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Ep1. 공주 이야기 (1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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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은서가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박철민 상사?"
총알이 날아와 은서를 지나가 오진수의 팔에 맞는다. 그가 고통에 신음하며 주춤한 사이 박철민 상사가 M16 소총을 한발 더 쏘아 오진수를 위협했다. 은서는 이상함을 느꼈다. 박철민 상사의 사격 실력이라면 한방에 오진수를 죽였을텐데 두발을 쏘고도 죽이지 못한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박철민 상사가 누더기가 된 몸으로 피를 흘려가며 달려오고 있었다. 혼자 왔을린 없을테고 팀원 전체와 왔을텐데 10명의 부하들도 어디갔는지 혼자만 터벅터벅 뛰어오고 있었다.
"오지 말라니까!!!"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미국이 아니면 대한제국의 UH-1 헬기일 것이다. 지원군이 오고있다는 생각에 부상을 입은 오진수가 도망치기 시작한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
박철민 상사가 쓰러졌다.
"어떻게 된 거야? 부하들은? 넌 왜 이렇게 돼있는데!"
"죄송합니다··· 팀장님을 구하러 오다가 그만···."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은서는 박철민 상사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현지 언어도 모르는 놈들이 무슨 재주로 몰래 여길 온다고···.”
"그래도 다들 팀장님을 구하겠다고 최선을 다해서··· 쿨럭···."
"안돼, 말하지 마. 곧 지원군이 올거야. 조금만 버텨!"
은서는 하늘을 바라봤다. 선명한 태극마크가 보인다. 대한제국군의 헬기다. 그것도 15대나 되는 엄청난 숫자의 강습 부대였다.
"저 새끼들은 왜 도와주질 않은거야!?"
박철민 상사가 젖먹던 힘까지 다해 은서를 비웃으며 말한다.
"정글이니까···."
하늘 위를 날고 있는 대한제국군은 여전히 은서를 못 찾고 있었다. 여기는 정글 숲이 우거진 녹색의 지옥이니까. 박철민 상사와 공수지구대 3팀이 도움받지 못한 것도 정글 속에서 사투를 벌였기 때문이리라.
"죽을려고 했는데··· 죽을려고 온건데··· 왜 구하겠다고 와서··· 하여튼 장교 명령은 지지리도 안듣는 새끼들···."
"팀장님. 잘 들으십쇼. 대한제국이··· 670 고지를 탈환했습니다. 팀장님이 방해전파를 거둬주신 덕에 고립된 보병부대도 살고, 월남군도 이기고··· 19번 도로 전체가 우리의 승리로···."
"씨발···."
자신의 선임담당관을 붙잡은 장교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부사관의 군복을 적셨다. 공수지구대 3팀에 남은 마지막 부사관이었다.
"누구한테 당한거야? 말해! 다 죽여버릴테니까!"
"이미 저희가 다 잡았거든요."
박철민 상사가 환하게 미소지으며 은서에게 말했다.
“팀장님, 잘 들으세요. 전쟁이란건 함께 하는겁니다. 삼국지를 봐도 그렇잖아요. 관우도, 장비도, 제갈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전쟁은 결국 위나라가 이겨요. 천하 통일은 사마의가 했죠. 세상의 모든 건 뛰어난 하나보다 유능한 다수가 이기는 법이니까요."
"철민아···."
"부하들과 함께 하나의 팀으로 싸우는 유능한 팀장이 되십쇼. 3년 전의 일은 죄송했습니다.”
“아니야, 미안해. 내가 더 미안해. 진짜 미안한 건 나였어. 맨날 민폐만 끼치는 못난 띨띨이라 미안해···.”
"부디 살아서... 공주로 행복하게···."
"철민아···."
박철민 상사는 힘겹게 신호탄을 꺼낸다.
'제발 봐라 새끼들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빨간 신호탄이 하늘 위로 솟구쳐 커다란 불꽃을 일으켰다. 신호탄을 본 그들은 서로 복잡하게 교신을 주고받았다.
