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 외전-16화 (246/257)

외전 16화. 드라마 삽입곡 (2)

킹덤캐슬이 방영된 다음 날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모두 킹덤캐슬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너, 어제 킹덤 캐슬 봤음?”

“그 노래 너무 찰떡 아님?”

“나 김성태가 낸시 찾아냈을 때 심장이 오그라드는 줄.”

김진태 PD는 커피 자판기 기계 앞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있었다.

유희경 PD가 김진태 PD의 어깨를 쳤다.

“축하해. 또 한 건 했더라. 너무 잘나가는 거 아냐?”

“저녁 한 번 살게요. 선배. 이거 다 선배 덕분이니까.”

유희경 PD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물었다.

“그게 왜 내 덕분이야?”

“그날 있잖아요. 여기서 커피 마시던 날. 선배가 나에게 들려준 노래. 그게 이번에 삽입된 그 노래예요.”

“아, 기억났다. 내 덕분이네. 한턱 크게 내야겠어.”

“좋아요. 까짓거 소고기 쏩니다.”

김진태 PD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켰다.

“이, 짤 보이죠? 내가 예상한 대로 [카르페디엠] 패러디 영상에 우리 드라마도 올라가 있어요. 지금은 우리 드라마를 패러디한 영상들이 도배되기 시작했어요.”

영상 속에서 가짜로 노래를 부르는 주희연의 얼굴 위로 뜨는 자막.

[우리는 믿고 있었지. 모두가 공정하다고.]

뒷방에서 핏대를 세우며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낸시의 얼굴 위로 뜨는 자막.

[하지만 청약 당첨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

주희연의 마이크에 전원이 꺼진 것을 발견한 김성태가 공연장을 빠져나간다.

[우리 중 눈치 빠른 누군가가 진실을 찾아나섰지]

혼자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낸시를 찾아낸 김성태의 얼굴 위로.

[진짜를 찾았다. 숨겨진 아파트 청약의 비밀]

영상을 보고 있던 유희경 PD가 박수를 쳤다.

“진짜 잘 만들었다. 요즘 시청자들은 정말 똑똑하다니까. 자막 잘 넣은 거 봐. 이런 정치 풍자도 정말 속이 다 시원한데.”

“그거 말고 다른 것도 있어요.”

김진태 PD가 다음 영상을 켰다.

영상 속에서 가짜로 노래를 부르는 주희연의 얼굴 위로 뜨는 자막.

[당신은 오늘도 야근한 남편을 믿고 있을 것이다.]

뒷방에서 핏대를 세우며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는 낸시의 얼굴 위로 뜨는 자막.

[하지만 남편의 야근이 너무 잦다면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단지, 당신이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주희연의 마이크에 전원이 꺼진 것을 발견한 김성태가 공연장을 빠져나간다.

[이제라도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나는 당신의 의심을 응원한다.]

혼자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낸시를 찾아낸 김성태의 얼굴 위로.

[당신의 남편은 야근이 아니라 배달 알바를 뛰고 있었던 것이다.]

유희경 PD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진짜 촌철살인이네. 요새 배달 알바 뛰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하더라고.”

“그쳐. 이거 시리즈로 계속 나와요. 다들 너무 잘 만들어서 감탄한다니까요.”

“좋겠다. 김 PD. 다음엔 각오해. 내가 더 높은 시청률로 꺾어줄 테니까.”

“유 PD님 시청률 20프로가 쉬운 줄 아세요? 어디 넘어설 테면 넘어서 보시죠?”

***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위한 상담소]에서 안드레아와 유진호가 상담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상담소에 들른 횟수가 늘어날수록 안드레아의 마음도 진정되어 가고 있다.

이젠 자식을 잃은 다른 부모들과 자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맛있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좋은 곳 같아. 사람들도 마음이 따뜻하고 은우도 있고 내 상처를 어루만져준 나라야.’

계획했던 음반 녹음이 끝나고 음반 발매까지 체류 시점을 연장한 안드레아였다.

‘이젠 진짜 떠나야 하나? 난 아직 이곳이 좋은데.’

주말이면 은우의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은우의 가족과 정이 든 안드레아였다.

