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부 7화. [여신이 되었다] (7)
갑작스런 질문에 조민하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고 말았다.
“저는 순대볶음, 치킨, 초밥을 좋아합니다.”
말을 하자마자 조민하는 울상을 짓고 말았다.
‘기껏 말한 게 전부 먹을 거라니? 실망이다. 조민하.’
콘테스트에 나오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전보다 더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하아, 좀 멋진 것 좀 말하지.’
세상에 멋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차라리 여자아이답게 강아지나 고양이 그런 것을 말했으면 좋았을걸.
심사위원이 다음 질문을 했다.
“음식을 좋아하는군요. 저도 쉬는 날 좋아하는 단골 식당에 가는 게 힐링이거든요.”
옆에 앉아 있던 심사위원이 물었다.
“우리 콘테스트는 [여신이 되었다]의 여주인공 오민하와 닮은꼴을 찾는 게 목적이에요. 어떤 점이 오민하와 닮았나요?”
드디어, 조민하가 가장 자신 있게 준비한 질문이 나왔다.
“제 이름이 조민하라서요. 이름이 똑같고요. 그리고 사실 저는 보다시피 굉장히 뚱뚱해요. 오늘 여기 나온다고 친구들이 도와줘서 예쁜 옷도 입고 메이크업도 했지만. 오민하도 저처럼 안 예쁘잖아요. 저도 가끔은 오민하처럼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예쁘게 보이는 마법이라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질문을 한 심사위원이 옆에 있는 다른 심사위원과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똑같은 참가자는 처음이었죠?”
“네에, 서류 통과자 중 유일하게 주인공과 이름이 같아요. 기억하기 쉽겠죠? 뭔가 시청자들에게 인식도 잘 될 거 같고.”
“장점이네요.”
민하는 심사위원들의 대화를 듣고 자신감에 취해 마음속의 말을 마구 지껄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오민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은우를 좋아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은우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은우 음반도 다 사고 은우가 나오는 영화, 드라마 다 봤어요. 다른 작품들도 다 좋았지만 [여신이 되었다]는 하이틴물이다 보니 실제와 가장 흡사한 은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심사위원 중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오민하도 은우를 짝사랑하는데 팬으로서 은우를 좋아한다라. 좋아요. 자 그럼, 은우도 조민하 양을 기억할까요?”
조민하가 밝게 웃으며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은우가 저에게 손편지를 써 준 적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요. 은우는 저를 기억할 거예요. 제가 지금 열여덟 살인데 십이 년 동안 팬이거든요.”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비웃음을 보냈다.
“은우가 민하 양을 기억하겠어요? 고작 팬레터 한 번 보낸 걸로? 은우가 얼마나 많은 팬들을 만나겠어요?”
옆에 있던 다른 심사위원이 옆에 있던 심사위원을 말렸다.
“그만 해요. 안 해도 될 말 같은데.”
“사실을 알아야죠. 너무 현실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죠.”
조민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너무 현실을 몰랐나? 하긴 난 눈치도 없고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하니까. 은우는 팬이 정말 많지. 은우가 나 같은 걸 기억이나 할까?’
심사위원이 화제를 돌렸다.
“주인공 오민하와 공통점이 꽤 많네요. 그럼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차이점은 오민하는 행복한데 전 아닌 것 같아요. 오민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데 전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거 같아요.”
듣고 있던 심사위원 한 명이 조용히 평가지에 평가를 적었다.
[참가번호 5번 조민하 : 주인공 오민하와 여러 가지 공통점이 많음. 그러나 생각이 부정적이고 그늘이 많음. 성격은 오민하와 많이 다름. 너무 우울해 보이는 인상이라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할 캐릭터인가 의문을 가지게 됨.]
“자, 수고했어요. 다음 참가자.”
***
콘테스트가 끝나고 집에 온 조민하는 침대에 누워 이불킥을 하는 중이었다.
‘이 바보야. 어쩌자고 그런 말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인터뷰였다.
처음부터 무언가에 홀린 듯 마음속 말을 너무 많이 털어놓고 말았다.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이었는데.’
은우와의 1박 2일을 기대하고 있을 친구 은정과 수연이 떠올랐다.
‘애들한텐 뭐라고 말하지?’
이게 다 심사위원이 뜬금없이 은우에 대한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민하는 생각했다.
서랍 속에서 은우가 써 준 편지를 꺼내 보았다.
