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부 6화. [여신이 되었다] (6)
“저는 중2병에 걸렸고요. 이름은 [흑염룡]입니다. 왼손을 조심하셔야 해요. 아아아악.”
은우가 왼손이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동작을 취했다.
[조차차]인 조태호가 열광했다.
“저와 함께 차력을 하면 좋겠네요. 흑염룡 씨. [왼손과 함께 하는 차력 세상 어떻습니까?] 코너명.”
“제 왼손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다시 왼손이 움직이는 듯 연기하는 은우.
옆에 있던 유태우, [아다지오]가 말했다.
“중2의 심정을 담은 음반을 저랑 함께 내보는 건 어떨까요? 흑염룡 씨. 코너명은 [왼손으로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은우가 왼손을 움직여 대답했다.
“좋아용.”
은우의 대답에 아다지오가 환호했다.
“흑염룡 씨, 그럼 우리 이참에 아예 시즌송 음반도 하나 내죠? 아니면, 죽을 때까지 종신 계약 어떠세요?”
조차차가 발끈하며 말했다.
“아니, 흑염룡 씨 몸값이 얼만데 종신 계약인가요? 이 사람이 아주 보자 보자 하니까. 흑염룡 씨 절대 그런 계약 하지 마세요. 저랑 같이 전국으로 차력하러 떠납시다.”
“아니용.”
아다지오가 조차차의 말을 잘랐다.
“흑염룡 씨는 아직 데뷔 전이십니다. 이제 중2거든요. 데뷔 전부터 세계적인 프로듀서랑 계약을 해야 되는 거죠. 근데 흑염룡 씨 아까부터 왜 용자로 말을 끝내시나요?”
“흑염룡체입니다.”
“아하. 그럼 저도 앞으로 용으로 끝낼까용?”
“아디지오 씨는 오로 끝내는 게 어떨까요? 아다지오니까.”
“아하. 알겠오오.”
조차차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저는 차로 끝내야 하나차?”
“그럼용.”
“두 분은 괜찮은데 저만 이상하차.”
아다지오가 웃으며 조차차의 말을 따라 했다.
“자꾸 듣다 보면 괜찮차.”
조차차도 아다지오의 말을 따라 했다.
“자꾸 따라 하지 마오.”
“알았오.”
“흑염룡 씨, 차력 한번 해 봐차.”
조차차가 주머니에서 쌍절곤을 꺼내더니 쌍절곤을 돌렸다.
쌍절곤은 현란하게 돌아가는 듯하더니 조차차의 팔과 다리를 때렸다.
“앗, 아아.”
조차차가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졌다.
“흑염룡, 한번 해 봐차.”
흑염룡이 꿈틀대는 왼손으로 쌍절곤을 받았다.
“나 흑염룡은 못하는 게 없지용.”
흑염룡의 쌍절곤은 몇 번 허공을 회전하다가 팔과 배, 어깨 등을 쳤다.
놀란 흑염룡의 눈이 춤추는 쌍절곤을 놀라서 쳐다보았다.
“악. 어떻게 어떻게 해?”
흑염룡의 두 손이 쌍절곤을 막아섰다.
결국 쌍절곤은 무대 저편으로 날아가고 흑염룡의 몸엔 잔인한 부상만이 남았다.
걱정된 조차차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흑염룡 씨.”
“괜찮. 하아. 괜찮.”
유다지오가 추임새를 넣었다.
“흑염룡 씨가 지금 속으로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오. 가뜩이나 힘든 중2이신데오.”
조차차도 흑염룡의 눈치를 보았다.
“많이 아팠차? 잘못했차.”
“아하하하하하하. 흑염룡이 부활했다.”
은우가 왼손을 움직이며 외쳤다.
***
예상치 못한 은우의 부캐 [흑염룡]에 팬들은 당황했다.
[박향순] : 은우도 쌓인 스트레스가 많았겠죠? 흑염룡 부캐 저는 이해가 가요.
