 황제지. 알아 들었으면 이리 가까이 와보거라.”

    “싫어.”

    “황제의 명령이다.”

    “쳇.”

    그렇게 말하며 은서는 한복차림으로 사뿐사뿐 계단을 올라가 옥좌 앞에 섰다. 그러자 이연이 대뜸 일어나 자기 딸을 그곳에 앉혔다.

    “뭐, 뭐하는거야? 날 왜 옥좌에 앉혀?”

    “거기 앉아보거라.”

    그렇게 말하며 자기 딸을 한참이나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넌 역시 내가 빚은 최고의 작품이구나.”

    “변태···.”

    “태조, 태종, 세종. 그 밑으로도 수 많은 황제가 있었지.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을 만든 성종, 붕당정치로 두쪽난 나라를 봉합한 탕평책의 영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군주 정조의 영혼과 정신, 의지가 네 몸속에 흐르고 있다.”

    “나한테 그분들이?”

    "그래 그게 바로 조선왕조 500년의 무게지. 이제 실감이 되느냐?"

    은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공주는 조선의 임금이 될 수 없어. 그것도 조선왕조 500년의 무게잖아.”

    “네 아비를 보거라. 내가 살아생전 익선관과 황룡포를 입은적이 있느냐?”

    은서는 아버지의 옷차림을 바라보았다. 그는 권총을 품에 넣은 채로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중앙정보부장에 가까운 용모였고, 자세히 보면 군인에 가까운 용모였다. 누가 이 사람을 옷차림으로만 판단하여 조선의 황제라 생각할 수 있을까?

    “전통과 예법은 필요없다. 내가 법이고 내가 국가다. 거추장한 황룡포보다 서양식 양복을 입고 익선관 따위 쓰지 않아도 황제로 불릴 수 있는 나의 존재 자체가 조선인 것이다. 그런 내가 딸을 황제로 만들겠다는데 누가 막겠느냐?"

    은서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진짜로 계승법을 바꿀 생각이야?”

    “나는 1945년 일본에게 정복됐던 조선을 독립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에선 북진통일을 달성해 분단국가의 아픔을 지웠지. 치욕스러운 식민지 역사와 분단국가의 아픔이 내 손에 청산되어 사람들은 나를 영웅이라 부른다.

    찢어지게 가난한 조선 민중의 삶조차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나아지고 있으니 나는 이 땅의 모든 아픔을 치유한 위대한 영웅인 것이야.”

    “그래, 당신은 그 명성으로 입헌군주제를 무너뜨리고 있지.”

    “위대한 영웅에게 민의는 필요없다. 위대한 영웅이 완전한 권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지 않았느냐?”

    “위대한 영웅이 완전한 권력으로···.”

    “난 영웅이다. 대한제국의 다음 황제는 내 핏줄이 되어야 한다. 네가 황제가 된다면 백년이고 천년이고 영웅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이 조선 땅을 지배할테니 이것 또한 나의 야망이지.”

    은서가 옥좌를 박차고 일어나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런 인간이 자기 딸래미를 전쟁터로 보내? 내가 거기서 몇 번을 죽을 뻔했는데!”

    “너의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입증해야 했다고?”

    “이연은 천천히 다가가 자신의 딸을 품에 안고 말했다.”

    “너를 전쟁터로 보낸건 미안했다. 하지만 내 말을 조금만 더 들어다오. 모든걸 설명해주마.”

    “당신은 나를··· 전쟁터로 보내서는··· 그것 때문에 많은 부하들이 죽었어···.”

    은서는 아버지의 품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자기를 지키다 죽은 11명의 부하들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은 숭고한 희생으로 기억될거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될 너를 구한 영웅적인 희생으로 말이다.”

    “......”

    “넌 조선 최초의 여제가 될것이다. 1백년 뒤의 후손들이 너를 평가할 때 어떻게 불렀으면 좋겠느냐?”

    이연은 울음 짓는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영웅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황제가 되었다. 그렇게 기억되고 싶으냐? 아니면, 스스로의 힘으로 황위에 오른 철의 여인으로 기억되고 싶으냐?”

    “그딴건 모두 필요 없어···.”

    “조선반도 5천년의 역사에도 여왕이란 작자들이 있었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너는 그들의 업적이 뭐가 있는지 말할 수 있겠느냐?”

    “몰라 그런거···.”

    “없다. 그들은 단지 좋은 핏줄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최초의 여왕이라 불리는 것이다. 선덕여왕이 뭘 했느냐? 신라는 진흥왕이 키웠고 무열왕이 통일했는데. 그녀가 살아생전 뭘 했다고 최초의 여왕이라 불리며 후손들의 칭송을 받느냐?”

    이연이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선반도 5천년 최초의 여왕은 네가 되어야 한다. 선덕여왕이 아니라 이연의 딸 이은서가. 최초의 여왕, 최초의 여제, 최초의 지도자로 역사에 기억되어야 한다. 그럴러면 네 실력으로 황위를 차지해야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날 월남전에 보냈다고?”

    “넌 19번도로의 혈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너의 활약이 없었다면 수 많은 장병들이 670 고지에서 목숨을 잃었겠지. 넌 자격을 갖췄어. 역사는 널 철의 여인이라 기억할 것이다.”

