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 외전-9화 (239/257)
  • 외전 9화. 헌정 음반 (1)

    [베이비가 돌아왔다]는 파일럿 편성 기간 동안 평균 15프로라는 시청률 기염을 토했다.

    ‘이수정 조작설을 다 잠재울 정도로 은우 가족의 케미가 좋았지.’

    서로 아껴주고 위하는 가족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보기 드문 해외 입양 가정인 점도 그랬고.’

    은혁이의 능숙한 한국말과 창현과 백수희의 은혁이에 대한 배려 역시 호평을 받으면서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조명했다는 기사까지 쏟아졌다.

    ‘[세이브 더 월드]에서 해외 입양 문의 건이 늘어날 정도였다고 했으니까.’

    안타까운 것은 문의는 늘었지만 실제로 입양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점.

    ‘아직까지 인식개선이 더 필요하단 뜻이겠지?’

    [베이비가 돌아왔다]를 7년 동안 만들면서 순수하고 예쁜 아기들과 함께하는 게 즐거웠지만 이렇게 뜻깊었던 촬영은 오랜만이었다.

    ‘세상에 예쁘고 행복한 아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까 우리 프로그램 시청자게시판에 가장 많이 달렸던 의견이 위화감에 관한 것이었구나.’

    유명한 스타들의 아기만 나오다 보니 좋은 집에서 좋은 것만 먹고 지내는 모습만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그런 티비를 보고 나면 자신들의 육아 현실이 더욱더 초라해진다는 게시판의 의견이 오늘따라 마음을 찔렀다.

    ‘스타들의 아기는 이슈를 만들기가 쉬우니까. 어느 정도 외모도 보장돼 있고.’

    시청률을 위해서 했던 어쩔 수 없던 선택.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수정 조작설 역시 그래서 생긴 걸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신기해할 만한 소재를 찾다 보니 재벌을 찾게 되고 그래서 이수정 부부를 캐스팅한 것도 있었으니까.’

    자신이 무시해 버렸던 그 의견들이 전부 다 진실이었던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여전히 정 PD의 마음 한 켠에서는 시청률의 악마가 속삭이고 있었다.

    ‘조작설보다 더 무서운 게 시청률 하락이야. 어차피 시청률 낮으면 개편 때 살아남지 못한다고. 가난하고 예쁘지 않은 아이들이 나오는 육아 프로를 시청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잖아.’

    정 PD는 사악한 마음의 소리를 눌렀다.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냐? 매일 시청률 운운하다가 후회만 남기는 거보다 낫지. 나도 한 번쯤은 세상에 좋은 일도 좀 하면서 살자고.’

    시즌 4의 기획서가 정 PD의 손끝에서 작성되고 있었다.

    ‘시즌 4에서는 연예인 자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자녀들까지 함께하여 현실의 육아도 함께 보여주고자 한다. 일반인의 자녀는 시청자들의 자녀 중에서 신청을 받아서 선정할 것이며 육아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연예인들이 일일 육아 도우미로 찾아가 육아를 함께 도와주는 코너도 신설할 예정이다.’

    ***

    이탈리아의 유명한 테너 안드레아는 며칠째 어두운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 빛이 사라졌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후 그에게 세상은 암흑으로 바뀌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만 있으면 가난해도 삶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여전히 자신의 곁에 음악이 있는데도 자신은 음악을 돌아보지 않았다.

    ‘루시. 나의 루시.’

    여덟 살이던 딸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미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제 본 얼굴처럼 생생했다.

    ‘루시.’

    널 잃은 뒤로 내 시간은 멈췄어.

    안드레아는 더 이상 음악을 듣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무서운 적막과 어둠만이 흐르는 집안.

    안드레아가 불을 켜고 증강현실 안경을 꼈다.

    ‘이렇게 해야만 루시를 볼 수 있으니까.’

    유명한 증강현실 기술자에게 돈을 주고 제작한 영상만이 안드레아의 유일한 낙이었다.

    증강현실 기계를 끼고 안경을 끼자 루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루시.”

    안드레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시가 영상 속에서 안드레아에게 와 안겼다.

    ‘보이는데 만져지지 않는 너.’