[with] : 쌍절곤 진짜 아프겠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에티우] : 근데 진짜 중2면 저 상황에서 폭주하지 않았을까요?
[항상 그 자리에] : 폭주하는 은우 보고 싶다.
[미르은가람] : 흑염룡이 만든 노래는 헤비메탈일까요? 힙합일까요? 기대된다.
[랄라] : 우리도 이제부터 용으로 말해용용용용.
각종 커뮤니티에는 은우의 흑역사짤이 돌아다녔다.
쌍절곤이 날아오고 은우가 놀라서 커다랗게 눈을 뜨며 무서워하는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 중이었다.
[플러스] : 얼굴 천재한테서도 저렇게 웃긴 표정이 나오다니.
[나드리] : 은우에겐 평생 흑역사는 없을 줄 알았는데.
[박쿠스] : 사실 [하고픈 대로 질러요] 출연 결정 자체가 흑역사 아님? 그게 어떤 예능인데.
[천원] : 근데 은우가 선택한 부캐가 중2병 환자일 줄이야. 은우 중2로 살고 싶은 거 아닐까?
[화이트] : 중2로 살면 좋긴 하겠다. 화도 내고픈 대로 다 내고. 난 너무 많이 참아서 속병이 생긴 듯.
[민트] : 저도요. 진짜 어디 악역 같은 거 맡아서 소리도 지르고 스트레스 풀고 싶어요.
***
은우 가족의 저녁 식사 시간.
백수희가 밥을 푸고 있었다.
“엄마, 난 다이어트라서 밥 안 먹어.”
은정이가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닭가슴살만 먹는다고 좋은 거 아냐. 섞어서 먹어야지.”
“내년엔 데뷔할 거란 말이야. 날씬해야 한다고. 걸그룹들 다 다이어트 해.”
“너 지금도 날씬해.”
“더 날씬해져야 한다고.”
“그냥 노래 더 잘 부르고 춤 더 잘 추면 안 될까?”
“그것도 다 잘하고 날씬하기도 해야 한다니까.”
은정은 말이 안 통한다는 듯 닭가슴살과 샐러드만을 가지고 식탁에 앉았다.
은혁이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은정이 밥까지 저 주세요. 제가 먹을게요. 전 다이어트 안 하잖아요.”
“그래, 고마워. 우리 아들.”
백수희가 은혁의 밥그릇에 밥을 가득 담았다.
“전 많이 먹는 게 좋아요.”
은정이 은혁에게 말했다.
“오빤,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잖아. 좋겠다.”
“체질인 거 같아.”
“부러워. 먹을 거 다 먹을 수 있는 그런 체질.”
은우가 부엌으로 들어와 자기 몫의 음식을 가지고 식탁에 앉았다.
은정이 은우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오빠, 흑염룡 캐릭터 웃기더라. 확실하게 이슈 만들었던데. 우리 반 애들이 난리야 난리. 식사하셨어용?”
“신경꺼용.”
은정이 아이돌 준비를 시작하고 서로 티격태격하게 된 은우와 은정은 둘 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어릴 때의 사이좋던 오누이는 사라지고 현실 남매가 돼 가는 중이었다.
“오빠 흑역사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거든.”
“덕분에 PD님이 좋아하시더라. 시청률 보증 수표라면서.”
“흥, 좋겠다. 여기저기 오라는 데 많아서. 난 아직 연습생인데.”
은정이 입 속에 샐러드를 욱여넣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한테 까불지 마. 응?”
“아, 진짜 불공평해. 오빠들은 다들 날씬한데. 나만? 나만? 왜 내 살은 안 빠지는 거야.”
창현이 말했다.
“은정아, 너도 날씬해. 네가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닐까? 보기엔 얼마나 이쁜데.”
“그냥 봐서 이쁜 거 말고 카메라에서 예뻐 보여야 한다고요. 카메라에서.”
백수희가 창현에게 말했다.
“놔두세요. 저러다 말겠죠. 다 한때니까.”
