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부 10화. [여신이 되었다] (10)
[여신이 되었다] 팀도 속속 공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비밀리에 잡은 일정이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공항에 숨어있던 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우가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나타나자 커다란 대포 카메라를 든 팬들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피곤한데.’
은우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잘못 찍히면 흑역사로 평생 인터넷을 떠돌 수도 있는 사진이었다.
그때 명혁 역을 맡은 도진이 공항으로 들어왔다.
도진의 팬들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셔터를 눌렀다.
밝은 미소로 팬들에게 인사하는 도진은 즐기는 표정이었다.
‘나도 저땐 저랬다.’
은우는 도진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스타가 된 것이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던 그때.
‘저땐 뭘 해도 다 좋을 때야. 그치만 그걸 십 년 넘게 해 봐라.’
지난번 앨범을 녹음할 때 도와주었던 저스틴 비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파파라치들만 봐도 치가 떨려. 그들은 온 사방에 있거든. 주차장, 마트, 심지어 화장실에도. 제발 난 그들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그들에겐 내 사진과 사생활이 돈이겠지만. 인터넷을 떠도는 내 사진들을 볼 때마다 손발이 떨린단 말야.”
어느덧 십삼 년 차에 접어든 연예인 생활.
은우 역시 저스틴 비버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팬들만 아니었다면 진짜 그만뒀을지도 몰라.’
그래도 은우를 버티게 하는 힘은 자신을 오랜 시간 믿고 지지해준 팬들이었다.
‘이번 휴가는 팬들도 함께하는 거니까 즐겁게 다녀오자.’
시영과 PD, 작가 몇몇이 합류한 뒤에 민하, 은정, 수연 삼인방까지 모두 모였다.
“꿈만 같아.”
은정이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사이판이라니. 사이판이라니.”
“그것도 [여신이 되었다] 팀과 함께.”
삼인방은 구름 위라도 걸을 듯한 기분이었다.
은우가 캐리어에서 귀여운 목베개 세 개를 꺼내 삼인방에게 주었다.
“와, 캐릭터 좀 봐. 이거 내가 완전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아니, 세상에 뭐 이런 걸.”
“독약을 주셔도 받겠습니다.”
삼인방의 호들갑에 조PD가 자지러졌다.
“역시 팬들과 함께하니 활기가 넘치네. 연기자와 스텝들끼리 가는 것도 좋지만 이런 것도 새롭고 좋은데.”
막내 작가가 말했다.
“아예 마케팅 단계서부터 홍보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드라마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맞아. 맞아. 다음 드라마에서도 해 봐야겠어.”
조PD도 동의했다.
어느덧 출발 시간이 되어, [여신이 되었다] 팀은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 중앙 열에 조르르 앉은 삼인방은 은우가 준 목베개를 한 채, 신이 나서 종알거렸다.
“김시영 가까이서 보니까 피부 너무 좋아.”
“도진도 멋있다.”
“시끄러. 은우가 제일 멋있거든.”
은정과 수연의 수다에 조민하가 일침을 가했다.
“얘들아, 그렇게 작은 소리로 속닥거려도 들릴 건 들려. 당사자랑 한 공간에 있는데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우리도 예전에 그래서 상처받았었잖아.”
세 사람은 모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때,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여러 번 겪었었다.
조용한 수군거림, 이유 없는 따돌림.
은정과 수연은 민하의 의도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스튜어디스가 식사 메뉴를 물으러 다녔다.
“기내식이다. 기내식이다. 뭐 먹을 거야?”
“비빔밥.”
“맨날 먹던 거 먹지 말고 메뉴 좀 봐봐.”
“소고기찜이랑 생선요리 있네.”
“소고기찜.”
“난 생선.”
“소고기찜 두 개랑 생선요리 하나요.”
스튜어디스가 기내식을 가져다주자 삼인방을 기내식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창가 쪽 자리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치?”
“그럼 구름이랑 해랑 찍을 수 있었을 텐데.”
“돌아올 땐 창가 쪽 자리였으면 좋겠다. 근데 저기 좀 봐.”