[이승필 중위의 신호탄입니다.]
[구조 작전을 실시한다. 전 대원 강하!]
15대의 헬기가 착륙하기에 573번 고지는 너무도 복잡했다. 대신 그들은 헬기에 굵은 밧줄을 늘어뜨리고 레펠강하를 실시했다. 검은 전투복을 입은 특수부대가 머리 위로 내려오고 있었다. 박철민 상사는 그들이 누굴까 생각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무튼, 팀장님이 사셨으면 된거야···.'
은서는 싸늘히 주검이 되어버린 박철민 상사를 품에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미웠는데. 미워서 싸우기까지 했는데. 막상 잃고나니 왜 이리 슬프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걸까? 3년동안 미워했고 마지막엔 원망까지 하고 나왔는데.
원망···.
<너희들은 내 용병이야. 실적으로 고용한 용병! 용병은 부를 때만 따라오면 돼. 나머진 내가 혼자 알아서 할테니까.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그 원망으로 부하들을 용병으로 취급하여 모욕했고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그들에게 사형 선고 같은 폭언을 날린 자신이었다. 슬펐다고? 지금 흘리는 눈물이 슬픔의 눈물이었을까?
<네가 날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뭔 줄 아나? 넌 혼자왔어. 부하들과 함께 왔다면 날 능히 이겼겠지>
오진수의 말이 떠오른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흘리는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죄책감의 눈물이었음을.
“내가 부하들을 사지로 이끌었던거야?”
<넌 최고의 군인이 아니야>
오진수의 선언 같은 기억이 비수처럼 가슴에 꽃여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최고가 아니라 최악의 군인이었다고?"
은서는 원망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흑색 전투복에 달린 이화꽃 문양이 은서의 눈에 익숙해보인다.
"대한제국 친위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간 김종규 대장의 부대. 대한제국 황제 직속부대. 대한제국의 공주를 3년이나 월남전에 방치해놓고 단 한번도 도와주지 않은 부대. 공수지구대 3팀이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도와주지 않은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들.
"모시러 왔습니다. 공주님."
선두에 서서 제일먼저 착륙한 남자가 말했다. 계급은 대위. 가슴에 달린 이름표엔 '김진혁'이라고 적혀있는 남자였다.
"넌 왜 여기에 온거야···."
은서의 전쟁은 이렇게 끝났다.
***
중앙정보부의 관계자가 채명진 장군의 집무실을 찾아온 건 5일 뒤의 일이었다.
머리를 단정히 묶어올린 검정 양복의 비밀 요원. 이화란 이름을 가진 여인은 채명진 장군이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해외 첩보를 담당하는 중앙정보부 1차장님께서 직접 방문하실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덕수궁 비서실장으로 임명됐거든요.”
“중정 1차장이 덕수궁 비서실장으로? 정치라도 하려는건가?”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는 몸이라.”
이화가 싱긋 웃으며 채명진에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채명진 장군님의 노고를 치하하겠다 하셨습니다. 4성 장군은 물론 훈장도 받으시겠죠. 축하드립니다.”
채명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쁘지 않으십니까?”
“너무 많은 부하가 죽었네.”
“첩자 때문이었죠?”
"찾을 수 있겠나?"
채명진의 간절한 물음에 이화가 조용히 답했다.
“이미 찾았습니다."
"누군가 그 빌어먹을 녀석이?"
"기갑연대 작전참모. 계급은 소령입니다.”
채명진 장군이 식은땀을 흘렸다.
“군생활 10년차 중급 장교가 북한군 스파이라고?”
“북한이 아니라 조선노동당입니다. 북한이란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기갑연대 작전참모는 유학파 출신의 엘리트 장교였습니다. 대공 용의점은 커녕 국내 접점도 없어서 이북 지역과 대학가 중심으로 방첩망을 짜던 보안사와 중정이 모두 뚫렸죠.”
“그럼 자네는 어떻게 찾았나?”
