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 외전-20화 (250/257)

외전 2부 3화. [여신이 되었다] (3)

수영장씬이 끝나고 시영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연습할 때 가장 걱정했던 씬이었으나 실제로는 가장 실감 나게 잘 연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우랑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어서 긴장해서 제대로 못 할까 봐 걱정했는데 편안한 기분이었어.’

쉬는 시간에 은우와 대화를 한 것이 가장 큰 성공의 요인 같았다.

‘이야기해 보니 은우도 평범한 고등학생 같았고 또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시영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조PD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조PD는 너그러운 어투로 말했다.

“쉬더니 훨씬 좋아졌네. 그래, 이거야. 알지? [여신이 되었다]는 초록창에서 성공한 웹툰이라고. 웹툰 독자들만 따라와도 어느 정도 보장된 꽃길인데 웹툰보다 드라마가 별로란 소릴 들으면 되겠어?”

***

너투브에 [여신이 되었다] 촬영장의 영상이 반영되었다.

처음으로 영상에 등장한 것은 은우.

[자막 : 민지후 역할이 들어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화면 속의 은우가 밝게 웃었다.

“드라마가 너무 오랜만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제 나이랑 딱 맞는 역할이 별로 없었는데 제 나이에 딱 맞는 역할이어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화면 속으로 서브 남주인 명혁 역을 맡은 하도진이 들어왔다.

은우가 뽀얗고 잘생긴 모범생 스타일의 미남이라면 도진은 남성미가 풍기는 반항아 스타일의 미남이었다.

“이은우, 너무 근엄하잖아. 재미없게 [제 나이에 딱 맞는 역할이어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가 뭐야? 응?”

은우는 도진이 자신을 흉내 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익숙한 표정. 하지만 얼굴에 슬슬 장난기가 올라왔다. 은우의 표정과 말투가 바뀌더니 도진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세화고의 아이돌. 야생마 최명혁.] 이거보다 낫잖아? 안 그래?”

화면 속으로 여학생 1역을 맡은 조연 배우가 끼어들었다.

“여러분, 매일 이래요. 이 두 분의 케미가 제일 좋습니다.”

[자막 : 오민하를 사이에 두고 다투는 지후와 명혁. 현실에선 베프?]

화면이 도진을 클로즈업했다.

맨투맨 티셔츠에 교복 바지를 입은 도진의 귀걸이와 목걸이 등 화려한 은색 액세서리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약간은 허스키하면서도 장난기 서린 목소리.

도진에게 새로운 질문이 나갔다.

[자막 : 도진 군, 명혁은 어떤 인물인가요?]

도진이 검지손가락을 길게 뻗어 입술에 대며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도진이는 츤데레예요. 겉은 차갑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남자입니다. 크으, 나랑 똑같네.”

도진의 말에 은우는 넘어올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는 듯 반응했다.

도진이 그 표정을 읽었는지 한 마디 더 던졌다.

“누구랑은 참 반대죠. 지후는 대놓고 착한 척하는데 속은 안 그러거든요.”

카메라가 은우의 표정을 잡았다. 은우는 기분 나쁠 만한데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겉과 속이 똑같은 게 뭐가 나빠? 겉 다르고 속 다른 게 얼마나 짜증 나는 건데?”

도진이 웃으면서 그에 맞섰다.

“반전 없는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 없는데. 요즘은 반전매력이 중요한 거라고.”

“요즘은 마초남보단 밀크남이 인기거든. 부드럽고 따뜻한 남자.”

은우가 짧은 머리를 날리는 척하는 손동작을 하며 말했다.

도진이 턱을 치켜들고 거만한 표정으로 은우와 맞섰다.

“촬영장에서도 두 개의 탑인데.”

끼어드는 조PD의 목소리.

카메라가 두 사람을 지나쳐 이번엔 여주인 김시영을 잡았다.

[민하 역을 맡은 소감은?]

시영이 밝게 웃으면서 인터뷰를 이어갔다.

“잘생긴 두 개의 탑 사이에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민하의 해맑은 표정. 좋아죽겠다는 듯 행복함이 묻어나왔다.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이 시영 씨를 부러워할 거예요. 만약 자신이 민하라면 누굴 선택할 건가요?]

시영은 곤란한 표정이 됐다.

“음……. 음……. ”

고민하는 시영.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명혁이도 멋있긴 하지만, 나라면 무조건 지후지.’

사실 지후가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오랜 팬이었던 은우가 좋은 것이긴 하지만, 배역과 배우를 완벽하게 떼어놓고 생각하긴 힘드니까.

‘하지만 대놓고 지후가 좋다고 말했다간 은우 팬들에게 어떤 테러를 당할지 알 수 없으니.’

은우는 다섯 살 때부터 연예계 활동을 한 탓에 오래된 팬들이 많았고 전 연령대에서 고른 인기를 얻고 있었다.

특히, 외국 팬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신이 되었다]의 캐스팅에서도 1순위로 캐스팅 섭외가 되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팬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시영은 후환이 두려워졌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해야 해. 잘못했다간 매장당할지도 몰라.’