수연이 손을 가리킨 곳에는 은우가 안대를 하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기내식 먹고 자야 하는 거 아닐까 은우.”
“자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지. 그럴 때도 있잖아. 그치?”
“맞아. 학교 가야 해서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 싫어.”
“은우 자니까 조용히 하자.”
“그래.”
순식간에 조용해진 삼인방이었다.
비행기는 사이판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되게 작다.”
“블로그에서 읽었는데 원래 사이판이 우리나라 시골 느낌이라고 하더라. 휴양지라서 유명한 거래.”
“어차피 바다 보고 놀려고 온 거잖아. 우리 뭐 하지? 뭐 하지?”
“일단 스노쿨링을 해야 하고 밤에 반딧불도 보러 간다는데. 요트 위에서 식사도 하고.”
“와, 꿈만 같아. 근데 우리 아쿠아슈즈는 어떻게 하지?”
“숙소에 가자마자 사야지. 블로그에서 보니까 빌려주는 곳도 있긴 하더라.”
“휴우. 다행이다.”
일행의 수다에 은우가 동참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수연이 은우에게 물었다.
“스노쿨링 해 봤어요?”
“응. 재밌어. 같이 할까?”
“네.”
삼인방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은우와 함께 하는 스노쿨링이라니.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스노쿨링만 할 거야.”
큰소리로 외치는 조민하였다.
숙소에 도착한 삼인방은 생각보다 큰 숙소의 크기에 놀랐다.
“셋이라고 큰 방 줬나 봐.”
“호텔이라니. 호텔이라니.”
“이거 스위트룸 맞지?”
“응. 스위트룸이야. 침대 세 개짜리 스위트룸.”
“이게 꿈이야? 드라마야?”
“내가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거 같다.”
수연은 침대 위로 점프하며 외쳤다.
“우리 여기서 인생샷 찍자. 잠옷 입고도 찍고 사진 천 장 찍고 가자.”
“수영장 가서도 찍어야지. 배우들이랑도 찍고. 우리 반 애들이 얼마나 부러워한 줄 알아? 여기 온다고 했더니 다들 부러워했다고. 사진 많이 찍어오라고 하던데.”
“이미 단톡에 사진 올리고 있지롱. 민하 덕분에 우리도 인싸 됐어.”
민하가 은정과 수연에게 말했다.
“빨리 정리하고 스노쿨링하러 가자. 방수팩 챙겼어?”
“그럼.”
“다행이다. 은우랑 사진 많이 남겨야 해.”
삼인방은 래쉬가드와 스노쿨링 마스크를 챙겨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야야, 아아악.”
도진이 시영을 밀어서 물에 빠트리자 물에 빠진 시영이 비명을 질렀다.
“하하하하.”
도진은 시영을 시작으로 다른 스텝들도 물속에 차례로 빠트렸다.
“사이판까지 와서 앉아만 있음 어떻게 해요? 물에 들어가야지.”
덕분에 물을 먹은 시영을 징징거리고 있었다.
“더러운 수영장 물 먹었어. 토하고 싶어. 웩웩.”
도진이 시영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안 죽어. 안 죽어. 그거 들었어? 호텔 전기포트에 중국 사람들이 양말 삶는다는 거?”
“뭐라고?”
“호텔 컵은 전부 다 걸레로 닦는다던데?”
“뭐라고?”
시영은 자기가 만진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었다.
“하하하하하. 너 되게 바보 같구나. 재밌어. 참.”
도진은 시영을 신나게 놀리고 멀어져 갔다.
은우는 래쉬가드를 입고 무선 이어폰을 꽂은 채 수영장 튜브 위에 있었다.
‘평화롭다. 모든 게.’
밖에서의 난리를 알 리 없는 듯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수연이 민하와 은정에게 말했다.
“우리도 사진 찍자. 어서.”
삼인방은 수영장에서의 설정샷을 신나게 찍었다.
은우를 보고 있던 은정이 말했다.
“은우, 왜 혼자 음악만 들을까?”
“그러게. 왜 도진이나 시영처럼 같이 놀지 않을까?”
“은우, 의외로 아싸였던 거 아닐까?”
