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부 1화. [여신이 되었다] (1)
“아악.”
“아악.”
은우가 드리블을 할 때마다 주변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결국 짜증이 난 윌리엄이 자리에 멈춰 서며 말했다.
“은우, 더 이상 못하겠어. 조금 쉬었다 하자.”
은우가 미안한 듯 땀 닦는 수건을 던지면서 대답했다.
“내가 음료수 살게.”
벤자민이 말했다.
“은우, 네 잘못은 아니지만, 저 함성은 정말 귀가 아파.”
리키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왜? 난 은우 부러운데. 다시 태어나면 은우로 태어나고 싶다. 살면서 저렇게 여자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리키가 두 팔을 흔들며 농구코트 밖에 서 있는 여자애들에게 소리쳤다.
“헤이, 걸즈. 나를 봐. 나를. 내가 더 멋있지 않아?”
벤자민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리키 너 꼭. 바보 같아. 장난감 중에 왜 그 멍청해 보이는 드럼 치는 원숭이 있잖아. 그거 같다고 알아? 제발 그만해라. 버리고 가기 전에.”
윌리엄이 리키의 팔을 잡고 꺾는 암바 자세를 취했다.
“은우는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거잖아. 난 인기 많은 건 참아도 창피한 건 못 참는다고.”
리키가 팔을 잡힌 채 얼굴이 빨개져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알았어. 알았어. 항복. 안 하면 되잖아. 안 할게. 안 한다고.”
네 사람은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복도에 위치한 자판기에 은우가 동전을 넣었다.
“윌리엄은 다이어트 코크, 벤자민은 몬스터, 리키는 탄산수 맞지?”
리키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벤자민이 리키를 보면서 혀를 찼다.
“그러길래 적당히 해야지. 윌리엄이 싫어하는 거 알면서. 다음에도 또 그렇게 여자애들한테 손 흔들고 하면 버리고 간다.”
리키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말했다.
“알았어. 너넨 조크를 몰라. 조크를.”
은우는 친구들의 장난에 미소 지었다.
‘재밌다니까 녀석들.’
그리고 한편으론 여자들의 고함 소리가 짜증 날 텐데도 늘 자신과 함께 놀아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고마워. 얘들아.”
“고맙긴.”
윌리엄이 다이어트 코크를 받아들며 대답했다.
벤자민이 몬스터의 캔을 따면서 말했다.
“근데 궁금하긴 하다. 아까 리키가 한 말 말이야.”
은우가 되물었다.
“리키가 무슨 말을 했는데?”
“은우로 산다는 거 말야. 나도 가끔 궁금하긴 했어. 너로 살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처음 보는 여자들도 너만 보면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잖아. 난 말야. 처음부터 날 좋아해 준 사람은 우리 부모님 말곤 없었거든. 근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니. 온 세상이 로또 같은 그런 기분일 거 같아서.”
은우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어딜 가든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가 없거든. 가끔은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난. 그치만 어렸을 때부터 활동해 왔으니까 어느 정도 익숙하기도 해.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더 커. 사실 내 직업은 잊혀지면 끝이니까.”
리키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생각은 못 했네. 부러워만 했던 내가 철없게 느껴져. 은우 역시 넌 애늙은이다워.”
리키가 은우의 겨드랑이에 대고 간지럼을 피우기 시작했다.
“간지럼 잘 타는 애늙은이.”
“아아악. 간지러워.”
은우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큭큭거렸다.
“항복. 항복. 그만. 피자 살게.”
“어, 내가 피자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어?”
리키가 간지럼을 멈추자 은우가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내가 너흴 한두 번 겪니?”
“고맙다. 짜식.”
리키는 은우를 보면서 생각했다.
‘은우야, 늘 그렇게 밝게 웃으면서 지내. 생각 많은 우리 애늙은이. 하지만 너무 진지한 건 좋지 않다고. 너무 고민하는 것도 말이야. 넌 웃는 게 어울려. 우리가 널 웃게 해 줄게.’
피자집으로 가면서 윌리엄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 근데 너 차기작은 결정했어?”
“아직 고민 중이야.”
“우리에게 말해봐. 우리가 골라줄게.”
리키가 동참했다.
“맞아. 맞아. 우리가 트렌드를 잘 읽잖아. 알지? 요새 시청자들이 얼마나 트렌드에 민감한지.”
벤자민도 동의했다.
“난 나름 잘 찍는다고. 내가 찍은 걸그룹은 모두 다 떴다니까. 내가 촉이 좀 좋잖아. 보면 느낌이 딱 온다니까.”
윌리엄이 못 참겠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그건 네가 하도 예쁜 여자를 좋아해서. 매일 예쁜 여자만 찾아다니니까 그렇지.”