은우가 은혁에게 물었다.
“형, 요즘 대학은 어때?”
“늘 재밌지. 창업 동아리에서 낸 계획서가 잘돼서 정부 정책 자금 선발에 뽑혔어. 내일 면접이 있어서 준비 중이야.”
“와. 어떤 아이디어야?”
“더러운 물을 걸러주는 필터 같은 건데. 아프리카에선 매일 아이들이 더러운 물을 먹고 죽어가니까 빨대만 꽂으면 물을 정수할 수 있는 필터를 만들었어. 이름하여 [생명의 빨대].”
“좋다. 꼭 필요한 거잖아.”
“그치? 잘됐으면 좋겠어.”
백수희가 대화에 참여했다.
“은혁이 이러다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사장되는 거 아냐?”
듣고 있던 창현이 말을 받았다.
“그러면 좋지. 아빠의 대를 이어 아들도 창업으로 성공하는 스토리. 근데 우리 아들들은 아빠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어서 조금 아쉽긴 해. 은우랑 은정이는 연예인으로 살아갈 거고 은혁이는 CEO가 되긴 할 거지만 아빠 사업 물려받는 거보단 창업을 해서 자기 사업 일구고 싶어 하고.”
은혁이 미안하다는 듯 창현에게 답했다.
“죄송해요, 아빠. 하지만 전 아빠가 일구신 건 아빠가 한 거니까 아빠가 다 쓰는 게 맞다고 봐요. 전 새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이뤄보도록 할게요.”
“그래서? 자금 지원도 전혀 안 받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금 지원은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걸요. 그리고 그 정도 능력은 있어야 창업을 하죠. 차라리 은행 대출을 받을지언정 아빠 돈엔 손 안 댈게요.”
듣고 있던 백수희가 맞장구쳤다.
“멋지다. 우리 아들. 전 은혁이 지지해요. 요새 애들 전부 금수저다 뭐다 하면서 노력하기보단 부모덕 바라는데 우리 애들은 안 그렇잖아요. 대견하죠.”
“그건 그렇지만. 또 도와준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잖아?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난 내가 너무 비빌 언덕 없이 힘들게 시작해서 그런지 도와줄 수 있을 땐 도와주고 싶던데. 당신 생각은 다르군.”
“스스로 성공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살아남죠. 경쟁 사회인데.”
은정이 백수희의 말을 받아쳤다.
“그래, 엄마. 경쟁 사회라서 내가 살아남으려고 다이어트하는 거라고.”
은정은 마지막 닭가슴살을 입 속에 욱여넣었다.
은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은정에게 말했다.
“야, 이은정 밥 먹을 땐 좀 조용히 해라. 귀 아프게 하루 종일 조잘조잘.”
“남이사! 내 입으로 내가 말도 못 해. 뭐? 오빠가 이 집 전세 냈어?”
“간다.”
은우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고 자리를 떠 버리자 은정의 분노에 찬 대답이 들렸다.
“이은우, 가지 마. 이 해삼, 멍게, 말미잘.”
***
[여신이 되었다] 오민하 닮은꼴을 뽑는 예선전 콘테스트장에 도착한 조민하, 은정. 수연.
수연이 콘테스트장을 보면서 말했다.
“와, 사람 많다. 예선에서 대체 몇 명이나 뽑는 거야?”
은정이 대답했다.
“예선에서 삼십 명 뽑는대. 일단 예선을 통과하면 그때부턴 공중파를 통해서 선발 과정이 방송되나 봐.”
“그럼, 조민하. 예선 통과하면 방송 타는 거야?”
“그렇지. 방송 타는 거지?”
“와, 그럼 우리 민하 유명해지는 거야?”
아까부터 신경이 곤두선 조민하는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래, 유명해질 수도 있겠지. 일단은 예선을 통과하면. 근데 내 생각엔 예선에서 떨어질 거 같아. 나 지금 자신감 바닥이거든.”
