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화. 베이비가 돌아왔다 (5)
[베이비가 돌아왔다] 예고편이 나가고 나서 재롱이들 팬카페는 수많은 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카이] : 은우 키 큰 거 봤어요?
[kos7] : 우리 은우 안 본 사이에 훈남 됨. 이제 아가가 아니라 멋짐이 풍기기 시작.
[10510박찬혁] : 외모도 외모지만 인성 보소.
[빈이맘오키] : 형을 지켜주기 주기 위해 맛없는 파 맛 스프를 꿋꿋이 먹어주는 저 모습.
[with] : 눈 끝이 떨리면서까지 먹어주는 게 킬포예요. 우리 남편도 내 요리를 저렇게까지 열심히 먹어준 적은 없었던 듯요. 은혁이 부럽다아.
[미르은가람] : 다 사랑의 힘 아니겠습니꽈. 1가정 1은우 해야 함.
[랄라] : 맞아요. 1가정 1은우 해야 해요. 은정이도 저렇게 잘 보고. 저도 우리 아들이 저렇게 애기를 잘 봐준다면 둘째 낳을 생각도 있는데. 우리 애는 은우랑은 참 다르네요.
[박향순] : 그나저나 우리 은우 고작 여덟 삶에 육아돌로 거듭나나요?
[에티우] : 육아 베테랑 같은 저 모습, 고작 여덟 살이라는 게 적응이 안 되긴 하지만
[mds6] : 주말에 조카 만나서 조카랑 놀아줬는데 서른두 살인 저보다 나은 거 같은데요?
[mk9] : 은우 인생 n회차설.
[편하개] : 근데 저 스프 정말 맛이 저렇게 없을까요? 먹어보고 싶다. 마트에 사러 갑니다.
정태욱 PD는 흐뭇하게 포털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고편만으로 반응이 너무 좋아. 사람들이 전에 있었던 이수정 조작설은 잊어버린 것 같아. 역시 화제성이 크니까 묻히는구나.’
아직 방송이 되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이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유가 없더라도 시청자들의 눈 밖에 나면 프로그램 유지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는데 안혜림 PD가 아는 척을 했다.
“정 PD 어제 예고편 봤는데 잘 뽑았더라.”
“내가 한 게 뭐가 있겠어? 은우네 집 애들이 워낙 케미가 좋더라고.”
“에이, 자막 넣고 한 걸 보니까 솜씨 안 죽었던데. 잘됐다. 나도 속상했었어. 이수정 조작설 때문에 [베이비가 돌아왔다]가 욕먹어야 했을 때. 요새 너무 많잖아. 스타 잘못이 프로그램 잘못이 되는 거. 이건 무슨 연좌제도 아니고. 우리가 모든 출연진 뒷조사를 할 수도 없는데 말이지.”
“그런 분위기긴 하지.”
“암튼 다 잘될 거니까 힘내. 나도 응원하고 있을게. 반응 보니까 잘될 거 같더라.”
“고마워.”
갑작스런 위로에 정태욱 PD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출근을 하자 [베이비가 돌아왔다] 작가들이 정태욱 PD의 자리에 몰려들었다.
이정연 작가가 말했다.
“PD님 반응 완전 좋아요. 시청자 게시판이 다시 활성화됐어요.”
막내작가인 박하영 작가도 맞장구쳤다.
“전부 좋은 글들뿐이에요. 은우네에 대한 정규편성 글들도 많아요.”
정이선 작가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예고편 하나에 분위기가 완벽하게 반전됐어요. 우리 프로그램도 다시 정규편성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거 같고. 정말 눈물 난다.”
정이선 작가의 울먹임에 박하영 작가도 목소리가 떨렸다.
“저도 걱정했어요. 이제 들어온 지 일 년밖에 안 됐지만, 정도 많이 들었고. 우리 팀 너무 소중한데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이제 우리 같이 일 못 하잖아요. PD님도 그렇고 언니들 다 너무 좋은데. 이제 못 보게 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맘 졸였는지.”
이정연 작가가 박하영 작가를 위로했다.
“울지 마. 정 PD님은 7년이나 되셨는걸. [베이비가 돌아왔다] 맡으신 지. 슬퍼하지 말고 기회를 잘 살려보자. 우리 팀 앞으로도 행복하게 서로 위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힘내서 끝까지 밀어붙여 보자고. 아직 결과 나온 거 아니니까 파일럿 끝날 때까지 파이팅이야.”
