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부 8화. [여신이 되었다] (8)
조민하는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울먹였다.
‘저 노래를 직접 부르는 걸 듣게 될 줄이야.’
조민하가 매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듣던 그 노래가 은우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민하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정말 만나게 되다니!’
무대 위의 은우에게선 빛이 났다.
‘콘테스트에 나오길 정말 잘했어. 우승까지 하고 말 거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승부욕이 조민하의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순간이었다.
무대 위의 다른 참가자들도 은우의 등장에 놀란 듯하였다.
모두 은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감미로운 목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은우는 노래를 부르며 참가자들 앞으로 다가와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춰주었다.
그 부드러운 미소에 몇몇 참가자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은우가 조민하의 옆에 섰을 때 조민하는 너무 떨려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런 날이! 이런 날이!’
조민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은우를 바라보았다.
은우는 따뜻한 눈빛으로 조민하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세상에.’
조민하는 손을 내밀어 은우의 손끝을 잡았다.
그러자 관객석에 앉아 있던 재롱이들이 어마어마한 함성을 질렀다.
“악.”
“그 손 놔.”
“은우야.”
조민하는 만인의 부러움을 받으며 웃었다.
노래는 다행히 간주 부분으로 접어들었고, 그 사이를 이용해 은우가 마이크를 내린 채 조민하에게 말했다.
“편지 잘 받았어. 네가 조민하지? 참가자 명단에서 네 이름을 봤어.”
날 기억해 주다니? 조민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은우의 질문에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편지 다 읽고 있었던 거야?’
은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동안 편지가 없어서 걱정했었어. 너무 두려워하지 마. 너무 상처받지도 말고.”
은우의 말에 조민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은우야.’
다시 노래가 시작되고 은우는 조민하의 손을 놓고 다른 참가자에게로 향했다.
조민하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은우가 내 편지를 읽고 있었어. 날 기억하고 날 걱정하고 있었어. 날 위로해 줬다고.’
무대 위만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소리를 지르고 온 사방을 뛰어다니며 자랑하고 싶었다.
‘은우가 내 손을 잡아줬다고.’
그때 은우의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프닝 무대 [여신이 되었습니다]에서 민지후 역을 맡은 국민밀크남 이은우의 노래였습니다. 오민하 닮은꼴 찾기 콘테스트는 채널 M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습니다. 서류 심사와 예선전을 거친 총 삼십 명의 참가자가 무대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 삼십 명의 참가자 중 단 한 명만이 우승의 영예를 안게 됩니다.
우승자는 [여신이 되었습니다] 팀의 포상 휴가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 모델 촬영의 기회와 음반 녹음의 기회도 함께 가지게 됩니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박수.
무대 위의 참가자들은 긴장된 표정이지만 열심히 웃고 있었다.
“본선 콘테스트는 오민하 따라잡기로 진행됩니다. [여신이 되었습니다]의 명장면 따라잡기와 테마곡 부르기. 두 라운드로 진행이 됩니다.”
조민하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드라마를 많이 봤으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긴장하지 마. 오늘 은우 응원도 받았는데 꼭 잘해야 해. 잘해서 은우랑 같이 포상 휴가 가야지.’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첫 번째 오민하 따라잡기 순서는 랜덤으로 고르겠습니다. 제가 상자 속에 손을 넣으면 참가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사회자가 상자에서 손을 넣어 종이를 뽑았다.
조민하의 손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설마 내가 첫 번째는 아니겠지?’
조민하가 긴장된 표정으로 사회자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첫 번째 순서는 조민하 양.”
맙소사? 나라고?
조민하는 이게 현실이 아닐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대 위엔 조명이 밝게 켜져 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조민하는 두리번거리다가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은우와 눈이 마주쳤다.
은우가 민하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은우가 나에게 윙크했어.’
갑자기 없던 기운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은우 팬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순 없어.’
조민하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무대를 준비했다.
스크린엔 민하가 연기하게 될 장면이 떠올랐다.
오민하가 다시 계단에 머리를 부딪쳐서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게 되는 장면.
그동안 예뻐졌다고 믿었던 자신의 외모는 달라진 적이 없으며 자신의 생각만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잖아.’
조민하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저 장면을 보면서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감정이입이 지나치게 돼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던 장면이기도 했다.
‘저 장면이라면 자신 있어.’
저 장면이라면 예쁘지 않은 자신의 외모가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조민하는 무대 위에서 오민하로 변신했다.
무대 위, 민하는 학교에서 열린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 발표 대회]에 나가려다가 자신이 예뻐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난, 난 끝났어. 그동안 내가 예뻐졌다고 생각하고 저질렀던 그 잘못들 어떻게 하지? 너무 많잖아.”
