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6화 (6/131)

〈 6화 〉 Ep1. 공주 이야기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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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 11일 백호부대 기갑연대 통신망>

[백두산, 여기는 오소리. 18시 30분부. 작전지역A에서 철수 진행하겠음.]

[오소리, 여기는 백두산. 작전지역 A 철수를 지시한 바 없음. 해당 위치 고수바람.]

[백두산, 여기는 오소리. 독수리측 연락장교가 직접 지시하였음. 작전계획 537호에 따라 작전지역A에서 철수를 진행함. 이상.]

[독수리, 여기는 백두산. 오소리측에 작전지역 A 철수를 지시한 바 있는지 확인바람]

[여기는 독수리, 작전지역 A철수 지시··· 치칙- 치지지지지직-]

[여기는 독수리, 작전지역 A 철수 지시하였음. 작전계획 537호에 따라 오소리는 A지역에서 철수. 가까운 B지점으로 합류할 것. 월맹군이 공격해온다는 첩보를 확인함. 이상]

[여기는 백두산, 작전계획 537호가 뭔지 들은 바 없음. 정확히 설명바람 독수리! 독수리!]

“야 이 새끼야!!!”

연대 본부에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무전기를 붙잡고 ‘독수리’를 한참 찾던 백호부대 기갑연대장의 목소리였다.

“아니 씨팔! 작전계획 537호는 뭐야? 누구 맘대로 내 부대에 명령을 내려!?”

“채명진 중장님 지시 아니겠습니까?”

연대 작전참모가 의견을 제시했다.

“중장님이? 그게 말이 돼? 670 고지를 포기하라고? 얼마 전 회의에선 670고지를 반드시 사수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이건 말이 안되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무전망으로···.”

“이상해. 뭔가 이상해. 당장 사령부로 연락장교 보내! 1중대한테도 보내서 그딴 명령 누가 내렸는지 다시한번 확인하라 그래.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당장 멈추라 그러고.”

“네, 연대장님!”

연대장의 불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무전망에서 ‘독수리’에 해당하던 사령부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으니까.

“뭐? 무전이?”

“그렇습니다.”

참모장의 보고에 채명진 장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원정대 총사령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백호부대의 사단장이기도 해서 이번 사태의 책임자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누군가 날 사칭했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24년 군생활 동안 몸에 배인 본능적인 감각이 지금의 상황을 위기라 말해주고 있었다. 이럴 때 결단은 빠를 수록 좋았다.

“당장 참모들 소집해!”

그렇게 소집된 대한제국 월남원정군 총사령부의 회의에서 채명진은 가장 먼저 정보참모를 찾았다.

“정보참모! 최근에 작전 나간 애들 중 장비 회수 못한 데가 있나?”

“장비라 하시면?”

“무전기!”

“부대 전체를 따지면 정확히 알긴 힘들지만, 최근 수색대쪽 피해가 심한 걸로 압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잃어버렸단 소리군. 당장 전 부대에 새 주파수 할당하고 암호문도 싹 바꿔버려! 재발부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작성해서 출력하고, 분류한 다음 헬기띄워 부대 전체에 일일이 배부해도··· 사흘만 주십시오.”

“늦어! 이틀내로 바꿔!”

“이, 이틀은···.”

“하루 주랴?”

“아닙니다. 이틀내로 해보이겠습니다!”

채명진은 자리에 일어나 지휘통제실의 모든 구성원에게 말했다.

“제군들, 잘 들어라. 월맹군이 우리 무전망에 침투했다. 어떻게 했는지, 누가 도운건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북한군이 했다고 생각해라.

그런 생각과 각오로 전 장병은 비상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오늘! 당장! 1초 뒤에도 아군으로 위장한 적이 침투할 수 있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에 대비한다! 알겠나?"

“네!”

채명진은 참모들을 노려보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거짓 명령을 받은 1소대면 670 고지야. 놈들은 분명 거기로 올거야. 월남군의 보급 루트를 끊으려면 19번 도로를 확보해야 하니까.

