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 외전-21화 (251/257)

외전 2부 4화. [여신이 되었다] (4)

은정과 수연의 기대되는 표정과 달리 조민하의 표정에는 그늘이 있었다.

‘사람들이 날 보고 뭐라고 하겠어? 나 같은 건 죽어버리라고 말한 아이들도 있었는데.’

조민하는 중2 때 자신을 놀렸던 한미주 패거리를 떠올렸다.

“너 같은 건 왜 사냐?”

“크크크크. 돼지 같아. 살만 뒤룩뒤룩 쪄서는.”

“너보다 바퀴벌레가 더 나을 것 같아.”

“손. 너도 우리 집 강아지처럼 간식 준다고 하면 손 주는 거 아니야?”

그들은 웃었지만, 조민하는 웃을 수 없었다.

‘은우를 만나고 싶긴 한데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 두려워.’

조민하는 고개만 떨굴 뿐이었다.

***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은우는 씻고 침대에 누웠다.

은우가 눕자 보리가 은우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제 열일곱 살이 된 보리는 눈에 띄게 행동도 느려지고 반응속도도 느려졌다.

“우리 할아버지.”

은우가 보리에게 입을 맞추었다.

“너랑 나랑 동갑인데 왜 이렇게 빨리 늙었냐? 너.”

아직도 아기의 얼굴을 하고 있는 보리가 은우의 볼을 핥았다.

“그래, 속상해서 그러지. 오래오래 살아. 보리야.”

보리는 은우에게 고난을 함께한 소중한 친구였다.

보리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은우는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열일곱 살에 불면증이라니 나도 참.’

사람들은 자신을 부러워했다.

수없이 세운 어마어마한 기록들.

한동안 은우의 기록을 깰만한 스타는 한국에 없을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은우는 불안했다.

눈앞의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몇 년 전 있었던 표절 논란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어.’

은우의 7집 때 있었던 표절 논란은 은우로서도 깜짝 놀란 일이었다.

7집 앨범의 타이틀곡 [하쿠나마타타]가 인도네시아의 민속 음악을 표절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음악이 있는 줄 상상도 못 했었어.’

한 평론가의 주장으로 시작된 표절 논란은 팬들 사이의 전쟁으로까지 퍼지며 점점 일파만파 커져갔다.

데뷔 이후 늘 언론의 우호적인 반응만을 받아왔던 은우에게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 뒤로 은우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자꾸만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7집 이후로 음반을 더 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 뒤로 시작된 불면증.

아침이 될 때까지 잠이 들지 못해서 뜬 눈으로 떠오르는 해를 봐야 하는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 [여신이 되었다]는 밝은 드라마여서 좋아.’

은우는 며칠 뒤 있을 민지후의 타이틀곡 연습 날이 자꾸만 걱정되었다.

‘괜찮을 거야. 그건 녹음이지 생방은 아니니까.’

은우는 스스로를 달랬다. 은우가 뒤척일 때마다 보리는 은우가 가여운지 은우의 볼을 핥아 주었다.

“미안해. 할아버지. 나 땜에. 우리 할아버진 잘 자야 장수할 텐데.”

보리가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은우의 볼을 더 핥았다.

결국 잠들길 포기한 은우는 작곡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요즘은 이상하게 행복한 순간엔 곡이 써지지 않으니까.’

묘한 일이었다.

‘다섯 살 땐 술술 곡이 잘만 써졌는데 말이지.’

잠 못 드는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었다.

‘피곤할수록 잠이 더 안 오고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잠이 더 안 오니까.’

은우는 눈을 감고 조용히 팬들을 생각했다.

‘난 잠 못 들고 있지만 팬 여러분은 편안한 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꿈도 꾸지 말고 푹 자요.’

은우는 곡의 제목을 [한밤을 날아서 온 편지]로 정했다.

‘이 곡은 왠지 가사부터 적어야만 할 것 같아.’

은우의 작업 스타일은 곡마다 달랐다.

어떤 곡을 쓸 때는 곡과 가사가 함께 쏟아져 나왔고, 어떤 곡을 쓸 때는 곡만 쓰고 가사는 써지지 않아서 전문적인 작사가에게 의뢰를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가사만 쓰는 경우도 있었다.

‘재롱이들에게 주는 곡이니까 가사를 정하고 멜로디를 잡을래.’