박하영 작가가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끝까지 열심히 할게요. 저 야근해도 괜찮아요.”
정이선 작가가 박하영 작가를 보며 웃었다.
“오, 자발적으로 야근이라니. 우리 막내 상 줘야겠어. 나도 야근 콜.”
이정연 작가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열정 페이는 안 된다고. 왜 그래? 사회 분위기 해치게.”
듣고 있던 신유리 작가가 대답했다.
“강요한 건 열정 페이고 자발적인 건 아름다운 거 아닐까요? 내 일에 대한 열정이잖아요. 저도 잊고 잊던 열정 좀 소환해 볼게요.”
***
[베이비가 돌아왔다]의 예고편 이후 가장 기뻐한 것은 강라온이었다.
‘은우가 학교생활을 이유로 방송 일을 줄이겠다고 했을 때 막을 순 없었지만 아쉬웠지.’
은우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늘 스케줄을 짜거나 활동 계획을 잡을 때 은우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은우의 활동이 우리 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배우와 가수로 모두 활동하면서 월드 스타로서 자리매김한 스타는 없었다.
‘활동을 재개하게 된 건 좋은데 성장기에 접어든 것 같아서 어떻게 활동 계획을 잡아야 할지.’
은우는 1년 사이에 신장이 15센티가 자라면서 아기 티를 벗었다.
성격도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과묵해지고 내성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미지도 변화하는 중이니까 잘 잡아서 활동 계획을 잡아야 할 텐데.’
예능 출연은 무리가 없었지만, 가수나 배우로서 활동하게 된다면 전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잡아야 할 것 같았다.
‘팬들 기억 속에 은우는 귀여운 장난꾸러기였는데 말야.’
강라온은 은우 앞으로 들어온 출연 제의 목록들을 보고 있었다.
예고편에서 은우가 은혁이가 만든 스프를 먹어서인지 스프 회사 광고가 많았다.
‘우리나라에 입점한 스프 회사는 모두 광고 제의를 넣은 것 같은데.’
강라온이 평소에 자신도 잘 먹던 P사의 광고 제안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가족의 사랑을 강조한 스프 광고. 은혁, 은우, 은정 삼 남매가 출연하여 함께 스프를 먹는 모습을 통해 따뜻함을 연출하고자 함. 보리도 찬조출연 가능함.’
은우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강라온은 광고 촬영 날짜를 잡기로 했다.
***
[베이비가 돌아왔다]의 첫 번째 방송 날.
백수희와 창현은 아이들이 방송을 보지 못하도록 공원으로 나왔다.
은혁이는 보리의 산책 줄을 잡고 유모차에 앉은 은정이를 백수희가 밀면서 가고 있었다.
창현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새로 간 학교는 어때?”
“마음에 쏙 들어요. 선생님도 재밌고 애들도 재밌어요.”
햇살이 너무 센지 백수희가 은정이에게 모자를 씌워주면서 말했다.
“친한 친구는 없고?”
“르베티랑 에벨라라는 쌍둥이가 있는데 그 애들과 친해졌어요. 걔들은 쌍둥이인데 매일 물건 때문에 싸워요.”
“그래? 원래 애들은 잘 싸우지. 너흰 안 싸워서 정말 신기하지만.”
창현이 백수희의 말에 대답했다.
“나이 차가 있어서 그럴 거예요. 보통 나이가 비슷하면 많이 싸우더라구. 어릴 때는.”
창현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다시 활동하는 거 부담스럽진 않아?”
“반 애들이 외국 티비를 보더라구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거 아니면 모를 거 같아요.”
백수희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잘됐다. 근데 은우야 쉬고 싶으면 더 쉬어도 돼. 넌 사실 네 나이치고 너무 많은 일을 했거든. 즐겁지 않은데 참거나 그러진 말아. 아직 넌 정말 시간이 많이 있어.”
유모차에 앉아있던 은정이가 백수희의 말을 따라 했다.
“그러지 마랴.”
은우가 은정이가 사랑스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 그럴게. 은정아. 엄마, 아빠 근데 제가 다시 해보고 싶어졌어요. 쉬는 동안 좋기도 했는데 팬들이 그립더라구요. 아마 제가 팬들을 그리워하는 만큼 팬들도 저를 그리워하지 않을까요?”