우린 절대 여기를 내줄 수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해. 지켜내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거야."

***

그렇게 회의가 끝난지 30분 뒤. 백호부대 기갑연대의 무전망으로 또 하나의 무전이 들렸다.

[여기는 너구리! 여기는 너구리! 작전지역 B에서 기습 공격을 받고 있음! 지원 바람! 지원 바람! 최소 연대급 병력으로 보인다!]

여기서 너구리는 380 고지의 2소대 호출명으로, 앞서 1소대가 작전지역 A를 버리고 간다던 목적지였다.

두 번째 무전이 날아오자 연대는 혼란에 빠졌다.

“뭐? 2소대가 공격을 받아?”

“그렇습니다. 이번엔 확실합니다.”

연대 작전참모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2소대는 분명히 공격을 받고 있다고. 그래서 무전망의 독수리(사단본부의 호출명) 말에 의심을 거두는 눈치였다.

“독수리 말은 분명 사실입니다. 2소대는 공격받고 있고, 그들을 공격하는 월맹군은 무려 연대급 병력입니다. 60명 대 3천명이 상대가 되겠습니까?”

“야 작전참모!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소대급 규모밖에 안되는 전장에 3천명이 어떻게 들어와?”

“전장이 비좁은 건 사실이죠. 하지만, 시간차 공격을 하면 이야기가 다르잖습니까?”

연대장은 책상을 치며 말했다.

“그럴리 없어! 무전 속 독수리는 거짓이야! 누군가 사칭하는 게 분명해! 장군님은 내게 670고지를 포함한 모든 진지를 사수하라 하셨단 말이다!”

“하지만 2소대가 공격받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버티라고 해! 우리 전술기지는 짜빈동 전투에서도 입증된 최강의 요새야!”

“연대장님!”

작전참모 만큼이나 연대장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당장 1소대에 명령 내려. 670고지로 돌아가라고. 우린 어떤 경우에도 19번 도로를 포기하지 않아.”

“2소대는 그럼 어떻게 하실겁니까?”

“장군님이 도와주시겠지. 그 때까진 우리 연대 병력으로 어떻게든 해보자고.”

하지만 연대장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0분뒤, 백호부대의 연대, 대대, 중대 통신망까지 모든 채널에서 괴상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음악은 1시간이 넘어도 계속되었고, 무슨 말을 하든 음악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으므로 무전기를 쓰는 의미가 없어졌다. 통신망은 사용 불능 상태가 되었다. 말로만 듣던 전파방해였다.

채명진의 정보참모는 모든 부대에 사람을 보내어 무전기의 주파수 변경을 지시했지만, 통신망이 복구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백호부대는 사단부터 예하 중대까지 전체가 귀머거리 신세로 전락했다.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무엇을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채명진 장군은 장님이나 다름 없었다.

1소대는 670 고지를 내려갔을까? 아니면 무전의 내용을 의심해 발길을 돌렸을까? 당분간 알기 힘들 것이다.

***

백호부대가 670 고지를 빼앗긴 사실을 인지한 건 3시간 뒤의 일이었다.

19번 도로에서 휘발유를 실어 나르던 군용 트럭이 폭파된다. 원인은 670 고지에서 날아온 박격포 공격이었다. 대한제국군이 아군 트럭을 공격할리 없으니 이는 월맹군(북베트남군)의 소행일테고 그말인 즉. 670 고지는 적에게 넘어갔다는 뜻이다.

그들은 19번 도로를 겨냥해 보급 물자가 지나갈 때마다 박격포로 원거리 폭격을 날렸고, 이로 인해 19번 도로를 통해 보급받는 월남(남베트남) 제2군단이 쫄쫄 굶는 처지로 전락했다.