거기엔 아직도 꾹꾹 눌러쓴 은우의 귀여운 글씨가 남아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역시 은우는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조민하는 생각했다.
조민하가 편지지를 꺼내 팬레터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 은우야. 잘 지내? 오랜만에 편지를 쓰네.
난 항상 자랑스런 네 팬이 되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생각보다 그게 쉽지가 않네. 다이어트는 실패했고, 오늘 나간 콘테스트에선 바보 같은 말을 하고 말았어. 콘테스트에서 선발되면 너와 함께 보내는 1박 2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나갔던 건데 아무래도 예선에서 떨어질 것 같아. 나 같아도 나를 뽑지 않을 것 같더라고. 그리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내가 맘에 들지 않는지 이상한 말만 해대서 실수하고 무대 내려오는데 한숨이 나오더라고.
별수 없지. 뭐. 사실 난 항상 운이 없었거든. 경품 같은 것도 당첨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래서 뭐 새삼스럽진 않아.
근데 거기 심사위원 중 한 분이 네가 날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거야. 물론 넌 팬이 많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십이 년 동안이나 편지를 보냈는데 네가 날 기억하지 못할까? 혹시 그 편지는 모두 너의 회사 사람들이 읽었거나 아니면 매니저가 처리했을까? 너는 내 편지를 다 읽고 있긴 한 걸까?
그 말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어.
난 너에게 기억되고 싶은데 이게 내 욕심이려나?]
조민하는 다 쓴 편지를 부치지 않고 다시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진짜.’
***
점심시간, 수연과 은정이 종알거리고 있었다.
“민하야, 볼터치 토끼 너투브에 올라온 네 영상 봤어?”
“아니.”
조민하는 책상에 엎드린 채로 기운 없이 말했다.
수연이 민하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야, 기운 좀 내 봐라. 콘테스트 다녀온 날부터 다 죽을상을 하고 대체 왜 그래? 세상 끝났어?”
은정도 동의했다.
“그래, 물론 붙으면 더 좋긴 하겠지만. 떨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너랑 친구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은우 못 보는 게 서운하긴 하지만 또 다른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아직 방심하긴 이르다고. 결과 나온 거 아니잖아. 슬퍼하는 건 결과 나오고 나서 해도 된다고. 내 느낌에 왠지 너 붙을 거 같아.”
“맞아. 이름이 똑같은 네가 안 붙으면 누가 붙냐고. 너 그거 알지 여자의 촉이 무서운 거. 내 촉엔 네가 붙을 거라니까.”
책상에 엎드려 있던 조민하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쪽팔려 죽겠다고.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한 게. 은우는 기억도 못 할 텐데 나 혼자 십이 년 동안이나 편지를 보내다니. 나, 이제 은우 팬 그만할까 봐.”
예상치 못한 조민하의 선언에 은정과 수연이 당황했다.
“야,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은우 팬을 그만둬.”
“맞아. 네가 오버하는 거야. 아우, 그 심사위원. 진짜. 쓸데없는 말을 해 가지고.”
“냅둬. 심사위원들은 늘 그러잖아. 우리 언니도 대학 면접 보러 갔다 나와서 치를 떨었잖아. 글쎄 그 면접관이 언니한테 ‘어째 인생이 점점 더 내리막인 것 아닙니까?’ 그랬다는 거야. 아니, 지 인생인가. 지가 붙여주는 게 대학이지? 인생이야? 어디서 남의 인생을 평가질이야? 평가질이?”
“그래, 민하야. 잊어버려. 우리가 처음에 친해진 것도 은우 팬이라서 그랬던 거잖아. 은우가 기억해 줄 거야.”
“그래, 한 번 은우 팬은 영원한 은우 팬이다.”
조민하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배고프다. 매점 가자.”
“우울할 땐 소시지 앞이지.”
“콜.”
세 사람은 함께 매점에서 과자와 햄버거, 오뎅, 만두, 떡볶이를 샀다.
조민하가 테이블에 앉더니 음식을 세팅하고 무서운 속도로 먹기 시작했다.
은정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너, 이거 폭식 아냐? 스트레스받은 거 먹는 걸로 푸는 거지?”
수연이 이해한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오래 참았지. 그럼. 다이어트를 근 두 달을 했으니. 평소 먹던 게 있는데 민하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인생 뭐 있어? 먹자.”
수연이도 함께 포크를 들고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래, 배도 고픈데 잘됐다.”
은정도 가세했다.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조민하는 부른 배를 만지며 허탈한 기분을 느꼈다.
