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베이비가 돌아왔다 (4)
촬영감독인 조 감독은 얼떨결에 은정이와 함께 포스트잇 떼기 놀이를 마쳤다.
‘하아. 영혼을 불태웠네.’
얼마나 열심히 불었는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은정이는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은정이의 웃음소리에 보리가 모퉁이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등장했다.
“보이. 보이.”
은정이가 보리를 부르자 보리가 꼬리를 치며 은정이에게 다가갔다.
은정이가 보리의 등과 꼬리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보리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여기저기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은정이는 보리의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을 터트렸다.
“보이. 보이. 기여어.”
은우가 보리의 몸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면서 말했다.
“은정아, 보리 힘들어. 보리한테 그러면 안 돼.”
은정이가 은우의 말을 따라 하면서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믄 앙 대.”
은우는 은정이가 귀여워서 차마 더 혼낼 수가 없었다.
“으이구.”
은우가 은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포스트잇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보리가 고맙다는 듯 은우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은혁이가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놀고 있는 은우와 은정, 촬영감독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어른의 등장에 은혁이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당황한 촬영감독도 인사를 했다.
은혁이와 촬영감독을 따라 은정이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떼여.”
정태욱 PD가 촬영감독에게 말했다.
“아니, 거기서 인사를 하면 어떻게 해? 아주 이러다 이번 화 자막에 특별출연 조태웅이라고 이름 넣어야 할 판이야.
이렇게 된 거 조감독이 미션 전달해. 오늘 미션은 엄마, 아빠 없이 보내는 하루야. 엄마, 아빠가 돌아오기 전 8시간 동안 함께 잘 지내기.”
촬영감독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미션은 엄마, 아빠 없이 보내는 하루입니다.”
은정이가 엄마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반응했다.
“엄먀. 엄먀.”
은정이는 잊고 있었던 엄마의 존재가 떠올랐는지 울먹였다.
얼굴이 빨개져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리려는 은정이 때문에 촬영감독은 당황했다.
‘설마 우는 거 아닌지 울면 안 되는데.’
은우는 능숙하게 은정이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은정아,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아슈크림. 아슈크림.”
은정이는 아이스크림 생각에 울음을 멈추었다.
은정이가 은우에게 안겨 부엌으로 간 사이 촬영감독은 빠르게 촬영용 하얀 텐트 안으로 복귀했다.
‘휴우. 이제 나가지 말아야지.’
촬영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은정이는 은우의 품에 안겨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고 기뻐하는 중이었다.
“초꼬 초꼬.”
은우가 아이스크림의 포장을 벗겨주자 은정이가 신이 나서 작은 입으로 아이스크림을 조금 먹었다.
“맛있어?”
은우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은정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응응.”
은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앙 대.”
엄마가 있을 때는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지 못하기 때문에 은정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오빠가 좋았다.
“오빠도 먹을까?”
은정이가 절대 아이스크림을 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운한데. 은정이 오빠는 안 주고?”
은정이가 은우의 눈치를 살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만.”
은우는 은정이의 대답에 빙긋 웃었다.
‘은정아, 오빠가 아이스크림을 꼭 먹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야.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야.’
은우가 아이스크림의 끝부분에 혀를 대자 은정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은우는 은정이의 그 눈빛이 재밌어서 일부러 입을 크게 벌리는 척했다.
은정이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처럼 은우의 입을 주목하고 있었다.
은우를 입을 크게 벌렸다가 다시 조그맣게 오므려 아이스크림을 먹고 은정이에게 돌려주었다.
“내 아슈크림.”
은정이가 다행이라는 듯 밝게 웃었다.
은혁이는 부엌으로 들어가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엄마, 아빠가 안 계시니 내가 뭔가 챙겨줘야 할 거 같은데 뭘 주지?’
은혁이는 고민을 하다가 스프를 만들기로 했다.
‘제일 간단한 요리 같았는데. 은정이도 먹을 수 있고.’
은혁이는 찬장에서 스프를 꺼내 잔에 붓고 물과 함께 섞었다.
‘엄마가 하는 걸 보니 이렇게 하면 되는 것 같았는데.’
렌지에 넣고 3분을 맞춰서 돌리자 스프가 완성되었다.
‘이 정도면 훌륭한 한 끼 식사겠지?’
은혁이는 신이 나서 은우와 은정이를 불렀다.
“은우야, 은정아. 이것 좀 먹어 봐.”
은우가 은정이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왔다.
은혁이가 손잡이가 달린 머그컵에 담긴 스프 세 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은우가 스프를 수저로 떠서 은정이에게 먹여주었다.
은정이가 스프를 먹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맛이 없어?”