"공주님이 조선노동당 13과의 요원 한 명을 살려두셨거든요. 여자였는데 길가에 얼굴만 내놓고 매장을 시키셨더라구요."
“공주님이 아니었으면 첩자조차 못 찾았다 이건가?”
“공이 무궁무진하셔서 훈장 하나론 부족할겁니다."
"공이라···."
이화가 확신을 갖고 말했다.
"방첩 전략이 대대적으로 수정될겁니다. 보안사령부와 중정 2차장실은 대규모 숙청이 들어가겠죠.
빈 자리는 해외 파트를 맡던 제 부하들이 장악할거고, 그렇게 되면 제국의 모든 정보기관이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심복인 제 손에 놓이게 됩니다."
“덕수궁 비서실장이 정보기관을 장악한다라···.”
"장군님께선 딱 하나만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적군파."
"적군파?"
"조선노동당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고심하던 채명진이 다른 질문을 날렸다.
“공주님은 어떻게 되나?”
이화가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너머엔 공주님이 입원해있는 병원이 나지막이 보였다.
“5일째 말이 없으시더군요. 의사 말로는 큰 외상은 없으시다는데···.”
“부하를 모두 잃었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나? 군생활 24년차인 나도 힘든데···.”
“저희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공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약점이 있거든요."
채명진이 원망의 눈빛으로 말했다.
“상처가 크신데 약점이라니? 마음의 치료가 필요한 마당에 약점을 쥐고 뭘 흔들 생각인가?”
"걱정되시나요?"
"그럼 걱정이 안되겠나? 전쟁터에 공주님을 방치해서 도와주지도 않고, 사관학교 땐 교관을 시켜 가혹행위까지 했다지? 자네들은 대체 이 나라의 공주님을 뭘로 보고···.”
이화가 정색하며 말했다.
“가혹행위는 중정과 무관합니다. 친위대의 소행을 저희에게 덮어씌우지 마십시오.”
“중정이라도 도왔어야지!"
“돕지 말라는건 황명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돕지 말고 평범한 군인으로 취급해라. 무엇 하나 특혜주지 말고 오롯이 공주의 힘으로 싸우게 뒤를 지켜보라. 공주가 죽을 경우 책임은 내가 지겠다.”
“그것이 정녕 아비 된 자로서 내릴 수 있는 명령이란 말인가?”
“폐하의 뜻을 이해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우리같은 미천한 자들이 갖지 못할 깊은 뜻을 가진 분이십니다.”
“......”
“지금 장군님의 역할은 대한제국 8만 5천 장병을 안전하게 철수시키는 일이겠죠.”
"...휴전은 언제쯤 되겠는가?”
“72년 말에서 73년 초가 될겁니다.”
중앙정보부 해외 파트 총괄인 1차장으로서 예측하는 전문가적 식견이었다.
“휴전 협상이 지지부진한 걸로 아는데?”
“조만간 미국에서 라인배커 작전을 실시할겁니다. 미국의 B-52 폭격기가 수백대씩 몰려와 북베트남 영토를 직접 타격한다고 하니 피해가 엄청나겠죠.”
“얼마나?”
“항복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항복을 안하면 할 때까지 영원히."
“......”
채명진이 고뇌하며 물었다
“1차장, 하나만 묻지. 이 싸움에서 우리는 정의였나?”
“정의라 하시면?”
“우린 월남 정부를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서방 여론은 미국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침략자로 부르더군. 자네 생각은 어때? 중앙정보부의 해외 파트를 맡은 1차장이 아닌가? 덕수궁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식견을 들려주게.”
이화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세상이 그러더군요. 빨간 건 적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겠습니까?”
채명진이 다시 한번 물었다.
“세상 말고 자네의 생각이 듣고 싶은걸세.”
이화는 정중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상체는 45도 숙임으로서 최고 예우를 담아, 대한제국 월남원정군 전체를 대표하는 장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순수한 이화의 진심이었다.
Ep.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