은우가 힘든 순간에 든 버팀목이 된 재롱이들.

그들이 없었다면 자신은 미혼부의 아이로서 호적이 없어 학교도 가지 못하지 않았을까?

은우는 워드를 사용하려다 말고 노트를 꺼냈다.

‘왠지 이런 밤엔 사각사각 손편지를 써야만 어울릴 것 같거든.’

은우는 재롱이들을 향한 정성스런 마음을 써내려갔다.

[잠이 오지 않은 날

심심한 날, 혹은 따분한 날.

내게 전활 걸어.

너 우울할 때면 가장 먼저 내게 전화해도 돼.

기억나니? 우리 함께 놀이터에서 떨어지는 별을 보았던 그 밤.

별보다 더 빛났던 너의 웃음, 너의 눈동자.

난 너에게 편지를 적어 보고픈 내 맘을 달래보네.

오늘 이 밤 너는 잠들어 있을까?

너의 머리맡엔 귀여운 인형 하나가 놓여 있을까?

난 어쩐지 그 인형이 질투 나는데

넌 이런 내 맘을 알까?

너의 옆에 잠들고픈 내 맘을 너는 알까?

너의 볼에 입 맞추고픈 내 맘을 너는 알까?]

팬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잠을 자진 못했지만,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나만큼 사랑받는 사람이 흔하진 않지?’

은우는 서랍장을 열고 팬들의 선물을 꺼냈다.

정성스레 쓴 팬레터와 팬아트, 은우를 위한 선물들이 쏟아졌다.

그 선물들을 보고 있자면 은우는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곤 했다.

‘표절 시비 때도 나를 위해 가장 앞장서 싸워주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자신을 조건 없이 믿어주는 팬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자신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은우는 생각했다.

‘하암.’

팬들이 준 팬레터를 보고 있자니 그제야 잠이 쏟아졌다. 은우는 바닥에 펼쳐진 여러 장의 팬레터 위에서 이불도 없이 잠들었다.

딱딱한 바닥 위였지만 팬들의 마음이 있어 그곳은 은우에겐 세상 어느 곳보다 푹신하게 느껴졌다.

***

집에 온 조민하는 고민에 빠졌다.

‘은우와 함께 하는 1박 2일이라니 정말 좋겠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 티비에 나간다면 놀림감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중학교 때 나를 놀렸던 한미주 패거리처럼.’

민하는 한미주 패거리 때문에 2년간 셔틀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빵 심부름, 음료수 심부름 따위는 애교였고 돈을 빼앗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최악은 담배나 술을 사오라고 하는 거였지.’

한미주 패거리는 꼭 나이 든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나 알바생이 주로 상주하는 가게를 찾아내서는 민하에게 담배나 술을 사오라고 했다.

‘열 번 중의 다섯 번은 실패하긴 했지만 다섯 번만 성공해도 그건 큰 거였으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한미주 패거리는 민하가 사 온 담배나 술을 트위치를 통해 다른 미성년자들에게 팔아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술이나 담배를 사러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얼마나 심장이 뛰던지.’

민하가 죽도록 하기 싫은 그 일을 한미주 패거리는 잘도 시켰다.

‘티비에 나갔다가 한미주 패거리가 나를 알아보면 어떻게 하지?’

민하는 자신이 없어졌다.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어. 근데 기분이 너무 우울하다.’

민하는 휴대폰을 켜고 [여신이 되었다] 3화를 켰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싶은 장면을 찾아내 재생시켰다.

화면 속에선 민지후가 콜록거리는 오민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후] : 감기 걸렸어? 그날 수영장에 빠져서 그런 거지?

[민하] : 아니야,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민하, 자꾸만 지후가 자신에게 인공 호흡하는 장면이 떠올라 지후를 피하게 된다. 지후 그날 이후 민하가 자신을 피하는 이유를 몰라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다.

[지후] : 나한테 화났어?

[민하] : 아니야, 그런 거. 나 이만 갈게.

지후,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민하의 어깨를 잡아 세운다.

[지후] : 잘못했으면 말을 해. 자꾸 피하지 말고. 답답하단 말야.

민하, 고개를 떨군 채, 지후의 눈을 바라보진 못한다.

[민하(마음의 소리)] : 널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대서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지후, 그런 민하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지후] : 그냥 편하게 대해달라는 게 그게 그렇게 어려워? 난 말야. 어려서부터 날 편하게 대해준 사람이 없었어.