백수희가 은우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은우 뼛속부터 스타네. 팬이 그립다니. 그치? 연기를 안 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있긴 해. 연기하는 순간은 긴장돼서 힘들 때도 있는데 하지 않을 땐 그 느낌이 그립거든. 근데 엄만 그걸 깨달았을 때가 서른 살이었는데 은우는 그걸 여덟 살에 깨달은 거야?”
창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 아들이지만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이 있다니까요. 은우는 정말로 어떨 땐 너무 조숙하기도 해서.”
창현의 말에 산책하던 보리가 창현의 앞으로 와서 멍멍하고 짖었다.
은혁이 웃으면서 말했다.
“보리도 그렇게 생각한대요, 아빠. 은운 정말 똑똑해요. 저도 가끔 놀라니까요. 제가 형인데 처음엔 늘 저를 형처럼 챙겨주었어요. 먹을 것도 챙겨주고요. 아프리카에서 처음 만난 날부터 그랬어요.”
은우가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니에요. 난 평범하다고요.”
***
[베이비가 돌아왔다]의 두 번째 촬영일.
정태욱 PD는 싱글벙글이었다.
‘첫 방송에서 시청률 12프로를 달성했어. 전 시즌보다 3프로나 오른 시청률이야. 순간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장면은 은정이가 초코만 먹고 남겨둔 과자를 은혁이가 다시 먹는 장면이었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짤과 너부트 방송분까지 합치면 조회 수는 더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화제성이 있으니 이번 파일럿 편성 내내 이 정도 시청률은 끌고 갈 수 있을 거야.’
정 PD는 신이 나서 촬영감독에게 말했다.
“오늘 미션은 다 같이 마트에 가는 거야.”
“제가 미션 전달자가 된 건가요?”
“자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말이야. 촬영감독이 등장하는 게 신선했나 봐.
그리고 그 포스트잇은 내가 봐도 웃겼어. 자네가 몸치인 게 여러 면으로 시청률에 도움이 됐다고.”
“그럼 이제 아예 출연하게 된 거네요. 저도 출연료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하는 거 봐서.”
“그럼 이제 저 하얀색 텐트 속에 있지 않아도 돼요?”
“그건 내가 알려줄게. 은정이가 그 텐트를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해서. 일단 시작은 그 텐트 안에 있어 보자고.”
촬영감독은 평소와 같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하얀색 텐트 안에 몸을 숨겼다.
방문이 열리고 낮잠에서 깬 은정이가 어설픈 걸음걸이로 거실로 나왔다.
은정이는 거실을 두리번거리더니 하얀색 텐트를 보고는 방긋 웃었다.
촬영감독은 은정이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어주었다.
은정이가 달려서 하얀 텐트로 달려오더니 고개를 쑥 내밀었다.
“안녕.”
은정이의 인사에 촬영감독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은정이는 촬영감독을 향해 빙긋 웃더니 부엌으로 달려갔다.
냉장고를 열고 요구르트를 꺼내더니 다시 촬영감독에게로 왔다.
‘은정이가 날 위해 요구르트를 가져다주나. 감동이야. 역시 은정이는 귀엽고 착하구나.’
은정이가 내민 요구르트를 촬영감독은 감동해서 받아들었다.
은정이가 촬영 감독에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까져.”
촬영감독은 실망했다.
‘세상에 겨우 세 살 된 아기가 밀당을 하네. 서운하긴 한데 말로 할 수도 없고.’
촬영감독은 작게 한숨을 쉬고 요구르트의 껍질을 벗겨 은정이에게 주었다.
“거마어.”
은정이는 인사를 한 후에 요구르트를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절반쯤 마셨을까 은정이는 마시던 것을 멈추고 촬영감독에게 반 정도 남은 요구르트를 주었다.
“머거.”
촬영감독은 혼란스러웠다.
‘세 살의 밀당 천재인가? 남은 요구르트를 주다니 저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정말 헷갈리네.’
촬영감독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방문을 열고 보리가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
은정이는 보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보이. 보이.”
촬영감독은 사라진 은정이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허탈하다. 은정아, 너는 언제쯤 내 맘을 알아줄까? 삼촌도 좀 예뻐해 주지 않겠니? 보리만큼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