민하, 마음이 복잡한 듯 무대 위를 어지럽게 걸어다닌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처럼 행동했는데, 그래서 [아이디어 발표 대회]도 신청하고. 근데 난 예쁘지 않잖아? 그럼 나? 발표할 자격이나 있는 걸까?”
민하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쉰다.
“창피해. 내 자신이 너무. 너무 창피해. 나 그동안 뭐한 거지?”
[아이디어 발표 대회]의 스텝이 민하에게 달려와 소리친다.
“민하야, 너 다음 차례야. 빨리 올라와야 해.”
“난 기권할 거야.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줘.”
“알았어. 대신 한 번 말한 건 무를 수 없다. 너 이제 발표 기회 없는 거야.”
스텝이 달려가고 나서 민하에게 친구 주영이 달려온다.
“야, 오민하. 너 왜 발표 안 해?”
“자신 없어. 나처럼 못생긴 애가 어떻게 발표를 해.”
“못생기긴 누가 못생겼다고 그래? 너 예뻐. 예쁘다고.”
“난 못생겼다고. 그동안 내가 예쁜 줄 알고 깝치고 다녔지만 그건 내가 머리를 부딪쳐서 그랬던 거였어. 현실을 알고 나니까 더 이상 예쁜 척할 수가 없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진 모르겠는데 넌 달라진 게 없다며. 그럼 네가 예쁘든 못생기든 그것도 상관없는 거 아냐?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널 좋아해. 그건 네가 예뻐서가 아니야. 예뻐서 좋아하는 거라고 네가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 말에 민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맞아. 내가 머리가 이상해져서 예쁘게 변한 거라고 착각한 것만 생각하느라 몰랐었는데 나는 착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잖아. 근데 왜 사람들이 나에게 잘 대해 준 거지? 다들 나를 좋아하는 거 같았어. 대체 왜 그랬던 거야? 내가 예쁘든 예쁘지 않든 그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데 어떤 상관도 없었던 거야?’
갑자기 깨달은 사실에 민하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발표를 할 거야.’
민하 발표장으로 달려간다.
사회자, 막 민하의 발표 기권을 말하려는 듯 마이크를 잡는데 민하가 가서 막는다.
“발표할게요. 한다고요.”
숨을 고르는 민하.
무대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오늘 말하려고 했던 주제는 [완벽한 인생을 사는 법]이었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저는 제가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제가 예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예쁘지도 않고 완벽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사고로 계단에 머리를 부딪쳐서 예쁘다고 착각했을 뿐인 거죠. 제 삶은 달라진 게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착각 때문에 제 인생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계단에 머리를 부딪치기 전의 저는 불평불만투성이였는데 머리를 부딪친 후의 저는 모든 일에 감사하고 항상 웃는 행복한 아이가 돼 있었죠. 왜 그랬을까요?
전 어렸을 때부터 왕따였습니다. 저를 왕따시킬 때 친구들이 늘 했던 말이 있죠. 너는 못생겼어. 전 그 말을 백프로 믿었습니다. 물론 그 말은 절반 정도는 맞고 절반 정도는 틀린 말이었죠.
불행했을 때의 저는 그 말을 백프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압니다. 그 말은 틀린 말이라는 걸.
제가 오늘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절대 남이 결정하도록 두지 마세요. 저처럼 바보 같은 인생을 살지 마세요.
제가 깨달은 [완벽한 인생을 사는 법]은 자기 자신을 열심히 사랑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을 다치게 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과 싸워서 이기세요. 누구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소리치세요!”
민하의 연설이 끝나자 관객석에서 우레와 같이 터지는 박수.
은우도 열심히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민하는 떨리지만 해냈다 싶은 표정이다.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첫 번째 참가자 조민하 양의 열연이었습니다. 긴장한 것처럼 보이더니 너무 잘하는데요. 전문적인 연기자의 솜씨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듣겠습니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시영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잘 봤어요. 와, 근데 이름이? 정말 민하네요. 주인공 역과 똑같아요. 그리고 주인공 역과 싱크로율도 굉장히 높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연기를 볼 때 굉장히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제가 연기한 민하는 분장의 힘을 빌렸었지만, 지금 조민하 양의 경우는 분장도 없고 그러니까 좀 더 실제처럼 느껴지는 거 같았어요. 특히, 아까 울먹였던 연기는 제 연기보다 더 좋은데요.”
옆에 있던 도진이 마이크를 받았다.
“진정성. 전문적인 용어로 진정성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걸.”