은정이 조민하를 위로했다.
“민하야. 너 진짜 이뻐. 우리가 만난 이후로 많은 날 내가 널 봐 왔지만, 오늘 너는 내가 봤던 모습 중에 가장 예뻐. 이게 조민하가 맞나 싶을 정도야.”
수연도 조민하를 위로했다.
“그럼, 그럼. 게다가 여기 심사 기준을 보면 말이야. 제일 중요한 항목이 진정성이야. 내가 볼 땐 민하, 네가 여기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
“그래. 진정성이란 건 결국 얘기를 들어보겠다는 거잖아. 감동적인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건데 너만큼 감동적인 스토리가 어딨어? 게다가 넌 주인공 오민하랑 정말 비슷하잖아. 너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외모 때문에 말이야. 셔틀을 했던 것도 비슷하고.”
“맞아. 이건 널 위한 콘테스트라고. 우리가 네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말이지.”
“그래. 가자. 조민하 파이팅!”
조민하가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로 들어갔다.
예선 방식은 다섯 명씩 한 무대로 올라가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조민하는 같이 대기하고 있는 참가자들을 보았다.
그들 중 몇몇은 연예인 지망생인지 외모가 꽤나 출중했다.
‘저런 애들은 여기 왜 나온 걸까? 나중에 연예인이 됐을 때 경력에 도움이 되려고 나온 걸까?’
영혼까지 끌어모은 자신감마저 다시 바닥으로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조민하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을 쳐다보며 손톱을 물었다.
스텝이 조민하의 차례를 알렸다.
“5조, 심사 순서예요. 다 같이 무대로 올라가 주세요.”
조민하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무대로 올라갔다.
그런데 너무 떨렸는지 무대로 올라가다가 발이 꼬여서 휘청하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조심하지.”
옆에 있던 다른 심사위원이 말했다.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긴장 풀어요. 이건 정말 재밌는 콘테스트일 뿐이니까. 노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오디션도 아니잖아요. 편안하게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돼요.”
긴장한 민하와는 다르게 다른 참가자들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하아, 쪽팔려. 처음부터 아주 다 꼬였다 꼬였어. 그럼, 그렇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민하는 더욱더 자신이 없어졌다.
심사위원이 첫 번째 참가자에게 물었다.
“참가 동기가 뭐예요?”
한눈에 보기에도 꽤 예뻐 보이는 참가자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오민하 역을 맡은 김시영이 저의 롤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무대를 가득 채운 당당한 목소리에 심사위원이 웃었다.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참 좋네요. 혹시 배우 지망생이에요?”
“네에. 단역으로 [별 보러 가는 길], [벗어날 수 없는 너] 등에 출연한 경험이 있습니다.”
“인상적이네요. 제일 잘하는 연기가 뭐예요?”
“악역이 자신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연기를 보여드려도 될까요?”
“해 보세요.”
참가자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하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내가 너한테 쓴 돈이 얼만데? 입혀 주고 먹여준 은혜를 이렇게 갚는 거야? 바람? 그딴 건 아무나 피는 줄 알아? 너 같은 버러지가 그래도 돼? 응?”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고함 소리에 귀가 아팠다.
‘다행히 연기는 그렇게 잘하지 않네. 연기는 안 하는 게 나을 뻔했다.’
조민하는 참가 지망생의 어색한 연기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사위원 역시 연기가 영 좋지 못했는지 개운치 못한 표정으로 다음 참가자인 민하에게 질문을 했다.
“수고했어요. 자, 그럼 다음 참가자. 아까 넘어졌던 학생이네요.”
옆에 있던 심사위원이 말을 받았다.
“아까 보니 많이 긴장했던 것 같은데 심호흡 한 번 할까요? 후우.”
심사위원을 따라 민하가 심호흡을 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여기 무서운 데 아니니까 편하게 해요. 편하게. 평소에 뭘 좋아하나요?”
프로그램 지원 동기를 생각해 보고 있던 조민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