그때 유진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유진호가 전화를 끊은 뒤 안드레아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촬영한 자동차 광고의 반응이 좋아서 B사에서 자원봉사 홍보를 하고 싶어 하는데요. 어떠신가요?”

자원봉사라면 성악가 활동을 하면서 여러 번 한 경험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후원을 위한 재능기부 콘서트 같은 형태였지만.

“자원봉사 좋죠. 어디로 가나요?”

“고아원입니다.”

고아원.

안드레아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있는 곳.’

아이들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안드레아였지만 아이들을 보게 된다면 루시에 대한 생각이 더 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까? 가서 말 한마디 못 하고 오거나 혼자 울음이 터져서 멍하니 울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자신의 상태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안드레아는 고아원 봉사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미안하지만 그 봉사는 힘들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유진호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아가 옆에 있는 커피숍을 가리키며 말했다.

“커피 한 잔만 사서 들어가죠?”

“네.”

유진호가 말없이 안드레아의 뒤를 따랐다.

유진호는 어느새 안드레아의 개인 일정도 살펴주고 있었다.

유진호가 커피숍 주인에게 커피를 주문하는 사이 안드레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안드레아는 은우가 메신저로 대화를 건 것을 발견했다.

[Eunwoo] : 안드레아 삼촌, 우리 같이 고아원 봉사 가요.

안드레아는 예상치 못한 은우의 메신저에 당황했다.

‘내가 고아원을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전부 다 설명할 수도 없고.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할까?’

핑계를 대야 하는데 마땅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 안드레아는 대화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Eunwoo] : 같이 가요. 삼촌. 루시가 좋아할 거예요.

루시. 바로 그 루시 때문에 고아원에 갈 수가 없다고 결정을 했는데 은우는 루시 때문에 고아원에 가자고 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뜬 은우의 메시지.

[Eunwoo] : 거기 내 친구도 있어요. 소개해 줄게요. 가면 친구들과 하루 종일 놀 수 있어요. 재밌을 거예요.

[Andreas] : 그래.

마음이 결정된 게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그래]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되겠지.’

내 마음이 내 것 같지 않을 때.

가끔 내 마음을 내가 더 모르겠을 때.

루시가 가고 난 뒤 그런 날들이 많아졌다.

안드레아는 [그래]라고 답장을 누른 자신의 마음을 원망하면서도 될 대로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

고아원 봉사를 가기로 한 날 안드레아는 잠을 설쳤다.

‘오늘 잘할 수 있을까?’

안드레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쥐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지금이라도 봉사를 취소할까? 가서 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두려움과 불안함에 가득 싸여 한 발도 디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침대 밖이 낭떠러지처럼 느껴졌다.

결국 안드레아는 유진호에게 전화를 했다.

“진호. 아무래도 오늘 고아원 봉사는 갈 수 없을 것 같아.”

“네에?”

수화기 속에서 놀란 진호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제가 데리러 가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미안한데 난 걸을 수가 없어.”

“걸을 수가 없다는 게 119에 전화해야 하나요? 의사를 부를까요?”

“아니. 이건 심리적인 거야.”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침묵.

“안드레아 씨, 잠시만. 제가 다시 전화드려도 되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전화가 끊기고 안드레아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포근하고 매끈한 이불의 감촉이 싫지 않다.

안드레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건 무슨 소리지?’

햇볕이 들지 않도록 쳐놓았던 커튼이 걷혀져 있다.

침실 가득 쏟아지는 햇살.

기분 좋은 토스트 냄새와 커피 냄새.

‘룸서비스를 시킨 기억이 없는데.’

안드레아의 손끝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손가락.

‘루시보다 작은 손인데 누구지?’

안드레아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안드레아의 손을 만진 것은 은정이었다.

“헤헤헤헤. 땸톤.”

은정이가 안드레아의 손을 만지며 웃었다.

‘귀여워.’

안드레아가 은정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은정이가 안드레아의 얼굴을 밀며 말했다.

“슈엄, 따가어.”

안드레아는 빙긋 웃으며 생각했다.

‘면도를 할 걸 그랬나?’

은혁이 침대 위로 쟁반을 가지고 오며 말했다.

“아침 식사입니다. 손님. 많이 드시고 행복해지세요.”

은우가 옆에 서서 말했다.

“노래도 불러드립니다. 손님.”