시영이 다시 마이크를 잡으며 말했다.
“맞네요. 진정성. 그 진정성이 매우 좋았습니다.”
도진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심사를 이어나갔다.
“전 연기에서 중요한 게 눈빛, 눈빛이라고 봅니다. 눈빛이 살아있어야 연기가 돼요.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제가 드라마에서 민하를 바라보며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말해요. [왜 지후야? 나는 안 돼? 왜 나는 안 되냐고? 내가 널 더 좋아하는데 나는 왜 안 되냐고?]”
도진의 연기에 시영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느끼하지만 참고 있는 듯한 표정.
도진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 연기를 할 때 힘이 없는 눈빛으로 했으면 어땠겠어요? 전혀 느낌 전달이 안 됩니다. 연기는 절반 이상이 눈빛이에요. 그래서 제 심사평은 민하 양의 눈빛이 살아있었다. 민하 양의 눈빛이 세상 누구보다 민하 같았다. 이 말입니다. 최고였어요.”
엄지손가락 두 개를 치켜 올려주는 도진.
무대 위에서 심사평을 듣고 있던 조민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이크가 은우의 손으로 넘어가고 조민하는 긴장된 표정으로 은우를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심사평.’
은우의 오랜 팬인 민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지 못하더라도 은우에게만은 칭찬을 듣고 싶었다. 반대로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칭찬하더라도 은우가 자신을 비난한다면 그것만은 싫었다.
은우가 마이크를 들고 미소 지었다.
“일단 저는 두 분 심사위원의 말에 동의하고요. 그리고 추가로 더 말을 하자면 그 메시지를 민하 씨 자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었어요. 정말 좋은 메시지잖아요. 사실 그건 민하 씨뿐만 아니라 제 자신한테도 필요한 거구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죠. 다들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오늘은 그 말을 제 자신에게도 하고 싶네요. 그리고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건 민하 양의 연기가 그만큼 저에게 울림을 주었단 뜻이었어요. 연기에 대한 많은 분석과 평들이 있겠지만, 저는 연기에서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요. 오늘 조민하 양은 제 마음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은우의 심사평에 조민하가 웃었다.
‘됐어. 이제 됐어.’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전광판을 주시했다.
“자, 이제 참가번호 1번 조민하 양의 점수를 확인하겠습니다. 심사위원 세 분 점수를 눌러 주세요.”
카메라가 심사위원 세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
세 사람 다 웃고 있긴 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전광판에 떠오르는 점수.
“네. 점수는 30점 만점에 25,8. 높은 점수네요. 1번 조민하 참가자. 수고하셨습니다. 자, 그럼 다음 참가자.”
***
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자, 첫 번째 [오민하 따라잡기] 드라마의 명장면 연기하기의 결과는 참가번호 1번 조민하 25.8 참가번호 3번 이예소 22.6 참가번호 5번 황진서 20.1 참가번호 2번 김민경 19.8로 참가번호 1번 조민하 양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2라운드는 [테마곡 따라잡기]로 무작위로 선정된 주인공들의 테마곡을 불러보는 순서입니다.”
예상치 못한 1위에 조민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연기는 잘 넘어갔는데 노래는 어떻게 하지?’
어렸을 때 성가대 활동도 했고 음악 시간마다 노래를 잘한다며 음악 선생님께 칭찬받았던 민하였다.
풍부한 성량과 깊은 호흡이 민하의 강점이었다.
‘대체 어떤 노래가 나올까?’
만약, 도진의 테마곡이 걸린다면 그건 답이 없었다.
시영의 테마곡은 알고 있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곡이 아니었고 지후의 테마곡은 가장 좋아하고 잘 아는 곡이었지만 여자인 민하의 음역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명혁의 테마곡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도 없었다.
‘드라마에서도 난 명혁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이건 정말 운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조민하는 사회자의 입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번에도 내가 처음은 아니겠지?’
다행히 첫 번째 순서의 영광은 민하가 아닌 이예소가 가져갔다.
‘휴우, 다행이네.’
조민하는 빠르게 머릿속에서 시영의 테마곡과 지후의 테마곡을 머릿속에서 다시 불러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둘 다 나쁘지 않아.’
여전히 지후 테마곡의 음역대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사도 모르는 명혁의 테마곡보다는 나았다.
그때 이예소의 노래가 끝나고 심사평이 흘러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혹평에 참가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점수도 30점 만점에 16점이라는 저조한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사회가자 그 다음 참가자를 호명했다.
“두 번째 참가자는 1번 참가자. 조민하. [민지후 테마곡]을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