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베이비가 돌아왔다 (7)
은우가 나서자 팬케이크는 망하지 않고 순서대로 척척 진행이 되었다.
은정이는 요리 장면이 보고 싶은지 두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냐두 냐두.”
은우가 은정이를 아기용 의자에 앉혀 주었다.
테이블 위가 잘 보이게 된 은정이가 미소를 지었다.
“마디떠?”
은혁이가 은정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맛있게 만들어 줄게. 은정아 조금만 기다려.”
은혁이가 계란과 우유를 거품기로 저으면서 말했다.
은우는 프라이팬을 찾고 있었다.
은정이는 볼에 담긴 팬케이크 가루를 보고 있었다.
‘재밌겠다.’
은정이가 두 손을 뻗어 팬케이크 가루에 손가락을 넣었다.
부드러운 감촉에 신이 났는지 은정이는 팬케이크 가루를 손에 움켜쥐고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은정이를 찍고 있던 촬영감독은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망했다. 오늘 요리도. 우리 시청률도.’
아마 아이들은 오늘 팬케이크를 먹지 못할 것이다. 굶거나 아니면 라면이나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하겠지?
‘우리 은정이 슬퍼하겠네. 그래도 은정이 먹을 건 냉장고에 있겠지?’
촬영감독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은우와 은혁이 부엌에 하얀 눈 같은 팬케이크 가루를 날리고 있는 은정이를 발견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은정아.”
“은정아.”
재미나게 놀고 있던 은정이는 은혁과 은우가 소리를 치자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은정이는 울음을 터트리면서 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부엌은 하얀 눈가루와 같은 팬케이크 가루로 난장판이 되었다.
은우와 은혁이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어쩔 줄을 몰랐다.
“앙.”
은정이의 울음이 계속되자 정신을 차린 은우가 은정이를 달랬다.
“은정아, 울지 마. 괜찮아.”
은혁이도 은정이의 옆에서 은정이를 달랬다.
“미안해. 은정아. 울지 마. 우리가 치울게.”
은혁이가 청소기를 가지고 와 하얀 눈이 내린 듯한 부엌을 치우기 시작했다.
‘가루는 치우면 되긴 하는데 뭘 먹어야 하지? 가루가 사라졌으니 팬케이크는 못 만들 테고. 그럼 대체 뭘 만들어 먹어야 하지?’
간신히 찾아낸 요리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로 망치게 되었다니 눈물이 흘렀다.
상황을 보고 있던 신유리 작가가 안타까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은혁이 속상한가 봐요. 에구 짠해라.”
박하영 작가도 말을 보탰다.
“그니까요.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맘이 안 좋아요. 차라리 우리가 지는 게 낫겠어요. 호텔 뷔페가 비싸긴 하지만 은혁이랑 은우, 은정이가 속상해하는 것보단 나을 거 같은데.”
이정연 작가가 말했다.
“나도 속상하다. 은정이는 아기라서 그런 거고 은혁이랑 은우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뿐인데 이렇게 엉망이 돼 버리다니. 그치만 여기서 끝이 아닐 거야.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고.”
정이선 작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말 참 멋진 말이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진 것 같아요. 정연 선배님. 저 요릴 어떻게 살려요?”
작가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부엌에서는 은정이를 달랜 은우가 찬찬히 상황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다른 재료는 있는데 팬케이크 가루만 없어졌네. 형 표정이 너무 안 좋아. 이대로 요리가 실패하면 형이 실망하고 말 거야. 어떻게든 요리를 살려야 하는데.’
은우는 은정이를 달래어 아기용 의자에 앉힌 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팬케이크 가루 없이 만드는 팬케이크]
팬케이크 가루로 팬케이크를 만드는 법과 밀가루로 팬케이크를 만드는 법이 나왔다.
‘밀가루로 팬케이크 만드는 건 너무 복잡한데.’
집에 아빠가 쓰던 밀가루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지만 버터를 녹이고 휘핑크림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워 보였다.
‘잠시만 이건 뭐지?’
글들 중 아래에 위치한 글에 [바나나 팬케이크 만들기]가 떠 있었다.
‘우리 집에 바나나 많은데?’
바나나를 좋아하는 은혁 때문에 은우네 집에는 항상 바나나가 준비돼 있었다.
바나나 걸이까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게 좋겠어. 이걸로 하자.’
은우는 울상을 짓고 있는 은혁에게 가서 말했다.