“은우가 아싸일 리가 있어? 자기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싸 만드는 거면 몰라도.”
“그건 그래? 은우가 아싸일 리가 없지.”
은정과 수연의 말을 듣던 민하가 말했다.
“저게 쉬는 방법일 수도 있잖아. 은우만의 방식.”
“혼자 멍때리는 게? 사이판까지 와서?”
“멍때리는 게 얼마나 좋은데. 장소가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사이판까지 오는 데 든 비행깃값이 얼만데. 돈 아깝잖아. 신나게 놀아야지.”
“은우한텐 이 정도 비행깃값은 아무것도 아닐걸. 1년에 얼마를 버는데 은우가.”
“하긴, 그건 그렇지. 기사에서 추정한 거만 봐도 최소 일 년에 오십억 이상이던데. 좋겠다. 평생 놀고먹어도 다 쓰지 못할 돈이 통장에 있다니. 그 돈 나 일억만 주지?”
“으이구. 아주 돈 많은 사람만 보면 다 일억만 달래. 지난번엔 삼숑 회장 기사 보면서 그 말 하더니. 이번엔 은우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왜 너한테 일억을 주니?”
“얘, 넌 왜 내 농담을 다큐로 받니?”
두 사람에 티키타카에 은우를 응시하던 조민하가 입을 열었다.
“우리 은우랑 스노쿨링 하자.”
“어떻게?”
“물어보면 되지.”
조민하가 물속을 걸어가 은우의 튜브를 흔들었다.
은우가 귓속에 있던 무선 이어폰을 뺐다.
“우리랑 같이 스노쿨링 하러 가지 않을래?”
“그래.”
은우가 순순히 튜브에서 내려와 수연과 은정 쪽으로 걸어갔다.
수연은 은우가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악악.”
은정이 수연을 팔꿈치로 치면서 말했다.
“야, 창피하게 소리 지르지 마. 촌스럽게. 버리고 간다.”
은우가 삼인방을 보더니 말했다.
“장비부터 빌려야겠네. 나도 안 챙겨왔고 너넨 슈즈가 없고.”
은우가 장비 대여점에서 장비를 빌려주었다.
“와, 은우가 계산했어.”
알바비를 걱정하던 수연은 싱글벙글이었다.
은정이 수연을 팔꿈치로 찍으며 말했다.
“조용히 좀 해. 촌스럽게. 너 버리고 간다.”
은우와 삼인방은 해변가에 도착했다.
은우가 스노쿨링 마스크를 쓰면서 말했다.
“여긴 물이 얕아서 아기들도 스노쿨링을 많이 해. 무조건 물고기가 많은 곳을 찾아.”
은우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도 가보자.”
은정과 수연이, 민하에게 말했다.
세 사람은 마스크를 쓰고 아쿠아 슈즈를 신은 채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는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물고기, 파란색의 물고기, 노란색의 물고기가 맑은 바닷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너무 예쁘다.’
민하는 너무 예쁜 바닷속 풍경에 넋을 잃었다.
‘동화 속 세상 같아.’
그때 작은 물고기 떼가 민하의 옆을 스치고 갔다.
민하가 반사적으로 물고기 떼로 시선을 돌렸다.
물고기 떼의 끝에서 은우가 브이 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은우의 손에는 수중 카메라가 들려져 있었다.
민하도 은우의 카메라를 향해 브이 자를 그리며 웃었다.
은우를 보고 은정과 수연도 민하의 곁으로 다가왔다.
은정과 수연이 민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마스크 때문에 표정이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바닷속이 매우 아름답다는 뜻 같았다.
그때 새로운 물고기 떼가 은우와 삼인방의 곁을 지나갔다.
은우가 민하의 손을 잡고 물고기 떼 곁으로 이끌었다.
수영을 잘하지 못해서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하던 민하는 은우 덕분에 물고기를 따라 이동할 수 있었다.
‘수영을 매우 잘하네.’
스노쿨링을 좋아한다던 은우의 말이 생각났다.
여러 번 해본 탓인지 은우는 물고기 떼가 가는 방향을 잘 알았고 그것을 화면에 담는 일도 익숙해 보였다.