시영을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에 입을 열었다.

“이십 대에는 명혁이, 삼십 대에는 지후요.”

[오, 의도치 않은 참신한 대답. 이유는요?]

“이십 대에는 반항아 같고 터프한 남자를 만나고 싶을 거 같아요. 멋있잖아요. 근데 삼십 대가 되면 편안하고 부드러운 남자를 만나고 싶을 거 같아요.”

[그럼, 지금은 이십 대니까? 어쨌든 명혁이?]

순간, 시영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은우보단 도진의 팬층이 더 작긴 했다.

그러나 도진 역시 여성 팬층이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패션계에선 떠오르는 혜성 같았다고 들었으니까.’

백구십 센티의 훤칠한 키.

도진은 패션계에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드라마로 넘어왔다.

처음 조연으로 시작했던 사극에서 호위무사역으로 집중 조명받으면서 [여신이 되었다]에서도 명혁 역으로 캐스팅된 도진이었다.

‘은우보단 덜 위험하지만, 최대한 공격을 안 당하게 조심해서 대답해 보자.’

고민 끝에 시영이 입을 열었다.

“제 몸은 이십 대인데 마음은 삼십 대래요. 친구들이 그러더라구요.”

***

[여신이 되었다]의 첫 방영일.

재롱이들의 채팅창이 오랜만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에티우] : 민지후라니! 난 웹툰 볼 때도 우리 은우랑 지후랑 너무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봤거든요.

[with] : 그렇죠. 아무리 봐도 조각 미남, 얼굴 천재라는 호칭과 딱 어울리는 배역 선정 인정합니다.

[랄라] ; PD님 사랑해요. 저 은우가 이런 역 맡는 거 꼭 보고 싶었어요. 우리 은우 월드 스타라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 찍는 거 처음인데 잘 부탁드려요. 넘나 좋은 것.

[박향순] : 그러고 보니 은우 로맨스 도전 처음 아닌가요?

[모나] : 맞아요. 처음이에요. 그동안 영화 쪽에서도 러브콜이 많았는데 은우가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미르은가람] : 저, 잘생긴 얼굴로 가만히만 있어 줘도 여자들이 사랑에 빠질 텐데.

[항상 그 자리에] : 은우 소년미가 이제 막 살아나기 시작해서 너무 설레요. 은우가 잘생기긴 했지만 삼십 대가 돼서 세상의 풍파를 맞으면 저렇게 순수한 얼굴은 사라질 거 같아서. 은우야, 누나가 애정해. 젊을 때 로맨스 좀 많이 찍어줘. 누나 부탁이야.

티비에서 [여신이 되었다]의 타이틀이 떴다.

교복을 입은 민하가 걸어가는데 뚱뚱하고 못생긴 모습이다. 민하는 분장한 시영의 모습으로, 시영은 민하가 되기 위해 뚱뚱하고 못생기게 분장을 했다.

민하가 거울 속을 바라보는데 거울 속의 민하는 시영의 본래 모습대로 예쁘다.

다른 교실에서 은우가 등장한다. 은우는 하얗고 잘생긴 조각 미남의 모습으로 교복을 입으니 준수한 모범생이다. 은우의 얼굴 뒤로 웹툰의 칸이 등장하고 칸 속에 민지후의 그림이 떠오른다. 은우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샤방한 미소를 지으며 윙크한다.

다른 교실에서 도진이 등장한다. 백구십 센티의 훤칠한 키. 반항적이고 도발적인 눈빛의 도진. 교복도 정식 교복이 아니라 바지는 교복을 입었지만 재킷은 가죽재킷을 입고 있다. 도진의 얼굴 뒤로 웹툰의 칸이 등장하고 칸 속에 명혁의 그림이 떠오른다. 명혁 오토바이 헬멧을 팔에 낀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간식을 먹으며 친구들과 함께 [여신이 되었다]의 오프닝을 보고 있던 은우의 팬, 조민하는 비명을 질렀다.

“악, 너무 멋있어.”

옆에 있던 친구 은정과 수연도 함께 소리를 질렀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웹툰보다 훨씬 멋있네. 응응.”

셋이서 질러대는 돌고래 같은 하이톤의 비명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셋을 바라보지만 셋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조민하는 백육십 센티미터 정도의 키이지만 체중이 꽤 있는 육중해 보이는 소녀다.

민하는 양손에 들고 있던 핫바와 소시지를 교대로 입에 밀어 넣었다.

‘드라마 주인공도 민하잖아. 내 이름이랑 똑같아. 이 드라마는 마치 은우와 나의 이야기 같아.’

조민하는 소시지의 감칠맛을 느끼며 드라마 속 민하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셋은 편의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민하의 태블릿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화면 속에서 여학생 1, 2, 3이 여주인 오민하를 괴롭히자 감정이 격해진 조민하가 테이블을 쾅 쳤다.

컵라면 국물을 들이켜던 은정이 깜짝 놀라 조민하를 바라보았다.