‘맛있었어. 근데 살찌겠지? 살쪄도 돼. 이제 콘테스트도 떨어지고 잘 보일 사람도 없는걸.’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여학생 하나가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혹시, 볼터치 토끼 영상에 나왔던 애 아니야?”
은정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민하를 가리켰다.
“맞아, 얘야. 얘.”
“와, 화장하니까 정말 달라 보이긴 하는구나.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어. 학교에 올 때도 화장하고 오면 예쁠 거 같은데.”
수연이 여학생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치, 우리 민하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정말 이쁜데. 이쁜 걸 스스로가 몰라. 그 영상 정말 눈부셨지?”
“응, 나도 그 영상 보고 메이크업 학원 다니려고. 방학 때 성형할까 하고 성형외과 알아보고 있었는데 화장이 훨씬 매력적인 거 같아서. 민하야. 너 화장하고 다녀. 정말 예뻐.”
처음 보는 여학생의 말에 민하는 놀랐다.
‘내가 예쁘다고? 정말 내가?’
볼터치 토끼가 자신에게 했던 칭찬이 떠올랐다.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눈도 예뻐.’
자신도 모르게 조민하가 미소를 지었다.
은정이 민하의 웃음을 알아채고 어깨를 쳤다.
“거봐. 너 예쁘다니까.”
수연이 소리를 질렀다.
“참참, 얘들아. 지금 한 시야. 한 시.”
조민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수업 시간에 늦은 거야?”
“아니아니, 그거 말고 너 콘테스트 예선전 결과 발표시간.”
“그거 확인 안 해도 돼. 어차피 떨어졌는걸.”
“그래도 붙었을지도 모르잖아. 우리가 확인해 볼게.”
“하지 마. 떨어졌다니까.”
“안 떨어졌을 거야. 수연아, 민하 눈 가려.”
수연이 민하의 눈을 가린 사이 은정이 휴대폰으로 빠르게 콘테스트 사이트에 접속했다.
“와와, 조민하 너 합격했어. 여기 네 이름이 있어. 조민하.”
“뭐라고?”
놀란 민하가 은정의 휴대폰을 빼앗아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잖아.’
화면엔 자신의 이름이 떠 있었다.
수연이 신난다는 듯 소리쳤다.
“거봐. 우리 언니가 그랬는데 알바 면접도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붙고 붙었다고 생각하면 떨어진 거라는 거야. 심사위원들이 너한테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니까.”
“잘됐다. 민하야. 그러고 보니까 우리 은우 볼 수 있네.”
“조민하,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근데 너 진짜 은우 팬 그만할 거야?”
조민하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계속해야지.”
***
콘테스트의 본선이 치러지는 무대에는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선 무대에서는 [여신이 되었다] 출연진 전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석에는 은우의 팬클럽과 도진의 팬클럽이 자리하였고 은우와 도진의 팬클럽에 비해 그 수가 적긴 했지만 시영의 팬클럽도 있었다.
조민하는 오늘도 볼터치 토끼에게 들러 메이크업을 받고 왔다.
은정이 민하의 메이크업에 감탄하며 말했다.
“조민하, 너 진짜 화장하면 이쁘다니까.”
수연도 민하를 칭찬했다.
“맞아. 학교에도 화장하고 다녀. 우리 학교 메이크업 금지도 아니잖아.”
조민하가 말을 받았다.
“아니, 교칙엔 금지돼 있어. 선생님들이 너무 많으니까 안 잡는 거뿐이지.”
은정이 말을 받았다.
“정말? 몰랐던 사실이네. 난 다들 하고 다니길래.”
수연이 결론을 내렸다.
“다들 하니까 해도 되는 거잖아. 하자! 조민하 화장하면 예쁘다니까. 계단에 머리 부딪히는 것보다 훨씬 낫고만.”
콘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무대 위에는 본선에 오른 후보 열 명이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었다.
갑자기 무대 위에 불이 켜지더니 교복을 입은 은우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은우의 손엔 마이크가 쥐어져 있었고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난 오늘 너무 외로워.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내 맘을 털어놓을 수 없네.
말들에 찔린 내 마음.
아무런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은 날.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나요?]
노래를 듣자마자 조민하의 눈이 커졌다.
‘저건 은우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노래잖아. 아직까지 한 번도 방송에서 불렀던 적이 없는 곡인데 어떻게 오늘 저 곡을 부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