물고기 떼도 물고기 떼였지만, 은우와 함께 수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민하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내가 은우와 손을 잡다니.’
수영 때문이긴 했지만, 은우와 손을 잡은 채 단둘이 이렇게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다니 정말로 꿈만 같은 일이었다.
은정과 수연이 따라오고 있었지만, 은우와 손을 잡은 것은 민하뿐이었으므로 민하는 행복해 죽을 것만 같았다.
‘평생의 행운을 모두 쓴 것 아닐까? 그래도 너무 좋아. 지금 너무 행복해.’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스노쿨링을 한 후에 일행은 물 밖으로 나왔다.
‘물속에 더 있고 싶은데.’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났지만, 은우와 단둘이 함께 있고픈 생각에 민하는 자꾸만 물속이 그리워졌다.
“바비큐 먹으러 가자. 아까 PD님이 예약해 놓으신다고 했어.”
호텔의 바비큐장으로 가자 일행들이 먼저 바비큐를 먹고 있었다.
도진이 은우와 삼인방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어딜 이렇게 늦게까지 놀다 왔어. 은초딩. 기다렸잖아. 배 안 고파?”
도진이 바비큐를 들고 와 은우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은초딩 배고프면 안 되지?”
은우는 도진이 준 고기를 어쩔 수 없이 받아먹으면서 물었다.
“너, 손은 씻었지?”
“진짜 너 우리 사랑을 의심하지 마라.”
능구렁이처럼 받아치는 도진의 말에 은우는 멍할 뿐이었다.
“사랑은 무슨.”
물놀이 후 먹은 바비큐는 꿀맛이었다.
삼인방은 배가 터지게 바비큐를 먹은 후에 원주민들의 춤 공연도 보았다.
어느새, 해변에는 별이 떴다.
“민하야. 별 보러 가자.”
수연과 은정이 민하를 해변으로 이끌었다.
세 사람은 함께 해변가를 걸었다.
“여기 너무 좋다. 서울 가기 싫어.”
“여기서 평생 살고 싶다. 그치?”
“근데 조민하, 너 아까 진짜 좋았겠더라. 은우랑 손도 잡고. 내 손도 좀 잡아주지. 너무해 은우.”
민하는 수연과 은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좋은 기분을 감출 수는 없었다.
“상상도 못 했어. 근데 진짜 좋았어.”
“기집애. 부럽다.”
탄식하던 수연이 갑자기 소리 죽여 말했다.
“아, 저기 은우다.”
해변가에 홀로 선 은우가 별을 보고 있었다.
“은우랑 인연이 깊은가 봐. 우리.”
삼인방은 은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뭐 해?”
은정이 은우에게 말을 걸었다.
은우가 삼인방을 보면서 말했다.
“너희가 내 파파라치 같은데. 왜 자꾸 날 따라다녀?”
“아니야. 오해야. 어쩌다 보니 동선이 겹친 것뿐이라고.”
민하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
은우가 민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좋아져서 다행이야. 편지가 안 올 때 걱정했었거든.”
“고마워.”
민하는 은우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별 보면서 무슨 생각 했어?”
민하가 은우에게 물었다.
“난 뭘까? 이런 생각. 가끔 마음이 힘들면 그런 생각을 하거든. 난 우주먼지 같다는 그런 생각. 저 멀리 우주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 나를 본다면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일까. 그런 생각을 해. 그럼 이상하게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하나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아.”
은우의 말을 듣던 수연이 말했다.
“네가 우주먼지면 나는? 우주머머머먼지?”
은정도 동의했다.
“우린 우주먼지에 들러붙은 밥풀.”
민하가 피날레를 찍었다.
“밥풀에 붙은 간장.”
세 사람이 함께 별을 보면서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은우가 말했다.
“너희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 나랑 함께 별을 봐 줘서 고마워.”
민하가 은우에게 말했다.
“우주먼지. 우린 네 옆에 붙은 더 작은 먼지가 돼서 널 영원히 응원할 거야. 그러니까 힘내.”
수연이 말했다.
“내 평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야.”
은정이 말했다.
“별보다 너희가 더 아름다워.”
-<외전 2부>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