    이연은 자신의 딸을 다시한번 품에 안으며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한다 은서야. 황제이기 전에 아버지로서 널 무척이나 사랑한다. 너를 볼 때면 먼저 세상을 떠난 네 어미가 생각나 눈물이 날정도다. 내가 내린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몸 건강히 살아돌아와 대견해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구나.”

    “아버지···.”

    “미안하다. 너를 전쟁터로 보내서 너무도 미안했다. 매일 밤이면 고생하는 네가 떠올라 밤잠을 설쳤다.”

    “아버지···.”

    “그래, 네 아버지다.”

    “아버지···.”

    “그래.”

    이연은 천천히 자기 딸의 등을 토닥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딸이 말했다.

    “거짓말이 늘었네?”

    “뭐?”

    은서가 아버지의 품을 떨쳐내며 말했다. 더이상 울지도, 눈이 충혈되거나 붓지도 않은 그저 순수한 분노로 가득찬 여장부의 눈초리였다.

    그 모습에 이연이 당황하듯 물었다.

    “거짓말이라니?”

    “8년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았어. 월남전에서 기대 이상의 공을 세우고 돌아오니 이용해먹을 가치가 생겼을 뿐. 그래서 마음을 바꿔 황제로 앉혀주겠다 결심한 거 아니야?”

    이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난 너를 예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진실이다. 내가 어찌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8년 전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어야 해. 미안하다, 사랑한다, 조금만 고생해다오.”

    “그건···.”

    “이 세마디만 해줬더라면 지금 당신이 한 모든 말을 믿어줬겠지.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

    은서는 곱게 땋은 자신의 댕기머리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김종규 대장을 시켜 내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 당신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지? 포항의 제철소에 내려가 자기 볼일만 보고 있지 않았나?”

    “......”

    “8년전의 당신이 지금의 당신처럼 나를 사랑하고 있었더라면, 당신 손으로 직접 이 머리카락을 잘라줬어야 해.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한 통의 편지라도 보내서 나를 걱정해줬어야 해!”

    “......”

    “당신은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았어. 얼굴도 안 비췄지. 사관학교 입학하는 날에도 오지 않았고, 졸업하는 날에도 오지 않았고, 월남전에 가는 뱃길에서도 오지 않았고. 오히려! 교관들을 시켜 날 몽둥이로 두드려팼어!”

    이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날, 내 마음 속 아버지는 죽은거야.”

    “은서야···.”

    “진짜 나를 사랑했으면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8년전엔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한다. 용서해다오. 화해하자. 차라리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도 거짓말을 해?”

    “미안하다···.”

    황제가 옥좌에 선 딸의 손을 잡는다. 하지만 그 손길조차도 은서는 뿌리치고 만다.

    “다시 시작할 순 없겠느냐? 지금부터라도 너를 딸로 생각하고, 나를 아버지로 생각하고. 서로 그정도만이라도 부탁한다. 많은걸 바라지 않으마. 내가 더 노력할테니···.”

    공주는 말했다.

    “당신은 끝났어.”

    은서는 옥좌에서 내려와 경복궁 밖을 향해 천천히 한걸음을 내딛었다. 비서실장 이화와 전담경호원 진혁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연에게 은서가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만 물을게.”

    “그래, 은서야.”

    “내가 황태녀가 되면, 당신의 동생인 경친왕 전하는 어떻게 되는거지? 그분도 한국전쟁의 영웅이잖아.”

    이연의 아버지 의친왕과 어머니 의친왕비 사이에 두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이연과 차남 이열. 이연이 황제가 됐을 때 이열은 경친왕이라는 작위를 받았고 장성한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 또한 영웅으로 불렸다.

    “내가 월남전의 영웅으로 황위 계승전에 뛰어든다면, 경친왕 전하와 경쟁을 해야돼. 한국전쟁의 영웅과 월남전의 영웅이 옥좌를 놓고 다투게 될건데. 내 아버지인 당신은 어떻게 할건데?”

    이연이 냉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 딸의 앞길을 막는다면 한국전쟁의 영웅이라도 죽여야겠지.”

    그 대답에 은서가 허망히 웃으며 답했다.

    “그래서 아까 날더러 세종이 될거라고 한거구나? 당신이 태종대왕님처럼 자기 형제를 죽일거니까.”

    “그래, 너를 위해서라면 황족의 모두를 죽이고, 군부도 숙청할 각오를 해야겠지. 세종이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던건, 아버지가 그런식으로 경쟁자를 제거해줬기 때문이니까.”

    은서는 아버지를 노려보며 답했다.

    “그렇다면 난 세종이 되지 않겠어.”

    그리곤 등을 돌려 진혁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가자.”

    “자, 잠시만···.”

    “지켜준다며.”

    “......”

    은서의 따뜻한 손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흥분이었을까? 아니면 분노였을까? 소년은 그것이 궁금해 은서의 발걸음을 따라나섰다.

    이화가 옥좌 위에 선 황제를 바라봤을때, 그 남자의 표정엔 35%의 분노, 47%의 슬픔. 그리고 18%의 죄책감이 보였다.

    그 남자는 여전히 공산당보다 싫은 아버지였다.

    Ep.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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