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5화 (5/131)

〈 5화 〉 Ep1. 공주 이야기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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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본부에 한국군 UH-1 헬기가 도착한 건 같은 날 오후 7시의 일이었다.

장교 숙소에 홀로 앉아 먹다 남은 전투식량으로 저녁을 때우고 찬물로 샤워한 그녀는 군복을 챙겨입어 출전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텅 빈 가방에 차곡차곡 모포와 야전삽, 기본 필수품들을 넣고 베트남 현지 주민으로 위장하기 위한 하얀색 아오바바(베트남 전통의상)도 한벌 구해다 군장에 챙겨넣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삿갓을 즐겨 쓴다고 하니 가방에 넣고 싶지만 크기가 커서 가방 끈으로 대충 묶어 고정해야 했다.

그 다음 소독약과 붕대 그리고 항생제를 있는대로 털어 넣었고 자신의 근무수당을 털어 구입한 미제 초콜릿 70개를 봉지에 담아 정성껏 쑤셔넣으니 군장의 무게만 30kg를 넘어갔다.

무기고에 들려 은서가 챙긴 무기는 단검, 45구경 M1911A1 권총 1정, 월맹군으로부터 노획한 소련제 모신나강 1정, 실탄은 적당히, 수류탄은 2개를 챙겨 헬기장으로 향한다.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헬기장 입구를 코앞에 둔 특전사 본부의 끝자락이었다. 은서의 눈앞에 자신과 똑같은 차림의 부하 11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백호부대 소속 공수지구대 제3팀. 은서가 지휘하는 부하들이다.

‘따라오지 말라니까 진짜···.’

말 안듣는 부하들을 보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저딴 년이 무슨 부중대장이야? 그냥 띨띨이지>

3년 전의 기억, 3년 후의 현재. 자신의 명령을 어기는 부하들. 그리고 박철민 상사. 기여코 따라오는 놈들을 보며 수치스러웠던 소위 시절의 기억들이 머리속을 잠식해간다.

두려웠다. 공포스러웠다. 걱정됐다. 저 녀석들과 싸움이 생기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그런 종합적인 걱정거리가 은서의 머리속을 지배해나갔다.

'이길 수 있어.'

은서의 눈에 자신감이 돌았다.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 공포는 떨쳐낼 수 있다. 걱정은 입증할 수 있다. 대한제국 특전사 이은서는 부하들을 이길 수 있다고. 힘으로 제압하고 놈들을 헌병대로 보내서 진급길을 영원히 막아줄 권력이 내 손에 있다. 나는 장교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따라오지 말랬지!"

장교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 상관의 권위에 반항하는 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장교 이은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코앞까지 달려와 가쁜 숨을 내쉬는 부하들이 보라는 듯 군홧발로 최선임자의 정강이를 걷어차버린다.

“중위 이승필!”

그는 자신의 부하이며 장교다. 백호부대 공수지구대 3팀의 부중대장으로 지휘 분야에서 자신을 보좌할 의무가 있다. 그런 그부터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니 벌을 주어야 했다.

"내가 만만해보이지?"

"아닙니다!"

“근데 왜 내 명령을 무시해!”

그 말에 박철민 상사가 답했다.

"제가 가자고 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 태도는 참 한결같다고. 소위 때부터 업신 여기더니 대위가 됐는데도 여전하다. 그는 3팀의 선임담당관으로 부사관의 대표이며 실전 기술에 통달해 자신을 보좌할 의무가 있었다.

"장교씩이나 되신 분이 무전기도 없이 단독작전을 나가시고 무슨 생각이십니까?"

“넌 신경꺼.”

“M16도 아니고 월맹군한테 노획한 모신나강이라니. 저격수 흉내라도 내실려구요? 그러다 생포당하면 곱게 죽지도 못할건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내가 알아서 해.”

그렇게 발길을 돌린다. 일일이 답변해줬다간 몇 시간이고 이렇게 발목잡혀있을테니까. 그래서 뭐라 씨부려대건 무시하며 헬기장으로 향하는 은서였다. 그럼에도, 박철민 상사는 집요했다.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참다 못한 은서가 고개를 돌렸다.

"너무해?"