    증강현실 안경을 끼고 루시를 만나는 시간은 그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임은 틀림없었지만, 가장 슬퍼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너. 허공 속을 더듬는 내 손. 영상 속의 너는 눈부시지만 그래서 더 슬프기도 하지. 우린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

    그 미묘한 감정 속에서 안드레아는 울었다.

    울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루시를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기 때문에.

    루시가 영상 속에서 말했다.

    “아빠 놀이공원 갈 거죠? 그쵸?”

    “그럼, 그럼.”

    다시 루시를 만날 수만 있다면 루시가 좋아하는 놀이공원에 일주일 내내 함께 가 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그는 루시가 그토록 좋아하는 놀이공원에 함께 가 주지 못했다.

    세계적인 성악가로서의 삶은 말 그대로 여행하는 삶이었다.

    전 세계로 도는 투어 일정에 그의 몸은 고단했다.

    고단하지만 고단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그는 정상의 성악가였고 늘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대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미칠 듯한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그럴 때면 가족과 하는 영상통화가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좀 더 빨리 노래를 그만뒀어야 했어.’

    루시가 죽고 난 뒤 아내가 떠났다.

    홀로 남은 집에서 안드레아는 매일 자신을 탓했다.

    ‘난 루시에게 형편없는 아빠였어.’

    그리고 그 자책감이 안드레아를 술로 이끌었다.

    증강현실 안경을 벗고 난 안드레아는 찬장을 열고 위스키를 꺼냈다.

    ‘술을 마셔야 잊어지니까.’

    목 관리가 생명이었던 테너였던 시절, 안드레아는 술을 마음 놓고 마셔본 적이 없었다.

    다음 날 공연에 지장이 있을까 봐 식단을 조절하고, 목 상태를 체크하고, 적절한 양의 운동을 했다.

    그랬던 그의 건강이 루시가 죽고 난 뒤 일 년 후 완전히 망가져 가고 있었다.

    술을 마시다가 지친 그는 그대로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잔 것일까?

    창문으로 들이치는 빗소리에 안드레아는 잠에서 깼다.

    “추워.”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목이 아팠다.

    안드레아는 창가로 가 창문을 닫았다.

    ‘이런 카펫이 다 젖었네.’

    안드레아는 수건을 찾으러 욕실로 갔다.

    일하는 아주머니조차 들린 지 꽤 시간이 지난 욕실은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었다.

    안드레아는 욕실장에서 수건을 찾지 못했다.

    ‘전부 다 세탁기에 있는 걸까?’

    세탁기를 마지막으로 돌린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계단 아래 방에 가면 타올이 있을까?’

    아내가 전에 선물로 받은 타올을 계단 아래 방에 모아둔 걸 본 것 같았다.

    안드레아는 계단 아래 방의 문을 열었다.

    “켁켁.”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아서인지 먼지 냄새가 목을 찔렀다.

    안드레아는 쌓인 물건을 뒤적이며 수건을 찾았다.

    그러다가 앨범 하나가 떨어진 것을 보았다.

    ‘루시.’

    떨어진 앨범이 펼쳐진 페이지는 루시의 사진이 담긴 페이지였다.

    안드레아는 루시의 앨범을 소중하게 안고 바닥에 앉았다.

    앨범 속에서 루시는 웃고 있었다.

    [모래 놀이를 하는 루시.]

    [동물원에 간 루시]

    [뒷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루시]

    [그림을 그리는 루시]

    ‘너무 예쁘구나 우리 딸.’

    안드레아는 루시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루시의 사진 어디에도 나는 없어. 미안해. 아가야. 나는 이렇게 모자란 아빠였나 봐.’

    안드레아가 앨범을 넘기고 있는데 앨범 사이에 끼워져 있던 편지가 떨어졌다.

    ‘이건 뭐지?’

    편지엔 삐뚤빼뚤한 루시의 필체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아빠.

    아빠는 노래를 너무너무 잘한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빠를 칭찬한다.

    나는 아빠가 너무 좋다.

    아빠는 나랑 놀이공원도 못 가고 또 비눗방울 놀이도 못 해주지만 그래도 나는 아빠가 좋다.]

    편지를 읽는 안드레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 장을 편지를 다 읽고 나니 뒤에 한 장의 편지가 더 있었다.

