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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 외전-11화 (241/257)

외전 11화. 헌정 음반 (3)

공항에 도착한 안드레아는 한국 공항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랐다.

‘너무 깨끗하잖아.’

공항 안의 모든 것들이 새것처럼 보였다.

‘밀라노나 로마 공항에 비하면 정말 크고 도시적이야.’

안드레아는 캐리어를 끌며 작은 가방에 담긴 곰인형을 꺼냈다.

‘루시가 가장 좋아하던 인형. 캐디야 네가 여기서 보고 들은 걸 루시에게 전해 줘.’

안드레아는 캐디에게 말을 걸었다.

“루시, 여기가 한국이야. 네가 그토록 와 보고 싶어 했던 곳. 곧 은우도 만나게 될 거야.”

안드레아가 출국장을 나서자 안드레아를 알아본 유진호가 말을 걸었다.

“안드레아. 전 HO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유진호입니다. 제가 본사까지 데려다 드리고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에 도움을 드릴 거예요.”

유진호가 안드레아에게 명함을 건넸다.

안드레아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이탈리아어가 무척 유창하시네요.”

“그곳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거든요. 사실 어제 뵙기 전에 몹시 설렜습니다. 제 마음속 워너비시거든요.”

유진호의 말이 안드레아의 마음에 파도를 만들었다.

‘팬들의 사랑. 한때 세상에 팬들의 사랑밖에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세계를 누비며 매일 노래를 부르고.’

안드레아는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직도 저를 기억해 주셔서요.”

유진호는 주차된 차로 안드레아를 안내했다.

“한국은 오토 차량이 많아요. 이탈리안 수동 차량이 많죠? 혹시 국제 운전 면허증이 있으면

다음에 뵐 땐 차를 한 대 렌트할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

“괜찮아요. 난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일정이 있을 땐 제가 올 거고요. 급하실 땐 택시를 타세요. 목적지만 말씀하시면 기사가 데려다줄 거예요. 택시 기사분들이 이탈리아어를 못하시긴 하지만 어플만 있으면 되죠. 제가 있다 번역기 어플을 알려드릴게요.”

안드레아는 진호의 싹싹함이 마음에 들었다.

차는 어느덧 HO 엔터테인먼트 앞에 도착했다.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함께 올라가도록 하죠.”

유진호의 안내에 따라 HO 엔터 건물로 들어서면서 안드레아의 눈이 커졌다.

‘한국은 모든 건물이 최신식이구나. 사방이 유리로 된 건물이라니?’

엘리베이터 안에 있으니 건물의 사방이 다 보였다.

‘뉴욕에도 이런 건물이 있었지. 한국이 이 정도로 발전한 나라일 줄이야.’

오래된 건물과 성당들에 둘러싸인 피렌체에 살고 있던 안드레아에게 한국의 모습은 매우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유진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라온이 안드레아를 맞았다.

“Nice to meet you. (반갑습니다.)”

강라온의 영어에 안드레아도 영어로 대답했다.

“Thank you for you kindness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해요.)”

“Eunwoo will be here soon. (곧 은우가 도착할 거예요.)”

안드레아는 가방 속 태디에게 속삭였다.

‘곧 은우가 온대. 우리 꿈의 첫 번째 단추를 끼우는 셈이야.’

안드레아는 루시의 태블릿에서 은우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 너투브의 모든 영상이 담겨있는 파일을 찾아냈다.

‘루시는 정말로 은우를 좋아했었구나.’

안드레아는 루시를 떠올리며 은우의 영상을 모두 보았다. 그리고 은우의 음반도 구입해서 모두 들었다.

‘케이팝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었어.’

오페라와도 다르고 뮤지컬과도 다르고 팝과도 다른 케이팝은 음악적으로도 매력적이었지만 안무와 화려한 비주얼 퍼포먼스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은우는 정말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처럼 말이야. 그 여러 가지 빛 중 가장 아름다운 빛을 고르기가 힘들 정도야.’

많은 사람들이 안드레아의 재능을 칭찬했을 때 안드레아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은우를 보고 나니 재능이란 게 어떤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기도 힘든데 저렇게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다니.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야. 특히, 케이팝을 부르느라 가려져 있지만 숨겨진 음역대가 엄청나.’