“형, 내가 팬케이크 만들 테니까 도와줄래?”
“가루도 없는데 어떻게?”
“방법이 있어. 바나나로 만들 수 있대.”
“정말?”
은우는 레피시에서 읽은 대로 바나나를 가지고 왔다.
“은정아, 바나나 껍질 좀 벗겨줄래?”
은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혁이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나에게 하라고 시키지. 은정이가 잘할까?”
은우가 빙긋이 웃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놀라고 준 거야. 또 사고 칠지도 모르잖아.”
은혁이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는 볼에 껍질을 간 바나나를 으깬 뒤 계란을 넣고 거품기로 저었다.
은혁이가 신기한 듯 물었다.
“이렇게 하면 진짜 팬케이크가 된대?”
“응. 일단 시킨 대로 하고 있어.”
은우는 정확한 바나나의 양과 계란의 양을 기억했다가 정량대로 레시피를 따라 하는 중이었다.
“이제 프라이팬에 굽기만 하면 돼.”
은우는 인덕션을 켜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프라이팬 위에 국자로 동그랗게 반죽을 올리자 천천히 반죽이 익어가기 시작했다.
은혁이 탄성을 질렀다.
“정말 된다. 진짜 된다.”
은우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은정이가 아기용 의자에 앉아서 소리를 질렀다.
“오빠아. 나듀 나듀.”
은우가 은혁이에게 말했다.
“형, 은정이는 위험하니까 오지 못하게 해야 돼. 내가 구울 테니까 가서 좀 돌봐줘.”
“그래, 알았어.”
은혁이가 은정이와 놀아주고 있는 사이 근사한 바나나 팬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은우는 완성된 팬케이크를 접시에 담았다.
“와아. 마디떠?”
은정이가 아기용 의자에 앉아 그릇에 담긴 팬케이크를 보며 웃었다.
은우가 찬장에서 찾아낸 메이플 시럽을 팬케이크 위에 뿌렸다.
“우아아아아.”
은정이가 박수를 쳤다.
은혁이도 환호했다.
“수고했어. 은우야. 정말 맛있어 보여.”
은우가 은정이에게 바나나 팬케이크를 먹여 주었다.
은정이는 작은 입을 벌려 바나나 팬케이크를 먹었다.
‘우와, 이건.’
부드러운 바나나의 맛과 달콤한 메이플 시럽의 조화.
은정이의 눈이 커졌다.
“더 져. 더 져.”
은정이가 포크를 든 은우의 손을 잡아당겼다.
“알았어. 천천히.”
은우가 은정이에게 바나나 팬케이크를 더 떠서 먹여 주었다.
은혁이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요리는 그렇게 싫다고 고개를 돌리더니 아기들은 거짓말 못 하겠지? 은우야, 네가 만든 팬케이크 진짜 맛있다. 넌 요리도 잘하는 거 같아.”
은우는 시무룩해진 은혁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아니야, 형. 형이 해 준 스프도 정말 맛있었어. 오늘 요리도 팬케이크 가루만 엎어지지 않았으면 형이 더 잘 만들었을 거야. 가루가 없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
“그럴까?”
“그럼. 우리 가루 사다가 다음에 한 번 더 만들자.”
촬영감독은 은우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저건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이잖아. 난 우리 형이랑 매일 싸우고 치고받고 했는데. 형이 물건 안 빌려준다고 싸우고, 형이 밥 더 먹어서 싸우고. 형의 잘못을 감싸주다니. 이건 무슨 위인전도 아니고.
하긴 은우 캐릭터 자체가 비현실적이긴 하지. 너무 모범생이야. 은우도 나쁜 생각이란 걸 하기는 할까? 아마 태어나서 한 번도 나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을 거야.’
상황을 지켜보던 방송작가들 사이에선 희비가 갈렸다.
정이선 작가와 이정연 작가는 환호하고 있었다.
“역시 은우. 9회말 투 아웃에서도 살려내네요. 이걸. 아우.”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어요.”
한편 신유리 작가와 박하영 작가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오랜만에 호텔 뷔페 가서 좋긴 한데 비싸겠다.”
“그래도 시청률은 잘 나올 것 같아. 시청자들은 반전을 좋아하잖아.”
“그래도 선배님. 그나마 둘 다 망한 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다음에 내기하면 난 무조건 은우가 있는 쪽으로 갈래.”
“저도요.”
***
은우를 모델로 캐스팅한 보나 스프의 본사에서는 아이디어 회의가 열렸다.