    [내 꿈은 가수다. 나는 아빠를 닮아서 노래를 잘한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가수가 될 거다. 그리고 이은우와 함께 무대에 설 거다. 이은우는 목소리가 매우 예쁘다. 나는 그를 슈퍼볼 공연에서 처음 보았다. 내가 엄마에게 은우가 너무 멋지다고 했더니. 엄마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엄마가 보기에도 멋지다고. 나랑 엄마는 함께 이은우 너투브도 구독했다.]

    안드레아는 루시의 노랫소리를 떠올리곤 미소 지었다.

    ‘루시는 지독한 음치였지. 노래 실력은 내가 아니라 엄마를 닮았으니까. 하지만 늘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해서 그 꿈을 깨고 싶지 않아서 내버려 뒀었는데.’

    안드레아는 딸의 음정과 박자가 맞지 않는 그 노래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루시, 네 노랜 아빠에겐 최고의 곡이었단다.’

    루시의 노래를 생각하면서 안드레아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나갔다.

    ‘이은우라고? 대체 누구지? 루시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구나. 남자친구는 아직 안 된다고 내가 그렇게 말했었는데.’

    루시를 너무나도 귀여워했던 안드레아는 루시가 자라는 것이 아쉽기도 했었다.

    ‘루시는 늘 내 옆에 남길 바랐었으니까. 그게 내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안드레아는 자신이 몰랐던 루시의 꿈에 눈길이 갔다.

    ‘이은우랑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게 꿈이었다고?’

    세상을 떠난 딸의 마지막 꿈.

    안드레아의 눈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

    강라온은 [바나 스프] 광고를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짜 예쁘게 나왔단 말이지. 저 광고.’

    귀여운 아가에서 국민 오빠로 변신한 은우의 이미지 변신은 놀라웠다.

    따뜻하고 가정적인 이미지 탓에 전 연령에서 여자 팬이 더 늘어나기도 했다.

    ‘[베이비가 돌아왔다]가 미국까지 진출하긴 어렵겠지만 동남아와 일본, 중국에선 이미 인기가 있는 프로니까.’

    아직까지 한류가 가장 큰 곳은 유럽과 미국보단 동남아와 일본, 중국이었다.

    ‘가까운 곳의 팬을 확보하고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게 좋겠지?’

    배우와 가수 활동 두 개를 놓고 본다면 현재로선 배우의 활동이 좀 더 안정적이라는 것이 강라온의 생각이었다.

    ‘영화 대본도 몇 개 들어온 게 있으니까. 여기서 적당한 걸 골라보는 게 좋겠어.’

    강라온은 테이블 위에 놓인 대본을 차례대로 보았다.

    ‘[뒤돌아보지 마]는 여름을 겨냥한 공포 영화고 [달려라 좀비]는 요즘 유행인 좀비물이고 [사랑은 콩닥콩닥]은 귀여운 로맨스물이고.’

    모두 충무로에서 내로라하는 기대작이었다.

    ‘아직까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의 아우라가 남아있으니까.’

    은우의 이름만으로 홍보 없이도 일정 수의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제작자들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기회가 많은 만큼 제대로 된 작품을 고르는 게 좋겠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강라온에게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알림이 울린 거 보면 업무용 메일인데 무슨 일이지?’

    강라온은 메일을 확인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안드레아? 세계 최고의 테너 안드레아?’

    안드레아라면 세계 3대 테너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3대 테너들 중에서는 가장 크로스 오버 음반을 많이 시도하는 가수이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미국 팝스타들과 낸 크로스 오버 음반이 성공해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으니까. 가만있어 봐. 근데 이 사람 요새 뭐 하고 지내지?’

    강라온은 안드레아의 근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안드레아, 여덟 살 된 딸 루시를 교통사고로 잃어]

    [안드레아, 음악 활동 접는다. 사실상 은퇴?]

    ‘일 년 동안이나 활동을 쉬었다고 그런데 왜 우리에게?’

    강라온은 메일을 더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이탈리아의 안드레아라고 합니다. 이은우와 함께 음반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내 전 재산을 줄 용의가 있습니다. 이번 음반은 내 딸을 위한 헌정 앨범이 될 겁니다. 그리고 나는 내 음악 인생을 걸고 가장 멋진 음반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내 제안을 받아주세요.

    절실한 마음을 담아서. 안드레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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