은혁이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은우가 옆에 있는 다른 스푼으로 스프를 맛보았다.
‘너무 싱거운데 엄마가 해 줄 땐 이런 맛이 아니었어. 뭔가 다른 거 같은데.’
은우는 골똘히 스프 맛에 대해 생각했다.
‘파 맛이 나는데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이래서 은정이 표정이 그랬구나. 근데 우릴 위해 열심히 준비했는데 맛이 없다고 하면 형이 상처받을 거 같은데.’
은우는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맛있어. 형.”
“다행이다.”
은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우가 은정이에게 스프를 한 입 더 권하자 은정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안 머글래.”
은정이의 말에 은혁이가 상심하자 은우가 대신 은혁이를 위로했다.
“형, 은정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그런가 봐. 아이스크림 주지 말걸. 내가 아이스크림 줬더니.”
“별수 없지. 우리라도 많이 먹자.”
많이라는 소리에 은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많이라고? 설마 은정이 것도 우리가 다 먹어야 한단 말인가?’
은혁이가 은정이 몫의 스프를 자신과 은우의 그릇에 부었다.
‘이건 새로운 벌칙일 거야.’
은우는 파 맛이 나는 묽은 스프맛에 좌절했다.
‘이제 와서 맛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은우는 아까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 대답이 이렇게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줄 알았다면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을 텐데.
‘그냥 눈 꾹 감고 한 번에 다 마셔버릴까? 천천히 먹으면 더 죽을 것 같을 텐데.’
결국 은우는 눈을 꼬옥 감고 파 맛 스프를 한 번에 들이마셨다.
은우와 은혁이가 부엌에서 스프를 먹고 있는 사이, 은정이는 거실에서 과자 서랍을 기억해내고는 서랍을 여는 중이었다.
서랍을 열고 초코과자를 발견하더니 씨익 미소를 짓는 은정이.
은정이는 작은 손으로 서랍 속에서 초코과자를 꺼냈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은정이는 포장지를 찢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은우가 찢어주던 그 모습을 기억하면서 찢으려고 했지만 작은 손으로는 잘 찢어지지 않았다.
은정이는 속이 상해서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울먹이면서도 포장지를 끝까지 놓지는 않았다.
작은 손으로 잡고 당기던 포장지가 갑자기 주욱 하고 찢어졌다.
은정이는 무게 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곧이어 봉지 속의 초코과자가 보이지 해맑게 웃었다.
“헤헤헤헤.”
은정이는 웃으며 봉지 속의 초코 과자를 꺼냈다.
버섯 모양의 초코 과자는 과자 부분 위에 초콜릿이 묻어있는 모양이었다.
“초코초코.”
막대에 묻은 초코를 열심히 빨아서 먹은 뒤에 은정이는 남아있는 과자를 다시 봉지에 넣어두었다.
‘이건 맛이 없으니까. 맛있는 것만 먹으니까 좋다.’
은정이는 또 손을 과자봉지로 뻗으면서 웃었다.
“헤헤헤헤.”
백수희가 있었다면 먹지 못했을 초코과자를 원 없이 먹고 있는 은정이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은정이는 봉지의 반을 초코를 먹고 남은 과자로 채웠다.
그때 부엌에서 은우와 은혁이 나왔다.
은혁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은정이 초코 과자 먹었나 봐. 엄마 아시면 혼날 텐데.”
“스프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은정이를 신경 못 썼어. 어떻게 하지?”
은정이는 손가락과 입술 근처에 초콜릿을 잔뜩 묻힌 채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은우가 물티슈를 가지고 와서 은정이의 손과 입을 닦았다.
“지지야. 은정아.”
은혁이는 은정이가 먹던 초코과자 봉지를 뺏었다.
‘그렇게 맛있나? 어떤 맛이길래 저렇게 좋아하지?’
은혁이는 봉지에서 은정이가 초코를 쪽쪽 빨고 남겨둔 과자를 꺼내 먹었다.
‘음, 그냥 심심한 맛인데 이게 그렇게 맛있나?’
은혁이는 봉지에서 과자를 두 개 더 꺼내 먹었다.
***
정태욱 PD는 촬영된 영상을 보면서 만족하는 중이었다.
‘첫 촬영치고 생각보다 성공적인데.’
처음엔 은정이가 촬영감독에게 말을 걸어서 당황했지만 의도치 않게 자연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고, 촬영감독이 은정이에게 부응하기 위해 블록을 쌓거나 포스트잇을 떼는 장면 역시 매우 재밌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조 감독에게 개그감이 있을 줄이야.’
포스트잇을 떼기 위해 얼굴뿐 아니라 몸까지 버리다니.