팀장인 박하나가 팀원들에게 말했다.
“[베이비가 돌아왔다]에 우리 스프가 나오면서 제품 판매량이 5프로나 증가했어.”
주임인 김민석이 말을 이었다.
“광고도 없이 판매량이 늘었으니 은우 인기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박하나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화제를 몰고 온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프로그램에서의 에피가 길게 볼 때 우리 회사에 꼭 좋은 영향만 주지는 않을 거야.”
대리인 차태원도 동의했다.
“맞아요. 레시피가 어렵다는 지적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프로그램 보면서 생각한 건데 설명서를 더 쉽게 만들 거나 어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원인 임예리가 제품을 보면서 대답했다.
“물만 부어서 만들면 되는 건데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저는 은혁이라는 아이가 덜렁대는 성격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거든요.”
박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린 제품을 판매하는 입장이니까 소비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어.”
대리인 차태원이 설문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고객들을 대상으로 돌린 설문지예요. 많지는 않지만 물 맞추기가 어렵다는 의견을 적은 소비자들이 있었어요. 은혁이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주임인 김민석이 말을 받았다.
“싱거운 스프라니 생각도 하기 싫으네요. 으으. 그게 무슨 맛일까요? 바로 싱크대에 부어버리고 싶을 거 같아요.”
박하나가 의견을 정리했다.
“그래서 말인데 말야.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사원인 임예리가 의견을 내었다.
“제가 콘프로스트 먹는 걸 좋아하는데 콘프로스트 사면 예쁜 그릇을 주더라구요. 그 그릇에 담아 먹으면 기분도 좋고 또 가끔은 그릇 때문에 콘프로스트를 살 때도 있거든요.”
김민석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을 받았다.
“그릇은 단가가 꽤 나갈 텐데 사은품 때문에 제품 가격이 너무 비싸지는 거 아닐까요? 길게 보면 제품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박하나가 동의했다.
“그렇지. 아무래도 너무 비싼 건 제품의 가격을 올릴 수 있어.”
대리인 차태원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계량컵을 넣으면 어떨까요? 물을 붓는 선이 표시돼있는 그런 컵요. 플라스틱 컵은 가격이 비싸지 않을 거 같은데.”
임예리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 동의했다.
“그러면 아예 컵라면처럼 일회용 용기에 넣어서 파는 건 어때요? 덜렁대거나 부주의한 성격의 사람이라고 해도 실수하지 않게요.”
박하나가 임예리의 의견에 브라보를 보냈다.
“좋은 생각이야. 아예 용기에 담아 파는 거 그러면 아무리 요리에 관심이 없는 아빠나 어린아이가 요리를 할 때도 맛이 똑같을 테니까.”
임예리가 신이 나서 전화기를 들면서 말했다.
“그럼 샘플 뽑는 공장에 연락해서 샘플 만들어 보라고 할까요? 시제품으로 광고 찍을 수 있게 말이에요.”
차태원도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은혁이의 실수가 우리 제품의 혁신을 가져왔네요. 좋다. 참 근데 [베이비가 돌아왔다] 지난주 방송 봤어요? 그 바나나 팬케이크 너무 맛있더라.”
박하나가 차태원의 말에 호응했다.
“차대리도 그거 봤구나. 나도 주말에 혼자 집에서 그 프로 보는데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집에 팬케이크 가루도 없었거든. 아침에 먹다 남은 바나나가 있어서 만들어봤는데 진짜 맛있더라.”
김민석도 신이 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요새 그 레시피가 유행이래요. 살도 안 찌고 또 건강에도 팬케이크보다 더 좋다고 하더라구요. 팬케이크는 밀가루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바나나 팬케이크는 안 그렇대요.”
***
스프 광고를 촬영하기로 한 날 은우는 은혁이와 은정이, 보리와 함께 하는 촬영에 마음이 설렜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촬영이라니 특별하게 느껴져.’
전에 음반 활동을 할 때 아기 무용단과 다녔던 적은 있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촬영은 처음이었다.
“멍멍.”
보리가 신이 난 듯 은우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래, 보리 너도 가자.”
스프 회사에서는 가족의 사랑이 묻어나는 광고를 찍기를 원했기 때문에 보리도 함께 오기를 원했다.
길동이 은우 가족을 태우러 은우의 아파트로 왔다.
“길동이 형.”
은우는 오랜만에 만난 길동에게 반가움의 표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