안드레아는 은우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목소리만 놓고 보자면 아리아나 오페라에 더 잘 어울리는 목소리일 수도 있어. 그 매력을 내가 이번 헌정 앨범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릴 거야.’

안드레아는 은우를 만나기 전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강라온이 안드레아에게 말했다.

“은우 때문에 한국으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탈리아에 더 훌륭한 연주팀이 있었는데도 한국으로 와 주시다니.”

“은우가 학생이니까요. 저희 딸도 은우가 학교를 오랜 시간 빠지고 음반을 녹음하는 걸 바라지 않았을 거예요.”

“딸 이름이 루시죠? 저도 따님 사진을 인터넷에서 봤어요. 참 예쁜 소녀더군요.”

“네, 함께 있으면 빛이 나는 것 같은 그런 아이였죠.”

강라온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정말 힘든 사람에겐 힘내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던데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안드레아가 쓸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는데 이젠 괜찮아요. 루시가 옆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전 루시의 꿈을 이뤄줄 거니까요. 루시가 행복해할 거예요.”

그때 문이 열리고 은우가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길동과 함께 들어왔다.

길동과 은우는 아이스크림 맛에 대한 열띤 토론 중이었다.

“민트초코가 제일 맛있다니까요.”

“치약맛을 왜 돈 주고 먹어.”

은우는 민트초코파, 길동은 반민트초코파.

은우가 안드레아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Hi Andrea. Do you like mint chocolate? (안녕하세요. 안드레아 씨. 혹시 민트초코 좋아하세요?)”

안드레아는 은우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다.

“I like ice cream very much. Cause Italy is famous for gelato. I ate gelato every summer.(아이스크림은 다 좋아하는데. 이탈리아는 젤라또의 나라니까. 여름이면 매일 낮에 젤라또를 하나씩 먹었지.)”

안드레아는 젤라또를 좋아하던 루시를 떠올렸다.

은우가 갑자기 스푼을 내밀며 안드레아에게 말했다.

“This is really good. Try it? (이거 진짜 맛있는데 한 번만 드셔 보실래요?)”

강라온은 또 시작했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에도 나한테 오자마자 젤리를 내밀었었지. 은우야, 그래도 비행기 타고 오신 분인데 시작부터 아이스크림이라니?”

강라온의 걱정과 달리 안드레아는 스푼을 들며 밝게 웃었다.

“All the kids love ice cream. (아이들이 다 그렇죠. 아이들의 세상에선 아이스크림 맛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요.)”

안드레아는 루시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루시의 입맛으로 내가 한번 평가해 볼까?’

안드레아는 수저 위의 민트색 아이스크림을 듬뿍 떠서 먹었다.

‘시원한 치약맛 위에 얹어진 초코라. 굉장히 강한 치약맛 같은데.’

치약맛을 싫어해서 평소 치약맛이 나지 않는 순한 치약만 사용하는 안드레아로서는 정말 최악의 맛이었다.

‘아, 뱉고 싶다.’

그러나 눈앞에서 간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우를 바라보고 있자니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그냥 삼켜야지.’

안드레아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삼켰다.

그리고 강라온에게 외쳤다.

“Do you have coffee? (혹시 커피 있나요?)”

강라온이 인터폰으로 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 빨리 커피 한 잔만.”

“네네.”

은우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Is it good or not? (맛이 있어요? 없어요?)”

길동이 자신이 이겼다는 투로 말을 받았다.

“봐봐, 안드레아 선생님도 반민트초코파일 거라니깐.”

안드레아는 어서 빨리 커피가 도착했으면 하고 바랐다.

문이 열리고 비서가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사장님, 급해서 위층까지 올라갈 시간이 없어서 자판기 커피라도 가져왔어요.”

안드레아는 비서가 건넨 믹스커피를 마셨다.

‘세상에 이런 맛이? 이건 뭐지?’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달짝지근하고도 씁쓸한 맛.

일 년에도 세계를 몇 바퀴씩 돌았던 안드레아였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What's this? It's really good. (이게 뭐예요? 정말 맛있네요.)”