망가진 얼굴 못지않게 이리저리 펄럭이는 몸은 정말로 웃겼다.
‘조 감독 미안해. 이런 흑역사를 선물해서.’
조 감독의 입장에선 흑역사였지만 [베이비가 돌아왔다]의 입장에선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조작한 느낌도 들지 않고 다른 연예인이 섭외된 것도 아니니까 훨씬 신선하고 좋네.’
은혁이가 만든 스프 역시 재미 포인트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은혁이가 만든 스프를 한 입 먹자마자 고개를 돌리는 은정이는 너무 웃기고 귀엽고 슬펐다.
‘은혁이는 모를 거야. 저 스프가 진짜 맛이 없다는 걸.’
스프를 먹어보지 않았지만, 은정이의 반응과 스프를 원샷 하는 은우의 표정을 통해 정태욱 PD는 스프의 맛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은우의 눈꼬리가 떨리는 거 보면 정말 참을 수 없는 맛이었다는 거지. 설명서를 읽어보고 물 양을 조절해야 했을 텐데 그런 거 없이 그냥 조리를 하니까 저렇게 되지. 하긴 나도 저 나이 때 할 줄 아는 요리가 없긴 했어.’
얼마 전에도 라면 물을 못 맞춰서 싱거운 라면을 끓인 탓에 아내에게 한 소리를 들은 정 PD였다.
‘그래도 대단하다, 은우. 은혁이를 위해서 맛없는 스프를 참아준 거네.’
맏형으로서 동생들을 챙기려고 하는 츤데레 은혁이, 동생 은정이도 잘 보살펴주면서 형인 은혁이도 배려해 주려고 하는 은우, 그리고 자기주장이 강한 은정이까지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있었다.
‘관찰 예능은 캐릭터가 중요한데 겹치는 캐릭터가 없으니 그건 좋네. 근데 은우가 은정이를 너무 잘 보살펴서 새로운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아. [국민 오빠] 같은 거. 저 나이에 아기를 잘 돌보는 오빠가 몇이나 될까?’
정 PD는 은우에게 포근하고 따뜻한 오빠의 이미지를 입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아이돌이 찍었던 육아 프로에서 비슷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그룹이 있었지.’
오늘 살펴본 결과 은우의 이미지가 그룹의 멤버와 상당히 비슷했다.
‘어느새 벌써 자라서 아기 티를 벗고 아기를 돌보는 오빠가 되어 돌아오다.’
은우는 키도 자라고 볼살도 조금 빠져서 이제 귀엽다는 이미지보다는 잘생겼다는 이미지로 변해 있었다.
‘맙소사.’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정 PD는 은혁이가 은정이가 남긴 초코송이를 먹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저거 은정이가 쪽쪽 빨고 넣어둔 건데. 아마 은혁이는 모르나보다.’
아무리 동생이고 아기지만 저런 과자를 먹으라면 먹을 수 있을까?
정 PD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리 이쁘고 귀여워도 저건 아니지?’
하지만 아기를 키워본 부모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한두 번씩은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사람들마다 반응이 다를 테니 sns 같은 곳에서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한 소재일 거 같기도 하고.’
정 PD는 자막으로 초코과자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걸 예고편에 넣어야겠어.’
***
[베이비가 돌아왔다]의 예고편.
은우가 은혁이가 만든 맛없는 스프를 참고 먹느라 눈을 부르르 떨고 있는 사이.
은정이가 혼자서 걸어가 서랍장을 열고 초코과자를 열고 초콜릿만 쪽쪽 빨아서 먹었다.
그리고 남은 과자를 천연덕스럽게 봉지에 도로 넣는 장면.
은우와 은혁이가 돌아온 뒤 엄마에게 혼날까 봐 걱정하며 뒤처리를 하는 장면.
아무것도 모른 채 초코과자를 먹는 은혁의 얼굴 위로.
[초코과자야, 비밀을 지켜줘.]라는 자막이 올라갔다.
예고편의 방송만으로 [베이비가 돌아왔다]가 맘카페와 파파카페에서 이슈를 만들어냈다.
[딸이 남긴 초코과자 먹을 수 있나요?]
[건우파파] : 음, 저는 아무리 사랑하는 딸이라도 힘들 것 같아요.
[대박이파파] : 저도 알고선 못 먹을 거 같은데 아마 모르고 먹은 적이 있었을 것 같네요.
[에티우] : 저는 발견하고서 바로 쓰레기통으로 넣었습니다. 우리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침은 공유하지 말도록 해요.
[꿈을꾸는사람] : 저는 먹었어요. 맛은 똑같던데요.
┗ [장난꾸러기lee] : 정말요?