“윌리엄, 걸그룹이 얼굴만 가지고 뜨는 줄 아냐? 걔네가 얼마나 치열한데. 예뻐도 못 뜨는 걸그룹도 많다고. 1년에 육칠십 팀이 데뷔하는데 그중에서 내년까지 앨범을 낼 수 있는 걸그룹도 몇 팀 안 돼. 0.001프로의 확률이 걸그룹이라고. 내가 그걸 맞추는데 얼마나 대단한 거니?”
은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치. 자리 깔아야지. 한국엔 점쟁이라는 게 있는데 마치 점쟁이랑 비슷하다. 윌리엄.”
“그럼, 그럼. 그러니까 우리한테 말해봐. 우리가 골라줄게. 소속사 눈보다 훨씬 정확할걸.”
“드라마 대본이 두 개 들어와 있어. 둘 다 웹툰 원작인데 하나는 창업 스토리고 하나는 고등학생들이 꽁냥꽁냥하는 로맨스야.”
벤자민이 고개를 들이밀며 대화에 집중했다.
“어떤 웹툰? 나 웹툰 덕후잖아. 말해봐. 내가 본 거면 조언해 줄 수 있을 듯.”
“창업 스토리는 [이태원 거리에서] 고등학생들의 로맨스는 [여신이 되었다.]”
“우와, 그거 둘 다 갓작인데. 고민되겠다. 작품만으로 놓고 봤을 땐 둘 다 정말 대단한 작품들이야.”
리키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둘 다 갓작인 건 맞는데 난 은우는 무조건 [여신이 되었다]를 하는 게 맞다고 봐. 얘랑 창업이랑 안 어울리잖아. 은우야, [이태원 거리에서] 네가 맞게 될 역할이 몇 살이야?”
“시작은 고등학생으로 시작해서 스물다섯 살까지.”
리키가 은우의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보면서 말했다.
“아무리 봐도 스물다섯은 오버야.”
벤자민이 말을 보탰다.
“[이태원 거리에서] 주인공은 반항아인데 넌 너무 착해 보여.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이 잘 되겠어? 이 얼굴에 반항아라니.”
리키도 동의했다.
“그래,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연기 변신이 중요하긴 하지만 안정적인 게 좋지. 그리고 넌 남초 카페랑 여초 카페 모두에서 선호하는 얼굴이라. 얘들아, 너네 페이스 오프라는 어플 아니?”
윌리엄과 벤자민, 은우가 모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키를 쳐다봤다.
리키가 휴대폰을 켜더니 어플을 켰다.
“남자 얼굴은 여자 얼굴로, 여자 얼굴은 남자 얼굴로 바꿔주는 어플이야.”
윌리엄이 웃으면서 외쳤다.
“리키 네 얼굴 넣어보자.”
“싫어. 내가 왜? 네 얼굴 넣어.”
“나도 싫어.”
“그럼, 아무 얼굴도 넣지 마.”
벤지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 사진으로 할게.”
리키가 어플을 켜자 벤자민이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사진 기대되는데.”
여드름 가득한 벤자민의 얼굴이 카메라에 떴다.
“인간적으로 피부 보정은 해야겠다.”
리키가 피부톤 보정과 잡티 제거를 누르자 벤자민의 피부가 깨끗해졌다.
“이야. 이건 내 계획과 다르잖아. 난 완전 못생긴 여자가 되고 싶었는데.”
벤자민의 대답에 리키가 받아쳤다.
“피부만 깨끗해진다고 미인이 되는 건 아니라고 기다려봐.”
리키가 보정한 벤자민의 사진을 페이스 오프 어플에 넣자 벤자민이 단발머리의 여자가 되었다.
윌리엄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거 진짜 벤자민이잖아. 예쁘진 않지만, 여자는 여자다.”
리키가 윌리엄의 반응에 웃음이 터졌다.
“풉, 여자는 여자다. 무슨 반응이 그래? 예쁘단 소린 안 나오네.”
“벤자민의 원래 사진에 비하면 예쁘긴 예쁜데. 그래 남자 얼굴보단 확실히 나은 게 맞긴 한데. 어떻게 하냐? 벤자민. 넌 여자로도 안 되겠다. 그냥 이번 생은 포기해.”
벤자민이 윌리엄의 말을 반박했다.
“왜, 난 내 얼굴이 맘에 든다고. 근데 이 어플 짜증 나게 왜 이렇게 예뻐. 내가 너무 예뻐졌잖아.”
리키가 썩소를 날리며 벤자민에게 대답했다.
“네 원래 얼굴에 비해 예쁘긴 한데 은우 사진을 보면 예쁘단 말 못 할걸. 기다려봐.”