은혁이 쟁반을 내려놓자 은정이가 마카롱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마카룽 내 꺼.”

안드레아는 은정이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아무것도 안 먹어도 너무 좋구나. 너희가 내 옆에 있는 게.’

은우가 노래를 시작했다.

“난 너무 귀여워. 난 너무 사랑스러워.

여러분도 너무 귀여어. 여러분도 너무 사랑스러워.

우린 모두 소중해.”

저건 은우의 첫 번째 음반인데.

안드레아는 [난 너무 귀여워]를 알아보았다.

‘저걸 눈앞에서 직접 보다니 영광인데. 영상에서 본 것보다 더 잘하는데.’

안드레아가 본 영상에서 은우는 다섯 살.

눈 앞의 은우는 여덟 살.

귀여운 외모가 조금 성숙하게 바뀌었지만 음색과 춤 솜씨는 그대로였다.

‘나를 위한 콘서트 같은 느낌이 드네.’

늘 무대에 섰던 안드레아였지만 관객이 돼 노래를 듣는 입장이 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느낌이구나. 위로받는 느낌. 나를 위해서 노래하는 것 같네.’

은우는 [난 너무 귀여워]를 마치고 [겨울나라 2]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싸움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빛나던 친구의 웃음을 기억하나요?

뽀득뽀득 소리 나던 눈밟기 놀이.

따뜻하던 겨울날.

행복하던 우리들.”

“추위가 와도 두렵지 않아.

행복했던 겨울을.

우리는 모두 기억해.

따뜻했던 겨울을.”

안드레아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저게 말로만 듣던 겨울나라 2구나? 정말 좋은데.’

은정이가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따뜨타던 겨울냘.

행보캐던 우리들.”

은정이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갑자기 토스트를 들고 입에 넣으려고 했다.

너무 큰지 안드레아에게 토스트를 내미는 은정이.

“짜라.”

안드레아가 토스트를 손으로 찢어주자 찢어진 토스트 반쪽을 안드레아의 입 안에 넣어준다.

안드레아는 엉겁결에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네.’

계란과 설탕으로 범벅이 된 토스트였다.

‘루시가 좋아할 맛인데.’

늘 식탁에 시럽을 가져다 놓고 시럽 범벅을 만들다가 아내에게 혼내곤 했던 루시였다.

은정이는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은우의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은혁이가 놀라서 쟁반을 들었다.

“그러다 다 쏟아.”

은혁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은정이는 은우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입에는 토스트 조각을 문 채.

‘루시도 예전에 먹으면서 놀거나 먹으면서 잠들 때가 많았었는데.’

아내는 늘 루시를 혼내곤 했지만, 안드레아는 루시의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겨울나라 2]를 부른 뒤 은우가 쟁반 위에 남아있는 토스트 한 개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아, 배고파.”

은우가 토스트를 먹었다.

은혁이가 은우에게 우유를 따라 주었다.

“형, 음식 솜씨가 나날이 느는 거 같아.”

“고마워. 있다가 고아원에서 애들 먹으라고 유부초밥도 했는데. 요샌 정말 재료가 잘 나와서 좋아. 요리를 잘 못 해도 금방 만들 수 있으니까.”

아, 맞다. 고아원에 가기로 했었는데.

안드레아는 기억이 났다.

내가 잠이 들었고, 그 뒤론 어떻게 된 거지?

안드레아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넌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유진호 선생님이 전화를 주셔서요. 미안해요. 안드레아. 내가 잘못했어요.”

“아니야. 그런 거.”

“고아원에 가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치만 안드레아가 힘든 건 싫으니까 우리 고아원 봉사 가지 말고 하루 종일 같이 놀아요.”

안드레아는 생각했다.

‘은우, 은정이, 은혁이랑 놀 때는 루시 생각이 나긴 하지만 슬프지 않은걸. 루시랑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기를 보면 루시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만 슬프지 않을 거야. 은우네 형제들과 노는 게 이렇게 즐거운데. 고아원의 아이들도 날 기다리고 있을 거고. 은우도 친구를 소개시켜준다고 하니 한 번 가 보는 게 좋겠어.’

안드레아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미안해할 거 없어. 친구들 기다릴 텐데 다 함께 고아원에 가서 놀아볼까?”

은우가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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