민하,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지후가 처음 털어놓는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지후] : 난 늘 배우 민성하의 아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애들은 날 항상 과대평가했지. 가끔 애들이 보고 있는 게 진짜 나인지 아니면 내 허상인지 헷갈려.

민하, 처음 보는 지후의 모습에 지후가 걱정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해져 고개를 든다.

[민하] : 그런 거 아냐. 그날 나 구해줘서 고마웠어. 고마운데 고맙단 말을 못 해서 미안해.

[지후] : 다시, 나랑 친구 하는 거지?

지후의 손이 민하의 손에 닿는다. 민하, 깜짝 놀라 손을 뗀다.

[지후] : 오민하, 나 너 좋아해도 되냐?

화면 밖의 조민하가 지후의 대사를 듣더니 방긋 웃으며 따라 했다.

“조민하, 나 너 좋아해도 되냐?”

아까까지 있던 우울한 기분이 금세 사라진 듯, 조민하는 은우의 얼굴을 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조민하가 책상 서랍 속에서 오래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편지를 꺼내어 읽어보는 조민하.

[안녕. 민하야. 나는 은우야. 매일 나에게 팬레터를 보내줘서 고마워.

난 지금 영화를 찍으러 미국에 왔어. 여기 스태프들은 나에게 다 잘해줘. 촬영장엔 과자도 많고 매일 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도 먹을 수 있어서 신나.

요새 친구들과 힘들다고 했지? 친구들한테 속상한 거 이야기해 봤어? 만약 이야기했는데도 계속 모른 척한다면 그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 난 민하가 속상한 거 싫거든.

민하가 계속해서 행복한 학교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네가 지난번 내게 보내준 사연들을 노래로 만들어 봤어.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려놨으니 확인해 봐. 늘 힘내고 너 자신을 사랑하며 지내.^^

- 은우가]

편지를 읽은 조민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조민하의 보물 1호인 편지는 여러 번 읽어서 이미 귀퉁이가 낡고 바래져 있었다.

조민하는 [사운드 클라우드]에 접속해 은우가 만든 곡을 틀었다.

조민하의 방에 편안한 기타의 음이 울려퍼졌다.

[난 오늘 너무 외로워.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내 맘을 털어놓을 수 없네.

말들에 찔린 내 마음.

아무런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은 날.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나요?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봐.

우주 저편에 홀로 빛나고 있는 외로운 별 하나.

그 별이 반짝이면서 내게 신호를 보내네.

내가 이렇게 여기서 너를 비추고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

천천히 털어놓는 내 마음을 들어주는 작은 별 하나.

내 말에 공감하듯 반짝이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응원의 목소리.

별이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너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조민하는 은우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은우가 나를 위해서 만들어준 곡.’

힘이 들 때마다 듣곤 하는 은우의 곡.

조민하는 망설이다가 인터넷 창에 접속하여 여주인공 오민하와 닮은 꼴을 뽑는 콘테스트의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은우라면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 주겠지? 다른 사람들은 나를 놀려도 은우만은 날 위로해 줄 거야.’

신청서를 다 적은 뒤 접수 버튼을 누르고 나서 조민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후회하지 말자. 후회하지 말자. 조민하. 이건 엎질러진 물이라고.’

***

다음 날 조민하의 콘테스트 접수 소식을 들은 은정과 수연은 박수를 쳤다.

“잘했어. 민하야. 역시 우리 민하다.”

“민하야. 우리 쇼핑하러 갈까? 미용실은 어때? 우리가 널 최고의 여신으로 만들어줄게.”

“내 친구 중에 뷰티 너투버가 있는데 걔한테 널 꾸미는 걸 맡겨야겠다. 아마 걔라면 전문적으로 널 바꿔줄 거야.”

“뷰티 너투버 누구?”

“아, [볼터치 토끼]라고.”

“맙소사. 그 아이돌 커버 잘 올리는 너투버 말야? 네가 그 너투버를 어떻게 알아?”

“은우 덕질하다가 알게 됐는데. [볼터치 토끼]도 은우 팬이라니까. 분명 도와줄 거라고.”

“잘됐다. 가보자.”

조민하의 의견과 상관없이 앞으로의 계획을 정하고 있는 은정과 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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