“우린 한 팀입니다! 그런데 매번 어거지를 써서 혼자 나가시고,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시면 어쩌실려구요?”

냉소섞인 표정으로 답했다.

“너희한테도 좋은거 아냐?”

“네?”

“띨띨이 한 명 치운거니까. 잘된거 아니냐고.”

“팀장님···.”

죄책감에 짓눌린 박철민 상사가 고개를 숙였다. '띨띨이'라는 말이 나오면 항상 이렇게 된다. 3년 전 부하들과 함께 이은서 소위의 숙소를 점거하고 술잔치를 벌였던 하극상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저딴 년이 무슨 부중대장이야? 그냥 띨띨이지>

3년전의 그 말이 자기 입에서 나온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고개를 떨군 채 자신이 할 수 있는거라곤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부르르 떠는 것 뿐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3년 전 소위가 자신의 팀장이 되어있는데. 그 팀장이 매번 이렇게 원망이라는 화살을 날려 자신을 굴복시키고 마는데.

원망(怨望)

그래, 원망이다. 이은서 대위는 지금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그래서 선임담당관이 아닌 죄인의 자격으로 서있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무릎을 꿇고 판결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죄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과하라 하시면 몇 번이고 하겠습니다. 부하들을 다독이고 관리해야 할 선임담당관으로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판사가 죄인에게 선고한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판결은 사형이었다. 집행된 적은 없지만 3년 째 이렇게 냉소적인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박철민 상사의 자존심을 가차없이 사형시키는 은서였다.

"죽으면 용서해주실겁니까?"

"죽으면 끝이지 뭔 용서까지 바래?"

"그럼 차라리 때리십시오. 화가 풀리실 때까지 맞아 드리겠습니다. 몸에 멍이 들든 살가죽이 흐물흐물지든.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은서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때려? 내가 왜? 때려봐야 3년 전 기억은 그대로인데 내가 왜 그래야하지?"

"때려도 안풀리고 죽여도 안풀릴 정도로 제가 미우신겁니까? 그럼 헌병대에 보내십시오. 몇 번이고 몇 달이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팀장님 곁에서 하나의 팀으로 싸우게 해주십시오. 저흰 그저···."

"아, 공을 세우고 싶으시다?"

“그게 아니라···.”

“박철민 상사!”

이은서 대위가 호통을 친다. 자신의 선임담당관을 부르는 그녀의 눈빛에 핏빛어린 경멸이 서려있다.

“누명 씌우지 마. 내가 지휘관으로서 글러먹었다는 양 말하는데, 내가 니들 공 못세우게 막은 적 있어? 위험한 곳에 사지로 몬 적은 있고?

아니, 나만한 지휘관 또 없을걸? 총사령관님께 부탁해서 좋은 작전 받아오고 그걸로 니들이랑 함께 뛰었어. 그렇게 따박 따박 실적 챙겨줬으면 된 거 아냐?”

“팀장님···.”

“왜 내 앞에서 불쌍한 척이야? 불쌍한 건 난데.”

“제발···.”

선임담당관 밑으로 모든 부하들이 고개를 떨궜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엔 틀린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니들한테 안겨준 훈장이 몇갠 줄 알아? 한 명당 두개씩은 줬지? 미군이랑 같이 뛰게 해주고, 월남군이랑 같이 뛰게 해주고. 채명진 장군님께 부탁해서 중요한 작전은 죄다 따왔어. 니들 실적 챙겨줄려고!"

“그건···.”

“니들은 내게 고마운 줄 알아야 돼. 고향땅 돌아가면 죽을 때까지 전쟁 영웅으로 존경을 받겠지.

버스를 타도 ‘참전용사다!’ 그럴거고 택시를 타도 ‘참전용사께서 타시다니 영광입니다! 택시비는 받지 않을테니 어디든 말씀해주십시오!’ 이러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태워다줄거야.

왜? 대한제국에서 제일로 유능한 장교님 덕에 훈장을 받았으니까. 방송사 기자들이 줄줄 따라다니면서 평생동안 인터뷰를 청할건데 고맙지도 않아?”

“팀장님···.”

“그렇게 실적을 쳐 받아먹었으면 말은 들어야 할 거 아냐. 내가 괜히 이래? 단독작전은 보안이 생명인데 이렇게 요란을 떨면 방해가 되잖아. 한시간만 내무반에 쳐박혀서 나오지 말라는게 그렇게 힘들어?"