리키가 [이은우 여자 얼굴]이라는 키워드 검색을 통해서 은우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단발머리에 발그레한 볼, 하얀 피부를 가진 은우가 화면 속에 나타났다.
벤자민이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정말 난 아무것도 아니었네. 여신이세요?”
윌리엄이 은우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청순한 것 좀 봐. 정말 너야?”
은우가 윌리엄의 손길에 소름이 끼친 듯 손길을 뿌리치며 대답했다.
“그러지 말라고. 방금 소름 돋았어. 왜 그래? 나 여자 아니거든.”
“이 사진은 웬만한 여자보다 이쁜데.”
리키가 동의했다.
“걸그룹 멤버들도 다 학살하고 남을 외모지. 그래서 너 요새 남초 카페에서도 인기 많다. 은우야. 남자 연예인 중 함께 여행 가고 싶은 연예인 1위.”
“그걸 영광이라고 해야 해. 나 남자 진짜 싫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암튼 네 이미지엔 [여신이 되었다]가 나을 거 같아.”
벤자민도 동의했다.
“[여신이 되었다]의 주완 역이 너에게 훨씬 잘 어울리지. 우리 학교의 구린 교복도 넌 어울리잖아.”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은우 교복 너무 잘 어울려. 교복이 진짜 잘 어울리기 힘든 옷이잖아. 스타일을 바꿀 수가 없으니까. 근데 넌 정말 교복이 잘 어울려.”
리키가 말을 이었다.
“여심 저격이지. 그리고 이런 로맨틱 코미디는 고등학생 때 해야 잘 어울리지. 대학생 돼서 고등학생 연기하면 시청자가 이입이 잘 되겠니? 지금이 딱이야. 소년미가 뿜뿜할 때. 지금이라고.”
벤자민이 물었다.
“근데 여주는 누구야? 두 작품 여주 말야. 여주도 들어보고 정해야 하는 거 아니니?”
윌리엄이 벤자민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흑심 가득한 자식 같으니라고. 너 은우 커리어 걱정하는 거냐? 아님 네 사심 채우고 싶은 거냐?”
벤자민이 엉덩이를 감싸 쥐면서 말했다.
“이런 자비 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야, 너 드라마가 혼자 만들어지는 건 줄 알아?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중요하고 PD 운도 중요하고 작가 운도 중요하고. 그런 게 다 갖춰져야 좋은 드라마가 나오는 거라고.”
리키가 이때다 싶었는지 벤자민의 목에 팔을 걸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해. 은우 따라가서 촬영장에서 사인이라도 받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응?”
“항복. 항복. 그래. 조오금. 한 십프로 그런 맘이 있긴 했다. 이제 됐냐?”
“헤헤헤. 사실 나도 그래. 근데 은우야. 그래서 상대역은 누구야?”
모두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은우의 입을 바라보았다.
“[이태원 거리에서]는 박소미, [여신이 되었다]는 김시영.”
벤자민이 환호하면서 말했다.
“이얏. 박소미래. 박소미. 은우야. [이태원 거리에서]로 가자. 반항아 어때? 반항아?”
리키가 벤자민의 말을 막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반항아 안 어울린다고 하더니.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말을 막 바꾸네. 은우야. 난 김시영 팬이라 [여신이 되었다]가 더 좋아.”
윌리엄이 한심하다는 듯 리키와 벤자민을 보며 혀를 찼다.
“너네 은우 친구 맞니? 은우의 미래를 걱정해야지. 여자 배우들한테만 침을 질질 흘리다니. 은우야, 난 김시영.”
리키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김시영 두 표. 김시영 승. [여신이 되었다] 확정. 확정.”
벤자민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소미가 훨씬 이쁘단 말야. 박소미.”
***
김시영은 매니저로부터 캐톡을 받았다.
[매니저] : 상대역 이은우로 확정됨.
이은우라고?
시영의 눈이 커졌다.
‘영화만 찍을 줄 알았던 이은우가 나랑 같이 드라마를 찍는다고?’
수많은 하이틴 스타들과 호흡을 같이 해 온 김시영이었지만 은우는 남다르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아했던 이은우가 내 상대역이라고?’
시영은 방의 책꽂이에 있던 은우의 앨범들을 꺼냈다.
‘엄마가 그랬었어. 다섯 살 때부터 은우 노래를 부르며 따라 하고 춤추고 다녔다고.”
시영은 가끔씩 자신의 어린 시절 동영상을 보곤 했었다.
“난 너뮤 기여어. 난 너뮤 기여어.”
인형을 안은 시영이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춤을 추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내 우상이었던 이은우가 내 상대역이라니.‘
시영은 설레어 잠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