“저런 쓰레기들은 세상에서 다 쓸어버려야 돼. 못생긴 게 죄야? 살찐 게 죄냐고?”

조민하의 마음속에선 그동안 주변에서 들었던 잔소리들이 떠올랐다.

‘내가 냉장고를 열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던 엄마, 먹을 것을 빼앗아가던 아빠, 유치원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온 주변 사람들의 잔소리들. 나를 걱정하는 건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건지 알 수 없었던 말들. 그리고 말끝마다 붙었던 여자애가, 여자애가.’

조민하는 한때 자신이 남자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과 같은 체중이라도 남자였으면 훨씬 잔소리를 덜 들었겠지.’

특히 어른들의 레퍼토리는 늘 마지막엔 ‘저런 걸 누가 데려갈까? 나중에 시집이라도 가겠냐?’라는 결론으로 끝맺었다.

조민하 역시 이성에겐 자신도 없고 관심도 없어서 누군가를 바라보거나 호감을 표시한 일도 없다.

‘근데 신기하잖아. 왜 저 드라마에선 저렇게 잘생긴 남자들이 잘해 주는 거야? 은우도 그렇고.’

[여신이 되었다] 속 오민하는 계단에서 머리를 찧어서 자신이 예쁘다는 환상에 빠진 것일 뿐 외모는 전혀 달라질 것이 없었다.

‘저게 말이 돼? 태도가 달라진 것만으로 저렇게 사랑을 받을 수 있나?’

조민하의 머릿속에선 두 가지의 자아가 싸우기 시작했다.

[긍정주의 조민하 : 야, 왜 안 돼? 사람이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민하야, 너도 지금부터라도 드라마 속 오민하처럼 해 봐. 너도 인싸가 될 수 있어.]

[비관주의 조민하 : 야, 웃기지 마. 드라마는 드라마지. 너 현실에선 예쁜 애들도 잘생긴 남자 만나기 힘들 거 알지? 예쁜 여자보다 잘생긴 남자가 인구수 대비 얼마나 적은지 알아? 예쁜 여자가 vip라면 잘생긴 남자는 vvip라고. 괜히 헛바람 들지 말고 정신 차려.]

은정은 조민하의 눈치를 살살 보다가 드라마 속 여학생 1, 2, 3을 욕했다.

“하여튼 이놈의 외모지상주의를 떨쳐내야 해. 지들 셔틀 시켜 먹으려고 남의 약점 이용하는 것 봐. 벼락을 맞아라.”

은정이 조민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민하야,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먹어.”

조민하와 은정, 수연.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왕따를 당하면서 친해진 사이였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 하나는 세 사람 모두 은우의 팬이라는 것.

은정은 민하가 외모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함께 분노해 주었다.

수연도 민하를 격려했다.

“그래, 민하야. 우리나라만 이러지. 외국에선 말이야.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체중 따위.”

그때 화면 속에서 오민하가 수영장 물속에 빠졌다.

“이런 써글.”

조민하가 다시 테이블을 내리쳤다.

수연은 감자칩을 입속으로 왕창 밀어 넣으며 말했다.

“못됐다. 진짜.”

은정은 마지막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저런 것들은 지들이 똑같이 당해봐야 해.”

분노도 잠시, 물에 빠진 오민하를 구하러 지후가 뛰어들자 세 사람의 입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제일 먼저 말이 터져 나온 것은 수연이었다.

“오, 로맨틱해. 백마 탄 왕자님.”

은정이 자신도 모르게 화면 속의 오민하를 부러워하며 말했다.

“민하, 좋겠다.”

은정의 말에 조민하가 옆을 쳐다보았다.

조민하와 시선이 마주친 은정이 말했다.

“민하, 너랑 여주 이름이 똑같네.”

수연이 민하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좋겠다. 나두. 여주랑 이름이라도 똑같았으면. 그럼 은우가 내 이름 부르는 거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은정이 조민하를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맞아, 맞아. 조민하. 너 설레서 밤에 잠도 못 자는 거 아니야? 나라도 잠이 안 오겠다. 은우가 저렇게 이름을 계속 불러대는데. 근데 그러고 보니까 대체 오늘 본 드라마에서만 민하 이름이 몇 번 나온 거야?”

수연도 맞장구쳤다.

“가장 많이 나온 대사가 민하 같은데. 여주 이름 원 없이 불러주네.”

은정이 조민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보나 마나 이 드라마 뜰 거 같은데 이제 전국적으로 네 이름 불리는 거 아냐?”

조민하의 얼굴이 붉어졌다.

‘난 조용히 지내는 게 좋은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내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하지?’

그때 수연이 별스타를 보다가 외쳤다.

“오? [여신이 되었다]에서 이벤트로 여주 오민하와 가장 닮은 시청자를 선발하는 콘테스트를 연대. 근데 상품이? 와아, 출연진과 함께 하는 1박 2일 여행권인데. 조민하, 이건 너를 위한 기회야.”

은정도 신이 나서 외쳤다.

“민하야, 꼭 넣자. 우리도 은우 보러 가고 싶어. 은우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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