박철민 상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희들은 내 용병이야. 실적으로 고용한 용병! 용병은 부를 때만 따라오면 돼. 나머진 내가 혼자 알아서 할테니까.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열변을 토해낸 은서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그것이 땀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부하들은 구분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박철민 상사만이 꿋꿋하게 자신의 사과를 이어갈 뿐이었다.

“군인에게 제일 중요한 건 명예가 아닙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전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믿습니다. 특전사의 12명은 하나의 팀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전우이고, 팀장님 또한 그렇기에 저희는 용병이 아니라 팀입니다.”

“3년동안 단 한번도 니들을 팀이라 생각한 적 없어"

“팀장님!”

주먹을 부르르 떨며 은서가 말했다.

"Ngôn ngữ bản địa cũng không biết thì tác chiến bí mật kiểu gì? Nếu muốn đi theo thì phải bắt đầu học từ ngôn ngữ đã."

알아들을 수 없는 유창한 베트남어였다. 대꾸조차 한국어로 해주지 않는 팀장님의 모습이 ‘너 따위는 내 부하가 될 수 없다’는 고압적인 태도 같아 박철민 상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현지 언어도 모르는 것들이 무슨 비밀 작전이야? 따라오고 싶으면 말부터 배워와."

실제론 이런 뜻이었지만 그것조차 알아듣지 못해 대꾸하지 못하는 자신은 영원히 이은서 대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자신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전장에서 없는 시간 쪼개가며 외국어를 습득하고 현지 정규군과 소통하며 발음을 교정할 그런 괴물같은 두뇌가 없었으니까.

"이승필 중위."

은서는 자신의 부하인 이승필 중위를 불렀다. 1년 전 새로 들어온 녀석이라 3년전 사건을 몰랐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네, 팀장님."

“If I die, give the will in the drawer to the General.”

승필은 무거운 마음으로 답했다.

“Yes, Ma'am.”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박철민 상사가 알아들은 단어는 딱 하나였다.

die.

아마 ‘죽다’란 뜻일테다.

***

1972년 4월 10일. 북베트남 3군단 사령부.

“주석님께서 말씀하셨네. 자유와 독립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북베트남군 3군단 사령관 리엔 장군이 말했다.

"조만간 휴전을 하게 될거라 들었습니다."

옆에는 동양인이지만 베트남 사람은 아닌 낮선 군복의 사내가 서있었다. 공산주의의 이념 아래 남의 나라까지 지원 온 혁명 동지였다.

"휴전은 쉼표일 뿐. 마침표가 찍히기 전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겠지."

리엔 장군은 사령부 전면에 걸린 주석님의 사진을 바라봤다. 호치민. 친근한 할아버지처럼 생긴 그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배하던 시절 독립운동을 주도한 민족의 영웅이었다.

“외세에 휘둘려 두동강 난 조국을 후손에게 물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

"저희가 물심양면으로 도울 것입니다. 사령관 각하."

"자네는 조선에서 왔다고 했지?"

"조선노동당 13과 특수작전군 소속 오진수라고 합니다."

동양의 혁명동지가 입고 있는 군복은 더 이상 현존하는 나라의 것이 아니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패배하고 중국 연변지역으로 쫒겨난 조선인민공화국(북한)의 군복. 그는 중국과 함께 북베트남에 지원 온 몇 안되는 특수부대였다.

“군부는 72년 공세(부활절 공세)를 확대할 예정이네. 그럴려면 19번 도로를 지키는 대한제국과 전면전을 치뤄야겠지.”

“19번 도로엔 크게 3개의 고지가 있지요. 670, 380, 150고지에 각각 1소대부터 3소대까지 주둔하고 있을겁니다.”

“그래, 그 중 1소대를 속이게. 그들이 670 고지를 버리고 다른곳에 가도록. 그리 할 수 있겠나?”

“실망시키지 않을겁니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작전이 있으니까요.”

리엔 장군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한제국의 월남전 역사상 최대 피해를 기록한 전투. 19번 도로의 혈전이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곳은 은서가 단독작전으로 파견된 지역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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