밥, 총알, 기름. 현대전에서 모든 군대는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싸울 수 없다. 채명진이 19번 도로 사수를 누누히 강조한건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통신망은 27분 뒤에 복구되었고, 백호부대 기갑연대장이 1소대에 물어봤을 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야! 오소리! 통신보안이고 뭐고 다 필요없으니까 당장 말해! 작전지역 A 어떻게 했어!?]

[후속 병력이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간겁니까? 진지도 그대로 나눴습니다만···.]

[야 이 미친새끼들아! 철수하면서 진지를 놔두고 가면 어떡해! 갈 때 가더라도 해체하고 갔어야 할 거 아냐!]

기갑 연대장은 후속 병력을 보낸적 없다. 하지만 1소대는 그런 약속을 받았다. 그 말인 즉 첩자가 장교 행세를 하여 거짓 명령을 내리고 갔다는 뜻이다.

"이게 말이 돼? 월맹군이 대한제국 장교 흉내를 낸다고? 이런 씨발 북한군이 지옥에서 살아돌아오기라도 한거야 뭐야?"

총사령부의 채명진 장군도 충격에 빠진건 마찬가지였다. 지휘통제실의 모든 장교들이 차갑게 얼어붙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가 사실이 되는 순간이군··· 잔당이 월남전에 개입했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각하."

참모장이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1소대를 속일 정도로 깊숙히 침투했다면 이젠 누구도···."

참모장의 말에 채명진이 인상을 썼다. 그리곤 정보참모에 물었다.

“통신은 어떻게 됐어?”

“일단 급한대로 주파수만 바꿨습니다. 하지만 첩자가 계속 주파수를 유출한다면 언제고 다시 막힐 겁니다.”

“주파수, 암호 말고 더 나은 보안체계는 없겠나?”

“저희 군이 일선에서 사용하는 PRC-77 무전기는 미군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 사양입니다. 현재의 기술론 이 이상의 보안체계는 어렵습니다.”

“젠장···.”

참모장이 말했다.

“월남 2군단에서 19번도로 개통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항공 지원으로 어떻게든 버텨보고 있지만, 그쪽도 월맹군의 공격을 받고 있어 보급 받는 속도보다 소모되는 속도가 빠를겁니다."

“즉,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670고지를 탈환해야 한다는거군.”

“네, 각하.”

“제기랄, 우리가 만든 진지를 우리가 공격해야하다니.”

“그놈의 1소대장이···.”

참모장이 씁쓸한 인상을 쓰자 채명진이 말했다.

“1소대도 속은거니까 너무 뭐라하지 말자고. 앞으로를 생각해야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나?”

“방금 전 월맹군의 공격으로 19번도로의 교량 2개가 파괴되어 길목이 차단되었고, 2소대와 3소대가 주둔한 고지가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어 기갑연대장이 지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연대장이 직접 나서는거 보니 평소 내 말을 잘 듣긴 했구만. 그럼 우리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겠지. 갖고 있는 고지 두 곳은 연대장에게 맡기고, 우리는 후방 병력 빼서 670 고지를 친다. 포병 지원을 아끼지 말도록.”

“예, 각하!”

하지만 그 명령은 성사되지 못했다.

정보참모가 변경한 주파수에서 괴상한 음악이 다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놈들은 변경된 주파수를 입수해 다시한번 방해전파를 보내고 있었다.

정보참모는 다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변경할 주파수를 정하고 모든 예하부대에 전령을 보내 어떤 걸로 바꿨는지 구두로 알려준다. 그렇게 다시 통신을 뚫어 작전지시를 내리면 1시간 정도 뒤에 적군이 주파수를 찾아내 방해전파를 뿌리는 짓을 반복했다. 참모들은 확신했다.

적은 내부에 있다.

채명진이 말한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내부의 적을 제거해야 돼. 그게 아니면 놈과 접촉하는 비밀 루트를 찾아 제거해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지고 말거야.”

머리가 아파왔다. 백호부대 사령부 밑으로 수 많은 예하 부대가 있는데 그 중 어떻게 첩자를 찾아 제거해야 한단 말인가? 모두가 막막하게 천장만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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