강라온은 안드레아가 고작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감탄하는 것이 놀라웠다.

‘저건 우리 회사에 널린 믹스커피인데. 가격도 저렴하고.’

안드레아는 종이컵에 남은 커피를 소중하게 마시고 있었다.

“It's mixed coffee. You can get it from the vending machine in the hallway. I'll give it to you for free if you want. (그건 믹스커피라는 건데 회사 복도 자판기에서 공짜로 뽑으실 수 있어요. 원하시면 저희 사무실에도 있으니 드리겠습니다.)”

“Really? Is this free? (정말요? 이렇게 좋은 걸 공짜로 준다고요.)”

은우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How was mint chocolate? (민트초코는 어땠어요?)”

안드레아는 잠시 고민했다.

‘맛이 없다고 하면 은우가 상처받을까? 만약 루시였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안드레아는 기억 속에서 루시를 소환했다.

루시가 파스타에 복숭아를 넣고 있었다.

“루시야, 그게 맛있어?”

“맛있어요. 아빠, 아빠도 한 번 먹어볼래요?”

안드레아는 그 상상하고 싶지 않은 맛에 몸서리를 쳤다.

“괜찮아. 아빤 먹은 걸로 할게.”

“먹어봐요. 아빠. 진짜 맛있어요.”

안드레아는 어쩔 수 없이 루시가 만든 파스타에 섞인 복숭아를 맛보았다.

‘토마토소스와 복숭아라니. 말캉말캉 씹히는 단맛. 정말 안 어울리잖아.’

안드레아는 먹자마자 말했다.

“맛없어. 루시야.”

루시가 안드레아를 뽀로통한 표정으로 보면서 말했다.

“아빠. 아빠도 맛없어요.”

루시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지금도 그때를 떠올릴 때면 루시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의 의미가 궁금했었다.

안드레아가 은우에게 답했다.

“I don't taste as good as mint chocolate. (나도 맛없어. 민크초코만큼).”

은우가 안드레아의 대답을 듣더니 웃기 시작했다.

“This is so fun. I don't taste as good as mint chocolate. (재밌다. 저도 맛없어요. 민트초코만큼.)”

길동은 은우가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내긴 내가 이긴 거다. 그치? 반민초파의 승리야. 다음에 네가 아이스크림 사야 해.”

은우가 배를 잡고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맛없는 길동이 형.”

강라온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그만 웃고 제대로 된 손님맞이를 시작해야지. 앨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네, 알았어요.”

은우가 웃음을 멈추려고 애를 썼다.

안드레아가 강라온에게 말했다.

“It's okay.

It was nice to remember my daughter. If my daughter were here, she would have had a good time with Eun-woo. They would have become good friends. It's the same thing that likes to play pranks. (괜찮아요. 덕분에 제 딸도 생각나고 좋았습니다. 제 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은우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요. 은우랑 루시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거예요. 장난 취향도 비슷하고요.)”

은우가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I saw Lucy's picture. I checked every single one of Lucy's comments. She's really pretty. I wish I could've met her earlyer. (저도 루시의 사진을 보았어요. 루시가 제 너투브와 별스타에 달았던 댓글들도 확인했어요. 루시는 정말 예쁜 아이였는데 좀 더 빨리 만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예요.)”

안드레아가 가방 안에서 곰인형을 꺼내며 말했다.

“It's Lucy's favorite doll, Caddy. Lucy is always with me. (루시가 가장 좋아하던 캐디야. 루시는 늘 나와 함께 있어.)”

그때 은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un bel giorno di maggio

Ho afferrato la tua mano.

Stavi sorridendo sotto il sole.

오월의 어느 멋진 날

난 너의 손을 잡았지.

넌 햇살 아래에서 웃고 있었어.]

안드레아는 눈을 감고 [오월의 어느 멋진 날]을 듣고 있었다.

‘테너 음역대인 곡을 소프라노로 바꾸니 다른 느낌이군.

생각했던 것보다 은우 목소리를 훨씬 더 아름다워.’

안드레아는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오월의 햇살 아래 루시가 나타나 미소 짓는 환상을 보았다.

‘루시, 보고 있니? 노래 속에서 너는 영원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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